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29화 (229/252)

광고 천재 명도혁 229화

메탈 시계와 수트.

도시 남자의 로망이 담긴 아이템을 보는 남자들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최민아가 쿡 웃으며 시계 회사의 제안서를 들어 올렸다.

“티노드 브랜드가 명품은 아니지만 제법 인지도도 있고 디자인이 좋더라구요. 요즘 남자들한테 인기 많죠?”

“그렇지. 나도 서너 개 가지고 있어.”

도혁의 말에 차현우가 차게 웃었다.

“명 대표는 훨씬 브랜드 티어 괜찮은 거 많지 않아? 명품도 제법 많이 가지고 있잖아.”

“뭐, 꾸미는 걸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시계에는 욕심이 있는 편이라서요. 그래도 캐주얼하게 차기에 티노드 정말 괜찮습니다. 명품은 은근히 나이 들어 보일 때도 있거든요.”

“공감! 나도 티노드 좋아해. 지금도 차고 있다고.”

강태오가 제 손목을 들어 보이며 부연했다.

“부담 없이 차기 제법 괜찮아. 남자에겐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니 LVNN의 명품 브랜드 광고를 집중적으로 집행하기 전에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좋습니다. 성진 씨 생각은 어때?”

“저, 말입니까?”

도성진의 의견을 묻자 그가 놀란 듯 눈을 끔뻑였다.

“국장님들이 결정해 주시면 따르려고 했는데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의견 물어야지. 이제 우리 식군데.”

가족이 아니라 가X 같은 회사라는 우스개도 있지만,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살다가 스텔라처럼 후배에게 뒤통수를 맞을 일이 생기는 날도 올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고 싶었다.

팀워크야말로 오늘날의 DW애드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니까.

도성진이 조금 감격한 듯 끄덕이더니, 티노드 브랜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요즘 가장 트렌디한 남자 시계 브랜드를 들라고 하면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이 티노드라고 대답할 겁니다. 가격대도 합리적이구요.”

“젊은 시계 브랜드라는 데 공감. 직장인이 마음먹고 사기에 아주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고, 무엇보다 올드한 느낌이 없어.”

“맞아요. 그 점이 가장 특징입니다. 디자인이 모던한 점이 한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캐주얼 슈트에 잘 어울려서 나도 선호해.”

“맞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함께 브랜드 라인을 둘러보던 남자들이 하나둘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와우, 이거 내 스타일이네.”

“지금 입은 옷에 찰떡이지 않냐? 메탈 라인만 주로 봤는데 가죽도 꽤 괜찮은데?”

“오! 이거 이번 시즌 신상인가 보다. 상세 페이지 들어가 봐.”

“저기요…….”

남자들이 쇼핑에 열을 올리는 걸 처음 본 최민아가 황당해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쇼핑 중이신 거예요?”

“아, 그런가. 참, 차기 아이템 정하는 중이었지? 근데 다 정하지 않았어?”

대충 대답하는 남자들의 시선이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 제 취향에 맞는 시계를 열심히 검색 중이었다.

최민아가 어이없다며 길게 숨을 뱉었다.

“남자분들 평소엔 쇼핑에 관심도 없더니. 자동차랑 시계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진다니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유전자에 박혀 있나 봐. 나도 그 두 가지 아이템은 꼭 내 손으로, 내 돈으로 사고 싶거든.”

“잠시만요.”

강태오가 무심코 뱉은 말에 도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만요. 강 국장님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내가 뭐라고 했더라? 내가 무슨 말 했었어?”

강태오가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자 도혁이 복기해 주었다.

“자동차랑 시계는 내 돈으로 사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맞아. 옷은 뭐, 엄마가 사 오든 선물받든 상관없는데 시계는 좀 다르지. 취향이라는 걸 세게 탄단 말이야. 솔직히 여자 친구가 선물해도 취향에 안 맞으면 바꿀 것 같아.”

“방금 말씀하신 부분, 중요한 셀링 포인트인 거 아시죠?”

“그러네. 2030 직장인 남성, 연봉이 높지는 않지만 시계만큼은 꽤 괜찮은 걸 사고 싶고, 무엇보다 내 손으로 직접 고르고 싶은 타깃. 맞지?”

“잘 집어내셨네요. 이제 우리 국장님 여자 친구만 만들면 되는 건가요?”

“그, 그렇지.”

강태오가 한숨을 내쉬면서도 제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기어코 골라내었다.

“오, 신상 진짜 괜찮은데? 난 이걸로 해야겠다.”

“어머, 벌써 고르셨어요? 근데 여기 여자 시계도 꽤 괜찮네요.”

“맞아. 주로 남자들이 이용하긴 하는데 중성적인 디자인 선호하는 20대 여자들도 찰 만한 시계도 제법 있어.”

“어머, 이 라인은 나름 페미닌하기도 하네요. 잠시만요, 이 제품 조금 더 보고 가실게요.”

마우스에 손을 올리는 최민아의 손길이 바빠졌다. 도혁 역시 몇 가지 눈에 들어오는 제품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데 강태오가 카드를 들었다.

“난 지금 바로 결재해야겠다. 택배 가능하지?”

“온라인 숍에서 바로 구매하시게요?”

“좀 그런가?”

“그럼요. 국장님 돈 많은 건 알지만 시계는 직접 차봐야 해요. 물론 티노드가 차보면 더 예쁜 브랜드긴 하지만 그래도 착용을 직접해 보시는 게…… 아, 잠깐만.”

도혁이 하던 말을 멈추자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대표님 감 잡으셨네. 최 팀장! 얼른 손에 마카펜 쥐어드려!”

“이미 쥐고 있습니다. 회의실로 이동합시다. 바로 아이데이션 시작하죠.”

4명의 메인 타깃과 서브 타깃 한 명이 당당하게 회의실로 입성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 * *

“여기 경쟁 PT 아니지? 우리만 들어가는 건가?”

“맞아요. 여기 제안서에서 DW애드의 신선하고 혁신적인 광고를 눈여겨봤다고 하네요.”

“신선과 혁신이라.”

여러 가지 미덕 중에 굳이 신선하다는 표현을 골라 쓴 제안서를 보며 도혁이 고개를 기울였다.

“티노드가 보기보다 역사가 길어. 백 년이 훌쩍 넘어갈걸?”

“그래요? 디자인만 보면 막 론칭한 브랜드 같은데 신기하네요.”

“그만큼 디자인도 마케팅도 혁신적으로 끌고 왔다는 말이지. 보통 전통이 긴 브랜드는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데 여기는 긴 역사를 통해 축적된 기술력을 강조해.”

도혁이 모니터 속 기존 광고의 카피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독특한 전략이네요. 브랜드 나이는 백 살인데 스무 살처럼 계속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인가요?”

“겉은 어리고, 속은 탄탄한 브랜드지. 이상적이지 않아?”

회귀자로서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과 같은 말을 뱉곤 도혁이 말을 이었다.

“브랜드 인지도, 선호도, 특히 젊은 층에게 선호가 높고 무엇보다 미국 시장에서는 이제 시작이야.”

“본사는 스위스에 있죠?”

“맞아. 강 국장님, 유럽 시장에서 티노드 어때요?”

“훌륭하지. 브랜드 인지도, 선호도, 충성도 삼박자 딱딱 잘 맞아.”

강태오가 팔짱을 풀며 펜을 휘리릭 돌렸다.

“거긴 직장인뿐 아니라 대학생들도 아르바이트로 돈 모아서 제일 먼저 사고 싶어 하는 시계라고나 할까.”

“학생들이 사기엔 조금 부담스럽지 않아요? 제법 가격이 나갈 텐데요.”

“그래도 사고 싶어 해. 어릴 때 차던 스포츠 시계에 슬슬 질려갈 때잖아.”

“하긴. 남자 인생에서 패션에 관심이 가장 높고 눈은 하늘 끝에 있는데 돈은 없을 때죠.”

도성진이 한탄했다. 최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기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어쩜 이렇게 쌍둥이가 다를까. 무진이는 대학생 때 오천 원짜리 티셔츠 입고 다니면서 프라모델 모았죠?”

“무진이 형이 대학을 나왔습니까? 정규 학교를 졸업했다구요?”

“흠, 제가 잘못했네요. 이 정도로 서로 모를 줄이야.”

“아무튼 무진이 형과 다르다니 기쁘군요.”

“그렇죠. 성진 씨가 도시 남자라면 무진이는 도시 거지 같다고요.”

“헐, 지금 무진이 뒷담화하는 거냐! 일러바칠 거야.”

강태오가 도무진 얘기를 듣고 발끈하자 차현우가 놀렸다.

“도시 거지 감성 공격하니까 우리 강 국장 화났네.”

“헐. 아니거든. 그리고 도시 거지 감성 무시하네. 우리 같은 사람이 있어야 도시가 재건되고 혁신적으로 변하는 거야.”

“도시 괴담 같은 말인데?”

“자자, 아무튼 도시 남자도, 도시 거지도 선호하는 브랜드라는 거잖아요. 그렇죠?”

도혁이 서둘러 이들의 말을 포장하며 아이데이션에 집중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유럽에서는 브랜드의 입지가 탄탄하고, 미국에서는 트렌디한 브랜드로 인기를 쌓아가고 있는 입장이야. 어때요? 40대 이상으로 시장을 확장하는 등 일을 벌이는 쪽보다 기존 타깃을 공고히 하는 방향이 좋을 듯합니다. 물론 시장분석을 좀 더 꼼꼼히 해봐야겠지만요.”

“맞아. 분명히 저쪽에서도 2030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쪽을 선호할 거야. 마케팅적으로 숙성 단계에 이른 유럽과 달리 적어도 미국 시장에서는 현재 위치를 공고히 하는 쪽을 선택할 것 같아.”

“이번에는 좀 더 세심하게 타깃 포트폴리오를 짜보도록 하죠. 다각도로 접근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아까 도시 남자, 도시 거지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신입에서 대리급, 조금 높으면 과장급 정도의 직장인과 시계에 관심이 높은 대학생 등 세부 타깃을 나누어 진행하면 어떨까요.”

“좋아. 서브 타깃은 2030 여성으로? 아니면 남자로 이어가고 연령대를 높이거나 낮출까? 아예 서브를 과감하게 없애서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고.”

늘 그렇듯이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갔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 결론은 검토 후 재회합이었지만.

“자, 업무 분장 쪼개고 조사 후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우리 2030 남자들은 뭘 좋아하려나……. 우리가 잘~ 알겠네.”

“그러게요. 성향도 조금씩 다르니까 내부 FGI(Focus group interview)라도 진행할까요?”

“그것도 괜찮네요. 제가 제일 객관적이잖아요. 네 분 돌아가면서 인터뷰해야겠어요.”

최민아가 나서며 메모지를 들었다.

“차례로 FGI를 해봐야겠어요. 솔직한 답변 부탁드려요.”

“오케이. 그럼 우리 성진이부터 인터뷰 시작하시고, 우린 쇼핑몰 다시 열어볼까?”

오랜만에 온라인 쇼핑이라며 강태오가 의지를 불태웠다. 차현우조차 동조하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번 성과금으로 시계 하나 사려고 했는데 잘됐다.”

“진짜 잘했네. 차 국장도 애들한테 돈 다 보내주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좀 써. 소년 가장 코스프레 그만하고.”

“말이 쉽냐? 딸린 입이 몇 갠데.”

대체로 둘이 투닥거릴 땐 차현우의 말이 맞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도혁도 강태오의 편을 들었다.

“이미 송금 많이 해주고 계시잖아요. 꼬맹이들 각자 시계 몇 개씩 있을 텐데요.”

“흠, 그래서 이번에 티노드 하나 장만하려고. 딱 마음먹고 있었는데 잘됐다. 그럼 성진이는 인터뷰하고 우린 나갑시다.”

“그럽시다. 시계 열심히 고르고 있을게.”

회의실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도성진이 말을 보탰다.

“백화점으로 가시는 게 낫지 않나요? 아까 직접 착용해 보셔야 안다면서요.”

“우리 FGI 기다리는 시간에 짬 내서 디자인 보려는 거잖아.”

“아, 그렇구나. 짜투리 시간에 직접 착용해 보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뭐? 잠깐만 성진 씨 뭐라고?”

도혁이 오늘만 세 번째로 팔을 들어 말을 끊었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의 싹이 움트고 있다는 표식이었다.

“자투리 시간, 그렇지. 자투리 시간에 직접 착장이라. 성진 씨 고맙다.”

도혁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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