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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동생이 좋아한 그 남자(2)
얼굴에 튄 피는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시발……. 쥐새끼 때문에 무슨 난리야.”
박서원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서, 서원 씨?”
이 대리가 나 대신 놀라 주었다.
“도대체 무슨…….”
그러나 박서원은 대답 대신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칼자루에 매달린 붉은 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던 박서원은 그 손짓에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숨이 끊어졌다.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도리어 충격이 없었다. 정해영은 도대체 무슨 드라마를 본 거야?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한국 드라마는 웬 궁녀가 요리를 하는 사극이었다.
요즘 드라마는 이런 걸 내보내도 되는 건가?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란 건가?
“헉, 이건…….”
그러나 이 대리는 물론이요 이유나마저 잠깐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칼에 찔려 움찔거리던 박서원이 완전히 숨이 끊기고 나자 모습이 바뀌었다. 시체가 아니라…….
“쥐?”
허리가 반쯤 끊어져 있는 쥐가 있었다.
“쥐라고요?!”
“경보 울려요. 노원에서부터 쫓아서 내려왔는데 아마 더 있을 겁니다.”
“아이고, 얘넨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오네.”
이 대리는 거멓게 죽은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난데없이 로비에서 일어난 피투성이 사건 때문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경비들이 주춤주춤 다가왔다가 쥐 사체를 보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쥐가 도대체 뭐기에 다들 이 난리인 거야?
무식은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상식을 모르는 건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나는 초능력자인증기관에 입사한 신입사원 아니던가. 다들 알고 있는 눈치인데 모른다고 하는 건 의심을 사기 마련이다. 적어도 이건 초능력자인증기관에 입사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처럼 보였으니까.
곧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들도 쥐 사체를 보고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박서원이 경찰에게 사건 경위를 말하는 동안 우리는 창백한 얼굴로 음료수를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이 대리는 멍한 얼굴로 요거트 스무디를 쪽쪽 빨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해준 씨, 괜찮아요?”
“네? 네, 괜찮습니다.”
“피가 많이 튀었는데……. 당직실 가면 샤워실 있으니까 씻어요. 옷은……. 유나 씨, 미안하지만 1층 가면 기념품샵 있는 거 알죠? 거기 가서 티셔츠 좀 사다 주세요. 계산은 이 카드로 하고요.”
“괜찮은데요.”
“안 괜찮아 보이니까 하는 소리예요.”
떠밀리듯 샤워실에 들어간 다음에야 이 대리가 왜 그렇게 안쓰러운 눈으로 날 봤는지 알았다. 생각보다 피가 많이 튀어 있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와이셔츠에 튄 피가 문제였다. 오늘 입고 나온 게 흰색이기도 했고.
“아, 검색해 봐야지.”
피가 튄 셔츠를 벗다 말고 휴대폰을 들어 그놈의 ‘쥐’가 뭔지 찾아봤다.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쥐라고 쳤다.
익히 아는 평범한 쥐에 대한 설명이 제일 위에 나왔고, 그다음에는…….
쥐[Rat / Doppelgänger].
네?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봐도 그대로였다. 쥐. 도플갱어.
주요 서식지. 한반도. 손톱이나 발톱을 섭취하는 것으로 그 주인의 모습으로 변형할 수 있다. 기억까지 모두 복사하기 때문에 구분하기는 매우 어려움. 위험 등급 최상.
조금 전에 로비에서 있었던 일도 벌써 기사가 떴다.
‘새날 소속의 초능력자 박서원(28)이 오늘 서울 서초구 새날 빌딩 로비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변한 쥐[도플갱어]를 처치했다. 쥐[도플갱어]는 서울 노원구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당국은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2급 경보를 울렸다. 쥐[도플갱어]가 서울에서 발견된 것은 3년 만이다.’
다른 기사를 눌러 봐도 비슷한 말만 하고 있었다.
‘쥐[도플갱어]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양이를 이용하는 것이며, 각 지방단체에서는 이를 대비해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만약 본인의 모습을 한 쥐[도플갱어]를 발견하면 112나 119, 혹은 각 지역의 초능력자인증기관에 신고하면 된다.’
도대체 이 동네는 어떻게 되어 먹은 곳일까?
샤워기에서 찬물이 쏟아졌다. 찬물이라도 맞고 정신을 차릴랬지만 1초 만에 후회했다. 달달 떨면서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역시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여기는.
* * *
씻고 나오자 이 대리가 오늘은 2층에 내려가지 말고 서류만 좀 정리하다가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이 정도면 피를 뒤집어쓴 보람이 있다. 오늘 입고 왔던 셔츠는 버려야 하겠지만.
“회사에 고양이 좀 키우자고 건의해 볼까요?”
“왜 이야기가 거기로 튀어요?”
이 대리는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쥐를 알아보는 건 고양이가 최고잖아요. 주민센터에서 키우는 것도 한계가 있고.”
“손톱이나 잘 버리라고 해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
이유나는 고양이와 쥐보다는 좀 더 궁금한 게 있었는지 이 대리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것보다 대리님. 박서원 씨랑 아는 사이에요?”
“왜요?”
“아까 인사하는데 친해 보여서요.”
“친한 사이는 아니고…….”
이 대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입사했을 때 사수가 서원 씨 등급 산정했거든요. 그래서 서원 씨랑 친하게 지냈는데, 저도 옆에서 자주 보다 보니까 인사할 정도는 됐죠.”
“박서원 씨면 곧 11등급 된다면서요? 멋지다. 얼마나 강하면 그래요?”
“나중에 몰래 서원 씨 영상 보여 줄까요?”
“헐, 그래도 돼요?”
“어차피 직원 영상인데요, 뭐. 내년 등급 검사도 우리 일인데 미리 봐 두는 게 어때서요.”
“그러네요!”
아주 죽이 척척 맞는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싱 슈트 같은 검은색 슈트 위에 무스탕을 입고 붉은 술이 달린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로비에서 보았던 남자, 정해영의 ‘내 새끼’, 이 드라마의 주인공.
박서원이다.
“서원 씨?”
“이진혁 씨.”
나는 한 박자 늦게 이진혁이 이 대리의 이름인 걸 떠올렸다. 하도 대리님 대리님 하니까 이름을 쓸 일이 있어야지.
“쥐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원래는 다른 일이었죠?”
박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가 쥐가……?”
“송 할머니랑 작업을 하다가 좀.”
박서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김 차장님은요?”
“연말이라 국가의 부름 가셨죠.”
“아, 잊고 있었네. 그 시기긴 하죠. 이쪽은 신입?”
박서원의 눈이 이유나와 나를 향했다.
“쥐한테는 소개해 주고 나한테는 안 해 주는 겁니까?”
“그건 없는 셈 쳐야죠. 이쪽은 이유나 씨고 이쪽은 정해준 씨.”
그러나 나를 보는 박서원의 눈높이가 애매하다. 내 얼굴을 잠깐 바라보던 박서원은 곧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정해영이 사랑해 마지않던 남자의 시선이 내 배 부근을 보았다. 뭐야? 왜 저래?
박서원의 시선을 따라 이 대리와 이유나의 눈도 아래를 향했다. 묘한 침묵이 돌아서 나도 내 배를 보았다.
“……풉.”
“최소한 유나 씨는 웃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미, 미안해요…….”
이유나는 멋쩍게 웃었다.
나는 지금 이유나가 1층 기념품샵에서 사 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입고 있던 와이셔츠는 피 때문에 도저히 다시 입을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념품샵은 나도 한 번 구경한 적이 있는데, 특별한 건 없었다. 새날 로고가 그려진 텀블러 같은 게 있고, 유명한 초능력자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가 좀 있었다. 이 동네의 초능력자는 연예인 같은 위치였다. 연수원에서 보았던 백성찬 강사도 유명한 초능력자인지 티셔츠가 있었다.
그 티셔츠 시리즈 중에는 세계 최초의 11등급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박서원도 있었다. 심지어 제일 잘 나가는 티셔츠였다. 이유나는 날 물 먹이고 싶었는지 그 티셔츠를 사 왔다. 박서원의 얼굴이 흑백으로 멋들어지게 박혀 있는 티셔츠. 물론 박서원의 얼굴은 배우를 할 만큼 잘생겼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상품이라고 했다. 분명 정해영같이 정신 나간 애들이 좋아할 거다.
“제가 원해서 입은 건 아닙니다.”
박서원은 입술을 비식거렸다.
“네, 그렇군요.”
“옷에 피가 튀어서요.”
“알겠습니다.”
물론 머리가 있으면 알겠지. 하지만 이 상황이 웃긴 건 변하지 않는다.
나는 별수 없이 이유나를 노려봤고 이유나는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
“저 때문에 옷을 버리게 됐으니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별거 아닌데요, 뭐.”
“해준 씨, 해 준다고 할 때 받아요. 서원 씨 돈 많아요.”
이 대리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비싼 와이셔츠도 아니고, 돈 받는 게 더 궁상맞다. 이게 내가 산 물건이 맞다면 인터넷에서 3+1하던 거다. 얼마 하지도 않는다.
“괜찮습니다.”
라고, 재차 거절하다가 얘가 ‘빌더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확실히 아이돌 이유나가 드라마의 조연인 건 맞다. 그러니까 벌써부터 주인공이랑 엮이지.
나는 최초의 계획을 떠올렸다. 주인공을 찾아서 서울시 멸망 엔딩을 피해야 한다. 서울시를 벗어나는 게 확실한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돈도 없는데(통장 잔고 여섯 자리) 그 길은 어렵다. 더군다나 드라마를 벗어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주인공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이야기를 나눌 사이는 되는 게 낫다. 애초에 그러려고 주인공을 찾았던 게 아닌가?
“정 그러시다면.”
여기서 번호 달라고 하면 웃기겠지?
박서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까지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는데 이렇게 보니 성질이 더러워 보인다. 아까 티셔츠를 보고 웃을 때부터 알아봤다. 정해영 취향은 알아줘야 한다.
밥 사 달라고 해? 아니다. 이것도 웃기잖아.
그래도 뭐라 말을 해야겠는데 생각나는 게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눈앞의 주인공과 친해질 수 있지?
‘가끔 출몰하니 만나면 사인이라도 받아 두세요. 30년 뒤에 제법 비싸질지도 모르니까요.’
문득 백성찬의 말이 떠올랐다.
이성이 생각하기 전에 입이 먼저 움직였다.
“사인 좀 해 주세요.”
아, 씨발. 망할 놈의 입.
박서원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게 아무리 봐도 기분 좋아서 웃는 것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웠다. 나 같아도 자기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사인해 달라고 하면 웃음부터 나올 거다.
“펜 있어요?”
이유나가 냉큼 책상에서 네임펜을 가져왔다.
“뒤로 돌아봐요.”
“아니,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에이 해준 씨.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내가 티셔츠 잘 사 왔네!”
“여동생이 좋아해서. 아니, 그러니까…….”
“박서원 씨 사인 잘 안 해 주니까 해 줄 때 받아요.”
이유나가 내 어깨를 잡고 뒤로 돌게 했다. 이 대리도 옆에서 맞장구쳤다.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등을 굽혔다. 박서원이 주름지지 않게 티셔츠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네임펜이 움직였다.
“내 팬인 줄 몰랐는데.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박서원은 네임펜을 내려놓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정해영의 ‘내 새끼’와 악수를 하며 생각했다.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