# 9
5. 복숭아 타령(3)
“네?”
“우리 집에서 재워 줘요?”
싱긋 웃는 재수 없는 면상을 거절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 * *
“설날 내내 지방 돌아다녀야 해서 내일부터 전 집에 없을 거고요.”
황송하옵게도 세계 최강이라는 초능력자가 직접 모는 차를 얻어 탔다. 목적지는 강남구에 있는 박서원의 집. 주소부터 부내가 느껴졌다.
“내가 집에 잘 없거든요? 그래서 별로 있는 게 없어요. 그건 알아서 사서 써요. 아마 제일 먼저 필요할 건…….”
박서원은 백미러를 통해 조수석에 앉은 날 보며 씩 웃었다.
“이불?”
……거기서부터 시작이구나. 대충 각오가 되었다.
그래도 찜질방이나 여관방에서 자는 것보다 강남구 아파트가 훨씬 낫지 않은가. 좋게 생각하자. 좋게……. 좋게.
“내 방만 건들지 말고, 그 외에는 알아서 해요. 조사하는 데 얼마나 걸린대요?”
김도훈에게 들었던 걸 떠올렸다.
“한 달?”
“한 달? 오래 하네. 하긴 가짜 천도랬죠? 어쩔 수 없네. 다른 사람을 집에 들이진 말고.”
“부를 사람도 없습니다.”
“친구 없어요? 밖에 나가서 사람 좀 만나고 그래요.”
“…….”
“냉장고가 있긴 한데 물 말고 뭐가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그것도 알아서 해요. 조리기구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것도 알아서 하고.”
“……뭐 먹고 삽니까?”
“알아서 다 먹고 살아요. 정해준 씨보다 내가 잘 먹고 다닐 텐데. 나 정도 되는 초능력자는 전국 대기조거든요. 가끔 중국이나 일본 갈 때도 있어서 현지에서 먹고 들어와요.”
초능력자가 있는 만큼 이곳에는 이상한 괴물들이 많았다. 박서원과 처음 만난 날 보았던 쥐도 그런 종류였다. 새날 같은 인증센터에 등록된 초능력자 중 일정 등급 이상이면 그런 괴물들이 나타날 때마다 가서 처리한다고 했다. 요괴처리대책통고 같은 입에 안 붙는 정식명칭이 있지만 대기조로 근무하는 초능력자들은 짧게 비상근무, 혹은 비상벨이라고 한다.
연수원 강사 백성찬도 비상근무자지만 불을 쓰는 능력 때문에 건조한 겨울에는 일선에서 빠진다고 했다. 그런 백성찬과 달리 박서원의 능력은 겨울을 타지 않으니 1년 내내 요긴히 부려 먹히는 것이다.
“비어 있는 방 중 하나 쓰면 되고……. 도우미분이 월, 금 오시거든요? 설 연휴니까 다음 주 금요일에 오세요. 청소만 해 주시는데 요리도 해 달라고 하면 해 주실 거예요. 부탁하던지. 그 외에는 적당히 알아서 하고.”
이쯤 되니 오히려 수상해졌다.
“……박서원 씨, 저랑 잘 모르지 않나요?”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저 말고 다른 정해준 아나 봅니다?”
“아는 사람이 팬한테는 잘해 주라고 했거든요.”
“팬 아니라니까요.”
박서원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무슨 소리 하는지 알겠는데,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안 듣는 게 좋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인간은 슬프게도 멍청했다.
“믿는 구석이요?”
“김 아저씨를 믿거든요.”
“누구요?”
“아, 김태욱 차장님이요. 정해준 씨 상사.”
그러고 보니 김 차장이 박서원을 어릴 때부터 봤다고 했다.
“정해준 씨가 이상한 짓 하면……. 알죠? 동종업계에서 10년은 일 못 하게 할 수 있어요.”
협박질도 이렇게 당당하게 하면 협박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건 일방적인 선포에 가까웠다. 이게 안 무서워야 당당히 굴 수 있는데 불행히도 박서원의 협박은 효험이 너무 좋았다.
백미러 안에서 박서원은 재수 없게 웃으며 갑질했다.
“그러니까 알아서 잘해요.”
……정해영 진짜 취향 이상한 거 아냐? 이런 앨 왜 좋아하는 거지?
정해영의 믿을 수 없는 남자 취향에 대해 고찰하는 동안 박서원의 집에 도착했다. 17층까지 올라간 아파트는 지하주차장부터 엘리베이터, 복도까지 모조리 비싸 보였다.
“비밀번호 기억했죠?”
“네.”
“제일 안쪽 방이 내 방이에요. 거긴 건들지 마요.”
한 달 동안 이 비싼 아파트에서 재워 주신다는데 말을 잘 들어야지. 박서원이 말하는 대로 나는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자, 방이 몇 개야? 난 아파트에도 복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다만 박서원이 차에서 말한 대로, 이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델하우스도 이것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날 거다.
전체적으로 새하얗게 꾸며진 집과, 구색 맞추기 용으로 놓은 것 같은 거실의 소파와 TV. 부엌의 식탁. 어떻게 사람 사는 집 가구가 이걸로 끝일 수 있지? 살벌한 집 안 풍경에 몸이 으스스해졌다. 사람 사는 공간 같지가 않다.
“비어 있는 방 아무거나 쓰세요.”
그 말에 무심코 제일 가까운 방문을 열었다가 닫고 말았다. 박서원은 황급히 닫히는 문소리에 몸을 돌렸다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거긴 창고로 쓰고 있었네. 그 방 빼고 골라요.”
“이게 창고라고요?”
“그걸 거실에 놔둘 순 없잖아요.”
박서원은 답지 않게 쑥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난 내가 잘못 본 줄 알고 다시 ‘창고’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방 안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수십 개나 되는 검들이 비쳤다. 하나같이 끝에 붉은 술이 달려 있었다. 장식대에 올려져 있지도 않고, 대부분이 바닥에 굴러다니거나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창고라고요?”
“자주 꺼내는 물건이니까 원래는 신발장이랑 복도에 놔뒀는데 도우미 아주머니가 질겁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리했어요.”
어쩌면 난 사이코패스 혹은 연쇄살인마의 집에 내 발로 기어들어 온 건 아닐까?
* * *
박서원은 예고한 대로 토요일 새벽에 집을 떠났다. 나는 이불이 없어 거실 소파에 수건을 덮고 잤다.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 얼어 죽진 않았지만 새벽에 집을 나서던 박서원의 눈빛이 잊히지가 않았다.
‘……정해준 씨, 내 휴대폰 번호 알아요? 저번에 전화했잖아요.’
‘그거 회사 전화로 한 거라…….’
‘휴대폰이나 줘 봐요.’
그래도 내 몰골에 대한 코멘트 없이 박서원은 내 휴대폰에 자기 번호를 찍었다.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요. 아마 안 받을 테지만.’
……전화는 왜 하란 거야?
그래도 푹 자고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강남구 아파트의 비싸 보이는 소파에 앉아 세계 최강의 초능력자 연락처가 찍힌 휴대폰을 바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지금은 없는 번호인 가족의 번호 아래로, 마침내 신호가 걸릴 만한 번호가 저장된 것이다. 뭐, 이유나나 김석준이나 부서 사람들 번호도 저장되어 있지만 그건 회사 사람들의 번호니까. 기분이 다르다.
“……이불이나 사자.”
아니, 그 전에 이 집에 뭐가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한 달 동안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 * *
남은 세 개의 방 중, 양심을 생각해서 두 번째로 작은 방을 선택했다. 발코니가 딸려 있는 방이다. 욕실이 있는 곳이 생활하기에는 더 편할 것 같지만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뷰를 포기할 순 없었다. 내 인생에 언제 또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박서원이 이 집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나 궁금할 정도로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본인도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건 있을 줄 알았지. 500ml 생수가 잔뜩 있는 다용도실을 보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 집에서 제일 인간적인 부분이 화장실에 있는 휴지와 세탁실의 세제다.
마트에서 대충 필요한 걸 사서 배달시키고, 아무도 없는 넓은 거실에 누워 TV를 봤다. 친구 놈들이라도 있으면 술이라도 마시러 가자고 할 텐데. 박서원보고 뭐라고 할 건 아니었다. 아니, 그렇지만 누가 친구마저 사라진 세상에 떨어질 줄 알았냐고! 정해영, 진짜 거지 같은 드라마만 쳐 보고 앉아서는!
방에 있어 봤자 할 건 없어서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커다란 TV로 보는 영화는 느낌도 달랐다. 자다가, TV 보다가, 밥 먹고, 다시 자다가……. 를 반복하니 어느새 설 연휴가 끝나있었다.
“와……. 아주 내 집이네요?”
설 연휴가 끝나는 수요일 밤, 박서원이 돌아왔다.
“내 집처럼 지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은 안 했는데.”
“적당히 알아서 하라면서요?”
박서원은 먼지로 뒤덮인 옷을 벗으며 말했다. 늘 입고 있던 검은색 레이싱 슈트 같은 옷과 무스탕이다.
“그건 그렇죠.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일하고 왔는데 누군 퍼질러 자고 있어서 말해 봤어요.”
“연휴잖아요.”
박서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박서원은 허물처럼 바닥에 외투를 떨어뜨렸다. 어두운 갈색 무스탕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박서원은 씻어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끙.”
포근한 이불에 누워 있다가 그래도 집주인이 돌아왔으니 눈치가 보이긴 했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주웠다. 어디 흙에서 굴렀는지 자갈이 톡톡 떨어졌다. 먼지가 묻어 있는 건 당연하다.
무심코 먼지를 털어 내려고 옷을 흔들다가 후드득 떨어지는 흙먼지에 놀라서 그대로 베란다로 들고 나갔다.
베란다에서 탁탁 털어서 어째서인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나무 의자 등받이에 외투를 걸어 놨다. 사실 이렇게 터는 걸로 해결이 안 될 수준으로 보이지만 알아서 하겠지. 이걸로 집주인에 대한 의리는 지켰다.
먼지 덩어리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옷을 만졌더니 손까지 먼지에 감염된 기분이라 손을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뭐야, 이거.”
그런데 손에는 희뿌연 먼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붉고, 끈적끈적한 뭔가가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피?”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설마 박서원이 흘린 건가?
아니지. 조금 전 내 몰골을 비웃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게 어딜 봐서 다친 인간인가? 박서원은 비싼 몸이다. 다쳤다면 뉴스에 대서특필될 거다.
출장이랬으니 설 특근이었겠지. 먼지를 그렇게 뒤집어쓴 걸 보니 또 어디서 이상한 괴물을 때려잡았을 거고. 이건 그 과정에서 묻어난…….
괴물의…….
“…….”
비누로 손을 깨끗하게 씻었다. 세 번 정도.
* * *
매일 출근길마다 출근하기도 전에 퇴근하고 싶어지는 기분을 맛보고 있지만 막상 출근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업무량의 문제는 아니다. 가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싱긋 웃어 주는 아이돌을 보고 있으면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어이, 정 사원.”
“……예?”
“유나 씨가 예쁜 건 나도 알지만 그렇게 넋 놓고 보진 말고.”
“……안 봅니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김 차장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그래……. 좋을 때지.”
김 차장은 그윽한 눈으로 말했다.
“어떻게, 지낼 곳은 구했어?”
“네. 어떻게 잘 해결됐습니다.”
박서원은 날 약 올리기로 마음먹었는지 내가 출근하기 직전에 슬쩍 나와서 물만 마시고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날 보며 히죽 웃는 게 출근하는 나를 비웃고 싶다는 목적이 너무 뻔뻔하게 드러났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김 차장은 나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넸다. 파란색 보자기로 감싼 정사각형 상자였다. 딱 도시락 크기였다.
“이건……?”
“가짜 천도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잖아. 진짜랑 가짜가 섞여 있다니, 중국 놈들도 머리 썼다니까.”
김 차장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거기다 집까지 난리 난 건 해준 씨뿐이니까, 사장님도 많이 미안했나 봐. 이번엔 진짜배기를 구했으니까, 위로금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상등급의 천도복숭아라고 했다. 이 상자 안에 든 건. 사장님이 따로 검증까지 맡겨 확인한 만큼 이번에는 진품이 확실하다고 했다. 김 차장은 나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팔고 싶으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했다. 그 정도 처리할 만한 인맥은 있다고.
나는 지긋지긋한 복숭아를 노려보았다. 복숭아 과육을 뒤집어쓴 그 날 이후로, 적어도 삼 년간은 복숭아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물론 다짐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뭐라고 할까, 이 미친 듯한 냄새를 맡고 있으면……. 인간 세상의 다짐은 결국 쓸모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어서…….
꿀꺽.
선인의 말씀에 따르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하셨고, 금강산도 식후경부터라고 했다.
선인의 말씀은 틀린 점 하나 없으니, 비장한 얼굴로 복숭아를 깎았다. 이 집에 이게 쓸 일이 있을까 싶었던 박서원의 접시를 꺼내 복숭아를 가지런히 놓고, 포크를 찾다가 실패하고 배달음식을 먹고 남은 나무젓가락을 가져왔다.
수백만 원은 족히 나갈 복숭아와 나무젓가락의 조합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한 것 같지만 금으로 된 포크를 쓰든 중국집 나무젓가락을 쓰든 맛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덜덜 떨며 나무젓가락으로 복숭아를 잡았다. 원래도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이건……. 냄새부터가 다르다. 빛깔이 다르다.
나는 눈을 꾹 감고 복숭아를 먹었다. 아주 잠깐, 천상을 엿봤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