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26화 (226/252)

광고 천재 명도혁 226화

[공익을 통해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하다.]

화면 속에서 한 글자씩 각인하듯 글씨가 찍혔다. 공익광고라는 말에 회장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첫 번째 제안할 광고는 저희가 주력으로 집행할 예정인 옥외광고입니다. 먼저 시안부터 보시겠습니다.”

-1안, 들이받은 맥주 편.

새벽의 푸른빛이 감도는 도로. 오픈카 한 대가 커다랗게 형상화된 맥주병을 들이받고 사고를 일으킨다.

기계적으로 느껴질 만큼 건조한 톤의 화면 위에 맥주병을 들이받은 오픈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노란빛의 맥주가 자동차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더불어 터지는 거품이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인상을 남기는 강렬한 비주얼이었다.

푸른빛의 오묘한 배경과 대조적으로 오른쪽 하단엔 붉게 새겨진 하이오 맥주의 로고가 핏빛처럼 찍혀 있었다.

다음 컷에서는 정사각형의 세단이 맥주 캔과 부딪혔고, 그다음 화면에서는 오토바이가 맥주병을 들이받는 장면이 이어졌다.

시안 세 개가 화면에 차례로 공개되고 도혁이 설명을 시작했다.

“세 장의 시안 모두 직관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광고입니다. 음주 운전의 경각심을 한눈에 그리고 강렬하게 느끼도록 제작했습니다. 하이오의 브랜드가 짙은 인상을 남기는 음주 운전 예방 광고입니다.”

“감각적인 색감의 비주얼이 인상적입니다. 한번 본 사람은 잊기 어려운 강한 느낌이 박힌다고 해야 하나.”

“새벽의 푸른빛과 황금색의 맥주, 그리고 핏빛의 하이오 브랜드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색채를 기억하게 하는 광고입니다. 옥외는 찰나에 시선을 끌어야 하는 만큼 스치듯 잠깐만 보더라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끔 강렬한 색감에 메시지를 얹어보았습니다.”

회장이 끄덕이며 턱을 어루만졌다. 도혁은 곧바로 두 번째 안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다음 시안 역시 옥외광고로 준비했습니다. 이번에도 광고 시안을 보시는 순간 금세 컨셉과 메시지를 단번에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2안, 찌그러진 캔, 부서진 차 편.

텅 빈 밤의 거리. 찌그러진 붉은 색 하이오 캔 위에 자동차가 그려져 있다. 그 캔의 모습만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단순한 광고였다.

역시 이번에도 하이오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색 캔의 모습과 하단에 새겨진 하이오의 브랜드 로고가 어둑한 배경과 대조를 이루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성진이 냈던 광고를 조금 더 직관적으로, 그리고 하이오의 브랜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형했다.

광고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광고를 훑어보았다.

“아, 술을 다 마시면 차가 찌그러진다는 경고를 이미지로 표현했군요!”

“오, 그러네요! 기발하네.”

홍보팀장이 동조하고 회장이 함께 끄덕였다. 회장은 앞선 옥외광고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찌그러진 캔 광고 역시 굉장히 마음에 든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붉은 캔이 찌그러진 모습이 아주 아주 강렬하군요. 두 가지 시안 모두 평소에 원하던 방식의 광고입니다. 한 번에 머릿속에 꽂히면서 하이오가 기억나는 광고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화면의 느낌이 살아서 팔딱인다고 해야 하나. 앞선 시안도 그렇고 분명 정적인 옥외광고인데 마치 움직이는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비주얼과 색감이 강렬해서 그런 느낌을 받으실 수 있었을 겁니다. 황금빛 맥주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나 캔이 찌그러진 그림은 동작이 가해지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장면들이니까요.”

“맞아요.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그림이 아주 좋습니다. 내가 광고의 창의성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케팅 팀장, 비주얼이 왜, 상 받는 광고 느낌 아닌가?”

“맞습니다! 회장님.”

마케팅 팀장이 세차게 고개를 주억이자 회장이 만족한 듯 입매를 끌어 올렸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옥외광고면 집행 금액도 높지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반응을 보고 옥외광고의 시안을 따온 인쇄 광고를 병행할 생각입니다. 또한 영상물을 함께 시도할 것을 제안합니다. 바로 소비자 참여형 콘텐츠입니다.”

“소비자 참여형이요?”

PT가 끝나간다고 생각하며 집행 매체에 대해 물었던 회장이 안경을 고쳐 썼다.

박물관과 견학 프로그램 관광 상품을 운영할 만큼 소비자 참여 콘텐츠에 관심이 높은 하이오였다. 이걸 이용해 좀 더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캠페인 속으로 끌어들일 작정이었다.

“하이오의 첫 번째 극장 광고를 제작할 예정인데요, 이번 광고의 주인공은 바로 음주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킨 소비자 자신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걸 다시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거구요.”

“소비자 자신이 모델이라구요?”

회장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메모를 하던 마케팅 팀장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컨디션이 나쁜 퇴근길이었다.

종일 격무에 시달렸던 브레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찌뿌둥한 목 뒤의 통증이 몰려들었다. 한 바퀴 목을 돌린 뒤 감았던 눈을 뜨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저게 뭐야. 저기 저 광고 보이나?”

운전사에게 소리치며 기대었던 등을 떼어냈다.

맨해튼의 한가운데 붙은 커다란 옥외광고에는 스포츠카 한 대가 맥주병을 들이받는 장면이 펼쳐졌다. 황금빛 맥주가 거품을 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흡사 영상물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이오 맥주 광고네요. 오는 길 내내 비슷한 광고가 있었습니다. 맥주 캔을 찌그러뜨린 광고도 있던데요.”

“뭐? 캔을 찌그러뜨려?”

말을 함과 동시에 다음 블록에서 찌그러진 맥주 캔 광고가 나타났다. 밋밋한 배경이 아닌 표면이 울퉁불퉁한 벽 위에 박히듯 새겨져 더 찌그러진 효과가 잘 드러났다.

“허, 하이오 맥주 제법 괜찮네. 촌스러운 브랜드 광고만 주야장천 하더니만 이번엔 비주얼 좀 아는 회사랑 작업하나 봐?”

“그런가 봅니다. 하이오 맥주의 저 빨간색이 저렇게 예쁜 색이었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세상 촌티는 다 빨아들이는 빨강이었는데 핏빛으로 변했구만. 이런.”

“그나저나 음주 운전 절대로 하면 안 되겠습니다. 어우, 저 피 색깔 보기만 해도 섬뜩합니다.”

“그렇지.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바로 교통사고니까. 그래서 내가 자네를 고용하는 거 아닌가.”

브레드가 운전사에게 생색을 내며 다시 뒷목을 잡았다.

“설마 명도혁이라는 그 젊은이 작품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불길한 예감이 스쳐 갔다. 왠지 모르게 DW애드가 그간 집행했던 광고들과 인상이 비슷했다.

브레드는 그동안 도혁이 해왔던 옥외광고의 강렬한 느낌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저토록 강한 인상을 남기는 LVNN 광고가 문신처럼 맨해튼에 새겨진다면…….

여기까지 생각한 브레드가 다시 뒷목을 주물렀다. 머리를 비우려 영화라도 한 편 보려는 생각에 운전자에게 지시했다.

“늘 가던 코비 시에터로 가지. VIP석에 와인 서비스 지시해 두고.”

“네! 알겠습니다.”

극장을 향하면서도 가슴속에서 왠지 모를 분노가 솟구쳤다. 촉이 상당히 좋은 그가 보기에 이건 DW애드의 광고가 확실했다.

비주얼의 스타일, 신선한 전개, 그리고 컨셉에 집중하는 직관적인 이미지까지.

브레드는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 남은 광고의 인상을 애써 지워내며 극장의 프리미엄석으로 발길을 돌렸다.

극장의 맨 윗자리에 따로 마련된 VIP 룸 안에서 느긋하게 와인 잔을 들었다. 조금은 긴장이 풀리며 뭉쳤던 근육도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극장 안에 하나둘 일반 관객들이 들어오고, 화면에서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여기도 하이오 맥주 광고가 나오네?”

무심코 화면에 시선을 돌렸던 브레드의 신경이 광고에 집중되었다.

광고는 액자식 구성이었다.

[본 광고는 극장을 찾은 관객과 사전 협조 후 촬영되었습니다. 관람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전에 콘티에 관해 협조를 구하고 관객을 모아서 모델로 활용했나 보구만. 뭘 보여주려는 거야. 액자식 구성이라는 말을 거창하게도 하네.’ 브레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광고 속의 카메라가 극장으로 들어오는 관객의 모습을 풀샷으로 잡은 후 영화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둘 비춰주고 있었다.

현재 광고를 보고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콜라를 마시는 사람과 팝콘을 먹는 아이, 그리고 서로에게 기대며 눈을 맞추는 커플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광고 속의 인물과 현재 광고를 보고 있는 관객을 동일시하는 과정을 마친 후, 광고 속에서도 영화 상영 전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인사를 막 마치고 나온 남자. 퇴근을 하는 모습이었다. 오늘 저녁의 브레드처럼 지쳤는지 목을 한 바퀴 돌린 후 넥타이를 내려 풀고는 바로 향했다.

바텐더와 함께 농담을 나누며 술을 한잔 마신 남자. 기분이 조금 풀린 듯 환하게 웃으며 연거푸 하이오 맥주를 들이켰다.

술자리를 파하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는 조금 취기가 오른 듯 보였다. 남자가 잠깐 망설이더니 괜찮겠지, 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하곤 차 열쇠를 들었다. 음주 운전을 하려는 듯 보였다.

역시나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어두운 길을 가고 있었다. 잠깐 졸린 듯 시야가 흐려져 눈을 비비는 남자. 그러다 툭 무언가를 들이받는 소리와 함께 끼익! 요란한 스키드마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서부터 카메라가 느리게 움직이며 슬로우 모션으로 화면에 잡았다.

사고의 충격으로 남자의 몸이 의자에서 사정없이 튕겼다. 남자는 곧 핸들에 고개를 묻고 쓰러졌다.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카메라는 차 안에 걸어둔 흔들리는 가족사진을 느린 화면으로 클로즈업한 채 멈추었다.

연기가 나는 자동차의 외관이 펼쳐지고 그 앞에 쓰러진 피해자의 모습이 롱샷으로 잡혔다.

순간 띠리링, 광고 속에서 극장 광고를 보고 있던 관객들의 핸드폰마다 문자가 도착했다.

[방금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의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관객들이 입을 틀어막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흔한 일상의 흔한 선택, 그 선택이 낳은 결과를 차례차례 보여주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브레드가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동일화 전략이군. 극장 광고를 보는 관객에게 똑같이 관객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완전히 콘텐츠 속으로 이입하게 하는 전략을 썼어. 누가 만든 지 모르겠지만 퍽 영리하구만.”

등을 털썩 의자에 기대며 브레드가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불길한 예감에 쐐기라도 박듯 광고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이오 맥주와 함께 익숙한 로고가 브레드의 눈앞을 스쳐 갔다.

[제작 DW애드.]

암전된 화면 위로 펼쳐진 로고를 본 브레드는 할 말을 잃었다. 그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하하, 저 명도혁이랑 스텔라가 같이 일을 꾸민단 말이지? 하하.”

한참을 웃던 브레드가 웃음을 뚝 멈추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러곤 움켜쥔 와인 잔을 세차게 벽으로 던져 버렸다.

와장창 유리가 깨지며 새하얀 벽에 핏빛 와인이 흘러내렸다. 하이오 맥주와 같은 선명한 붉은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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