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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241화 (241/252)

광고 천재 명도혁 241화

[스텔라에게서 가장 소중한 걸 뺏고 싶어 해요.]

모니카 메일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도혁이 천천히 메일을 읽어 내리며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두 거장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알겠다. 모니카가 중간에 끼어서 곧 죽게 생겼다는 거 말이다.

도혁은 답메일을 보내 일단 모니카를 진정시켰다. 당분간 그녀와는 메일로 대화를 주고받기로 하고 곧바로 LVNN으로 향했다.

마침 스텔라와 담소를 나누고 있던 피에르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도혁이 자리에 앉자마자 모니카의 일을 설명했다. 미소 짓던 피에르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미친 새끼. 전 여친까지 동원하시겠다. 와, 모니카랑 어떻게 헤어졌는데.”

“끝이 좋지 않았나 보군요.”

“헤어질 때 싸우고 난장판이었어. 경찰까지 동원됐다니까요.”

“그동안 폼은 지키더니 구질구질하게 나오네, 하아.”

스텔라와 피에르의 입에서 동시에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도혁은 한숨을 내쉬며 모니카의 상태를 전했다.

“모니카가 많이 당황한 상태입니다. 울컥한 마음에 브레드를 곤란하게 하고 싶어서 즉흥적으로 고렌느와 일하겠다고 했나 봅니다. 함께 촬영하겠다고 꼬드기고 뒤통수를 치고 싶었는데, 막상 현실적인 부분들이 생각나면서 막막하다고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보기보다 여린 아인데 걱정이네요. 아니, 열 살이나 어린 전 애인한테 할 짓이에요? 중간에서 모니카만 곤란할 거라는 생각은 못 하나?”

“어리니까 모니카를 이용해서 디렉터님에게 타격을 주고 싶었나 봅니다. LVNN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모델을 빼앗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미친놈!!!! 악!!”

스텔라가 마시던 물컵을 던지려 하자 피에르가 급히 막았다.

“그만! 스텔라, 진정해. 열받으라고 한 짓에 이러면 우리만 손해야.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지. 그러려고 명도혁 씨가 온 거 아닌가.”

“대책이고 뭐고 저 자식 묻어버릴 거야.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버릴 거라고!! 내가 미쳤지, 범 새끼를 데려다 키워 버렸잖아!”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야. 브레드 인성 바닥인 거 알고 데려온 거 아니었어?”

“나도 인성 바닥이니까 괜찮을 줄 알았지!”

스텔라의 솔직한 말에 피에르와 도혁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흥분한 통에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는지 스텔라의 얼굴이 민낯이라도 들킨 듯 붉어졌다.

웃음을 겨우 멈춘 피에르가 냉수를 들이켜며 말했다.

“스텔라 인성 바닥인 거 자기 입으로 말하니까 왜 이렇게 웃기냐. 하하.”

“나 까다로운 거야, 주제 파악하고 있지 뭐.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어. 실력 있으면 성질머리 더러운 거야 내가 눌러서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지 누가 알았겠어.”

“맞아. 스텔라 까칠하지. 그래도 브레드 같진 않아. 저 자식은 아무튼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강아지를 괴롭히더라고.”

“뭐? 처음 듣는 얘긴데?”

“왜 동물한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인성을 알 수 있다고 하잖아. 약자를 대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니까.”

어느새 웃음기가 걷힌 얼굴로 피에르가 부연했다.

“비서실 막내가 키우던 포메라니안 생각나?”

“어! 기억나. 재작년에 죽었잖아.”

“그 강아지를 괴롭히는 걸 우연히 본 적이 있어.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밟기도 하더라고.”

“세상에! 진짜 미친놈이었구나. 내가 그런 인간을 못 알아보고.”

자책에 머리를 뜯는 스텔라를 보며 도혁이 담담히 말했다.

“스텔라 잘못이 아닙니다. 들어보니 소시오패스 같은데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을 겁니다. 스텔라가 LVNN에서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이니 절대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겠죠.”

“하아…….”

“그리고 곧 브레드는 이 바닥에서 상도의 없이 기어오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이번 기회에 밟아줄 거니까 안심하시죠.”

“대책이 있겠습니까? 모니카까지 연루돼서 복잡해졌는데 말입니다. 보안도 문제구요.”

“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명도혁 씨를요?”

두 디렉터의 눈이 동시에 도혁에게 꽂혔다. 그가 기대었던 몸을 떼어내며 덧붙였다.

“일단 떠나시죠. 로케 현장, 몰디브로 말입니다.”

* * *

트렁크를 싸는 손길이 분주했다. 숙소에 모인 직원들이 서둘러 촬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민아가 한껏 고무된 목소리로 도혁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일정이 잡혔데요? 아이데이션부터 전부 로케 현장에서 하는 거예요?”

“맞아. 좀 사정이 생겨서 이렇게 되어버렸어. 원래는 서울에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로케 일정 자체를 당겨서 몰디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것 같아. 몰디브 좋지?”

“그럼요. 말이라구요!”

“이야~ 역시 글로벌 명품 기업답네. 돈을 흩뿌리나 봐?”

직원들은 LVNN의 화끈한 예산 집행을 찬양하며 짐을 싸고 있었다.

보안 문제로 자세한 내막은 알리지 않았다. 믿지 못한다기보다 입밖에 아예 꺼내지 않았다고나 할까.

워낙 보안에 민감한 문제이고, 굳이 모니카의 일까지 알릴 필요는 없어 비밀을 엄수하고 있었다.

아무튼 뜻밖에 당겨진 몰디브행으로 모두 기뻐하니 다행이었다. 그사이 짐을 모두 정리한 차현우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몰디브라니. 휴양지 여행은 처음이라 감회가 새롭네.”

“저도 몰디브는 처음 가봅니다.”

“난 동남아도 못 가봤다고.”

“그럼 얼른 일 끝내고 조금 더 몰디브에서 쉬다 올까요?”

“에이, 촬영 끝나면 매체팀은 더 바쁜 거 알면서. 그래도 괜찮아. 몰디브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휴가나 마찬가지니까.”

“촬영 중간중간 틈이 있을 테니 쉴 수 있을 겁니다. 여행이라 생각하고 기분 좋게 가시죠.”

조용히 끄덕인 차현우가 두리번거리더니 강태오를 찾았다. 계속 보이지 않아 신경이 쓰인다며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는데, 주방 구석에서 메모장을 끄적이는 그를 찾아내었다.

“야! 강태오 너, 아직 준비 하나도 안 한 거냐?”

“어……. 누구야. 현우냐?”

“이런! 뭐 하고 있는 거야! 비행기 시간 다 되어가는데.”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 건드리지 말고 저리 가라.”

“야!”

가파르게 올라가는 차현우의 비명에 모두 달려갔다. 씩씩거리는 차현우와 달리 강태오의 표정은 고요했다. 눈동자를 번뜩이며 빈 종이에 사정없이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도혁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다 한숨지었다.

“안 되겠다. 우리가 대충 강 국장님 짐 싸야겠어.”

“어……. 그럴래? 그래주면 진짜 고맙고.”

“인간, 하여간 동아리 때부터 민폐 끼치더니. 너도 참 어지간하다.”

“미안. 내가 정말 지금 정신이 너무 없어. 이거 진짜 대박이야. 민폐 소리 안 나오게, 내가 아이디어 잘 정리해 볼테니까. 제발 좀 도와주라.”

도혁이 한번 짧게 끄덕이곤 강태오의 트렁크를 열었다.

저럴 때 건드리면 허공에서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사라져 버린다. 차현우 역시 그걸 알기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짐을 싸는 손을 빨리했다.

“으이구, 강태오 저 화상.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저러고 있네. 언제 철드냐.”

“영원히 철이 안 들어야 제 옆에 꼭 붙어 있죠. 저런 점이 강 국장님 매력 아닙니까.”

“뭐가, 민폐가?”

투덜거리며 짐을 싸는 사이 비행기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친 일행이 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라운지는 조용하니까 강 국장님 편하게 작업하세요.”

“고맙다. 출발까지 시간 조금 남았지?”

강태오뿐만 아니라 모두 노트북을 펼치며 틈을 내어 작업을 하려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중얼거리며 빈 종이에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강태오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최민아, 평소처럼 포스트잇을 뒤적거리는 차현우. 그리고 공항에서 합류한 도성진까지 모두 짧은 시간에도 집중해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도혁이 느긋하게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어, 출발했나? 인천 날씨는 괜찮지?”

“뭐? 인천??”

무심코 도혁이 통화하는 모습을 흘깃거리던 직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당연히 LVNN 쪽 스텝과 연락을 하는 줄 알았던 직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도혁을 바라보았다.

“그래. 도착하면 바로 연락하고. 호텔이랑 그쪽 안내 요원 번호 탁 국장님한테 보냈으니까 참고해. 있다 보자고!”

“탁 국장님?”

“탁 국장??”

다시 놀란 직원들을 보며 도혁이 싱긋 미소 지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득달같이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도 몰디브로 출발하는 거야?”

“탁 국장님 오시는 거예요? 그쪽 멤버는 누구누구예요?”

“세상에, 수철이도 오나? 진우는?”

“어우, 한 명씩 말씀하시죠. 귀 막히겠습니다.”

“기가 막힌 게 누군데요. 빨리 말 좀 해봐요. 한국팀도 오는 거예요?”

최민아가 눈을 끔뻑이며 대답을 재촉했다. 조바심 내는 표정이 웃겨 도혁은 뜸을 들이곤 커피 잔을 들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라운지는 어딜 가든 커피 향이 좋아. 그렇지 않아?”

“대표님!”

“아우, 귀먹겠네. 그래, 수철이 올 거야.”

“헉! 한 팀장님이요? 꺄!!”

한수철이 온다는 말에 최민아가 입을 틀어막고 기뻐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도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도혁과 한수철, 그리고 최민아는 전생에서부터 절친이었다. 셋이 팀 작업도 자주 했고 손발도 척척 맞는 편이었다.

AE, 카피, 그리고 디자인 에이스로 전성기엔 태강에드의 주축으로 일했었다. 이번 생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도혁은 기뻐하는 최민아에게서 눈을 떼고 강태오에게 말을 던졌다.

“진우도 올 겁니다. 강 국장님 좋으시겠어요.”

“정말?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탁기준, 한수철, 그리고 이진우가 몰디브로 오고 있었다. 브레드의 뒤통수를 칠 일격을 준비하기 위한 한국팀의 출격이었다.

차현우가 도혁의 마음을 읽은 듯 다가와 말을 붙였다.

“고렌느 쪽에선 상상도 못 할걸? 로케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놀랐을 거고, 그에 맞춰서 캠페인 일정 당기고 준비하기 바쁠 텐데, 한국팀까지 등장할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하겠어?”

“맞아요. 그리고 한국팀에도 공평하게 기회를 줘야죠. 뉴욕에서는 몰디브 로케까지 찍는데 한국은 불리하잖아요. 모니카가 한국까지 날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하긴. 모니카가 한국으로 가면 금세 표시가 날 테니까. 그래서 일정을 변경했구만.”

“맞습니다. 두 팀, 중간에서 만나서 후다닥 해치워 버리려구요.”

도혁이 끄덕이며 강태오와 최민아를 바라보았다. 둘이 손을 맞잡고 신이 나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저렇게 좋을까. 하여간 둘 다 유별나요.”

“차 국장님도 좋으시잖아요.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좋지. 당연히.”

차현우의 눈이 차창 밖으로 향했다. 통창으로 멀리 비상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오랜만에 DW애드 완전체인가. 창업 멤버가 한자리에 모이네.”

“감회가 새롭네요. 같이 작품 하나 만들어봅시다.”

도혁은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느덧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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