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35화 (235/252)

광고 천재 명도혁 235화

“이대로 진행합시다.”

“네? 지금 당장이요?”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엘빈이 소리쳤다.

이 시안을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잠시만요. 엘빈 님 우리 미팅 시작한 지 20분도 안 됐다구요.

도혁이 기막힌 표정을 숨기며 웃을 틈도 없이 앨빈이 말을 이었다.

“이것저것 따질 거 뭐 있습니까? 이대로 집행하면 되겠구만요. 와, 그런데 정말 대단하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시안을 뽑아 오시다니. 와! 그리고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셨나.”

앨빈에게 제안한 시안은 얼마 전 TT자동차 광고에서 강태오가 만들었던 꽃으로 뒤덮인 자동차였다. 친환경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담은 자동차 시안을 들여다보던 앨빈이 만족한 듯 껄껄 웃었다.

그가 제 가슴을 손으로 툭툭 치며 도혁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 시안을 보고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럴 때 망설이면 망한다고요. 팍팍 진행을 해야죠.”

“만족하셨다니 저도 흐뭇하네요.”

“연기 대신 꽃이 자라는 자동차라니요. 모든 컨셉이 한눈에 파악되지 않습니까! 이야, 색감도 끝내주네.”

“감사합니다. 우리 제작국장님 작품인데 업계 탑 디자이너라고 자부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시안입니다. 참, 그리고 이 기획안 말입니다. 시안도 마음에 들지만 저는 기획안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첫 번째 친환경, 두 번째 미래지향, 세 번째 우주산업 순으로 캠페인 진행하자고 하셨잖아요.”

“네. 맞습니다.”

“정 확 히 제가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와!”

앨빈이 감탄을 늘어놓으며 혀를 내둘렀지만 그런 그를 보는 도혁이 더 놀랐다.

인사부터 계약까지 10분이 걸렸다. 엘빈이 기획안을 검토한 건 5분이었다. 기획안을 휘리릭 넘기며 슬쩍 흘겨보았을 뿐인데.

그는 기획안을 관통하는 큰 줄기와 핵심 내용을 단번에 꿰뚫었다. 직관의 천재 엘빈이라더니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그럼 어디 어디 광고 들어가는 겁니까?”

“아, 매체 말입니까? 저희가 즐겨 사용하는 구좌가 있습니다.”

첫 미팅에 매체 전략까지 만들어 오지 않은 제 느림을 탓하며, 도혁이 임기응변으로 대답했다.

“맨해튼의 주요 스트릿과 교통수단에 넓게 광고를 깔고 잡지와 신문도 병행할 생각입니다. 같은 시안으로 진행 예정이며 말씀드렸다시피 첫 번째 캠페인은 친환경 컨셉입니다.”

“이야, 끝내주네. 다시 봐도 끝내줘. 컨셉 정도 잡아 와도 대만족이었는데 이런 시안이라니. 이거 곧바로 집행 가능하겠죠? 다음 주라든가, 늦어도 다다음 주 정도 어떻습니까?”

“그럴, 걸요? 하하.”

“역시 화끈하십니다! 이런 귀인이 뉴욕에 있다니. 이렇게 손발이 맞는 기분은 처음이라고요. 하하하하하.”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히는 엘빈을 보며 도혁이 입매를 겨우 끌어 올렸다.

귓가에 매체국장 차현우의 괴성이 들리는 듯했다.

* * *

“뭐?? 다음 주에 옥외 집행이 뭐라고??”

역시 미팅 결과를 전해주자마자 차현우가 경악했다. 다행히 타격감은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면서부터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강태오가 다가와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이 시안이 이렇게 팔리다니. 좋기는 한데, 우리 집행 가능하겠나?”

“제작 일정은 괜찮죠? 지난번에 만들어놓은 시안 퀄리티가 완벽하던데요. 앨빈도 크게 만족했구요.”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당연하지. 문제는 매체인데…….”

“악! 미치겠네. 성진 씨 나 좀 도와주라.”

차현우가 플래너의 매체사 목록을 펼치며 허둥거렸다. 도혁이 슬그머니 다가가 그를 도왔다.

여기저기 각 매체사에 전화를 돌리며 일정을 체크하고 조율해 당겼다. 다행히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옥외 쪽 MK에서는 일정을 맞춰준다네? 신문사는 어때?”

“집행일 잡고 있어요! 후면이랑 아니지, 이쪽은 전면 브릿지(신문을 펼쳤을 때 양면을 모두 광고로 이용하는 광고)로 넣어볼까요?”

디자이너까지 붙어서 분주하게 매체 집행 일정을 겨우 잡았다. 한참 소란하게 통화를 하던 차현우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급한 불은 껐다. 일단 한 달 정도 일정은 대략적으로 나온 것 같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으. 정말 다들 고생 많았네. 그래도 상 받고 난 뒤로 우리 회사 인지도가 올라가서인지 매체사들이 협조적이야.”

“신뢰가 쌓여서 그런 거죠. 이게 다 우리 유능하신 매체 국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도혁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차현우를 추켜세웠다.

“매체사 입장에서야 광고 구좌 팔아준다니까 당연히 좋기야 하겠지만, 이렇게 급한 일정엔 난색을 표할 만하거든요. 펑크가 날 수도 있고요. 우리 차 국장님이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으니 이렇게 협조하는 겁니다.”

“에이, 회사 이미지지 뭐.”

“두 분 말씀 모두 맞으세요.”

둘의 말을 듣고 있던 최민아가 끼어들었다.

“우리 회사 위상이 올라간 것도, 매체국장님 확실한 것도 팩트니까 이렇게 무리한 일정도 소화 가능한거라구요.”

“맞아. 다 대단한 걸로 하고, 자자 커피 한잔 마시자고!”

강태오와 도성진이 커피를 가지고 와서 돌리며 자리에 모여 앉았다.

“아무튼 얼떨결에 광고 하나 후다닥 집행하게 된 건가?”

“맞아요. 이거 뜻하지 않은 횡재네요. 전기 차 팔로우 업하면서 LVNN 미팅 준비 병행하면 일정이 딱 맞아떨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작정하고 맞춰도 쉽지 않았겠다. 이야.”

강태오가 감탄하며 다시 한번 제 시안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누가 만들었는지, 완벽하다 완벽해. 솔직히 버리기 좀 아까웠었거든.”

“이렇게 빛을 보게 되어서 기쁩니다. 진심으로.”

“그럼요. 시안 한 장 엎어질 때마다 가슴이 얼마나 아픈데요.”

최민아가 노트북 바탕 화면의 휴지통을 가리켰다.

“용량 때문에 정리하면서도 차마 못 버릴 때도 얼마나 많은데요.”

“저 아이콘이 좀, 그렇지. 왜 마지막 메시지도 뜨잖아.”

“맞아요. 완전히 삭제할 건지 물어보죠. 완전히라는 말에 괜스레 버리지 못하고 슬그머니 제 폴더로 돌릴 때도 많아요.”

“나도 그래.”

강태오가 제 책상 아래 휴지통을 가리켰다.

“난 직접 그릴 때도 많잖아? 버려놓고서는 다시 줍고 손 다림질로 펼칠 때의 자괴감이란. 으.”

“강 국장님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군요.”

“당연하지. 여기서 내가 제일 많이 버렸을걸?”

한쪽 눈썹을 위로 치키는 강태오의 눈에 장난기가 걸렸다. 의미심장한 눈길로 도성진과 눈을 마주쳤다.

“참, 우리 클리오 뒤풀이 안 하지 않았어?”

“그러게요. 제가 챙겼어야 했는데. 오늘 금요일이니까 오랜만에 한 이박 삼일 제대로 한번 마셔볼까요? 성진 씨 외박 가능해?”

“집에서 한 소리 듣겠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습니다. 워크숍이라고 하죠, 뭐.”

“실제로 워크숍이나 다름없으니까 문제 되면 말해요. 내가 인증할 테니까.”

“흠, 그렇지 않아도 인증하실 일이 곧 생기실 예정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싶어 도혁이 되물으려는 순간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도혁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어! 성진 씨! 아니! 무진아!!”

진짜 도무진이 사무실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것이다.

“서울에서 대표로 축하 왔습니다!!”

“와! 도무진! 이놈의 자식!! 이야!”

도무진이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은 채 꾸벅 인사했다.

“다들 잘 지내셨죠? 원래는 시상식에 맞춰서 들어오려고 했는데 급한 작업이 하나 걸려서 늦어졌어요.”

“아니, 여기까지. 진짜 너무 반갑다. 와!”

아직도 실감을 못 하던 도혁이 도무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반가워했다. 순간 불이 꺼지고 도성진이 케이크를 가져왔다. 직원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수상을 축하합니다!”

“아니, 이런. 같이 일했으면서 새삼스럽게 축하는!”

이래저래 놀라는 도혁과 달리 직원들은 도무진의 등장을 미리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이런, 무진이 오는 거 나만 모르고 있었구만! 맞지?”

“그래야 서프라이즈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대표님!!!”

“모두 고맙습니다!”

케이크의 초를 불고 다시 불을 켰을 땐 뜻밖의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도무진이 노트북을 내밀며 화면을 가리켰다.

“선물입니다.”

“나 노트북 사준 거냐? 바꾼 지 얼마 안 됐는데. 어!!”

화면에 펼쳐진 건 DW애드 뉴욕지사의 홈페이지였다. 도혁이 놀라 눈만 끔뻑였다.

“성진이도 보고 뭐 축하도 하려고 온 거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홈페이지예요. 그래서 제가 파견 온 거구요.”

“다들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냐? 이제 미국 쪽도 온라인 사업부 시작해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어때요. 깜짝 선물. 마음에 드십니까?”

“깜찍하네. 이야!”

축하 선물마저 DW애드다워서 웃음이 나왔다. 도혁은 마우스를 움직여 홈페이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인증할 게 있다고 했구만. 본사 홈페이지와 비슷한데 다른 느낌이야. 연동성이 있으면서 개성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

“미국 쪽 대행사 스타일 분석 엄청 했습니다. 며칠 밤을 꼴딱 새웠다고요.”

“역시 도무진. 이야!”

이래저래 놀랄 일이 많은 도혁에게 도무진이 또 다른 선물을 선사했다.

“온 김에 PC랑 기기들 점검해 드릴게요. 다들 어떻게 쓰고 계실지 눈에 훤하긴 하지만요.”

“어! 나부터 봐줘. 메모리가 부족한지 뭐가 잘 안 돌아가!”

“나도! 아니, 얘가 왜 이러는지 몰라. 미국 오면서 새로 바꿨는데도 잘 안 돼!”

메모리가 부족할 리도 잘 안 될 리도 없다며 도무진이 단언했다.

도혁의 PC부터 열어본 도무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대표님 그렇게 안 봤는데…… 이 사양을 이렇게 쓰신다고요?”

“헐. 최 팀장님……. 이건 좀 너무 갔는데요? 와씨. 안 불편하셨습니까?”

“아니, 이렇게 쓸 거면 저를 주세요. 이 비싼 걸 이렇게. 좋은 걸 사지를 마시든가요.”

마지막 선물은 기술자의 잔소리였다.

도무진이 사무실의 모든 전자기기를 점검하는 동안 직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뒤풀이 장소를 고민하고 있었다.

“무진이 먹고 싶은 거 없냐? 무려 미국까지 와서 다 죽어가는 컴퓨터까지 살려줬는데 뭐든 말해. 다 사 줄 테니까.”

“오늘은 엄마 집 가야 하는데요.”

“참, 어머니가 미국에 계신다고 했던가? 하긴 가족 파티가 먼저지.”

“엥? 성진아, 너 말씀 안 드렸어?”

도무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도성진을 바라보았다. 도성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서프라이즈 파티는 저희 집에서 모실까 합니다.”

“에이, 오랜만에 아들 만나시는데 우리가 끼긴 좀 그렇지 않아?”

“아니에요. 겸사겸사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한 도혁에게 도무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어머니가 요리를 대단히 잘하시거든요. 세계에서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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