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22화
“무진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세상에 너무 반갑다!”
“면접을 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DW애드 맞나요?”
“뭐? 면접?”
문 앞에는 도무진이 반듯하고 단정한 슈트 차림을 하고 서 있었다.
특히 금속 테의 안경을 쓴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평소와 퍽 다른 인상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간 최민아를 한번 힐끗 보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최민아 팀장님 되시는군요.”
“뭐? 무진아, 너 왜 그래, 무섭게. 면접은 또 무슨 말이야. 우리 직원이 면접을 왜 봐!”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도무진 대리의 동생 도성진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헉!! 넷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도무진과 가장 친한 최민아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쌍둥이 동생이에요? 와, 형제라구요?”
“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서류 전형 명단 확인하고 있었잖아. 이력서 낸 지원자 중에 도무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진인가 슈트 입고 면접 보러 나타난 줄 알았다니까?”
“무진이 형이 면접이라고 차려입고 그런 인간이 아닐 텐데요.”
차현우의 말에 금테 안경을 올려 쓰는 도성진이 대답했다. 그의 말에 모두 세차게 고개를 주억였다. 도혁이 정신을 차리고 이것저것 그에게 물어보았다.
“무진이가 쌍둥이라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군요.”
“네. 저는 뉴욕에서 어머니와 자랐고 무진이 형은 아버지와 한국에 있었습니다. 뭐, 그렇고 그런 집안 사정입니다.”
“그랬군요. 아무튼 이쪽으로 앉으시죠. 우리가 너무 놀라서 면접 오셨는데 지금까지 세워뒀네요. 디자인 분야 지원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포트폴리오를 건네받은 최민아의 눈이 커졌다. 칼각이 잡힌 반듯한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며 흡족한 미소로 도성진을 바라보았다.
“벌써 좋네요. 내가 무진이한테 각 잡는 거 가르치는 데만 일 년을 허비했단 말이에요.”
“듣던 대로 능력자시군요. 무진이 형 가르치는 데 일 년이라니요.”
도성진이 고개를 한번 가로젓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아와 포트폴리오를 구경하던 면접관들이 허공에서 눈을 마주치며 끄덕였다.
제법 괜찮은 퀄리티의 디자인이었고 개중엔 공모전 수상작도 있었다.
“디자인이 누가 봐도 해외 물 먹은 티가 나네요. 무진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 물씬 풍기는구만.”
“무진이 형은 웹 쪽 전문이니까 아무래도 차이가 있겠죠,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어떤 일을 했더라도 형이랑은 달랐을 겁니다.”
“정말 선 따는 것부터 색감까지, 쌍둥이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얼굴만 똑같고 모든 것이 다른 쌍둥이였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목소리로 도성진이 자기소개를 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DW애드 뉴욕지사에 지원한 도성진이라고 합니다. 뉴욕주립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글로벌 애드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습니다. 절제된 미학을 통해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하는 DW애드의 캠페인을 보고 꼭 지원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가 진행한 광고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광고가 있나요?”
“최근에 집행한 헤드 초콜릿 캠페인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지형지물, 특히 맨홀의 연기를 이용한 코코아 광고도 좋았지만, 기부 캠페인까지 확장하며 선한 영향력을 선보인 점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요. 도무진 대리가 혹시 우리 회사 지원해 보라고 추천하던가요?”
도혁의 말에 도성진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어올렸다.
“아니요. 딱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이 자식이!”
“뭐야, 도무진 엄청 만족하고 회사 다닌다고 자랑하지 않았어요?”
흥분한 면접관들을 보며 도성진이 짧게 한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DW애드는 또라이만 받는다던데요. 저는 자격이 안 된다고 했어요. 덜 돌았다고…….”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나 전교 1등만 해왔던 모범생이라구요.”
“난 인생을 두 번 살아도 모범적이었어. 나라에서 모범적으로 광고한다고 상도 받은 사람이야, 내가.”
직원들이 잇달아 반박하고 강태오가 말을 덧붙였다.
“전형적인 모범생의 샘플과 같은 인간 강태오가 여기 있습니다. 나 제작 총괄 강태오 국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도성진 씨. 나랑 비슷한 과로 보여서 같이 일하면 손발이 맞을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듭니다.”
DW애드 대표 또라이 강태오가 두 팔을 벌려 도성진을 환영했다.
“난 도성진 씨 마음에 쏙 들어. 일단 얼굴이 도무진이잖아? 적응할 필요도 없고 딱이라고.”
“모범생 면접관이라면 지원자가 가고 난 뒤에 총평을 하시겠지만, 아무튼 면접관님의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명 대표도 찬성이지? 뭐 고민할 게 있나? 나도 오케이!”
“저도요!”
“나도 괜찮은 것 같다.”
역시 모범생들만 모인 회사답게 면접 결과를 지원자에게 바로 공개하고 말았다. 도혁이 웃으며 도성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린 대략 이렇게 삽니다. 즉흥적이고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지내죠. 물론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만큼은 프로로서 최선을 다하지만요.”
“네. 결과물은 충분히 완벽했습니다. 그걸 보고 지원한 거구요.”
“이런 우리라도 좋다면, 우리는 도성진 씨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좋습니다. 타고나기를 제멋대로인 도무진한테도 적응했는 걸요. 그런데 설마 이대로 합격인 겁니까?”
“네. 저희는 도무진 대리와의 관계와 상관없이 포트폴리오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와 합이 잘 맞을 것 같아요.”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연봉은 채용 공고에 고지한 대로입니다. 성과급 역시 수익에 맞추어서 지급될 예정이구요.”
도혁의 말에 최민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성과급 받을 때만큼은 회사에 직원이 왜 이렇게 적냐는 불평 안 드실 거예요. 직급에 따라 수익을 나눠 가지는 성과급 시스템이라서 직원 수가 적을수록 이득이거든요.”
“아, 보너스가 Profit Share 스타일이군요.”
“맞아요. 서울에 있을 때도 연봉을 많이 받았지만 뉴욕에서는 훨씬 더 많이 받고 있어요.”
수익 얘기에 도성진이 안경 너머에 눈빛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기쁜 소식이네요.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것은 프로의 자부심이니까요.”
“받은 만큼 일한다는 사장의 마인드와 대조적이네요. 저는 직원 여러분과 반대로 생각하며 열심히 보좌하겠습니다.”
도혁의 말에 최민아가 가슴을 쓸어내리곤 도성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와, 아무튼 저 이게 숨 좀 쉬는 건가요? 더 이상 밤샘 안 해도 되겠죠?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도성진 씨. 얼굴이 낯익어서 더 반갑네. 잘해봐요. 사수 최민아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째, 무진이 얼굴로 진우가 말하는 것 같냐.”
차현우의 말에 모두의 웃음이 터졌다. 최민아가 DW애드의 직원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여기, 이쪽에 서 있는 남자가 서울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진우 팀장인데 느낌이 도성진 씨랑 비슷해요. 말투나 행동이 이성적이고 그러면서도 감각이 있고요.”
“무진이보다는 이진우 팀장이라는 분께 더 호감이 가는군요.”
“찐 형제는 원래 그런 법이죠. 보통은 연락도 안 하지 않아요?”
도성진이 웃으며 공감했다.
“우리처럼 성향이 완전히 다르면 더 그렇습니다. 전화하면 쓸데없는 소리만 하거든요. 건담이 어떻고 게임이 어떻고 못 알아들을 말만 해대는데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우린 둘 다 좋은데요? 쌍둥이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니, 초콜릿 회사 생각나네요.”
“그, 공장 문 앞에 서 있는 흑발 쌍둥이 말씀이신가요?”
“어! 아시네요?”
“공장 오픈 프로모션 때 아들이 가보자고 졸라서 방문했었습니다.”
“어머! 아들이 있으세요?”
“벌써 유부남이라고? 꼬맹이 도무진이? 아니지 도성진이구나.”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여러모로 도무진과는 퍽 다른 형제 도성진이었다.
* * *
“유부남 책상 풍경, 오랜만에 보니까 정겹네. 와, 아들이 좀 잘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닮아서 잘생겼다는 말 많이 듣고 있습니다.”
첫 출근을 한 도무진이 앉자마자 가족사진을 책상 위에 놓았다. 그걸 본 강태오와 차현우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수철도 떠나고 탁 국장은 벌써 애가 둘이지? 심지어 신입조차 아들이 있다니……. 우린 그동안 뭐 하고 살았냐?”
“어허! 현우 너는 솔로로서 자부심이 없어. 좀 더 당당하게 모쏠 인생을 즐겨보라고.”
“야 이 자식아, 목소리 낮춰. 그리고 모쏠은 아니야.”
“무슨 말이야. 차현우 여자 만나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아침부터 모쏠 논쟁으로 사무실이 들썩였다. 그사이 도혁이 짐을 들고서 발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직원들이 짐을 받아 들곤 혀를 내둘렀다.
“설마, 이게 전부 술입니까?”
“맞아요. 우리 술 광고할 겁니다. 하이오 맥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 바로 맥주입니다. 아주 좋군요. 첫 광고가 술이라니요.”
도성진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본 도혁이 고개를 기울여 그를 보았다.
“술 안마실 것 같은데, 잘 드시나 봅니다.”
“네. 제법 즐기는 편입니다.”
“하긴 누구 동생인데 못 먹겠어요. 성격은 달라도 유전자는 못 속이더라고요.”
인정하기 매우 싫었지만 명현진과도 닮은 구석이 제법 있었기에 도혁은 피식하고 말았다.
도혁이 털썩 자리에 앉아 맥주 캔을 땄다. 대낮부터 대표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 도성진이 흠칫 놀랐다.
“아, 지금부터 마시는 겁니까? 아침 9시 9분입니다만.”
“구구라…… 술 마시기 좋은 시간이네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이야, 그러네. 그럼 다 같이 한잔 마시고 시작할까?”
“그럴까요. 각자 시간 가지다가 2시부터 아이데이션 회의 진행합시다.”
역시 적응하려면 한참은 지나야 할 듯한 신입이었다. 어리둥절 서 있는 도성진에게 도혁이 치익 캔을 따 건넸다.
“일단 한잔 드시죠. 엑슨 게임 한판 어때?”
“조오치!!!”
“콜!”
멀찌감치에서 두 국장이 맥주 캔을 입에 물고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도성진이 머리를 긁적이자 최민아가 소곤거렸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속으면 안 돼요. 저러면서 다들 머릿속으로 아이디어 짜고 있을걸요?”
“연막인가요?”
“그렇게 의도하고 행동하는 인간들은 아니고, 이것저것 해보는 거예요. 생각날 때까지 갑갑하니까 저러고 놀아도 보고 술도 마셔보고 시장조사도 나가보고 그렇게 쥐어짜는 거죠.”
이제 이해했다는 듯 도성진이 자리에 다부지게 앉았다.
“저는 그럼 제 스타일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순간 도성진이 네 대의 노트북을 꺼내더니 동시에 켜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던 국장들이 놀라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는 철저하게 분석하고 계산해서 디자인하는 쪽입니다.”
“세상에. 무진이는 종이 한 장에 대에~ 충 그리는데.”
“러프한 인간이니까요. 저는 완전체구요.”
도무진이 들으면 뒷목 잡을 소리를 내뱉으며 도성진이 마우스를 잡았다.
“2시 회의까지 제 나름대로 초안을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2시에 봅시다!”
기획안도 없이 초안을 잡겠다는 야심 찬 신입을 보고 강태오가 오케이를 외쳤다. 카피안을 정돈하고 있던 도혁이 무심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놀라 뒤로 물러섰다.
4대의 컴퓨터 속에서는 각기 다른 시안이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