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32화
소위 광고계의 오스카라고 불리는 클리오 광고제.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로 칸 광고제와 함께 세계적인 권위와 역사를 자랑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크리에이티브와 신선한 디자인 등 광고의 모든 부분에 주목하는 클리오 광고제 현장에 DW의 직원들이 함께했다.
도혁과 DW애드의 광고가 여러 부분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로 지목된 것이다.
“이번엔 우리가 미국 온 걸 환영이라도 하듯이 맨해튼에서 열리는구만.”
“클리오는 미국 도시를 돌면서 개최하지? 맨해튼이라서 좋네. 모두 참석 가능하고. 다른 지역이었으면 바빠서 참석 못 할 뻔했어.”
“이야, 저 사람이 만세하고 서 있는 트로피, 저게 그 유명한 클리오의 상징인가?”
“그렇죠. 트로피 모양 때문에 광고계의 오스카라는 별칭이 붙은 거니까요.”
“정말 그러네. 얼른 보니까 오스카 트로피와 꼭 닮았는데? 이야, 칸이랑은 또 분위기가 확 다르구만!”
클리오 광고제에 초청받은 직원들이 축제의 분위기가 넘치는 현장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화려한데 간결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지. 아무튼 칸이랑 많이 달라.”
“작품의 분위기도 조금 다른 편이죠. 물론 탁월한 크리에이티브는 어디를 가든 환영받겠지만요.”
“맞아. 완벽한 창조물은 취향을 타지 않지. 어느 심사 위원이 보든 기발하고 신선한 광고는 눈에 띄는 법이니까.”
“낭중지추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심사 위원도 그렇지만 소비자들이 제일 먼저 알아보시니까요.”
“광고주 역시 마찬가지지. 올~ 저쪽 보이냐? 유명 인사도 많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회를 나누는 직원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차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대회 로고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도혁이 그에게 다가가자 차현우가 감격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여기, 클리오 현판 앞에 서 있으면서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저도 그래요. 제가 사진이라도 찍어드려요?”
“촌스럽지만 하나 찍을까? 난 정말 클리오가 꿈이었어. 성공의 상징처럼 여겼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는 차현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조명을 받아 빛으로 물든 황금빛 현판과 트로피 그리고 화려한 광고제의 전경. 그리고 사람들.
천천히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차현우를 찍고, 클리오 광고제의 전경을 하나둘 찍어갔다. 도혁은 차현우와 마찬가지로 가슴 벅찬 감격이 몰려왔다. 멀리서 그들을 발견한 직원들이 멀리서 달려왔다.
“거기서 뭐 하세요? 어머, 두 분이서만 인증샷 찍으신 거예요?”
최민아와 다른 직원들이 달려와 함께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직원들을 보자 괜스레 울컥하기까지 했다.
수상의 여부와 상관없이 오늘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리에서의 성공을 가슴속에 고이 접어 간직하고 싶었다.
도혁은 추억을 박제하듯 카메라에 하나둘, 그들의 얼굴을 담았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사진을 찍자마자 포즈를 풀며 도성진이 카메라를 꺼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촬영하겠습니다. 도준이 형이 꼭 입구부터 수상까지 모두 찍어서 서울로 전송하라고 했거든요. 대표님은 상도 받으셔야 하잖아요.”
“정말 수상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데, 뭐.”
“당연히 수상권이니까 불렀겠지. 우리가 진행한 광고들 모두 후보에 올랐다고. 그중에 어느 광고가 골드를 타려나.”
“에이, 브론즈라도 하나 타 가면 좋겠네요.”
김칫국부터 마시는 직원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도혁이 앞장섰다.
“일단 들어갑시다. 곧 시작하겠습니다.”
“우와, 입구부터 노미네이트된 광고들이 전시되어 있네요. 저기 우리가 진행한 옥외광고도 있는데요?”
도성진이 그간 DW애드에서 집행한 광고 포스터를 보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막상 전시된 걸 보니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타 대행사에서 집행한 훌륭한 광고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엄청나구만.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아. 그렇지 않아?”
“그러게요. 저는 이 광고가 제일 마음에 드네요.”
“나도.”
도혁과 최민아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깔끔한 배경에 강아지가 옷을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옆에는 눈가가 촉촉이 젖은 할머니가 강아지 옷과 같은 재질의 아이 옷을 들고 있었다.
단순하고 간결한 비주얼이 돋보이면서도 컨셉을 분명하게 표현한 좋은 광고였다.
“자녀가 모두 독립하고 집에 남은 노인들의 빈둥지 증후군을 표현한 광고네요. 자녀가 모두 집에서 떠나 버린 어르신들에게 유기견을 연결해 주는 캠페인인가 봐요.”
“우리나라와 달리 여긴 자녀들의 독립이 빠른 편이니까. 아이가 떠나고 남겨진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기엔 애완동물만 한 게 없지.”
“이렇게 떠난 아이의 옷을 재료로 강아지 옷을 제작해서 나누는 캠페인이에요. 노인과 유기견이 서로를 위로하고 위안을 주고받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했어요. 그쵸?”
“할머님 표정도 잘 잡았네. 광고 톤도 좋고.”
“저는 이렇게 따스한 광고가 참 좋더라구요. 햇살이 드리운 것 같네요.”
“나도 그래. 광고가 비록 마케팅의 일환이지만 매출에 기여하는 컨셉을 담으면서도 감동을 전할 수 있지. 사람이 있고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광고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더라고. 우리 광고도 그렇지 않나?”
“맞아요. DW애드 광고에도 언제나 사람 사는 스토리가 있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만드는 광고가 진심으로 좋아요.”
최민아가 끄덕이며 한참 동안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도혁이 그런 그녀를 보며 부연했다.
“그거 알아? 모든 크리에이티브는 창작자의 생각과 인생을 반영해. 영화도, 책도, 그림, 음악,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광고까지도 만드는 사람의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지.”
“흠, 그 말씀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광고를 만든다는 말인가요?”
“맞아. 자화자찬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해.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사람 냄새 나는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요즘은 그런 생각 많이 한다.”
날카로운 감각과 날이 선 아이디어, 그리고 서늘하리만치 이성적인 마케팅의 세계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은 창의적인 광고.
DW애드의 지향점이자, 이곳 클리오가 사랑하는 진짜 크리에이티브였다.
도혁은 부신 조명이 쏟아지는 클리오의 시상식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 * *
“이야!!! 감탄만 나오는구만!”
“세상에! 골드에 브론즈가 몇 개야!!”
DW애드의 서울 본사 직원들이 출근과 동시에 광고제 사진을 찾아보곤 소리를 질렀다.
밤새 황도준이 열심히 찍어 보내온 메일 속 사진을 한 장 한 장 열어보며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탁기준이 감격에 찬 표정으로 골드 트로피를 바라보았다.
“클리오 골드라니. 무려 골드야! 결국 해내는구나. 아, 명 대표! 명도혁 이 미친놈이.”
“헉! 대표님한테 미친놈이라니요. 전화로 꼰지를 겁니다!”
“괜찮아! 일러바쳐. 기분 좋아서 욕해도 봐줄 거다. 진짜 우리 명 대표 대박이지 않냐?”
“맞습니다. 대박 그 자체입니다.”
이진우가 울먹이며 대꾸했다. 그건 본 황도준이 놀리며 마우스를 내렸다.
“뭘 또 울기까지 하십니까! 우리 이 팀장님 감격해서 눈물 터지기 직전인데요? 메일 더 보시면 안 되겠습니다. 명 대표님이 안부 인사를 보내셨거든요.”
“빨리 줘봐. 황도준. 장난치지 말고.”
“올~ 이 팀장! 처음 보는 박력!”
이진우가 강한 어투로 말하자 탁기준이 놀라며 노트북을 그의 앞에 들이밀었다.
“이리 줘. 도준아, 평소에 이 팀장처럼 순한 사람이 화나면 무서워.”
“감사합니다. 탁 국장님.”
노트북을 받아 든 이진우가 천천히 도혁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서울 식구들 잘 지내고 있나? 우리만 좋은 데 와서 미안하긴 한데 죽도록 굴러서 클리오 온 거니까 부러워할 건 없고.]
여기까지 읽은 이진우가 툭 말을 뱉었다.
“서울도 안 구르는 건 아닙니다만?”
“올~~~ 오늘 진우 상남자 모드냐?”
“서울에서도 구르고 있으니 부럽다는 말입니다. 뉴욕 지사 사람들 진심으로 부럽네요.”
누구보다 도혁과 미국에 가고 싶어 했던 이진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혁이 없는 서울의 제작팀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남았었고.
이진우가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계속 편지를 읽어갔다.
[서울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거 알고 있어. 보고받을 때마다 놀란다. 특히 초콜릿 광고. 우리가 브론즈 받은 헤드 초콜릿 광고보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진행한 네이티 초콜릿 광고가 더 좋았다고 생각해. 마케팅적으로 완벽한 광고였고 한국 시장을 정확히 관통해서 트렌드를 만들어 버렸지. 우리 직원들 진심으로 존경한다.]
여기까지 읽은 이진우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한수철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울지 마! 울지 마!”
“안 웁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는지 계속 못 읽을 거 같습니다. 나머지는 도준이 네가 읽어.”
노트북을 받아 든 황도준이 남은 메일을 읽기 시작했다.
[곧 뉴욕 페스티벌 등 광고제가 계속 이어질 예정이야. 우리가 없는 동안 많이 애써주는 만큼 더 좋은 성과로 보답해야지. 사장이 열심히 구를 테니까 직원들은 걱정하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해주면 좋겠다. 다들 많이 보고 싶다. 특히 수상할 때 생각 많이 났어. 광고 공사 광고제 때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와서 부끄러웠는데 이번엔 그 쪽팔림이 참 그립더라.]
쪽팔림이 그립다는 말에 직원들이 쿡 웃음을 터뜨렸다. 한수철이 한쪽 눈썹을 치키며 투덜댔다.
“최민아 팀장이랑 그, 도준이 동생 안 되겠구만. 대표님 쪽팔리게 미리미리 플래카드 만들어 갔어야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가 있었으면 수상 족족 소리를 질렀을 텐데요.”
황도준이 주먹을 불끈거리며 아쉬워했다. 탁기준이 계속 메일을 읽을 것을 재촉했다.
“그래서, 향후 계획 나왔고 다 읽었냐? 이렇게 끝낼 명 대표가 아닌데.”
“맞아요. 안 끝났어요. 뒤에 약간 배 아픈 말이 있네요. 아, 겁나 부럽네.”
“이런. 배가 아프다고?”
듣고 있던 탁기준이 화면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탁 쳤다.
“역시 명도혁 대표님이구만. 우리 사장님 오랜만에 무릎 치게 만드네.”
“그러니까요.”
황도준이 공감하며 큰 소리로 마지막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럼 그리운 서울 직원들 이만 줄이도록 하지. 클리오 뒤풀이 파티가 있어서 말이야. 르나르 카프리오, 피트브레드, 안졸리네 졸리, 어이구 저쪽엔 톰 마린스도 있네? 이제 정말 가봐야 할 것 같아. 탑 모델 모니카가 자꾸 말을 붙이면서 샴페인을 권하네. 이거 귀찮아서 원…….]
자랑과 한탄을 이어붙인 엔딩에 직원들이 모두 소리를 질렀다.
“아! 배 아파. 따라갈걸. 뉴욕 갔어야 했는데!”
“난 무릎이 아프다. 너무 쳐서. 몇 년 전부터 모니카 빅 팬인데 눈물이 다 나네.”
탄식이 쏟아지는 서울의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