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216화
“두 분 표정이 왜 그래요? 어머, 땀까지 흘리고 식중독이라도 걸린 거예요?”
“나 광대 공포증 생겼어.”
“광대 공포증이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남자의 몰골을 보고 최민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강태오가 몸을 후드득 떨며 몸서리쳤다.
“두 분 초콜릿 공장 다녀오신다고 나가셨잖아요. 웬 광대 타령이에요?”
“초콜릿 공장에 광대……. 헉, 그 긴 머리 쌍둥이……. 으……. 아 민트에 초콜릿 섞은 건 좀 맛있었고…….”
“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대표님이 좀 말씀해 보세요.”
최민아가 헛소리를 늘어놓는 강태오에게서 시선을 돌려 도혁을 바라보았다. 도혁이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곤 초콜릿 공장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듣고 있던 최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긴 머리 쌍둥이가 톤이 다른 목소리로 똑같이 말한다고요?”
“맞아. 그리고 공장장이 광대였지. 이건 공포 동화야. 잔혹 동화라고나 할까.”
“멋지다, 우와.”
“그게 전해 들으니까 멋지게 느껴지는 거라고. 실제로 보면 뭔가 섬뜩하다니까? 나중에 시안 들고 광고주 다시 찾아가야 할 텐데. 으.”
“다음엔 제가 들어갈게요. 거기 완전 제 취향이에요. 와!”
최민아가 목소리를 낮추며 부연했다.
“제가 호러, 스릴러 광팬이에요. 초콜릿 공장의 호러라니. 아이러니의 극치 아니에요? 저 같은 취향 은근히 많을 텐데요.”
“최 팀장 특이하네. 어릴 때부터 좋아한 거야?”
“맞아요. 소꿉장난하고 놀 때부터 마녀 역할만 했었죠. 제 방 한쪽에 호러 아이템으로 가득 찬 벽장도 있어요. 엄마는 만날 태워 버린다고 난리지만. 정신이 사납다나 뭐라나.”
“오 마이 갓. 어머님 진심 심란하시겠다!”
강태오가 절규하며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호기심 서린 눈을 반짝이는 최민아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최 팀장이 들어가는 건 안 돼. 위험하다고. 진짜 마녀가 나올 것 같고, 아무튼 분위기가 소름 돋는 집이었어. 초콜릿 연구소가 어떻게 생겼는 줄 알아?”
“왜요. 커다란 숟가락으로 항아리라도 저었어요?”
“정확해! 최 팀장, 어떻게 알았냐?”
“씨즐감 있고 좋은데요, 왜. 신비하고 수제 초콜릿의 묘한 달콤함이 전해지는 기분 아니에요?”
최민아가 입맛을 다시며 양손을 가슴에 모았다.
“와! 진짜 가보고 싶다. 1차 시안은 무조건 제가 가져갈게요. 너무 재밌겠어요!”
“흐음. 그래.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나 대신 다녀오도록 해. 우리 여장부 최 팀장. 진심 대단하다!”
강태오가 감격한 표정으로 최민아를 우러러보았다. 곁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혁은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어! 우리 대표님 또 그림 그린다. 미국에선 카피 말고 디자인하기로 하신 거예요?”
“사장 놀리면 좋냐? 둘이 말하는데 뭔가 그림이 그려져서. 올! 대 만 족. 지난번 TT 자동차보단 잘 그린 것 같은데. 어떠냐?”
“헐. 이게 뭐람? 졸라맨이에요? 몸통에 팔다리만 붙어 있는데요. 잠깐만. 이건 뭐예요?”
“초콜릿.”
“세상에.”
최민아는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 쿡쿡 웃고 있었다. 도혁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펜을 놀렸다. 마침 미팅을 나갔던 차현우가 들어오고, 도혁이 그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차 국장님 제가 시안 대충 그렸는데 회의하실까요?”
“시안이래. 아, 진짜 미치겠다.”
결국 마시던 물을 뿜은 최민아와 아직도 광대 공포증에 넋이 반쯤 나가 있는 강태오를 끌고 회의실로 데려갔다.
도혁이 거창한 시안을 펼치며 부연했다.
“오늘 다녀온 감각을 그대로 살려서 그려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도혁이 그림 하나에 설명 열 개를 붙이며 옥외광고 특유의 촌철살인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 시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는 그림에서 듣는 그림으로 발상을 전환했다고나 할까?”
도혁이 펜을 들었다. 이른바 카피라이터 출신 광고쟁이의 ‘듣는 시안’이었다.
* * *
공교롭게도 서울팀 역시 초콜릿 전쟁 중이었다.
“초코초코초코의 향연이구만. 아, 물려.”
“제가 아메리카노를 더 뽑아 오겠습니다. 탁 국장님.”
“그래. 무진아, 가는 김에 열 잔쯤 뽑아 와. 난 단 거 먹을 때 아메리카노 없으면 한 입도 못 먹겠더라.”
“넵! 기다리십시오!”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탁기준이 단내가 나는 숨을 뱉었다.
“초콜릿 광고하다가 당뇨 오겠다. 아, 이제 그만 먹어야지.”
“그만 드실 수 있겠어요? 제품을 쓰고 먹어야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타입이시잖아요.”
“맞아. 옛날 생각 나는구만. 예전에 우리 명 대표랑 광고할 때 말이지, 변비약 캠페인을 한번 했었는데 유산균 먹고 시원하게…….”
“아, 그만요. 초콜릿 먹고 있는데 말입니다.”
황도준이 몸서리를 치면서도 입속에 초콜릿을 밀어 넣고 있었다.
“이걸 우유에 담가서 먹는다는 거죠? 우리가 광고할 제품이 지금 먹고 있는 초콜릿이랑 맛이 제일 비슷하다고 했는데.”
“맞아. 빨대 속에 초콜릿이 담겨 있고 우유에 저으면 코코아가 되지.”
“내일 그 주력 상품은 가져온다고 했죠?”
“그건 한 잔만 마실 거야. 코코아를 이렇게 계속 먹으면 당뇨 오기 전에 배 터져 죽을 거라고.”
“으…….”
황도준이 책상 위에 엎어지며 외마디 신음을 뱉었다.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탁기준이 격려했다.
“내가 정보를 들었는데 말이지. 미국팀도 초콜릿 광고를 뚫어보려고 하나 봐.”
“헐, 아이템이 겹친다는 말이에요?”
“우린 커피 회사에서 만든 초콜릿 스틱이니까 같은 제품군 광고주라 보긴 좀 어렵지만, 아무튼 미국팀에 질 수 없잖아?”
“그럼요! 당연합니다.”
“우린 인원도 많고 자원도 많으니까 할 수 있다는 거 보여주자고!”
“이거 한수철 팀장님도 붙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붙여 버리지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한국팀 총력전이다!”
주먹까지 불끈거리며 눈빛을 불태우고 있었다. 도무진이 커피를 가져오며 미국팀에 대해 물었다.
“아무리 가신 분들이 유능하다지만 달랑 네 명 있는 회사에서 캠페인을 엄청 크게 하시던데요. TT 자동차 광고 보고 완전 놀랐어요. 게임도 마찬가지구요. 네 명이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던데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거예요?”
“그래서 옥외에만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그래도 정말 대단해. 부족한 부분은 광고주 홍보팀이랑 외주로 진행한다는데 생각만 해도 빡세지.”
“대박. 진짜 명 대표님은 명불허전입니다.”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번 초콜릿, 우리도 성과를 내야지.”
탁기준이 미국팀과 하필 겹친 아이템에 초조한 기색까지 보였다. 다시 초콜릿을 입속으로 밀어 넣으며 회의를 이끌기 시작했다.
“일단 메인 타깃은 아까 말한 대로 초딩으로 설정하고 아이들에게 먹힐 만한 프로모션 쪽을 대거 강화해야겠어.”
“유치원, 영유아는 서브에서도 빼셨네요?”
“너무 어리면 엄마들이 초콜릿을 안 주잖아. 건강에 나쁘다고.”
“하긴 제품에 대한 선택권도 없죠. 브랜드도 정확히 모를 때니까요.”
“그렇지. 특히 이 제품은 빨대에 초콜릿이 들어 있어서 쭉 빨아 먹으면 우유가 코코아로 변하는 컨셉이잖아? 재밌기도 하고 신기해서 입소문만 타면 초딩들이 좋아할 거야. 초딩들이 솔깃하게, 막 사고 싶게, 엄마 조르다가 혼쭐이 나게 만들어야 해.”
“엄마한테 혼나게라, 와우.”
도무진이 신이 나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프로모션은 어떤 쪽이 좋을까요?”
“우유, 우유라.”
탁기준이 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도무진, 황도준. 너네 우유 싫어하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척 보면 알지. 둘 다 반골이잖아. 몸에 좋고 엄마가 먹으라고 하는 건 싫다고 했겠지.”
“맞아요. 진짜 학창 시절 내내 그놈의 우유 급식이 그렇게 싫더라구요.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게 너무 별로였어요.”
“하긴. 그냥 흰 우유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환경을 좋아할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으니까. 어??”
세 남자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초딩, 급식, 맛있게.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데요?”
“그렇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먹기 싫은 급식을 맛있게 재밌게?”
“그렇지. 매일 초코우유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요일 마케팅으로 가면 어떨까? 신나는 금요일엔 네이티와 함께, 어때?”
“요일 마케팅! 진짜 괜찮은데요?”
신나게 펜을 놀리며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황도준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느낌이 옵니다. 대박의 기운!”
“좋아. 시장을 뒤집어 놓을 전략을 쥐어짜 봅시다. 전국의 초딩이 들썩이게 만들어보자고.”
“오케이!”
전의에 불타오르는 서울팀이었다.
* * *
같은 시각 미국팀에도 보고가 올라왔다. 한국의 DW애드 주간 브리핑을 확인한 도혁이 마우스를 놓자마자 소리쳤다.
“한국에서도 초콜릿 광고한다는데?”
“뭐? 어느 회사?”
차현우가 다가오자 도혁이 제품을 검색해 보여주었다.
“이런 아이템이 있었어? 빨대 꽂아서 마시면 초코우유가 된다고?”
“몰랐구나, 국장님. 에이 옛날 사람.”
“그럼 나 때는 말이야, 어? 초코우유가 어딨어. 응? 흰 우유도 마시기 힘들어서 동생들 주고 손가락만 빨았는데 말이지.”
차현우가 농담처럼 진담을 말하며 제품을 가리켰다. 정말 신기해하는 눈빛이었다.
“제품 자체가 재밌기는 하다. 이거 마케팅 잘하면 유행 타겠는데?”
“안 그래도 초딩들 엄마 조르다가 혼나는 컨셉으로 간다고 하네요.”
“오! 괜찮다. 요일 마케팅까지 뽑아냈네. 이거 작품 하나 나올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구만.”
“우린 이거보다 더 재밌는 광고를 해야 할 텐데 말이죠.”
도혁이 턱을 어루만지며 눈빛을 불태웠다.
“명색이 대표에 국장 둘 팀장까지 붙어서 매진하는데 한국팀은 이겨먹어야죠.”
“그렇지. 제품이 재밌다고 광고가 더 재밌으라는 법이 있나!”
“이거 괜히 경쟁심이 치솟는구만. 지기 싫은데?”
국장급끼리는 은근히 경쟁 구도가 있었다. 제멋에 죽고 사는 강태오는 조금 덜했지만 차현우와 탁기준은 서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이였지.
도혁이 흥미로운 눈길로 차현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빛을 지글지글 불태우며 서울에서 진행 중인 아이템을 검색 중이었다.
“초딩들한테 어필하기에 저쪽이 유리하긴 하지만 여기도 나름 개성이 있잖아?”
“맞아요.”
“솔직히 탁 국장한텐 지기 싫다. 하필 제품까지 똑같네.”
“부담 가지지 마시고 우린 우리 길을 갑시다. 어차피 경쟁 PT 붙는 것도 아닌데…….”
“아니야, 이건 경쟁 PT나 마찬가지야. 아마 탁 국장도 그렇게 생각하고 미친 듯이 초콜릿을 먹고 있을 거다.”
서울의 회의실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차현우가 대답했다. 지는 것을 그 누구보다 싫어하는 둘이었기에 도혁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기로 했다.
두 국장이 열심히 해주는 만큼 회사 매출이 오르는 거니까.
배부른 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도혁이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 이걸 보세요. 여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맨홀이 있어요.”
입으로 그리는 두 번째 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