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19화 (219/252)

광고 천재 명도혁 219화

할로윈 데이의 저녁이었다. 빅그린 몬스터로 분장한 아이와 가족이 헤드 초콜릿 공장에 도착했다.

공장 입구에서는 흑발 머리의 쌍둥이가 초대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안내장에 적힌 시간을 확인하겠습니다. 시간대별로 나누어 입장 가능합니다. 빅그린 몬스터 친구, 들어오시죠.”

“들어오시죠!”

뒷말을 따라 하는 흑발 쌍둥이를 보며 아이가 몸서리쳤다.

“우와 저 누나들 신기하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요.”

“네 가면이 더 무섭단다. 꼬마 몬스터야. 어! 어!”

입구에 들어선 아이의 아빠가 무언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과, 광대다! 이래서 광대 공포증 환자는 주의하라고 한 거구나!”

“오! 광대 아저씨 초콜릿 나눠주고 있어요. 엄마! 호박 바구니 주세요!”

광대 공장장이 아이가 내민 호박 바구니에 초콜릿을 가득 넣어주었다. 하나둘 아이들이 광대 주위를 감싸고 정확히 스무 명의 아이가 한자리에 모였다.

손가락으로 아이의 수를 센 광대가 소리쳤다.

“우리 성에서는 백 년 전부터 초콜릿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선 지금 먹고 있는 초콜릿의 최신식 설비를 구경하고, 연구실로 이동해 전통 방식 그대로 초콜릿을 만들어볼 겁니다.”

“아이들이 직접 제작 체험을 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빠가 묻자 광대가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웃을수록 섬뜩한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은 광대의 주변에 몰려들어 신기한 듯 광대를 만지작거렸다.

광대는 잠깐 흠칫하더니 조금 감격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고맙구나. 너희는 나를 따라오렴. 어른들은 연구실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로비에 카페가 있으니 음료를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곧 광대와 쌍둥이가 아이들을 인솔해 사라졌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호젓하게 머그잔을 들었다.

“이 집 코코아 잘하네! 맛집이야.”

“초콜릿 공장에서 방금 만든 코코아니까 맛있겠죠. 아, 이런 여유라니 너무 좋다. 이런 행사 매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게. 애들도 즐겁고 우리도 이게 얼마만의 자유야!”

짠 머그잔으로 건배를 한 엄마와 아빠가 마주 보며 웃었다. 살벌한 육아에서 한숨을 돌린 달콤한 오후였다.

* * *

잠시 뒤, 토토 초콜릿의 마케팅팀 막내 직원 역시 헤드 초콜릿 공장을 방문했다.

팀장의 지시로 염탐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겸사겸사 여자 친구와 함께 할로윈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여자 친구가 흑발의 쌍둥이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꺅! 신기하다. 할로윈 분위기 제대로야!!”

“그러게. 헤드 초콜릿에서 준비를 많이 했네.”

별도의 준비를 할 필요도 없이 헤드 초콜릿 평소의 분위기대로였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토토의 직원이 혀를 내둘렀다.

쌍둥이부터 공장 내부의 기괴한 분위기, 심지어 광대까지 엄청난 이벤트로 호객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멋지다, 여기. 저기 봐봐, 애들이 소리 지르고 광대 엄청 좋아하네. 근데 저 광대님은 왜 저렇게 감격한 표정이야? 보여? 눈가에 눈물 맺힌 거?”

“아이들이 좋아해서 감동했나 봐. 근데 저 사람이 공장장인가? 설명을 계속해 주네.”

견학을 시작하곤 더 놀랐다. 오래된 유럽의 성과 같은 외관과 달리 최신식 설비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비가 우리보다 오히려 나은 것 같은데? 역시 헤드 초콜릿인가. 전통의 가치에 현대적 기술을 더했어.’

속으로 감탄하며 아이들을 따라 연구실로 가려 했던 발끝이 붙들렸다.

“어른들은 연구실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혹시 모를 보안 사항이 누출될 수 있고, 초콜릿 만드는 체험은 아이들만 가능하다고 초대장에 쓰여 있어요.”

쌍둥이의 저지로 연구실을 구경할 수 없게 된 토토 직원은 애가 탔다. 출근하면 팀장에게 닦달당할 텐데 걱정이 밀려든 것이다.

그런 그의 팔을 여자 친구가 잡아끌었다.

“로비에서 코코아나 마시자. 나 맨해튼 바닥 광고 볼 때마다 신기했어.”

“뭐, 그래야지.”

쩝, 입맛을 다시며 토토 직원은 연구실 코앞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 *

늦은 밤. 행사가 끝난 헤드 초콜릿 공장이었다. 광대는 그의 방에서 분장을 지우고 있었다.

거울로 물끄러미 제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슥슥 메이크업을 지워갔다. 짙은 분장으로 가려졌던 화상의 흉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넓고도 깊은 상처였다.

광대는 오늘 제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언제나 어색하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초콜릿을 맛보며 즐거워하던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리고 오늘의 프로모션을 기획한 남자가 들어왔다. 명도혁이라는 동양인이었다.

“아! 메이크업을 지우고 계셨군요. 저희는 정리가 끝나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인사하러 오셨구나. 잠깐 이쪽으로 앉으시죠. 오늘 고생 많으셨는데 차라도 한잔하고 가셔야죠.”

광대가 눈짓을 보내자 쌍둥이가 캐모마일 차를 내어왔다. 잠시 뒤 분장을 완전히 지운 광대가 자리에 앉았다.

처음 보는 광대 공장장의 민낯이었다. 이마 쪽에 화상으로 보이는 흉터 자국이 패 있었다.

“화상 자국 보고 놀라셨지요?”

“놀라진 않았습니다. 그동안 표시가 나지 않아 전혀 몰랐어요. 분장을 하고 계시고 이마 쪽은 머리로 가리고 있어서요.”

“이렇게 분장하지 않은 얼굴을 쌍둥이 외에 보이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군요. 어른이 된 이후론 줄곧 가리고 다녔으니까요. 어린 시절 흉측한 화상 때문에 친구가 없었어요. 모두 저를 무서워했죠.”

도혁은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자 감격한 표정으로 울컥해하던 광대의 얼굴이 떠올랐다. 먹먹해진 마음을 타고 잔잔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렸을 때 이미 동심을 잃었던 내가, 어쩌면 동심을 되찾고 싶어서 평생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기한 성 안에서 광대로 분장을 하고 아이들을 위한 초콜릿을 만들면서 말입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편견과 아픔을 이겨내고 성공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동심을 잃어가는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콤플렉스나 집안 환경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겠죠.”

“그러게요.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네요.”

“흠, 그렇다면 말입니다.”

사연을 들은 도혁의 머릿속에 다음 캠페인이 스쳐 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광대의 마음을 담은 기부 사업이었다.

차근차근 떠오르는 대로 캠페인을 설명하자 광대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아이를 사랑한 초콜릿! 초콜릿 러브 칠드런 캠페인이요?”

“그렇습니다. 이미 도심에 설치되어 있는 헤드 초콜릿의 항아리를 이용해 기부를 받고 편견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돕는 겁니다. 화상이나 흉터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성형을 해줄 수도 있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를 돕는 사업도 괜찮을 듯합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드디어 저도 사회에 기여할 때가 왔군요.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지금 힘든 처지에 있는 어린이를 돕는다면 그 아이들이 자라 공장장님처럼 멋지게 사회에 환원할 날이 오겠죠. 그게 바로 사회와 캠페인의 선순환이니까요.”

“멋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일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고요!”

“상상이 날개를 달 수 있게 더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광대의 눈가에 기어이 한 방울 눈물이 맺혔다.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초콜릿 러브 칠드런.]

도시의 곳곳에 헤드 초콜릿의 항아리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광고 조형물에 불과했던 항아리는 이제 아이들을 위한 기부의 그릇이 되어 시민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거, 아이들을 돕는 캠페인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헤드 초콜릿이 실시하는 대대적인 기부 캠페인이에요. 저기 옥외광고판 보이시죠?”

항아리를 지키던 아르바이트생이 광고를 가리켰다.

커다란 광고판에는 마녀가 ‘초콜릿 러브 칠드런’이라는 글자를 쓰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헤드 초콜릿에서 실시하는 공익 캠페인이라고 해요. 화상이나 부상으로 고생하는데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제일 먼저 돕는다고 합니다.”

“사회 환원 캠페인이라니 멋지군요. 우리도 동참하겠습니다.”

DW애드 뉴욕팀 직원들이 창밖으로 거리를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캠페인도 성공적인데요? 헤드 초콜릿 첫 광고의 반응을 넘어섰어요.”

“광대 공장장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신 덕분이지. 본인의 아픈 사연을 언론에 그대로 밝히셨어.”

도혁이 광대 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건냈다. 최민아가 인터뷰를 읽어 내려갔다.

“흉터와 아픔으로 얼룩진 유년시절 얼굴보다 마음이 더 아팠어요. 이번엔 흉터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성형 프로젝트이지만 다음엔 심장병 어린이, 그다음엔 학대받는 아동을 도울 수도 있겠죠. 계속해서 기부 캠페인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지구 위에 더 고통받는 어린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우와, 공장장님 진짜 멋진 분이네요.”

“맞아. 콤플렉스를 성장의 동력으로 이용해서 끝내 이겨냈잖아. 보통은 삐뚤어지게 마련이라고.”

차현우가 맞장구를 치자 도혁이 부연했다.

“그리고 성공한 후에 다시 뒤를 돌아보면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를 돌볼 꿈을 품고 있었다는 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돼요. 처음 봤을 때 정말 또라이 광대인 줄 알았어. 초콜릿 광인.”

“그러니까요. 세상엔 의외로 멋진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도혁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른부터 꼬마들까지 항아리에 붙어 작은 정성을 모으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계속 모으면 상당한 금액이 될 것 같아. 많은 어린이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초콜릿이 기적을 만들었네요. 할로윈의 기적.”

모두 미소 지으며 끄덕였다. 그리고 기적은 다른 곳에서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뉴욕에만 설치했던 초콜릿 러브 칠드런 캠페인을 확대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뉴욕시의 시장까지 캠페인에 동참하며 적극 홍보에 나섰다. 결국 미국 전역으로 번져간 캠페인은 입소문을 타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피에르와 스텔라 역시 맨해튼의 메인 스트릿을 걸으며 헤드 초콜릿의 기부 항아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친구, 결국 또 일을 내는구만. 지역의 조그만 옥외광고로 시작해서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일으키다니 말이야.”

“이것도 그 명도혁이라는 사람 작품인 거죠? 헤드 초콜릿.”

스텔라와 피에르가 항아리 쪽으로 걸어와 동시에 지갑을 열었다. 의외로 큰돈이 들어오자 아르바이트생이 넙죽 인사를 했다.

그에게 한 손을 들어 보이며 피에르가 대꾸했다.

“맞아. 명도혁 대표가 한 거지. 돈 몇 푼 안 들이고 참 다양하게 뉴욕을 흔들어놨어.”

“모델 한 명 안 쓰고 대단하군요. 무엇보다 캠페인이 재밌네. 신선하고.”

“그래서인지 이번 뉴욕 페스티벌이랑 클리오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들었어. 아마 상을 쓸어가겠지. 칸에서 했던 것처럼.”

“흠, 피에르. 가까운 날로 미팅 잡아보세요.”

클러치를 움켜쥔 스텔라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명도혁이라는 남자를 만나야겠어요. 최대한 빨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