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18화
[이상한 나라의 코코아.]
강태오의 인사로 헤드 초콜릿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코코아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광대 공장장이 눈을 끔뻑거렸다.
“중간중간 질문을 해도 될까요? 아니면 다 듣고 물어봐야 합니까?”
“편하실 대로 하시면 됩니다. 옆에 함께 들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구요.”
곁에서 듣고 있던 흑발 쌍둥이가 눈을 빛내며 끄덕였다. 끄덕이는 속도까지 똑같아 놀라울 뿐이었지만 강태오는 신경 쓰지 않고 마이크를 다잡았다.
그동안 무서워하던 감정을 싹 지우고 프레젠터로 완벽 변신한 모습이었다.
강태오가 차분히 PT를 시작했다.
“헤드 초콜릿은 지구 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초콜릿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콜릿 중 하나인 헤드는 북미권에서 특히 초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는 그중에서도 핵심인 미국 제1공장이죠. 바로 헤드 초콜릿의 심장과 같은 곳입니다.”
화면 위로 글로벌 초콜릿 시장을 분석한 내용과 북미권 매출 현황이 교차해 펼쳐졌다. 시장성을 설명하며 강점과 약점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기획의 초입이었다.
흑발의 쌍둥이가 조금 지루해하는 것을 느낀 강태오가 핵심을 간추려 주었다.
“3초에 1개!”
“3초에 1개.”
“3초에 1개.”
강태오의 외침에 쌍둥이가 두 번을 따라 외치자 그가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3초에 1개는 지난 헤드 초콜릿 캠페인의 메인 카피이자 별명이었습니다. 3초에 1개씩 팔린다는 현재의 위상을 정확히 보여주는 좋은 캐치프레이즈였지만, 저희가 준비한 이번 시즌 광고에서는 색다른 재미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할로윈 시즌이니까요.”
할로윈이라는 말에 흑발 쌍둥이가 양손을 가슴에 모았다. 표정은 전혀 감흥이 없었는데 감탄하는 동작만 선보이는 것이 기계처럼 느껴졌다.
광대 공장장이 흥미롭다는 듯 화면을 주시했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번뜩였다.
마음을 열심히 다잡고 올라간 강태오였지만 그 눈빛을 보자 조금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새 초콜릿 공장에서 배웠는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끌어 올린 듯 어색한 미소였다.
“사람들은 모두 할로윈 시즌이 되면 동심으로 돌아갑니다. 일곱 살 된 아이부터 팔십이 넘은 노인까지 축제처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그 마음을 백분 이용할 겁니다. 우리 헤드 초콜릿의 자산을 가지고 말입니다.”
“오호! 우리의 자산이라. 그건 뭘까요?”
“헤드 초콜릿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 그리고 최강의 제품군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코코아입니다.”
“문화라! 그리고 코코아라고요!”
강태오가 스타벅스의 사례를 꼽아 제시했다.
“흔히 스타벅스의 성공은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커피가 아닌 특유의 문화를 판다는 것인데요. 우리 헤드 초콜릿의 전통도 이에 뒤지지 않게 독특한 취향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이게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요.”
매우 특이한 오드 아이를 빛내며 광대 공장장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동심에도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천사가 있다면 마녀도 있는 법이지요. 천사는 예쁘지만 보통은 재미가 없어요. 뻔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어린이들도, 어른들도 할로윈에 열광하나 봅니다. 그 할로윈 고유의 분위기를 내면서 이상한 나라의 초콜릿을 맛보는 겁니다. 독특한 문화로서의 축제를 즐기는 거죠.”
“오호, 우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아이들도 물론이고 부모들도 즐거워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유치하지 않은 소구로 동심을 건드리는 게 핵심 포인트가 되겠군요.”
강태오가 첫 번째 시안을 열어 보였다.
[이상한 뉴욕의 마법 1.]
시안을 열자마자 광대 공장장의 입술에서 아! 라는 감탄이 터졌다. 강태오가 짧게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맨해튼의 흔한 맨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는 아주 흔한 풍경이네요.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데요.”
“그걸 코코아에 비유했군요! 정말 감쪽같습니다. 코코아 잔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요!”
“코코아!”
“코코아!”
쌍둥이 역시 큰 소리로 외쳤다. 무감했던 얼굴에는 생기까지 돌고 있었다.
“맨해튼에서 연기를 뿜는 맨홀마다 이 코코아 광고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카피도 필요 없죠. 맨홀 옆에 ‘오후의 뉴욕, 헤드 코코아’ 정도의 간단한 필기체를 적어 넣을 예정입니다.”
“아, 우리 이런 느낌 정말 좋아합니다! 색다르고 신선한 자극이 짜릿하군요!”
“초콜릿이 그런 제품이니까요. 밋밋한 일상에 달콤 짜릿한 행복을 주지 않습니까.”
“맞아요. 맞아!”
“심지어 돈도 크게 안 드는 광고입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연기조차도 우리가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모델도 없고요.”
강태오가 광고주가 무릎을 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저예산 광고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동안 헤드 초콜릿이 해왔던 글로벌 광고의 백 분의 일도 돈이 들지 않겠다며 광대 공장장이 조커처럼 크게 입을 벌려 웃었다.
사실 그게 더 무서웠지만 침을 한 번 더 꿀꺽 삼킨 강태오가 설명을 이어갔다.
“다음 시안을 보시겠습니다. 맨해튼 곳곳에 붙을 옥외광고입니다.”
[마녀, 초콜릿, 그리고 헤드.]
구름이 몽글거리는 듯한 폭신한 배경. 그 가운데에서 마녀가 스푼으로 항아리를 휘젓고 있다. 휘젓는 숟가락의 끝을 따라 초콜릿색 거품이 부드럽게 일렁이는 귀여운 광고였다.
[마녀의 할로윈 초대장. 헤드 초콜릿으로부터.]
초대장처럼 단순한 카피 한 줄이 뜨고 이어서 공원과 거리의 가운데 설치할 조형물의 샘플이 등장했다.
옥외광고판에 붙어 있던 바로 그 초콜릿 항아리였다. 그 항아리의 앞에는 한 줄 카피가 바닥 위로 적혀 있었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초콜릿을 이렇게 만듭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맨해튼 곳곳에 설치된 이 항아리의 숟가락을 저어볼 수 있습니다. 가짜이지만 진짜처럼 재미를 준 것인데요. 사실 지난번 연구소를 보고 착안한 광고입니다. 생산 설비는 최신이었지만 연구소만큼은 정통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하셨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그날 저도 한번 저어보고 싶었거든요.”
“오! 말씀을 하지 그러셨습니까?”
무서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강태오가 미소로 화답했다.
“아무튼 그날 우리 헤드 초콜릿 공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광고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입체적인 조형물을 활용한 광고는 옥외 캠페인, 맨홀 광고와 더불어 뉴욕의 곳곳에 설치될 예정이며 뉴욕 시민들과 할로윈을 함께 보낼 예정입니다.”
“초대장! 초대장은 어떤 의미입니까?”
“할로윈에 공장을 개방하면 어떨까 하는데요?”
“여기, 우리 공장을 말입니까?”
“공장을요?”
“초콜릿 공장요?”
광대 공장장과 쌍둥이가 놀라 동시에 소리쳤다.
쌍둥이가 다른 말을 외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 *
“잠깐만! 차 좀 세워봐.”
“네. 회장님.”
출근길 맨해튼의 교통 체증에 지겨워하던 토토 초콜릿 회장은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기이하고도 독특한 코코아 광고를 보게 된 것이다.
무엇에 이끌린 듯 차에서 내린 회장이 김이 나는 맨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맨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마감이 된 코코아 광고가 찍혀 있었다. 무려, 경쟁사 헤드 초콜릿의 광고였다.
“하아, 뉴욕 제1 공장장 똘기가 넘치더니만 이런 생각을! 허, 참.”
허탈하게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들어 올린 회장의 눈이 커졌다. 건너편에 초콜릿 항아리 조형물을 발견한 것이다.
바쁜 아침 시간이었지만 출근을 하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등굣길 아이들의 발길이 붙들린 건 당연해 보였다.
몇몇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숟가락에 붙여서 휘휘 젓는 것처럼 시늉을 하고 있는데, 그걸 또 부모들이 찍어 어디론가 전송하는 모습이었다.
불길한 회장의 예감대로 역시, 헤드 초콜릿 광고였다.
시선을 들어 올리자 마녀가 만든 초콜릿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옥외광고가 한눈에 들어왔다. 회장은 들고 있던 신문을 구겼다.
신문의 마지막 면에 박혀 있던 토토 초콜릿 광고 속 배우의 얼굴도 함께 구겨졌다. 최고 모델가를 갱신한 전속 모델이었다.
“이런, 한 방 먹었구만. 이 자식들, 도대체 어떤 대행사랑 일하는 거야?”
회장의 짜증은 회사에 도착하고도 사그라지지 못했다. 헤드 초콜릿 광고가 검색엔진을 장악한 것이다.
배너에서는 회장을 놀리기라도 하듯 마녀가 손을 흔들며 숟가락을 휘젓고 있었다. 그러더니 초대장이 도착했단다.
[이상한 나라의 초콜릿 공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클릭한 순간 한 장의 초대장이 펼쳐졌다.
[이상한 나라의 할로윈 파티로 초대합니다. 헤드 초콜릿으로부터.
마녀가 만드는 정통의 초콜릿 제작소로 오세요. 기괴하지만 황당할 정도로 즐거운 할로윈의 추억을 만들어드립니다. 노약자 대환영합니다.
* 분장 제일 잘한 사람 선물 드림. 선물은 비밀.
* 광대 공포증 환자 주의.]
“이 자식들. 할로윈 특수를 노렸구만. 잠깐만, 공장 하면 우리 회사가 헤드보다 한 수 위지.”
콜을 누르는 회장의 손길이 바빠졌다.
“우리 미국 내 공장들 견학 프로그램 열어! 최신식 설비 강조하고 애들 좀 끌어모아 보라고.”
“네? 회장님. 갑자기요?”
“갑자기 같은 소리 하네. 미리미리 마케팅 팀에서 준비를 안 하니까 갑자기 하게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일일이 전부 지시를 해야 하나?”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헐리우드 모델, 자를 수 없어?”
“3년 전속입니다만……?”
“이런!”
짧은 욕지기를 뱉으며 회장이 주먹으로 책상을 꽝 내리찍었다. 그러곤 사나운 눈길로 마케팅 팀장을 내려보며 지시했다.
“저 맨홀이랑 마녀 광고. 어느 대행사에서 집행했는지 알아봐.”
* * *
같은 시각. 뉴욕의 시민들 역시 토토의 회장과 같이 초대장을 받아보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할로윈 파티로 초대합니다. 헤드 초콜릿으로부터.]
헤드 초콜릿의 초대장이 여러 경로로 전해진 것이다.
항아리 조형물 속에도 가득 초대장이 있었고, 어린이들에게는 학교로 배달되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메일 혹은 배너 광고를 클릭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헤드 초콜릿 공장의 초대장이었다.
하굣길에 항아리 속에서 초대장을 가져온 꼬마 아이가 부모를 졸라댔다.
“우리 이번 할로윈 주말에는 여기 가요, 아빠. 마녀랑 초콜릿을 만들 수 있데요!”
“광대 공포증 환자 주의? 이건 뭐지?”
“와, 재밌겠다! 대형 광대 나오는 거예요? 우와!”
아이는 소중하게 초대장을 접어 들고 소리쳤다.
“아빠, 저 여기 꼭 가고 싶어요! 몬스터 분장해서요.”
“정말? 하긴 대기업에서 하는 이벤트니까 제법 괜찮겠지? 추억이 될 것도 같은데 말이지.”
“꼭! 꼭 가보고 싶어요!”
이미 아이의 손에는 초록색 몬스터 가면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