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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237화 (237/252)

광고 천재 명도혁 237화

회사에 도착한 도혁과 강태오가 미팅의 후기를 전해주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제작팀의 스캐너를 점검하던 도무진의 손이 뚝 멎었다.

“와, 소름 끼치네요. 브레드가 LVNN에 사람을 심어두었다구요?”

“맞아. 나갈 때 브레드가 자기 사람은 다 데리고 퇴사해서 내버려 두었는데, 자꾸만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거야. 컨셉도 겹치고 어떨 땐 LVNN보다 고렌느가 더 빨리 라인을 시장에 선보이고 말이지.”

“어우, 무섭네. 하긴 디자인 바닥도 산업스파이가 판치기 딱 좋은 세상이지. 이게 전부잖아요.”

도무진이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대꾸했다. 강태오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믿었던 제자가 뒤통수를 치는 것도 모자라 두고두고 정보까지 빼돌리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아?”

“때문에 어디까지 자신의 사람인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돼버렸겠네요. 으. 끔찍합니다.”

“맞아. 듣는 내내 섬뜩하더라고.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고 싶지도 않았어.”

곁에서 둘의 말을 듣던 도혁이 커피를 내밀며 끼어들었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난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아니, 스텔라처럼 복수의 칼을 갈고 있으려나.”

“생각하지 말자. 우리 회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맞습니다. 스텔라는 그 전부터 악명이 높았다고요. 직원들 막 대하고 갑질하기로 유명해서 오히려 당연한 업보라는 여론도 많아요.”

“하, 어렵다 어려워. 우리 회사는 정말 아니지?”

도혁의 말에 모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왜, 우리가 배신할까 봐?”

“딱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눈앞에서 저런 광경을 보고 있으니 어우,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와 달라. 솔직히 이 세상에 이런 기업이 존재하기나 할까, 싶은 곳이라고.”

“맞아요. 내가 너무 바빠서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멀찌감치에서 시안을 열심히 그리고 있던 최민아가 일어서 다가왔다.

“DW애드는 직장인의 이상향 같은 곳이에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과가 좋고, 그 성과를 직원들과 공평하게 나누는 회사죠. 그리고 직원의 복지를 먼저 생각하는 이상야릇한 직장이라구요.”

“이상야릇하냐?”

“그럼요. 자고로 사장은 욕을 해야 제맛인데 그 점은 좀 아쉽죠. 그런 차진 맛은 좀 부족하지만 아무튼 뭐, 큼큼 그렇습니다.”

“의외로 이런 회사 많다? 알아?”

“이런 회사라면, 우리 DW애드 같은 곳이 또 있다는 말씀이세요?”

최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맞아.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일으키거나 세간에서 도는 소문은 자극적이지. 그래서 이상한 사례들만 올라와 있으니 세상 회사는 다 X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좋은 기업도 많아.”

“가뭄에 콩 나듯이 미담도 올라오긴 하죠.”

“드물지만 있기는 있다, 이런 말이지. 그리고 행복한 자는 말이 없어. 딱히 불만이 없으니 커뮤니티에 한탄을 쏟아낼 일도 없는 거고.”

“흠…….”

조금은 알겠다는 듯 최민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더니 도혁을 보곤 빙긋 웃었다.

“그래도 우리 회사 같은 곳은 드물어요. 우리 서울 본사 사옥, 직장인의 꿈의 직장으로 유명한 거 아시죠?”

“뭐, 편의 시설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

“일단 환경이 직원 친화적이잖아요. 그리고 성과급이랑 초과근무 수당은 업계에서 이제 따라올 회사가 없어요. 아마 웬만한 외국계 기업도 이 정도로 챙겨주진 못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사실이니까.

계속 도혁을 올려 치기가 민망했는지 최민아가 볼멘소리를 보탰다.

“그리고 대표님, 배신할 시간이나 주고 배신을 걱정하시라구요. 손톱이 닳도록 시안 작업 중인걸요.”

“그런가. 힘내고, 내가 줄 수 있는 게 돈밖에 없네. 통장 확인해 봐.”

“오~ 대표님! 땡큐!”

“올~~~~”

LVNN을 나오는 길에 통장에 비정기 성과급을 입금했다. 그동안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냈고 대기업과 일한 만큼 퍽 고액의 정산금이 빠르게 들어왔다.

뉴욕에서 고생한 시간들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입금을 마쳤다.

정산을 성과급으로 나눌 때마다 뿌듯했지만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직원들의 시간과 머리를 짜내어 만든 성과였으니까.

짧은 시간에 많은 광고주를 수주한 만큼 직원들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도혁은 미안한 마음을 통장에 꾹꾹 눌러 담은 후, 대표실의 의자에 몸을 묻었다. 테스크 구석에 놓인 LVNN의 브로슈어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바로 고렌느의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고렌느라. 뭐 하고 먹고사는 집인지 너부터 좀 파보자.’ 적을 알고 나도 알아야 하는, 새로운 전쟁의 서막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무진아, 조심해서 가!”

“서울 직원들한테 안부 전하고. 다들 너무 보고 싶다.”

한국으로 떠나는 도무진을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직원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꼭 다음 로테이션에는 뉴욕 지사로 발령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도무진이 손을 흔들었다.

아쉬움 속에 도무진이 떠나고 남은 뉴욕지사 직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클리오 수상의 여흥은 뒤로한 채 모두 업무 모드에 돌입했다.

[그들만의 리그, 불친절, 신분 상승, 고급, 워너비, 워너두…….]

대표실 한쪽 벽면이 포스트잇으로 도배되었다.

[유일한, 진정성, 독창성, 크리에이티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

정신없이 키워드를 붙여대는 도혁의 앞에 강태오가 다가왔다. 데스크에 걸터앉으며 한 글자씩 읽어 내렸다.

[마스터피스, 장인정신, 전통, 명장, 마케팅. 블랙라벨, 대중화, 차별성]

“어휴, 내 방보다 더 어지럽네.”

“정말 어질어질합니다. 문제는 여러 개념이 혼재한 채로 부딪힌다는 거예요.”

도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지었다.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이 아니면 도태되고,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면서 대중화를 꾀해야 하죠.”

“그렇지. 흔하진 않은데 세계 어느 부자가 찾더라도 소비가 가능할 수 있도록 생산과 유통을 통제해야 해. 난 예전부터 명품 사업이 지구에서 가장 힘든 사업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막상 붙잡고 보니 거대한 아이러니 속에 휩쓸린 기분입니다.”

도혁이 상반된 키워드들을 여기저기서 떼 와 책상 한가운데 붙였다.

“환장하겠구만. 클래식과 모던, 동양과 서양, 고급과 대중, 블랙라벨과 오프라벨, 오뜨꾸르뜨와 프레타포르테…… 난리 났구만.”

“후우, 혹시 피아노 쳐보셨습니까?”

“뭐 어릴 때 억지로 배웠지. 나름 명문가 자제 아니냐 내가.”

당연하다는 듯 강태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도혁이 긴 숨을 고르며 부연했다.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그걸 치는 기분이네요.”

“아, 그렇지. 알레그로가 빠르고 경쾌하게 연주하라는 거고 마에스토소는 장중하고 무겁게 치라는 뜻이잖아.”

“맞아요. 처음 악보 위에서 그 글자를 보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오~ 그래도 피아노 좀 치나 봐?”

“아니요. 그렇게 못 쳤으니까 전공을 못 했죠.”

“말도 안 되는 개소리긴 해. 어쩌라는 거야. 경쾌하라는 거야, 장중하라는 거야.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런데 이걸 제대로 소화하는 연주자의 음악을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도혁이 느리게 손가락을 옮겨 음원을 틀었다. 알레그로 마에스토소로 연주한 쇼팽 소나타 3번.

1분도 지나지 않아, 아니, 30초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강태오가 무릎을 탁 치며 일어섰다.

“이거구만.”

“솔직히 앞 다섯 음만 들어도 느낌이 오죠. 이거구나.”

“하, 우리가 이 어려운 걸 해내야 한다는 거지?”

도혁의 의도를 이해한 강태오가 쓰게 웃었다.

“맞습니다. 이율배반적인 개념을 한 번에, 그리고 명작의 품격으로 담아내야겠죠.”

“아이고, 뒷목이야.”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렌느와 붙어야 하니까요.”

“아이러니에 차별성까지. 이거 여름 시즌까지 가능하겠어?”

“LVNN과 첫 거래이니만큼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겠죠. 믿습니다. 강 국장님.”

“이거 왜 이래. 내가 뭔 힘이 있다고. 아무튼 쥐어짜고 쥐어짜서 만들어봅시다요. 아이고~~ 머리야.”

손사래를 치며 사라지는 강태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재 개그나 날리며 슬렁슬렁 일하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치밀하고 촘촘한 비주얼을 선보이는 그였다.

그리고 LVNN에 우리의 색을 입힐 수 있는 유일한 크리에이터이기도 했다.

도혁은 강태오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을 불러보았다.

“간단히 일정 조율을 하겠습니다. 일단 진행 중인 광고들 총괄적으로 차 국장님이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강 국장님은 LVNN을 진행하는 내내 기존 캠페인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케이. 이미 준비하고 있었어. 태오가 손 뗀 지 오래됐거든.”

차현우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끄덕였다.

“나도 이번만큼은 태오가 아무 생각하지 않고 크리에이티브에만 집중했으면 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집에 안 가죠?”

“예전 동아리방에서처럼 노숙자 모드. 벌써 며칠 됐지, 아마.”

최민아와 도성진 역시 동조했다.

“저희도 열심히 도울게요. 필요한 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둘 다 지금도 바쁜데 고생 좀 해줘. 첫 단추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차 국장님은 저와 큰 그림을 좀 더 그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기획 쪽에 구상해 둔 게 있어?”

“네. 아무래도 이번 건은 고렌느와의 승부인 만큼 스텔라의 관심이 어마어마합니다. 충격적인 크리에이티브만으로는 부족할 거예요.”

“흠…….”

차현우가 턱을 어루만지며 도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동양풍 컨셉. 이번 시즌에 LVNN에서 기획한 컨셉 방향인데요, 이걸 고렌느에서 같이 밀 거라는 정보입니다.”

“참, 브레드라는 인간도 어지간하다. 사람까지 심어뒀다더니. 근데 동양풍으로 같이 붙으면 오히려 고렌느가 불리하지 않나?”

“그 점 때문에 선제적으로 시즌 앞에 치고 나올 거라는 예상입니다.”

“시차를 두고 먼저 접근할 거라는 얘기야?”

“그렇죠. 우린 동양풍 컨셉에서는 후발이 될 겁니다. 그 부분은 LVNN에서도 인지하고 있어요.”

“먼저 치든 말든 이긴다는 자신감인가?”

“맞습니다. 동양풍 판을 까는 역할을 시키는 꼴이 될 거라고 스텔라가 자신만만하더라구요. 그러곤 저한테 꼭 밟아달라고 했었죠.”

“어우, 부담스러운 미션이구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현우는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우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구만. 동양풍이라. 어쩌면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 아닌가?”

“맞습니다. 여기에 한 발 더 뻗어서 동양 시장까지 완벽하게 장악하려는 의도를 엿보았어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말을 끊는 도혁을 차현우가 물끄러미 보았다. 도혁이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분명한 차별점이 있더군요. 고렌느는 못 하고 LVNN은 할 수 있는 것. 현재 뉴욕에서 DW애드에서만 가능한 크리에이티브. 그걸 선보이려고 합니다.”

도혁이 노트북의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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