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31화 (231/252)

광고 천재 명도혁 231화

같은 시각 맨해튼 외곽의 버스 정류장.

대학생 한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에서 지나가는 택시와 버스의 외벽에 걸린 티노드 광고가 눈에 띄었다.

시계의 근사한 외형과 브랜드 로고가 강조된 흔한 광고 같았지만, 감각적인 비주얼과 색감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시계 디자인 완전 내 스타일인데, 이번에 나온 신상인가. 티노드면 가격이 좀 나가잖아. 아, 고민되네.’

대학생은 입맛을 다시며 정산받을 아르바이트비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이 달러도 아니고 한번 착용해 보고 결정하면 좋을 텐데. 흠.’

생각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화점에서 한번 시계를 차보면 거절하지 못하고 무리해서라도 구매할 자신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숱기가 없는 탓에 카페에서 메뉴가 잘못 나와도 그대로 먹고 마는 성격이었다.

대학생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방금 들어온 버스에 올라탔다. 순간 그가 눈을 의심하며 손등으로 눈두덩을 비볐다.

버스에 매달린 손잡이가 모두 티노드의 시계 모양이었던 것이다. 마치 티노드의 체험관이라도 온 것 같은 신기한 광경에 대학생은 반쯤 넋이 빠진 채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어울리는지 직접 착용해 보세요. - 티노드.]

지하철과 같이 시선이 닿는 곳에 딱 한 줄 카피만이 적힌 버스 내부 광고를 보며 대학생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기발하네, 하하. 다른 디자인도 있나?”

버스에 자리가 있었음에도 손잡이부터 찾아보는 대학생이었다.

자가로 운전해 출퇴근하는 운전자에게도 티노드의 광고가 스며들었다.

출근길에 급히 주유소에 들른 직장인은 주유하는 동안 이 건물, 저 건물에 걸려 있는 티노드의 옥외광고를 바라보았다.

‘아우, 어제 기름 넣어놓을걸. 바빠 죽겠는데. 근데 요즘 티노드 시계 광고 자주 보이네. 나름 가성비 템이지 아마?’

직장인은 주유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회사로 향했다. 허둥지둥 주차를 하고 빌딩 정문의 문고리를 잡은 남자가 피식 웃고 말았다.

급한 중에도 문고리에 걸린 티노드 광고가 보인 것이다. 문고리를 타고 원형의 시계 모양 손잡이가 걸려 있었는데 손목에 걸어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특이한 광고였다.

겨우 지각을 면한 남자가 땀을 닦으며 책상에 앉았다. 주변 직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손잡이 광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빌딩 손잡이 티노드 광고 봤어요? 우리 빌딩뿐만 아니라 맨해튼 주요 건물 몇 개에 상징적으로 설치했대요.”

“그거 재밌더라고. 디자인도 서너 가지라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있다 건물 돌아보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지하철 손잡이에도 설치되어 있어요. 저는 오면서 벌써 착용해 봤습니다. 이 디자인 어때요?”

남자의 눈길이 티노드 쇼핑몰에 꽂혀 있었다. 시착해 본 디자인의 시계를 고른 남자가 주변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의 마우스의 화살표는 이미 결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티노드의 광고에 관한 기사를 읽던 브레드가 신문을 와락 구겼다.

“이제 패션 아이템까지 서서히 손을 뻗는구만. 아오.”

맨해튼의 한가운데 위치한 고렌느 사무실에선 아침부터 고성이 오갔다. 브레드가 엄한 홍보팀장을 불러 화풀이 중이었다.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어? 티노드는 광고 봤나?”

“아, 그게 그러니까…… 제가 보기는 했는데.”

“아씨, 홍보팀장이라는 사람이 말 똑바로 못해? 보기는 했는데 뭐?”

“그래도, 그러니까 이 광고가 우리 고렌느와는 맞지 않지 않습니까?”

땀을 뻘뻘 흘리며 홍보팀장이 겨우 마른 입술을 떼어냈다.

“지금 풀린 티노드 광고는 명품의 품격을 드러내기에 별로입니다. 우리 고렌느가 이 대행사와 일하기는 좀…….”

“갑갑하구만.”

브레드가 거친 손길로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소리쳤다.

“티노드 브랜드를 선호하는 타깃이 어리니까 거기 맞추셨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홍 보 팀 장 님?”

“아, 예, 예.”

“그리고 지금 우리 고렌느 역시 젊은 타깃으로 활로를 전환하려고 죽도록 노력 중이잖아요! 우리한테 꼭 필요한 대행사라고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 그렇네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 돌아버리겠네. 우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메인 대행사, 이름도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거기 사장 당장 들어오라 그래!”

“네. 알겠습니다!”

부러 흠집을 잡아내어 브레드의 환심을 사려 한 홍보팀장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밖으로 나왔다.

“에휴, 이번에도 대행사 바뀌겠네. 사흘이 멀다 하고 협력사를 갈아대니 이제 PT 공고 올려도 아무도 안 들어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미 업계에서 악명이 높아진 고렌느의 입지를 걱정하며 홍보팀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디렉터님께서 빨리 들어오시랍니다. 네! 대표님 지금 당장이요!”

* * *

“와, 티노드 광고 가성비 미쳤네요. 그렇지 않아요, 대표님?”

“그러게. 일은 쉬웠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잖아?”

일찍 출근한 도혁과 최민아가 모닝커피를 함께하며 흡족하게 웃었다. 짠 술잔처럼 머그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사무실을 울렸다.

뉴욕을 관통하는 모든 지하철과 버스 노선, 그리고 맨해튼의 주요 건물을 통틀어 티노드의 시계 광고를 집중적으로 풀었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외벽 옥외광고, 그리고 직접 착용한 느낌이 들게끔 착시를 일으키는 손잡이 광고가 뉴욕 시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력 대비 결과 또한 좋아 직원 모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티노드는 단순한 광고다. 브랜드를 강조한 외벽 옥외, 그리고 손잡이. 끝.

TV처럼 매체 구좌 잡기 힘든 것도 아니었고 시계 디자인을 고스란히 실사로 옮겼기에 디자인적으로 부담도 없었다.

커피를 한 모금 달게 들이켠 최민아가 테이블에 올려둔 티노드 시안을 가리켰다.

“평생 이런 광고만 하면 좋겠어요. 손 안 대고 코 푼 기분이랄까요?”

“오호, 그럼 이런 아이디어만 내보시든지.”

“하, 지금 대표님 아이디어라고 생색내시는 거죠?”

“당연하지. 손 안 가고 돈 버는 아이디어 이렇게 잘 내는 사장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인정!”

최민아가 두 손을 들어보이며 항복을 표하는데, 직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뉴욕을 대표하는 대디자이너 최 팀장이 아침부터 왜 벌을 서고 있을까? 대표님한테 혼났어?”

“우리 직원들 혼날 일이 뭐 있겠어요. 이렇게 잘나가고 있는데.”

최민아가 턱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창문 밖 풍경으로 맨해튼 한가운데 커다랗게 걸린 티노드 광고가 한눈에 펼쳐졌다.

도혁이 그 흐뭇한 풍경을 휘익 둘러보며 호쾌하게 웃었다.

“이야, 언제 봐도 집행한 광고를 구경하는 건 질리지가 않아요. 특히 티노드는 지금까지 했던 광고 중에 가장 화제성을 일으키고 있어.”

“화제성은 매번 갱신하는 느낌인데요? 미국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차츰차츰 입지를 넓혀갔잖아요. 어디 기사가 또 났어요?”

최민아의 질문에 강태오가 노트북을 가져와 네티즌 반응을 보여주었다.

“기사도 기사지만 커뮤니티에서 난리 났다고. 특히 젊은 남자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마다 티노드 광고 얘기뿐이야.”

“원래도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브랜드였으니 오죽할까.”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이어진 젊은 층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티노드 신상 0092 착용 후기.

심플하면서도 라인이 살아 있습니다. 무게감도 나쁘지 않고요.

ㄴ 지하철에서 손잡이 잡아본 거 아님?

ㄴ 어, 어떻게 알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나도 잡아보고 옴. 손잡이에 찍힌 디자인 실사라서 실물이랑 거의 똑같음 ㅋㅋㅋㅋㅋㅋㅋㄴ 미친 지하철이라니. 그거 만든 놈 상 줘야 함. 주변에 남자 새끼들은 다 산다고 난리 남.

ㄴ 티노드 사장이 상 주겠지. 저 광고 만든 놈 미친 듯. 지하철 버스 손잡이마다 티노드 도배됐어.

ㄴ 우리 회사 건물에도 있어요. 손잡이에 티노드 걸린 거 보고 피식했는데.

ㄴ 헐~ 님 좋은 회사 다니는구나. 티노드 손잡이 달린 건물이 뉴욕에서 제일 잘나가는 빌딩이라고 소문났어.

ㄴ 그렇군요. 아무튼 저는 시계 사러 갑니다.

흔한 자랑 글과 게시물부터.

-눈물이 다 난다. 시계 미리 차보고 구매하는 거 나 진짜 처음임.

ㄴ 어? 여기 나랑 비슷한 사람 있네. 님도 옷 사러 가면 뻘쭘함?

ㄴ 입어보겠다는 말도 잘 못 하고 입어보면 무조건 삼ㄴ 아니, 그런 거 다 떠나서 옷가게 직원이 말 붙이면 너무 무서움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공감. 나만 ㅂㅅ이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몰려온다 ㅋㅋㅋㅋㅋㅋㄴ 미용실도 그럼. 말 시키면 다시는 안 감.

ㄴ ㅋㅋㅋ난 아이스아메리카노 시켰는데 뜨거운 바닐라라떼 나와도 말 한마디 못 하고 마심.

ㄴ 헐 님 나세요?

서로 누가 더 멍청하게 소비자의 권익을 챙기지 못하는지 간증하거나.

-티노드 버스 광고를 통해 본 2030트렌드 분석 1.

-티노드 버스 광고를 통해 본 2030트렌드 분석 2.

…….

-티노드 버스 광고를 통해 본 2030트렌드 분석 12.

열 편이 넘는 시리즈 분석 자료까지. 다양한 종류의 게시물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가히 티노드 열풍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었다.

“이건 또 뭐야. 광고 인증, 구매 인증?”

“손잡이 광고로 착용해 본 장면이랑 구매 후 착용 후기를 인증한 거네요. 와, 이런 사람 엄청 많은데요?”

“대박이다. 이런 걸 대박이라고 하는구나. 와.”

성공한 캠페인과 소비자 참여형 체험 광고가 즉각적 구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도성진이 눈을 끔뻑이며 게시물을 폭풍 클릭했다.

“정말 마케팅 교과서에서나 보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니까 어질어질하네요.”

“직접 착용해 본 물건엔 애착이 깃들게 마련이야.”

“애착, 맞습니다. 한번 써본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천지 차이죠.”

“백화점에서 옷을 입어보는 건 착용했을 때 맞는지 보는 것도 있지만 입었을 때 마음에 들면 거의 대부분 사게 되어 있어. 인터넷 쇼핑과는 또 다른 측면이지. 이게 직접 체험의 힘이야.”

“그래서 기업마다 체험 기회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는군요.”

“맞아. 그렇지만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지.”

“그 한계를 광고로 극복한 거죠? 우리가?”

도성진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잘난 우리가 극복해 버린 거지. 아이템이 작고 간단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고.”

“타깃이랑 매체도 잘 맞아떨어졌고. 아무튼 여러 가지가 다 좋았어.”

“특히 우리가 잘한 걸로 합시다!”

“맞아. 아니, 네티즌들이 스스로 구매 인증을 하다니, 저기 댓글에 적힌대로 우리 명 대표 상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강태오의 말에 저쪽에서 회사 공용메일을 검토하고 있던 차현우가 소리쳤다.

“어, 우리 상 받겠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직원들이 놀라 그에게 다가가자 차현우가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클리오에서 메일이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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