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28화
‘특종이다! 이건 엄청난 특종이야!’
이게 웬 떡이냐며 기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 개인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소문난 스텔라였다. 특히 까칠하기로 이름난 성격 탓에 언감생심 의뢰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스텔라가 기분까지 좋아 보여. 이거, 원. 로또라도 사야 하나.’
다시 자리에 앉은 기자가 얼른 노트를 펼쳤다. 스텔라가 변덕을 부리기 전에 얼른 인터뷰를 해치워야 한다. 카메라 기자도 같은 마음인지 서둘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두 분은 원래 친분이 있으신 겁니까?”
“DW애드와 저희 LVNN이 협력 관계에 있습니다. 최근 ‘계약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누구 보라는 듯 쐐기를 강하게 박으며 스텔라가 계약 완료를 강조했다. 카메라 기자가 서둘러 스텔라와 도혁을 묶어 투 샷으로 잡았다. 기자가 빠르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 그러시군요. 대행사까지 직접 찾아오시고 역시 발로 뛰는 디렉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정도야 뭐, 기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서머 시즌 막바지 광고 집행 여부를 의논하러 들른 겁니다.”
스텔라가 도혁을 바라보며 살짝 눈을 휘었다. 평소 냉담한 무표정으로 이름난 스텔라인지라 기자의 놀란 눈동자가 커졌다. 서둘러 펜을 놀리는 손길을 더욱 바삐 움직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두 분의 인연에 대해서 들려주시면 좋은 기사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저희 브랜드의 광고를 오랫동안 메인으로 대행하고 있는 피에르의 추천이 있었습니다. 동양에서도 온 엄청난 기량의 광고인이라며 명도 혁 씨를 소개했어요.”
스텔라의 말에 도혁이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피에르와는 칸 광고제를 통해 인연이 닿았습니다. 그리고 맨해튼에 오자마자 우연히 마주쳤구요. 이런 걸 보면 세상에 인연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봅니다.”
“우연이 두 번 반복되면 필연이죠. 그렇게 연결된 우리도 필연이라고 저는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명도혁 대표님?”
스텔라의 말에 도혁이 끄덕이며 동조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영광입니다.”
이어지는 훈훈한 분위기에 기자가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두 분 조금 더 가까이 서서 카메라를 한번 바라봐주시겠습니까?”
“악수를 하는 장면을 연출해 보면 어떨까요.”
스텔라가 손을 내밀고 도혁이 잡았다.
다음 날, 조간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특집으로 실리고 손을 맞잡은 둘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지면을 장식했다.
소식은 금세 한국까지 전해졌다.
“이야, 우리 대표님 LVNN 디렉터랑 친구 먹은 거냐? 내 절친 명도혁 대표님?”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접한 한수철이 소리쳤다. 주변으로 몰려든 직원들이 사진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감탄했다.
“미친. 뭔가 실감이 안 나는데? 미국 간 지 얼마나 됐다고 LVNN과 협약을 맺은 거냐?”
“심지어 스텔라가 직접 DW애드 사무실로 찾아왔데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LVNN이면 월드 탑 티어 명품 브랜드만 수십 개 아닌가? 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네.”
탁기준이 입맛을 쩍 다시며 아쉬움을 표했다.
“우린 뉴욕으로 갔어야 했어. 그렇지 않냐, 수철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렇게 빨리 잘될 줄 알았으면 그냥 갔어도 될 뻔했습니다.”
“명 대표가 2~3년 안에 미국 시장 먹겠다고 공언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비웃었어. 그 말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죠.”
곁에서 듣고 있던 도무진이 뉴욕지사에 채용된 도성진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왜 그때 우리 쌍둥이 동생이 DW 뉴욕지사 취업했다고 했었잖아요.”
“아, 맞다. 신입 적응은 잘하고 있데?”
“네. 한 팀장님 말씀처럼 다른 것보다 미친 속도에 놀라고 있어요. 인간이 무슨 광고 기계도 아니고 아이디어랑 시안이 국수처럼 쑥쑥 나온다고요.”
“처음 명 대표를 보면 감탄조차 나오지 않지. 사람이 유능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빠르잖아.”
한수철이 모니터 속의 도혁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빨리 돌아와서 또 해외로 나가면 좋겠다. 가만있을 명 대표가 아니니까 일본이든 유럽이든 또 진출하자고 하겠지?”
“그때는 무조건 우리가 가야지. 짐 딱 싸서 대기하고 있자, 한 팀장?”
“당연합니다. 탁 국장님. 근데 이러다 명 대표 타임지에도 나오고 막, 유력 컨벤션에서 연설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해외 유명 인사들처럼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도준과 도무진이 내기를 하고 있었다. 벌써 현금이 오고 가는 내기의 현장을 보며 탁기준이 물었다.
“타임지에 실리나 안 실리나에 돈 거는 거냐?”
“그럴 리가요. 얼마 만에 타임지에서 인터뷰를 따갈 것인지 내기 중입니다.”
탁기준이 조용히 지갑을 열며 소리쳤다.
“6개월 본다. 오만 원, 콜?”
* * *
탁기준은 내기에서 지게 생겼다.
LVNN와 도혁의 인터뷰를 본 타임지에서 스텔라와 함께 공동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LVNN의 홍보팀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도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뒷목을 주물렀다.
“이런, 타임지라니, 피곤하게 생겼구만.”
“우리 겸손하신 명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타임지 인터뷰가 피곤하다니요!”
강태오가 도혁에게 안마봉을 건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디 가서 타임지 인터뷰가 피곤하다고 하면 잘난 척한다고 욕먹을 텐데.”
“기쁘기도 한데 피곤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타임지야 뭐, 스텔라 때문에 저를 엮어 들어가는 거고.”
“이렇든 저렇든 무려 타임지라고. 다른 매체도 아니고 타임지는 상징성이 있잖아. 성공의 상징! 성공한 CEO 명도혁!”
강태오가 감격한 표정으로 도혁을 우러러보는 척했다.
“장난은 그만 치시구요.”
“장난이 아니라 내기까지 걸었다고 하던데? 서울 본사에서 말이야.”
“내기요?”
“어. 지난번 일간지 기사 보고 타임지에 명 대표 인터뷰가 언제쯤 실릴지 내기를 했대.”
“오 마이 갓. 그래서 최종 승자는 누구죠?”
“도무진. 이번 인터뷰 뒤에 곧바로 타임지에서 입질 올 거라고 확신했다나 봐. 아주 서울 본사 사람들 원성이 자자하더라고. 성진이가 정보 빼돌린 거 아니냐고 말이지.”
강태오의 말에 도성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도무진 형과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습니다. 내기에 이기라고 정보를 주다니요. 형제가 있으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아실 텐데요.”
“하긴 친형제가 고급 정보를 빼돌릴 만큼 친하긴 어렵지. 전생에 나라라도 구하지 않았으면 말이야.”
명현진의 앙칼진 얼굴을 떠올리며 도혁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튼 그래서 대표를 두고 내기를 하셨다, 흠. 아주 맹랑한 직원들이구만.”
“그래도 타임지에 실리는 일은 한국에서도 영업에 큰 도움이 될 거야. 한국 광고주들, 타이틀 있는 거 좋아하잖아.”
“하긴. 그런 면이 없지 않죠.”
“그러니까 힘내서 인터뷰 제대로 하고 오라고! 다 회사 매출에 직결된다 생각하고 말이지!”
“차 국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신이 번쩍 나네요. 준비 열심히 해야겠어요. 뭐, 워낙 잘생긴 데다 카메라도 잘 받으니까 따로 준비할 건 없지만…….”
“자, 자! 업무 시작합시다!”
도혁의 말에 직원들이 흩어지며 각자의 모니터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문득 장난이 더 걸고 싶어져 차현우에게 더 다가가는데, 그가 폭풍 마우스 클릭을 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어이구, 그사이 메일이 엄청나게 들어왔네.”
“그래요? 회사 메일 계정 말씀이시죠?”
“와, 이게 다 뭐냐.”
함께 들여다본 회사 대표 메일에는 수십 통의 광고 수주 제안서가 들어와 있었다. 그중엔 제법 규모가 있는 글로벌 기업의 PT 제안도 함께였다.
“이거 많이 보던 광경인데? 서울 본사 메일 잘못 들어온 줄 알았네.”
“저도요. 이거 한번 진행해 보고 싶은 회사 꽤 있네요.”
“어느 아이템을 잡아볼까. 어이구 잠깐 사이에~ 또 메일이~~ 들어왔네~.”
차현우가 말에 리듬까지 붙이며 기분 좋게 메일을 열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지만 한껏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이오 캠페인의 성공과 LVNN 스텔라와의 인터뷰 이후 DW애드의 인지도가 상당히 올라갔다. 결과물의 퀄리티와 언론 노출의 시너지가 더해져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도혁은 광고주의 캠페인 제안 메일을 하나둘 열어보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시안을 들고 찾아가는 입장에서 드디어 광고주가 찾아오는 대행사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이야, 메일이 비처럼 쏟아지는구만. 일단 여기 커피부터 받으시고! 나도 같이 좀 보자.”
“땡큐. 아, 감회가 새롭다.”
“어째 명 대표보다 차 국장이 더 감격한 표정이냐. 우리 현우 입이 귀에 걸렸는데?
“당연히 기분 좋지. 내가 애드 포인트 문 열고 들어갈 때부터 그리던 풍경인데.”
“광고 수주 쏟아지는 거?”
“아니, 해외에서 제대로 광고하는 거.”
차현우가 다부지게 대답하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담고 있던 걸 이렇게 빨리 달성하게 되다니, 허탈하기까지 할 정도야. 실감도 나지 않고.”
“아직 그 정도 성공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한테는 이제 시작인걸요.”
“역시 욕심이 남달라. 그러니까 이 자리까지 왔겠지만.”
“제 욕심 채우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자, 일단 다음 아이템부터 골라봅시다.”
“그래. 감격은 나중에 하고 광고부터 합시다.”
도혁의 말에 정신을 차린 차현우가 광고주 목록을 정리해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자, 다음으로 진행할 아이템을 골라봅시다. 명 대표 생각해 둔 회사 있어?”
“있긴 한데 일단 한번 쭉 둘러볼까요?”
도혁이 광고 제의가 들어 온 회사들의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몇몇 개에 동그라미를 치곤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난 이 정도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곧 LVNN 시즌 광고 준비를 해야 하니까 한두 개 아이템 정도 더 집행하고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데요.”
“서머 시즌 마지막 광고라고 했지?”
“네. 찬바람 나기 시작할 때 준비하면 될 거예요. 내년 늦여름에 집행할 거니까요. 아직 덥잖아요.”
“그러게. 보자, 어디가 좋으려나.”
머리를 모아 들어온 광고주 목록을 살피고 있었다. 강태오와 차현우의 시선이 한 아이템에 꽂히자 눈치 빠른 최민아가 피식거렸다.
“이거 골랐구나? 맞죠?”
“괜찮지 않아? 우리 명품으로 건너가기 전에 진행하면 딱일 것 같은데.”
둘이 고른 아이템을 흘깃 보던 도혁과 도성진이 동시에 끄덕였다.
“동감입니다. 명품 브랜드 전에 감 잡기도 좋고 캐주얼하게 집행할 수 있을 듯한데요?”
“그렇지. 남자에게는 로망이라는 게 있단 말이지.”
강태오가 네 남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메일을 흔들어 보였다.
바로 남자의 로망 시계 회사의 제안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