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30화
밖에서 도혁이 열심히 도성진이 던진 떡밥에 아이디어를 보태고 있는 동안, 회의실 안에서는 FGI(Focus group interview)가 한창이었다.
메인 타깃인 2030 직장인 남자 도성진. 캐주얼 정장을 즐기며 평소 패션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취미와 관심사가 다양하고 취향이 분명하다. 자존감이 높으며 시계, 자동차, 취미 생활 등에 소비하는 비율이 이전 세대에 비해 높은 편이다.
멀리 갈 것 없이 DW애드 코리아의 남자들 한 명 한 명과 FGI를 시작하는 최민아의 손길이 바빠졌다.
“중요한 사항 노트북에 빠르게 메모하면서 인터뷰 진행할게요. 주요 문항은 뽑아서 서울 본사와 각 홍보대행사에도 발송했고, 흠 이제 성진 씨 시작하면 되겠다. 여기 앞에 카메라 보이시죠?”
“아, 카메라도 있군요. 네. 준비됐습니다.”
큼, 헛기침을 뱉으며 도성진이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평소 시계를 좋아하시나요?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시는지, 좋아하는 브랜드는 어떤 것인지 차례로 말씀해 주세요.”
“보통의 남자들이 그렇듯 시계는 남자들이 착용하는 거의 유일한 액세서리잖아요. 저 역시 시계만 여러 종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캐주얼 정장을 입기 때문에 메탈 시계를 선호하고 좋아하는 라인 역시 클래식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은 브랜드를 주로 선택합니다.”
“인터뷰 자료는 대외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니, 브랜드명을 직접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네. 저희가 캠페인을 진행하려 하는 티노드 시계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또래 친구들, 그리고 후배들이 돈을 모아 사곤 하더라구요. 상위 라인은 제법 비싼 편이거든요.”
“혹시 대학생 때도 티노드 브랜드를 알고 계셨나요?”
“그럼요. 그땐 저가 라인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와 용돈을 모아야 했죠. 오랫동안 즐겨 착용한 브랜드입니다.”
“어머, 우리가 첫 번째 FGI 대상을 제대로 골랐네요.”
최민아가 눈을 곱게 휘며 질문을 이었다.
“자, 그럼 티노드 시계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모던한 느낌에 젊은 감각이 너무 무겁지 않아서요. 나이 들어 보이는 느낌이 없다고나 할까요. 디자인 자체도 제 취향이구요.”
“좋습니다. 혹시 선호하는 광고매체가 있을까요?”
“DW애드의 옥외광고 좋아합니다.”
“성진 씨의 아부와 같은 의견 사장님께 꼭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인데요.”
머리를 긁적이며 도성진이 민망한 듯 웃었다.
“DW애드의 광고를 보고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마침 신입 채용 공고가 나와서 망설임 없이 지원했구요.”
“오호, 메인 디자이너로서 듣기 나쁘진 않네요.”
“잘난 척은 아니지만 DW애드보다 훨씬 큰 규모의 회사에서 제안이 제법 들어왔었습니다.”
“하긴, 성진 씨 포트폴리오 우리도 정말 탐나더라구요.”
“하지만 미래를 보고 지원한 겁니다.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고 확신하구요.”
결의에 찬 도성진이 눈빛이 반짝였다. 최민아는 흡족하게 입매를 끌어 올리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좋습니다. 그럼 평소 생활 패턴은 어떻게 되시나요? 일과를 말씀해 주세요.”
그의 매체 성향과 생활 등을 묻는 상세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DW애드의 빅팬이자 티노드의 주 소비자인 도성진의 FGI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전달해 주세요.”
강태오의 차례였다.
“강 국장님은 티노드보다 비싼 브랜드를 많이 착용하시죠? 오메랑 로엑스 자주 봤던 것 같아요.”
“그렇지. 난 돈이 많으니까.”
그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PT나 미팅에 참석할 땐 그렇지만 평소 회사 나올 때는 티노드급 브랜드도 많이 이용해. 부담이 없잖아.”
“대학생들에게는 그래도 조금 부담스러운 금액이죠?”
“대학 때도 잘 찼는데? 난 돈이 많으니까.”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위스키 재벌가 막내아들의 인터뷰였다.
다음으로 들어온 차현우에게는 거의 인터뷰를 당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최민아 씨는 어떤 브랜드 선호하는데?”
“저는 보기보다 페미닌한 취향이에요. 그래서 티노드처럼 중성적인 시계를 자주 차지는 않아요. 아까 봤던 여성 전용 라인이 조금 마음에 들긴 했지만 선뜻 구매까지 이어질 것 같진 않네요.”
“그래? 나 민아 씨가 페미닌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는데? 디자인도 선이 굵은 편이고 지금도 스포츠 시계 차고 있구만.”
“뭐, 회사니까. 꾸미고 올 이유가 없잖아요.”
“이런. 우리도 눈이 있는데 꾸미면 알아는 본다고!”
“가족끼리 왜 이러실까. 종일 같이 있으니까 가끔 트레이닝복 입은 채로 출근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어차피 디자이너라 광고주랑 만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민아 씨는 티노드 열성팬은 아니다?”
“네. 솔직히 조금 마음먹고 시계를 산다고 하면 액세서리 브랜드에서 나오는 팔찌 느낌의 시계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째 인터뷰어가 바뀐 것 같다며 최민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현우가 노트북 위에 손을 얹으며 대꾸했다.
“내가 볼 때 이 브랜드의 서브 타깃은 여성보단 어린 남자들 쪽이야. 40대로 넘어가 버리면 올드해질 거고 십 대 후반을 공략해야겠어. 요즘 애들 성숙하잖아?”
“미국은 아무래도 한국보다 더 그렇죠. 고등학생이 클럽활동도 많이 하고 운전도 하잖아요. 파티도 하구요.”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을 고3들이 생각나는구만.”
둘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수능 준비에 찌든 한국의 수험생을 떠올리자 가슴이 무거워진 최민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튼 여기선 한국의 고3을 생각하면 안 돼요. 충분히 서브 타깃으로 10대 후반 남성을 넣을 수 있다고 봐요.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도 많이 하더라구요.”
“오케이.”
차현우가 키보드에 서브 타깃에 대한 의견을 두드리며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 들어오세요.”
“최 팀장, 이거 좀 그려봐. 담백하고 간결하게.”
“네?”
도혁이 대충 그려 넣은 종이 한 장을 들고 들어오며 최민아를 재촉했다. 그걸 본 최민아가 어이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시안 구상까지 마치신 거예요? FGI도 시작 안 했는데요?”
“뭐, 어쩌다 보니. 도성진이 힌트 다 주고 갔어. 아무튼 이거 구현할 수 있겠어?”
“그럼요. 당연하죠. 그런데,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요. 끝내준다.”
“돈도 많이 안 들겠지? 어때?”
“그럼요. 고리나 손잡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구현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와!”
혀를 내두르며 최민아가 급히 펜을 잡았다. 그녀가 그려낸 것은 고리 모양의 손목시계들이었다.
* * *
“하하하하하하하.”
티노드 홍보팀장의 웃음이 회의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목을 젖혀 웃음을 터뜨렸다.
도혁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 얼떨떨하게 미소 지었다. 홍보 팀장이 무릎을 탁 치며 일어섰다.
“이렇게 간단하고 이토록 분명하고 완전히 컨셉을 표현한 광고는 처음입니다.”
“카피라이터 출신이신가요. 말씀이 청산유수십니다.”
“눈치채셨습니까? 저도 광고대행사에서 몇 년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때 광고주에게 픽업되어서 지금은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지만요.”
“그러셨군요.”
광고 회사 직원이 광고주에게 캐스팅되는 경우는 흔했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홍보팀이나 기획팀에서 러브 콜을 제법 받아봤기에 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능한 광고대행사 직원일수록 광고주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아, 저는 작은 대행사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해서 불만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광고를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후회를 했습니다.”
“후회하셨다구요?”
“네. 광고 일이 재밌으니까요. 이런 기발한 광고를 계속해서 만들 수 있다면 업무가 즐거울 것 같아요.”
도혁은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힘들 때도 많습니다.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광고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 성취감에 뿌듯하지만 그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지요.”
“하긴. 제가 젊을 때의 기억이라 미화했나 봅니다. 막상 광고 만들 때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죠.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창조물을 만드는 일이니까요.”
추억 보정이라는 데 동의하며 홍보팀장이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이 시안을 보고 도장을 찍지 않는다면 제정신이 아닌 거겠죠. 우리가 거절하면 다른 브랜드에서 집행할 거 아닙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네요. 이렇게 강력한 경쟁사 광고가 걸린다면 홍보팀장으로서 자괴감이 들 겁니다.”
“높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혁이 겸손하게 인사하자 홍보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거 정말 마음에 듭니다. 타깃과도 딱 어울리구요. 무엇보다 한번 먼저 착용해 보는 것, 소비자들이 시계를 구매할 때 가장 원하는 부분인데 그걸 만족하지 않습니까?”
“매장에서 착용하는 숫자에 한계가 있으니 생각해 본 방안입니다. 광고를 보고, 만지고 이를 통해 체험까지 이어지니까 제법 괜찮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타깃이 젊기 때문에 교통수단을 통한 캠페인이 가장 효과를 볼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하하.”
이어서 제시한 매체 집행 금액에서 홍보팀장은 다시 한번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그동안 광고 집행 금액 중 가장 저렴하군요. 충격적일 정도예요.”
“아무래도 TV보단 버스, 지하철, 그리고 지형지물을 이용한 광고들이 훨씬 저렴하니까요. 그리고 더 좋은 점은 교통수단은 돌아다닌다는 겁니다. 옥외처럼 한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선을 따라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티노드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하, 정말 최고네요. 이거 캠페인 진행하면 저 특별승진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한사발 들이켜는 김칫국이 현실이 되길 바라며 도혁도 함께 미소 지었다.
그리고 며칠 후, 티노드의 광고가 본격적으로 집행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탄 20대 남자 직장인. 지하철을 타자마자 놀라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보던 풍경과 사뭇 달랐던 것이다.
“어! 이게 뭐냐. 지하철 손잡이가 왜 이래? 이거 시계야?”
“어머, 여기에 손을 대도 되는 건가? 잡아도 되는 거?”
지하철의 손잡이에 모두 티노드의 손목시계로 변해 있었다. 한 줄은 같은 디자인으로, 뒤쪽 줄은 또 다른 디자인의 시계 모양의 사진이 손잡이에 박혀 있었다. 화질이 높은 실사가 찍혀 진짜 시계를 차는 듯한 기분이었다.
남자는 평소와 달리 시계 모양으로 변해 버린 손잡이를 잡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손을 뻗었다.
저도 모르게 손잡이를 손목 쪽에 맞춰보며 남자가 피식 웃었다.
다른 승객들도 손잡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곤 손목 위에 올려보았다. 그러곤 곧 지하철 내부에 걸린 광고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잠깐만 저 위에 뭐라고 쓰여 있는데?”
주변에서 들려온 외마디 목소리에 시선을 들어 올린 남자의 눈동자에 한 줄의 카피가 꽂혔다.
[어울리는지 직접 착용해 보세요. - 티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