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5. 복숭아 타령(2)
정해영이 사랑하는 드라마는 방대한 설정을 자랑했다.
아니, 사실 자랑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드라마 세계에 들어오고 나니 알게 되었다. 잠실 청룡이나 멀리 안 가도 회사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드라마보다는 게임에 어울릴 법한 설정이다. 뭐, 화면만 보면 되는 드라마와 그 속에서 사는 건 다른 일이니까.
그래도 초능력자에 주술이라니. 진짜 적당히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억 소리 나는 복숭아가 평범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오늘과 김도훈은 현관부터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는 끝내주네요.”
복숭아 냄새는 물릴 만큼 독하지는 않았지만 침실까지 향이 퍼지는 바람에 요즘에는 옷에서까지 복숭아 향이 나고 있었다. 밑 부분이 썩어 들어가던 것만 아니면 냄새 때문이라도 먹어 치웠을 거다.
“확실히 이건 이상한 모양새군요……. 선배, 어때요?”
오늘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복숭아를 노려보았다. 김도훈은 자기 말이 무시당해도 괜찮았는지 뒤로 물러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에게는 함부로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 나는 김도훈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정확히 뭐가 문제인 겁니까?”
“어…….”
김도훈은 휴대폰을 들어 툭툭 치더니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색이 회색과 검은색이라는 점을 빼면 평범한 복숭아 사진이었다.
“재액 때문이라면 천도는 이렇게 변하거든요.”
그 말에 사진을 다시 봤다.
얼핏 보면 그림 같았다. 기이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부잣집의 복숭아였는지 그릇부터가 비싸 보이는 금박이었다. 파란 바탕에 금박으로 장식된 접시 위에 있는 복숭아는 옅은 분홍빛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물 빠진 회색이었다. 병에 걸린 것처럼 검은 반점이 콕콕 찍혀 있었다.
김도훈이 내게 휴대폰을 보여 주는 동안 오늘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팔짱을 끼고 복숭아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정해준 씨 천도는 아래서부터 시꺼멓게 죽어 가잖아요? 이건 보통 짭……. 아니, 그러니까 가짜 천도가 그렇거든요.”
오늘은 주머니에서 안경닦이를 꺼내 안경을 박박 닦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짜 천도는 중국에서 단속을 심하게 해요……. 중국 국내에서 보통 잡히기 마련인데 한국에서 발견되어서 그쪽도 난리일 거예요.”
“……그래서 저게 진짜 가짜긴 한 거죠? 냄새가 너무 심해서 슬슬 집에서 치우고 싶거든요.”
“옮겨도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저희가 나온 거니까…….”
“그냥 옮기면 안 됩니까?”
“천도의 영험함을 흉내 내기 위해서 가짜한테 별 잡스러운 주술이 걸려 있기 마련이거든요. 잘못 옮기면 큰일 나니까 잠깐만 참아 주세요. 살펴보고 저희 쪽에서 다 처리해 드릴게요”
“그렇다면야…….”
오늘은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다.
나와 이야기하던 김도훈이 깜짝 놀라 오늘한테 달려갔다.
“선배! 그렇게 막 나가지 말라니까요!! 지난번에도 시말서 썼잖아요!!!”
“그, 그치만…….”
“다 확인했어요? 여기 주거지역이라서 잘못 튀면 망해요.”
“……으.”
오늘은 김도훈의 시선을 피했다.
“자, 다시 제대로 합시다.”
김도훈은 뭔가 엄청난 걸 할 것처럼 말해서 날 기대하게 했지만 정작 하는 건 별로 없었다. 무어라 중얼중얼거리고, 방울을 흔들고, 마지막에는 하얀 가루 같은 걸 복숭아 위에 뿌렸다.
내 눈엔 그냥 복숭아를 가운데 놓고 푸닥거리를 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본인들은 무척이나 진지하고 고된 작업이었는지 그 모든 작업을 끝낸 오늘과 김도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다.
“이, 이제……. 마, 만진다……?”
오늘은 김도훈을 흘깃흘깃 보며 물었다. 눈치를 보는 건지 노려보는 건지 헷갈리지만 표정이 나쁜 걸 보니 노려보는 게 맞는 모양이다.
“처리 다 했으니까 괜찮겠죠.”
김도훈은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아차, 하는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저, 동영상 좀 찍으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다른 곳도 찍어야 합니까?”
“복숭아만 찍으면 됩니다!”
그렇게 휴대폰의 입회하에 오늘이 복숭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리 아랫부분만 변해도 썩은 복숭아를 맨손으로 잡긴 그랬는지 파란 라텍스 장갑을 낀 채다.
“그, 그럼, 잡습니다아……?”
오늘은 망설이지 않고 복숭아를 잡았다.
“으, 으아아……?!”
그리고 펑, 하고 복숭아가 터졌다.
* * *
앰뷸런스와 비상등을 켠 경찰차가 골목길에 멈췄다.
수사관 두 명이 여러 명으로 늘었다.
앰뷸런스 주위에는 솔가지를 꽂은 금줄이 쳐졌다. 금줄을 친 구급대원은 내 어깨에 담요를 얹었다. 겨울바람이 으스스하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나와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는 사람이 두 명 더 있다.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 있고 눈은 흐리멍덩하다. 온몸에서 코가 아릴 정도로 달달한 냄새가 났다.
오늘은 담요로 안경을 열심히 닦고 있었지만 담요의 질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안경은 여전히 더러웠지만 안경알에 붙어 있던 복숭아 과육이 없어진 걸로 만족했는지 오늘은 안경을 꼈다. 오늘은 만족하는 모양이지만 이쪽은 오히려 눈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김도훈은 복숭아 과육이 뚝뚝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다가 짜증을 냈다.
“아, 내 휴대폰!!”
복숭아가 터지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던 탓에 김도훈의 휴대폰은 증거물로 제출되었다. 손에 휴대폰이 없으면 죽는 건 드라마 속 현대인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 김도훈의 얼굴이 점점 죽어 갔다.
“저기요.”
그리고 나는 휴대폰보다 내 집이 걱정돼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네? 아, 대충 살(煞)이 붙었는지 확인하고……. 쟤가 왜 터졌는지도 확인하고……. 선배, 분명 아무 이상 없었죠?”
“어, 없었어…….”
“이게 다른 조치도 다 했으니까 보통은 평범하게 수거해 가거든요? 그동안 가짜 천도 많이 수거해 봤는데 한 번도 터진 적이 없어요.”
보통 ‘괜찮았는데 이번만 이렇다’라는 말은 결말이 안 좋다. 나는 불길함에 몸을 떨며 김도훈의 말을 경청했다.
“금줄이 괜찮은 거 보면 별문제는 없어 보이고요. 문제는 정해준 씨 집입니다만…….”
안 좋은 예감은 빗겨 나가는 법이 없다.
“제…… 집이요?”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내 목소리는 새끼 고양이마냥 떨렸다.
“저희가 처리를 한다고 하긴 했지만 간이술식으로는 완전히 처리하긴 힘들거든요……. 따로 챙겨가서 굿을 하려고 한 건데, 그게 터져 버렸으니……. 정해준 씨 집이 아마…….”
엉망이 되지 않았을까요……? 김도훈은 암담한 얼굴로 말했다.
“수사 도중에 일어난 일이니까 나라에서 보상이 나올 겁니다. 어차피 수사 때문에 한동안 살지도 못할 텐데 이사하는 건 어떠세요?”
이사라고?
“아뇨, 이사는 좀.”
“안 내키시면 어쩔 수 없죠.”
억지로 집을 비우게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정도로 막장 드라마는 아니었다.
“이제 나오셔도 괜찮고요. 정해준 씨?”
“네?”
“저희 수사관에게 들었는데, 이사는 원하지 않으신다고요.”
“네.”
“설명 들으셨겠지만 수사가 완료될 때까지 집에 들어가시긴 힘듭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죠. 짐이라도 좀 들고 나올 수 있을까요?”
나에게 말을 건 수사관의 얼굴이 난감해졌다. 안 된다는 소리군.
“그럼 최대한 안쪽 방은 손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건든다는 소리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뭐라고 말해봤자 저쪽도 불쌍한 공무원이다. 자고로 공무원이란 슬픈 직종이었고, 복숭아 과육을 뒤집어쓴 몰골로 대거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내 삶은 이미 충분히 고달팠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복숭아 때문에 수사관 두 명이 찾아왔던 건 분명 햇살 가득한 오후였는데, 이 난리를 겪는 와중에 해가 져 버렸다. 날씨가 더욱 추워졌다.
당장 모레부터 구정 연휴건만.
이제 집도 없는 신세가 되어 거리를 떠돌게 생겼다.
* * *
“해준 씨, 괜찮아요?”
당연히 안 괜찮다. 하지만 나는 웃는 아이돌 얼굴에 그렇게 대꾸할 만큼 뻔뻔한 성격이 안 되었다.
“괜찮아요.”
“……표정은 전혀 아닌데?”
“복숭아 뒤집어쓴 채 찜질방에서 자고 출근해 봐요.”
“……미안해요.”
“아니, 오늘 쉬라니까 나왔어?”
김태욱 차장이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깜짝 놀랐다.
“집에도 못 들어가는데 할 게 있어야죠……. 그래서 늦게 나왔잖아요.”
“아니, 집에도 못 들어가니까 쉬어야지…….”
“본가 안 가요? 오늘부터 쉬면 수요일까지 쭉 쉬잖아요!”
이유나가 아깝다는 듯 말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었다. 본가? 난 원래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20년 넘게 살았던 아파트에서.
이유나는 몰라서 한 소리겠지만 김 차장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내가 새날에 이력서를 쓸 때만 해도 가족사항 같은 건 넣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가족 얘기에 눈치를 보는 걸 보면 이곳에서 내 가족이 없다는 걸 아는 게 분명한데.
“일찍 가 봤자 잔소리만 들을 텐데, 뭐. 그냥 느긋하게 가려고요. 어차피 부장님이 오늘은 다들 일찍 들어가 보라잖아요.”
“아, 맞아요. 집에 가면 잔소리만 듣는다니까! 저 취직한 지 한 달 됐는데 벌써부터 조카들이 용돈 달라고 시끄러워요. 천 원씩만 줄까 보다.”
이유나는 툴툴거리며 조카 이야기를 늘어놨다.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 애들이 건방지니 뭐니 얘기하는 거에 적당히 맞장구쳤다.
“자, 그럼 모두 연휴 잘 보내고, 다음 주에 봅시다!”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두 시. 일찍 들어가라고 하더니 정말 일찍 보내 주네.
물론 설 연휴 전이라고 일찍 들어가는 건 좋았다. 어제 아침만 해도 좋아했을 거다. 그러나 돌아갈 곳도 없는 지금, 그러니까, 설 연휴를 모조리 찜질방에서 보내야 하는 지금은 별로 좋지 않았다. 갈 곳도 없어서 1층 카페에서 음료수를 시키고 미적거렸다. 찜질방……찜질방…….
“아니지, 아니……. 잠깐만…….”
생각해 보니 당장 설 연휴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 만난 경찰은 언제까지 집에 못 들어가는지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골목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가 불쌍했는지 김도훈은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다며 귀띔해 주었다. 미친 거 아냐? 한 달 내내 찜질방에서 잘 바엔 차라리 어디 여관방이라도 빌리는 편이 낫다.
“복숭아로 샤워했어요?”
몇 번 들어 보지도 않았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연휴 전이라 회사 로비에 있는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다. 아니면 또 저번처럼 꺅꺅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거다.
“안녕하세요, 박서원 씨.”
“옷도 양복이 아니네. 잘렸어요?”
이 새끼가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이렇게 당당히 하냐.
“하하. 아뇨.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복숭아……. 아, 집에서 복숭아 터졌다는 게 정해준 씨 얘기였어요?”
“……네.”
“그래서 또 기념품샵에서 사 입었구나? 예전에는 반팔만 팔았는데 요즘엔 맨투맨도 파나 보네요. 근데 왜 내 얼굴 아니에요?”
깔끔하게 회사 로고가 박혀있는 옷을 보며 박서원이 아쉬운 얼굴로 얘기했다.
웃어라. 회사의 노예여.
“하하하…….”
“뭐……. 그래서 왜 여기 있어요? 집이 그렇게 됐다지만 설 연휴잖아요? 가족이랑 보내야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라 설명할 말도 없고, 눈앞에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남자가 당황하는 꼴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같이 보낼 가족이 있어야죠.”
박서원은 눈을 끔뻑였다.
“그래요?”
생각한 만큼 당황하진 않았다. 박서원은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더니, 오히려 여유가 철철 넘치는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요?”
“정해준 씨 월급이야 거기서 거기일 테고, 잘 곳은? 찜질방? 방 빌리는 것도 힘들지 않아요?”
이번엔 내가 눈을 끔뻑였다. 박서원이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였다.
“나 어차피 설날에 출장 가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 재워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