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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210화 (210/252)

광고 천재 명도혁 210화

“저게, 뭐야? 잠시만. 내가 뭘 잘못 봤나.”

“어! 그러게. 이 스트릿에 산처럼 생긴 저런 모형이 있었어?”

“오우, 광고잖아? 저 광고판 참 울퉁불퉁하게 생겼지?”

“판타지 속에 들어온 줄 알았네. 엑슨 어쩌고 적혀 있는데?”

“나 저 게임 알아! 와씨, 이거 설마, 잠깐만. 맵인가?”

“맵이면 게임 속의 그 맵?”

맨해튼의 서쪽 11th 애버뉴에 위치한 블록. 주변의 지형과 특이하게 툭 튀어나온 건물의 외관을 이용해 판타지 게임 속의 일부를 구현했다.

다음 블록에 들어선 사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학생 커플이 손을 잡고 걸어다가 굴뚝처럼 생긴 외벽 광고를 바라보았다.

“광고판 엄청 특이하네. 저기 옥외에 세워진 캐릭터들 게임 속에 나오는 거 맞지? 광고인가, 아님 애니메이션?”

“나 저거 알아. 동생이 하는 거 본 적 있는데 게임이야. 귀엽지?”

“완전 귀여워! 무섭지도 않고.”

“게임인데 무섭기는.”

“자기 하는 게임 막 사람 죽이고 우락부락 몬스터만 나오잖아. 그런 건 싫다고. 근데 저 게임은 나도 해보고 싶은데?”

“어! 정말? 우리 여친 게임하는 거냐? 올~.”

“그런데 게임 이름이 뭐라고? 마이로인?”

서쪽에서 동쪽으로 쭉 이어진 일방통행의 길을 따라 주변의 지형을 이용한 엠비언트(ambient) 광고가 중간중간 펼쳐졌다.

마치 게임 속 맵을 그대로 구현한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메인 스트릿에서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한 컷의 사진이 걸렸다.

바로 커다란 옥외광고판에 설치한 게임의 메인 맵, 그 위에 달러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광고였다.

그리고 그 아래 간단한 카피가 적혀 있었다.

[현실의 내가 판타지 속 나를 키운다. 밝고 즐거운 판타지 라이프-이벤트 아이템으로 신나게 즐기는 롤플레잉 마이로인.

지금 이벤트 페이지에 접속해서 아이템을 받아가세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었다. 돈이었으니까.

“달러가 막 뿌려져 있구만. 하여간 요즘 광고들 기발하다니까.”

“저렇게 해야 사람들이 주목을 하지. 우리도 지나가다가 이렇게 쳐다보잖아. 이벤트 아이템 뿌리는 걸 돈으로 표현했구만. 하하, 재밌네.”

“어! 저 마이로인, 나 저쪽 스트릿에서부터 봤었어. 그쪽은 맵이더니 여긴 돈이구만.”

“맵이라고? 헐, 캐릭터 아이템 너무 귀엽다.”

맵으로 변해 버린 거리와 흩뿌린 이미지의 달러. 그리고 현실 속의 내가 판타지의 나를 키운다는 카피는 화제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고 곧 인구에 회자되었다.

광고의 여파는 일반 대중뿐 아니라 게임 유저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무심코 PC를 열어 게임을 하려던 대학생.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늘 하던 게임을 열려던 순간 웹 사이트에 걸린 배너를 발견했다.

“어! 아까 광고판에 박혀 있던 여자 캐릭터네. 일상 게임이라고?”

다크한 양산형 게임에 지쳐 있던 고인물 유저인 그는 최근 새로운 게임을 찾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배너를 누른 남자의 눈이 커졌다.

“오, 제법 재밌는데? 이건 뭐야. 이벤트 아이템?”

유저의 머릿속에 아침에 메인 스트릿에서 봤던 광고가 스쳐 갔다.

“아, 이거 아! 그래서 게임 맵 위에 달러가 뿌려진 광고가 나온 거구나. 오! 재밌는데?”

게임을 클릭한 후 이어진 광고를 보며 마우스를 사정없이 움직였다.

[게임 속 캐릭터가 등장한 뉴욕 스트릿과 애버뉴의 주소를 정확히 적으면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올! 이거 뭐야. 와, 광고랑 아이템 이벤트를 접목한 건가? 대박적이네 이거.”

폭풍 광고를 검색하기 시작한 유저의 눈이 빛났다.

“앗싸! 찾았다! 아이템 획득!”

헤비 유저의 폭풍 클릭이 시작되었다.

* * *

“하하하하하하하.”

“저기,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으하하. 아, 잠깐 좀 웃겠습니다. 하하.”

엑슨 미국지사의 토마스 최 대표는 웃음보가 터진 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도혁 역시 승천하는 광대를 겨우 누르느라 경련이 일 지경이었다.

“명 대표님도 체면 생각하지 말고 같이 웃으시죠. 하하.”

“그럴까요? 광고주 미팅에선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배웠지만 오늘은 조금, 기쁘네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오늘이 북미지사 맡은 후로 가장 기쁜 날입니다. 저효율 고비용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군요. 이제야 실감했습니다.”

토마스 최가 제 앞에 놓인 신문 기사를 들어 보였다.

“지역의 유력 일간지에서 모두 난리가 났습니다. 가상의 게임이 현실에 펼쳐졌다나요. 우리가 총 집행한 곳이 몇 군데 안 되지 않습니까?”

“맵으로 완전히 구현한 곳은 총 세 곳입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일방통행로를 따라서 맵핑 광고를 설치하고 캐릭터를 하나씩 심었죠.”

“그리고 메인 스트릿에 딱! 달러를 그냥 뿌려 버렸지 않습니까! 하하.”

다시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광고 시안을 보던 토마스 최의 눈이 커졌다.

“잠시만요. 이건 설마 돈에 ㈜엑슨 은행 발행이라고 적은 겁니까?”

“네. 신문과 잡지에도 실을 광고이니만큼 디테일에 신경을 썼습니다. 인쇄하면 글자가 잘 보이니까요. 놀라운 건 그걸 또 눈치챈 사람들이 있더군요. 게임 커뮤니티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게임 커뮤니티마다 난리가 났어요. 저도 어느 정도의 화제성은 기대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원래 게임 유저들 화력이 센 편이니까요.”

“아이템 이벤트와 옥외광고판을 연결한 프로모션도 아주 반응이 좋습니다. 아이템을 지급하니까 눈에 불을 켜고 광고를 찾아보고 있어요.”

“광고 속에 숨겨진 스토리가 있는데 맵을 따라가다 보면 발견하게 될 거예요. 게임의 세계관을 작게 축소해 놨잖아요. 게임 유저들이 은근히 예리하거든요.”

“맞습니다. 아, 이렇게 주목받는 날이 올 줄이야.”

“판타지 속의 일상이라는 게임의 컨셉이 좋았던 거죠. 시스템도 매력적이구요.”

“아니, 아니지.”

허공에 손을 휘휘 내저으며 토마스 최가 부정했다.

“우리 게임이야 그대로인걸요. 우리 1차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패했습니다. 하긴 이런 광고를 이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아무튼 이건 순전히 DW애드의 공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이번 기회에 저도 게임을 해봤는데 재밌더라구요. 특히 저 같은 라이트 유저가 이용하기에 부담 없는 일상물이라 굉장히 좋았습니다.”

“네. 게임의 대중화를 목표로 야심 차게 만든 작품이긴 합니다.”

“꼭 성공하실 겁니다.”

“명 대표님이야말로 목표를 이루실 것 같습니다만?”

토마스 최가 머그잔을 그러잡으며 끄덕였다.

“강태오 국장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뉴욕에서 공모전으로 승부를 보실 작정이라고요.”

“아, 강 국장님이 별말을 다 했군요. 저희도 엑슨처럼 목표는 장대합니다.”

“분명히 DW애드는 달성하실 겁니다. 첫 작부터 대박을 터뜨리셨잖습니까?”

“공모전 당선되면 그 광고가 다시 세계적으로 알려지니까 엑슨을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더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술 한잔 같이하셔야죠. 이런 날엔 축배를 들어야지. 위스키 좋아하십니까?”

토마스 최가 깐깐하게 엄선했다며 버번위스키의 끝판왕을 내어왔다.

* * *

인근 바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광고주와의 사후 미팅을 마쳤다.

술에 취해 뉴욕의 밤거리를 걸어가는 기분이 상쾌했다. 아저씨처럼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직원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이 꺼진 것이 아직 아무도 퇴근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프로젝트 끝났으면 좀 쉬지. 하여간 못 말리겠다.’

사장 같지 않은 소리를 삼키며 문을 열었는데.

-펑!

“대표님,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대표님! 미국 첫 작부터 대박 난 거 같아요!”

도혁이 도착하자마자 불이 켜졌다.

첫 캠페인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한 축하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폭죽과 샴페인이 동시에 터지며 그를 반갑게 맞았다. 차현우가 케이크를 가져왔고 강태오는 고깔모자까지 쓰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런. 너무 설레발 아닌가? 아직 뭐, 아무것도 이룬 건 없잖아.”

“에이,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척하면 척이지. 대박 맞잖아.”

강태오가 보도 자료 묶음을 가져와 흔들어 보였다.

“오늘은 잡지사랑 방송사까지 전화 와서 인터뷰 요청 들어왔어. 할 거지?”

“당연히 해야죠. 우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이대로라면 승승장구 탄탄대로 당첨이라고!”

“아직 멀었습니다. 더 분발해야죠. 아무튼 이렇게 자축할 수 있어서 좋긴 하네요. 망한 거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망하다니. 또 기만한다.”

차현우가 노트북을 가져와 커뮤니티 상황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숨겨놓은 게임 속 세계관 다 찾아냈어. 게다가 그 부분 캐쉬 아이템 반응이 아주 좋아. 현실의 내가 판타지 속 나를 키운다는 컨셉처럼 현실 속 광고의 주소를 치면 아이템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 유저들 마음에 든 모양이야.”

“말씀하신 대로 이번 광고 컨셉이 좋았습니다. 제품과 딱 맞아떨어졌다고 할까요. 아무튼 모두 고생 많았어요.”

도혁이 자리에 털썩 앉으며 넥타이를 풀었다. 미소를 머금은 차현우가 샴페인 잔을 내밀었다.

“소비자 반응이 생각보다 빨리 와서 놀랐어. 한국에서보다 뭐랄까 더 과하게 표현한다고 해야 하나?”

“저도 느꼈어요. 그리고 게임 유저뿐 아니라 일반인들 반응을 이끌어낸 부분도 일상물인 게임의 컨셉과 잘 맞았구요.”

“여기 뉴욕이 말이지. 옥외광고 거는 재미가 있어. 빨리 만들어 걸 수 있고 지형지물도 다양하고. 그렇지 않아?”

“맞아요. 한국이라면 생각하기 힘들었죠. 뾰족한 산 같은 건물도 없고 삐뚤빼뚤한 광고판도 없구요. 게임 맵 구현의 느낌이 전혀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 이런 것들 해나갈 생각을 하니까 손끝이 간질거려.”

“우리 크리에이터분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도혁이 잔을 내밀며 소리쳤다.

“다음 광고를 위하여!”

“위하여!”

얼떨결에 외친 직원들이 동시에 도혁을 바라보았다. 의아한 표정의 최민아가 모두를 대신해 물었다.

“다음 광고라니. 혹시 벌써부터 계획이 있으신 거예요?”

“계획이라니. 한국에서부터 수주를 해왔지. 당연한 거 아닌가?”

“어! 와, 궁금하다. 한국의 우리 광고주 중에 뉴욕에 광고를 할 만한 회사라. 제법 많기는 한데요. 흠.”

“힌트를 줄까?”

힌트라는 말에 최민아가 센스 있게 1달러를 내밀었다.

“궁금하면 오백 원 하려고 그러죠? 아재 개그가 미국 왔다고 고쳐질 리가 없어서 잔돈 준비해 뒀죠.”

“하여간 눈치는 빨라 가지고. 자, 돈 받았으니 힌트를 줄게. 여긴 한국 기업이 아니야. 해외에 본사를 가진…….”

“어! 정답!”

차현우와 강태오가 동시에 소리쳤다.

“TT자동차 맞아?”

“빙고.”

도혁이 품 안에서 작은 자동차 모형을 꺼내 강태오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싸우지 말고 진행합시다. TT자동차 잘 가지고 놀아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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