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27화
반면 LVNN의 사무실은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웃음꽃이 만발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이렇게 유망한 대행사와 미리 협력을 걸어놓으시다니요. 이게 바로 선견지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이 정도야 당연한 거 아닌가?”
마케팅 팀장이 입이 마르도록 스텔라의 안목을 찬양했다. 스텔라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옥외광고도 그렇지만 이번에 집행한 극장 광고는 하이오 브랜드 제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맞아. 무엇보다 그, 하이오가 좀 촌스러웠잖아. 광고 한 편으로 단번에 촌스러운 이미지를 벗어버렸어.”
“저도 좀 놀랐습니다. 하이오 광고, 얼른 보곤 세련된 드라이 톤이 명품 광고인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느 디자이너가 정빨강(색상표상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도의 빨간색)을 저따위로 쓰나, 욕 많이 했는데 말이지. 이제 세계에서 제일 세련된 핏빛으로 기억되겠어.”
“광고의 힘이 무섭긴 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유능한 명도혁 대표를 시즌도 시작하기 전에 선점하셨으니 CD님 안목이야말로 세계에서 제일이죠.”
마케팅 팀장의 아부가 계속되고 스텔라가 흡족한 듯 추후 일정을 체크했다.
“우리 앞선 대행사와 언제 계약이 끝나지?”
“석 달 정도 남았습니다.”
“흠, 여름 시즌 광고부터 DW애드와 진행해 버리는 게 좋겠어.”
“아, 여름부터 바로 말입니까?”
“막바지 여름 시즌 진행하고 F/W(가을 겨울 컬렉션)부터 본격적으로 DW에 맡기면 되지.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마케팅 팀장이 브레드의 근황을 알리며 그녀에게 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최근 브레드가 명도혁 대표에게 접근했다고 합니다. 명 대표는 저희와 아직 구체적인 업무를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단칼에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오, 그래? 암! 당연히 그래야지.”
“당연하다고 하기엔 브레드의 조건이 너무 좋았습니다. 위약금을 모두 물어주고 우리가 제안한 금액에 0.5배를 더해 지급한다고 했다네요.”
“브레드 이 미친놈. 악!!!!!”
스텔라가 먹던 커피 잔을 탕,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마구 출렁이는 커피를 바라보며 팀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튼 잘된 일 아닙니까? 명도혁 대표가 의리를 지켜줘서 브레드 얼굴이 시뻘게져서 갔다고 합니다.”
“아, 그래?”
“최근에도 하이오 옥외광고와 극장판 캠페인을 보고 무척 괴로워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인재를 하필 LVNN에서 데려갔다고 말입니다.”
“으하하. 아, 속 시원해. 잘 봐, 저게 배신자의 말로야. 하하.”
통쾌하고 시원하게 웃어젖히며 스텔라가 벌떡 일어섰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볼까? 브레드한테 한 방 먹여줬는데 술 한잔해야지.”
* * *
[하이오 맥주, 최강을 넘어 공공의 이익을 꾀하다.]
[관객과 호흡을 맞춘 이입의 효과, 하이오 맥주 극장 광고에 소비자들 깜짝!]
[주류 선호도 1위 기업이 전하는 섬뜩한 메시지. 음주 운전의 무서움.]
[현장 르포. 음주 운전 실태 조사. 이대로 정말 괜찮습니까?]
기사의 홍수였다. 도성진이 꼼꼼하게 스크랩을 하며 언론의 반응을 전해주었다.
“엄청난 양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굳이 보도 자료를 보낼 필요도 없을 만큼 대단한 반응입니다.”
“와,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광고 중에 제일 기사가 많이 났어요!”
“특히 극장 광고에 대한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관객 밀착, 아니지 광고니까 소비자 밀착형 콘텐츠가 인기잖아요.”
최민아와 도성진이 스크롤로 기사를 내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도성진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도무진 형에게 듣기는 했지만 명 대표님 정말 놀랍네요.”
“어떤 점이 제일 놀라워?”
“속도요.”
“속도?”
자리에 앉아 있던 도성진이 도혁을 올려다보며 부연했다.
“네. 이 정도 퀄리티의 시안을 이렇게 빨리 만들어서 심지어 벌써 집행해 버리다니요. 제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겁니다.”
“생각날 때 호다닥 진행해야지. 안 그러면 삭아버려.”
“네? 삭는다구요?”
“아이디어도 수명이라는 게 있어요. 닳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려서, 난 생각날 때 몰아붙여서 진행하는 스타일이에요.”
“저도요.”
“나도!”
도혁의 말에 DW애드 직원들이 모두 손을 들어 공감했다. 혀를 내두르는 도성진을 보고 도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미국에 오래 살아서 더 이해가 안 될 겁니다. 한국은 빨리빨리가 기본 전제니까.”
“아! 그렇죠.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해외에서도 유명합니다.”
“우린 더 빠르고 정확하다고 해두죠.”
“네. 속도에도 놀랐지만 퀄리티가 정확하게 뽑혀서 더 놀랐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이디어가 팔딱일 때 구현하는 게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묵히면 오히려 퀄리티가 더 떨어지더라고. 왜, 그 한국 속담도 있잖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라고. 이거, 정말 광고판에 딱 맞는 말입니다.”
도혁의 존대에 도성진이 펜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대표님, 이제 정말 말 놓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럴까?”
“네! 최 팀장님한테처럼 편하게 대하시면 좋겠습니다.”
곁에서 말을 듣고 있던 강태오가 피식거렸다.
“우리 손 빠르기로 소문난 대표님, 말 놓는 건 느리구만.”
“그렇네요.”
“내친김에 우리한테도 놓을래?”
“어이구, 애드포인트 선배한테 감히요?”
“에이, 우리 동아리 똥 기강 사라진 게 언제 적인데. 상사이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 대표님? 네~ 대표니임?”
“으……. 떨어지시죠.”
장난을 치며 어깨에 손을 얹으려는 강태오를 떼어내고 대표실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최민아가 큰 소리로 도혁을 불렀다.
“스케줄 잊으셨구나! 인터뷰 오기로 했잖아요.”
“아, 맞다.”
“인터뷰요?”
“응. 오늘 대표님 일간지 인터뷰 있어. 다른 신문사 주간 시사지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헉! 대단하십니다.”
도성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끔뻑였다. 최민아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한국에서는 흔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해. 신기한 게 제일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매체가 여성지야.”
“시사지가 아니라요?”
“응. 영 앤 리치, 성공한 사업가 1등 남편감? 이런 제목으로 몇 명 묶여서 나가는 특집들이 있거든. 거기 단골손님이었지 아마?”
“으……. 소오름.”
도혁이 몸서리치며 괴로워했다.
“나 그거 진짜 하기 싫었어. 기사 내용도 오글거리고. 내가 무슨 영앤리치냐. 1등 남편 어쩌고 그런 타이틀은 더 싫다.”
“하긴 신랑감으로 탑 티어는 아니죠. 품절되기 직전이잖아요.”
“어! 여자 친구 있으신가 봅니다.”
“이거 말해도 되나?”
최민아가 힐끗 눈치를 보자 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다음에 더 확실해지면 내가 말할게. 그리고 지금은 내가 좀 많이 바빠서 말이지.”
유명인인 전서윤을 배려해서 최대한 비밀로 하고 있었다. 게다가 벌써 기자가 문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취재진을 대표실로 안내한 후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카메라 기자가 여러 각도에서 도혁을 촬영하고 도혁이 넥타이 매듭을 고쳐 매었다.
“인터뷰 사진은 찍힐 때마다 머쓱한 기분입니다.”
“자연스럽고 좋으신데요? 사진은 별도 촬영하지 않고 인터뷰 중간중간 말씀하시는 모습을 담을게요.”
“그렇게 하시죠.”
기자가 본격적으로 광고에 관해 운을 떼었다.
“최근에 맨해튼에서 진행한 광고들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재밌어서 저 광고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캠페인들이 모두 DW애드 작품이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말 그랬어요. 그래서 이렇게 특집 기사도 기획하게 된 거구요.”
기자의 말에 묵례로 감사를 표했다. 기자는 열심히 메모를 이어가며 도혁에게 질문했다.
“몇 가지 간단하게 여쭐게요. 어려운 질문들은 아니니까 편하게 답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에서부터 광고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조사를 해보니 한국 시장에서 탑3 매출에 속하시던데 미국까지 진출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해외 진출은 오랜 저의 꿈이었습니다.”
입술을 뗀 도혁이 감회에 젖었다. 회귀 전부터 차현우와 함께 해외로 나가지 않았던 일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일본 시장, 유럽 그리고 미국 중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칸 광고제에서 수상 경력이 있으시더라구요. 유럽 쪽을 먼저 고려하셨을 것 같은데요.”
“유럽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우리 광고가 미국 쪽에 결이 더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톤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칸은 수상했으니 뉴욕페스티벌과 클리오에 욕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고요.”
“이미 수상 가시권일 것 같은데요?”
기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올려치자 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보다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습니다. 저는 저의 조그만 경험과 재능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광고를 할 뿐입니다.”
“겸손하시네요. 솔직히 건물에 들어오면서 놀랐습니다. 엄청나게 큰 회사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회사 직원이 저까지 다섯 명입니다. 그것도 최근에 디자이너 한 명 영입한 거구요.”
“다섯 명이요? 우리 팀이 다섯 명이 넘는데요?”
이 말엔 카메라 기자까지 놀라 곁눈질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도혁이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옥외와 프로모션에만 집중했던 겁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어려운 환경이었으니까요.”
“와우, 정말 놀랍네요. 한국이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이룬 엄청난 나라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압도적인 생산력이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뉴욕지사 규모도 차츰 키워야지요.”
입을 떡 벌린 채 기자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이번엔 극장 광고로 활로를 넓히신 걸까요? 하이오 극장 광고 반응이 엄청나요.”
“네. 맞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시도해 본 영상 광고인데 소비자분들께서 좋아해 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커뮤니티 여기저기 난리더라구요. 저도 인터넷을 통해 봤었구요.”
“바이럴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 네티즌분들께서 입소문을 내주셨어요.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콘텐츠가 좋으니까 그런 거죠. 아무튼 성공적인 캠페인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인터뷰의 막바지 즈음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대표님. 그러니까 지금 밖에 손님이 좀 오셔서요.”
“아, 저희가 시간을 너무 뺏었네요. 인터뷰 거의 끝났습니다. 챙겨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빠르게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서던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표실로 들어서는 손님이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어! 스텔라! 아니, 여기에 어떻게!”
“인터뷰 중이셨군요. 사전에 연락 없이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제 막 끝나서 일어서려던 참이었습니다.”
스텔라를 보곤 허둥거리는 기자에게 스텔라가 툭 말을 던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인터뷰를 할까요?”
“네??”
기자와 카메라 기자가 동시에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