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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233화 (233/252)

광고 천재 명도혁 233화

같은 시각, 도혁은 한밤중의 파티에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자랑이 아니라 정말 모니카가 도혁의 앞에서 샴페인을 권하고 있었던 것이다.

“샴페인 한잔 함께하세요. 오늘 그랑프리 수상하셨죠?”

“네. 감사합니다.”

잡지에서나 보던 월드클래스 모델이자 헐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예였다. 톱 모델답게 파티 드레스로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니카가 우아한 손짓으로 잔을 내밀었다.

투명하리만큼 새하얀 피부와 탐스러운 금발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다가오고, 술잔을 들고, 인사를 나누는 짧은 동작 하나에도 기품이 흘렀다.

“반갑습니다. DW애드의 명도혁이라고 합니다.”

“네. 수상하실 때 들었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평소에 인상 깊게 보았던 광고라서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했었거든요.”

“인상 깊으셨다니 영광인데요.”

“참, 제가 누군지는 아시죠?”

“그럼, 이 업계에서 모니카 이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어느 틈에 피에르가 다가와 둘의 앞에 섰다.

“파티에서 두 사람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만나고 있었구만. 인사하지. 이쪽은 LVNN의 대행사 대표 명도혁 씨, 여기는 LVNN의 엔젤, 모니카. 이제 함께 일하게 될 거야.”

“어머! LVNN과 협업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협력사로 함께하게 되었어요. 모니카 씨는 LVNN의 모델을 오래 하셨죠?”

“네. 데뷔 때부터 함께했어요.”

우아한 기품과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명품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모니카. LVNN가 발굴한, LVNN를 위한 LVNN의 페르소나였다.

도혁이 싱긋 웃으며 부연했다.

“실제로 뵈니 아우라가 남다르십니다. 모델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엘프 같나요? 팬들에게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실례가 될까 봐 말씀 안 드렸는데, 네. 맞습니다. 이세계에서 지구로 날아온 상위 종족 같으십니다.”

“와우, 실례는요. 극찬인데요?”

모니카가 미소를 짓자 조명을 비춘 듯 주변이 밝아지는 기분마저 느껴졌다. 환한 빛을 몰고 다니는 좋은 모델이었다.

“무엇보다, LVNN의 브랜드 이미지와 정말 잘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와 아우라가 남다르세요.”

“괜히 인간 LVNN이겠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모니카를 다 그렇게 부르더라고.”

말을 덧붙이며 피에르가 기대감을 내비쳤다.

“우리 클리오의 남자 명도혁 대표와 LVNN의 연인 모니카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뜁니다. 다음 달에 여름 시즌 브리핑 바로 시작하는 거죠?”

“네. 일정 관련해 비서실에서 연락받았습니다. 컨셉이 나올 때까진 조율해야겠지만 방향만 확정되면 금방 진행될 겁니다.”

“이번 촬영장은 어디에요? 이번엔 조금 멀리 나갈까요?”

모니카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촬영장에 대해 물었다.

“아직 사전 미팅도 하기 전이라 구체적인 스케줄이 나오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로케를 해야겠지? 여름 시즌 광고를 찍기에 뉴욕은 너무 추우니까.”

“몰디브 어때요? 좀 지쳐서 촬영 끝나고 휴양 겸 쉬고 오고 싶은데.”

“뭐, 모니카가 가자고 하면 가야지. 몰디브 좋네. 미팅 때 참고할게.”

모니카의 입에서 몰디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도혁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펼쳐졌다.

푸른 바다 위에서 엘프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었다. 태곳적 신비로움을 품은 아름다운 자연이 부드럽게 여자를 감싸고, 에메랄드 빛 파도가 부서지며…….

여기까지 생각한 도혁이 미소를 머금고 샴페인 잔을 입술에 대었다. 모니카가 잔을 함께 들어 보이며 눈을 맞추었다. 말간 바다색의 푸른 눈매가 곱게 휘었다.

“두 사람 케미가 벌써 기대되는구만.”

“컨셉 나오면 저도 공유 부탁드려요.”

“당연하지. 일정도 잡아야 하고. 영화 차기작은 아직 안 들어갔지?”

“네. 조금 쉬려구요.”

한숨짓는 여자의 얼굴에 짧은 탈력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내 톱 모델답게 표정을 추스르고 도혁을 바라보았다.

“잘 부탁드려요. 명도혁 대표님. 광고제에서 보여주신 크리에이티브 이상을 만들어주세요.”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과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다시 일행에게 돌아왔다.

최고의 명품 브랜드, 그리고 월드 톱 모델과 함께 작업할 일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벅찼다. 설렌 마음을 달래며 샴페인 잔을 붙잡는데 최민아가 다가와 속닥거렸다.

“올~ 모니카랑 얘기하는 거 멀리서 봤어요. 대박이다, 그쵸?”

“실물이 명품이야. 다른 종족인 줄 알았네. 하긴 본인도 우리가 엘프라고 부르는 거 알더라고.”

“살아 있는 LVNN이 별명이잖아요. 예쁘기도 하지만 분위기가 고급스러워요. 그쵸?”

“맞아. 아우라가 남달라. 많은 모델을 봤지만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모델은 처음이야.”

“흠, 그렇단 말이죠? 전서윤 씨랑 모니카 중에 누가 더 예뻐요?”

최민아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유치한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서윤 씨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헐! 비교조차 안 될 정도는 아닌데? 달려가서 모니카한테 일러줘야겠다.”

“모니카가 사람 같지 않은 미모라서 그래. 현실감도 없고. 내 스타일 아니라고 꼭! 전해줘라.”

“어머! 내가 서윤 언니한테 일러줄 생각이었다는 거 어떻게 안 거예요? 천잰데?”

최민아가 깔깔 웃으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둘이 친하잖아. 함정수사 하는 거 모를 줄 알았냐?”

“아니, 꼭 함정을 팠다기보다는 모니카가 워낙 예쁘니까 의견을 물어본 거죠.”

“서윤 씨한테 내가 모니카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고 꼭! 전해주고, 서윤 씨가 훨씬 예쁘다고 말했다고 백번 강조해. 알겠지?”

“오케이. 서윤 언니가 좋아하겠네요. 안 봐도 입꼬리 올리면서 웃는 모습 보이는 것 같네요.”

“꼭 전해라. 아무튼 그건 그렇고 나머지 남자들은 어디 간 거야?”

“아, 저 사람들요?”

강태오 일행이 헐리우드 배우들, 특히 톱 모델들 사이에 둘러싸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성진조차 함박웃음을 지으며 술을 마시는 걸 본 최민아가 어이없어했다.

“아니, 성진 씨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사무실에서 우리한테는 기계처럼 말하더니.”

“이러라고 있는 파티잖아. 최 팀장도 즐겨. 저쪽에 남자 배우들도 많은데?”

“됐어요. 내 눈엔 우리 대표님이 최고라구요.”

“아부는 사무실에서 하시구요. 아니, 사무실에서도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도혁이 의아한 눈으로 최민아를 훑어보았다. 그녀가 새삼스레 꾸벅 묵례를 했다.

“대표님 고마워요. 진짜로. 진심 존경합니다.”

“야, 갑자기 민망하게 왜 이러냐.”

“오늘 다시 우리가 했던 광고들이 화면에서 쭉 흘러나오는데 눈물이 날 뻔했어요. 마지막에 수상하실 땐 소름 돋았잖아요.”

“좋았냐?”

“그럼요. 모든 광고인의 꿈인데요. 저를 발굴해서 이렇게 큰 광고제에서 상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만해라. 손가락 다 없어지겠네.”

최민아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괜스레 타박했다. 때마침 헐리우드 스타에게 정신이 팔렸던 세 남자가 자리로 돌아왔다.

“어! 대표님 최 팀장님 머리는 왜 치시는 겁니까?”

“꼭 이럴 때 나타나더라. 쓰담쓰담 해준 거지.”

“헐, 나도 좀 해주라 쓰담쓰담.”

“징그럽게 큰 머리는 치우시고요. 저~ 어기 같이 술 마시던 모델들한테 해달라고 하시죠.”

도혁의 말에 강태오가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프로끼리 왜 이러실까. 모델 섭외 간 거야. 섭외.”

“맞습니다. 우리가 집행한 광고를 다들 알고 있더라구요. 원래 모델들이 광고대행사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까?”

“얼씨구, 성진 씨까지. 강 국장님이 신입 교육을 제대로 하셨군요.”

“당연하지. 광고는 모델이 생명이라고. 그렇지 않나?”

차현우조차 끄덕이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크리에이티브를 구현하는 건 결국 모델 아니겠어? 제품을 잘 보여주려면 아무리 아이디어를 짜내도 모델 전략이 필수더라고.”

“우리 차 국장님이 언제부터 모델을 그렇게 선호하셨더라?”

“오늘부터?”

함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뉴욕에 도착한 이후 맨땅에서 구르고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모두 같은 마음인지 차현우가 감격한 표정으로 트로피를 어루만졌다.

“이야, 우리 넷이 뉴욕 도착하자마자 거지들 보면서 도시 거지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그러게요. 저도 대표님 믿고 뉴욕으로 따라오긴 했지만 반신반의했어요. 진짜 우리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사람 네 명. 그게 전부였죠.”

“뉴욕에 뚝 떨어진 동양인 네 사람이 이룩한 쾌거지. 이걸 보라고.”

강태오가 테이블 위에 주르륵 놓인 트로피를 보며 호쾌하게 웃었다. 최민아가 서울에서처럼 좀 더 강력한 퍼포먼스를 선보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서울 직원들이 플래카드 왜 안 만들어 갔냐고 구박하더라구요. 제가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 건 황도준 도무진 전공이지. 난 너무 좋았어. 대한민국 광고대상 때는 그 두 사람 때문에 어디 숨고 싶었다니까? 목소리는 좀 크냐?”

“그래도 그 맛에 상 받는 거 아니겠어요? 서운하거나 그런 건 아니죠?”

“서운하긴. 그리고 나만 수상한 게 아니라 다들 함께 상 탔잖아.”

디렉터 상을 제외한 모든 상이 DW애드의 수상이었기에 함께 나가서 상을 받았다.

“아마 관객들도 전 직원이 다섯 명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랬겠지. 주최 측에서 놀라면서 몇 차례나 확인했었어. 참석 인원이 다섯 명뿐이냐고.”

“하긴, 큰 회사에서는 광고제 참석 인원이 다섯 명인 것도 적게 느껴지네요. 그런 거 보면 우리 정말 대단해요.”

“맞아. 우린 대단해. 완벽해. 짜릿해!”

“맞습니다! 한 잔 더 하시죠!”

신나게 떠들며 트로피를 쓰다듬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도혁은 새삼 감회에 젖었다. 늘 고마웠던 직원들이었다.

태강애드에서 독립할 때도, 뉴욕으로 올 때도 성공할 자신은 있었지만 백 퍼센트 확신은 없었다.

그 길을 묵묵히 함께해 준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가슴 벅찬 감격이 밀려들어 눈시울마저 붉어지려 했다.

도혁은 잠깐 혼자 걷고 싶어져 일행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파티장의 외곽으로 발을 옮겨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어갔다.

화려한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둑한 풀숲을 한 걸음씩 걸으며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여기 괜찮은 광고쟁이가 있는 것 같던데. 아까 봤던 광고, 마음에 들었다고.”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남자 하나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도혁이 아는 얼굴이었다.

순간 펑, 하고 하늘 위에서 파티의 하이라이트를 알리는 폭죽이 터졌다. 그걸 본 남자가 기이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히힛, 우리 금성 가겠네. 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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