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36화
[마스터 셰프 그랜드 파이널 우승.]
초대받은 레스토랑 앞에 새겨진 미셰린 별 다섯 개를 바라보던 도혁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마스터 셰프 그랑프리의 주인공이 도무진 도성진 씨 어머님이라고?”
“네. 이래저래 대단한 분이십니다. 좀 독특하기도 하시구요.”
“조금?”
도무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간을 좁혔다.
“어머니에게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나랑은 안 맞아요. 으.”
“뭐 그래서 같이 안 살았잖아. 아무튼 들어가시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래. 어머니 기다리시겠다. 일단 들어가자고.”
성큼성큼 안내에 나선 도성진과 달리 도무진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였다. 그 모습이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가 나타나 도혁에게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명도혁 대표님 되시죠?”
“반갑습니다.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아이를 둘이나 맡겨놓고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도혁이 도무진의 어머니와 악수를 나누었다. 요리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도혁조차 그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
1세대 그랜드파이널 우승자인 그녀는 다음 기수부터 마스터 셰프의 심사 위원으로 참가해 명성을 높였다. 이후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엄청난 팬을 거느린 스타셰프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엔 후배 양성을 위해 학교까지 설립해 큰 화제가 되었다.
불과 얼마 전 신문에서 대서특필한 그녀의 기사를 읽었던지라 더 반갑게 느껴졌다.
“일단 이쪽 룸으로 이동하시죠. 우리 집엔 코스밖에 없는데 괜찮으시죠?”
“그럼요. 마스터 셰프의 코스 요리를 맛보게 되다니 기대되는데요?”
“과찬이십니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내실의 룸으로 이동했다. 고급스럽게 세팅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따끈한 스프와 와인이 들어왔다.
“오늘은 제가 사는 거니까 마음 편하게 드세요.”
“별말씀을요. 저희 직원들과 회식하는 건데 당연히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아이 둘 맡겨놓고 이 정도는 대접해야죠. 우리 아이들 부족한 점 있어도 이해해 주세요.”
“두 분 다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인재들입니다.”
“빈말이라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진심이에요. 무진이 실력이야 서울에서부터 알고 있었고, 도성진 씨도 최근 입사했지만 본인 역할을 200% 소화하고 있습니다.”
마스터 셰프가 와인을 따르며 미소 지었다. 퍽 낯선 광경이었다. 무결점의 요리만큼이나 무표정으로 유명한 그녀였기 때문이다.
“헐! 어머니 지금 우리 대표님 보고 웃었어요?”
“그럼 우리 아들이 일하는 회사 사장님인데 잘 보여야지.”
“와, 대표님! 나 우리 어머니 저런 표정 본 거 손에 꼽아요. 다섯 손가락도 안 된다고!”
흥분하는 도무진과 그 곁에서 무표정하게 물잔을 드는 도성진을 번갈아 보았다. 역시 도성진이 어머니 쪽을 많이 닮은 듯했다.
그런 도혁을 보며 마스터 셰프가 덧붙였다.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음식이 입에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영광…… 어!”
스프를 떠먹으며 무언가 인사말을 건네려던 도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스프가 맞아요? 우리가 아는 그 버섯 스프?”
“인스턴트 스프만 먹었던 제 혀가 호강하네요. 와!”
“식전 빵이라는 게 이렇게 바삭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울 수 있군요.”
이후로는 감탄만이 이어졌다. 대화의 대부분이 요리 품평과 칭찬 일색이었다. 다른 말이 끼어들 틈도 없이 훌륭한 코스 요리가 계속 나왔다.
“오! 이것은 새우인가 랍스터인가.”
“감자 뇨끼인가요? 감자인데 감자가 아닌 감자 같은 맛이에요. 포슬하고 포근해요.”
“지금까지 먹었던 파스타는 파스타가 아니었네. 면 국수였네.”
수다스럽게 주접을 떨던 직원들이었지만, 어린 송아지 스테이크 요리 앞에서는 모두 입술을 꾹 다물고 경탄만을 뱉었다.
“아……. 말도 안 돼. 이 미친 비주얼과 육즙.”
“하…….”
“오마이갓!”
한참 식사에 열중하던 강태오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신이시여. 다음 생에는 도무진, 아니지 성진이가 어머니와 살았다고 했던가. 도성진으로 태어나게 해주소서.”
“성진이도 많이 먹진 못했는걸요.”
마스터 셰프가 아릿한 눈으로 두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놈의 요리에 집착하느라 아들들을 제 손으로 키우지 못했어요. 무진이는 애 아빠한테 맡겼고, 성진이도 친정엄마가 주로 봐주셨구요.”
“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애들한테는 늘 미안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커줘서 고맙구요.”
이 분위기를 어쩔 것인가. 강태오가 머리를 긁적이는데 도성진이 툭 무심하게 입술을 열었다.
“저렇게 말씀하시지만 늘 잘해주셨습니다. 어머니 최선을 다해서 살아오신 거 모르는 사람 없고요.”
“그래도 지나고 보니 좀 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어야 하지 않나, 가끔 후회해.”
“충분했어요. 귀찮을 때도 많았는데, 뭐.”
도무진이 팔짱을 끼며 미간을 좁혔다.
“아들들은 엄마가 옆에 붙어서 잔소리하는 거 싫어해. 어릴 때 엄마 출근하는 거 딱 기다렸다가 문 열고 나가자마자 게임 오픈하는 맛이 끝내줬다고!”
“으이구, 무진이 너는 초등학생 때만 같이 살았는데, 그때도 그랬어?”
“당연하지. 그러니까 미안해하고 그러지 마. 쓸데없이.”
도혁이 도무진의 말을 거들어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육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사는 엄마를 보고 두 아들이 이렇게 잘 자란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청년들이거든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쁘네요.”
“진심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머님께서 열정적으로 바른길을 가시니 그걸 보고 따라가는 것이지요. 커리어를 쌓으면서 아이들 키우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비로소 마스터 셰프의 주름진 눈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갔다. 곧 그녀의 미소처럼 은은하고 깊은 향을 품은 디저트가 도착하고, 모두는 방금의 무거운 대화를 모두 잊어버렸다.
“미친! 수플레가 입에 넣자마자 사라졌습니다!”
“크림뷔릴레 아니냐? 아무튼 뭐든 간에 미쳤어.”
“아, 이 맛은 포동포동해!”
“듣고 보니 그 말이 딱이다. 혀끝에서 포동포동한 감촉이 느껴진다고!”
다시 찬양 모드로 돌아선 직원들을 보며 마스터 셰프가 마지막으로 커피를 건넸다.
“우리 집 커피,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카페보다 나아요. 저의 음식처럼요.”
TV에서 보던 도도한 두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두 아들의 어머니에서 마스터 셰프로 변해 버린,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었다.
* * *
LVNN의 첫 브리핑이었다.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도혁과 강태오가 LVNN의 문을 열었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스텔라의 방으로 이동하며 강태오가 옷깃을 바로 세웠다.
“옷매무시를 다 살피시고 강 국장님도 긴장을 하는군요.”
“당연하지. 여기 계약금이 웬만한 광고 집행 금액이던데.”
“그러게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닌 척했지만 지금까지의 광고주와는 스케일이 달랐다. 도혁 역시 넥타이를 한번 바로 하고 허리를 세웠다.
-똑똑
“어서들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스텔라가 자리에서 일어서 그들을 맞았다. 소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 아득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둘을 훑어보았다. 그녀를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광고주로 마주 앉고 보니 몇 배는 더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피에르는 조금 늦는다고 하네요. 커피?”
“네. 좋습니다.”
“클리오 광고제 수상하시는 모습 잘 봤습니다. 그때 피에르와 함께 봤을 때가 뉴욕에 막 도착했을 때였죠?”
“네. 맞습니다. 뉴욕에서 직원들과 함께 먹던 첫 식사라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와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엄청난 성과네요.”
스텔라가 만족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 피에르가 칭찬하기도 했지만 도혁 씨 아우라가 심상치 않더라구요. 보통 사람 같지 않은 기운이 있다고나 할까요.”
“아, 그런가요.”
“네. 젊은 패기도 있지만 연륜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그게 좋아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던 거구요. 무엇보다, 성격이 급하시죠?”
“네. 그런 편입니다.”
“일 진행하시는 속도 보니까 엄청나더군요. 저도 아주 급한 편이라 손발 맞추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쪽에 계신 분. CD라고 하셨던가요?”
스텔라가 강태오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가 깍듯이 인사했다.
“DW애드 강태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진행한 전기 차 광고, CD님이 직접 제작하신 겁니다.”
“오! 저, 꽃 차 광고 말씀이시죠? 와우!”
스텔라가 그녀가 창가로 시선을 돌리며 손가락으로 광고판을 가리켰다. 한창 집행 중인 엘빈의 꽃 자동차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아주 인상적으로 봤어요. 최근에 봤던 광고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비주얼이었어요. 컨셉을 이렇게 직관적으로 한 번에 드러내다니. 물론 컨셉 다 빼고 디자인적으로만 봐도 훌륭하구요.”
“감사합니다. 디렉터님 말씀만으로도 힘이 불끈 솟는데요?”
“빈말 못 하는 성격입니다. DW애드와 좋은 작품 해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도혁과 강태오를 번갈아 보던 스텔라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부연했다.
“참, 앨빈 그 친구는 크게 될 거예요. 원래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이번 광고를 보고 다시 한번 확신했죠. 원래 그 친구와 작업을 해왔던 걸까요?”
“아닙니다. 이번 클리오 광고제에서 처음 인연이 닿았습니다.”
“와우, 그럼 그 짧은 기간 동안 저런 퀄리티의 캠페인을 뽑아냈다는 건가요? 엄청나네요.”
“앨빈이 컨펌을 빨리 주시더라구요. 그쪽도 많이 급한 성격인가 봅니다.”
“엄청난 결단력이네요. 앨빈 전기 차 주식을 더 사야 하나.”
역시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이미 보유한 전기 차 주식 지분을 더 늘린다니. 도혁 역시 좀 더 사두어야겠다고 결심하며 스텔라와 미팅을 이어갔다.
플래너에 무언가를 끄덕인 스텔라가 고개를 번쩍 들고 도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이번 캠페인 말입니다.”
“네. 말씀하시죠.”
“이번 시즌 광고는 브레드와 정면 승부가 될 겁니다.”
“고렌느의 브레드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그쪽에서 아마 저희와 비슷한 디자인 컨셉을 잡아 나올 걸로 예상하고 있어요. 저희는 그 뒤통수를 칠 거구요.”
스텔라의 눈에서 검은 이채가 일었다. 분노에 찬 차가운 눈이 거칠게 일렁였다.
“이번 기회에 꼭 밟아줄 겁니다. 체급 차이가 어떤 건지 알려줄 거라구요. 명도혁 씨 믿어보겠습니다.”
스텔라가 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끝은 시리도록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