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09화 (209/252)

광고 천재 명도혁 209화

“여기서부터 저쪽 스트릿까지 구역을 묶는단 말이지?”

도혁과 차현우가 출장을 나왔다. 직접 옥외광고를 설치할 지역을 점검하고 보다 세밀하게 매체를 설치할 구역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얼른 거리부터 눈에 익혀야겠어요. 한국에서는 뱅뱅사거리 거기, 청담사거리 있잖아, 그러면 금방 알아듣는데 말이죠.”

“그러게. 당연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던 그림이 안 나오니까 답답하다.”

“맞아요. 그렇기도 하지만 옥외는 직접 나와서 봐야 해요. 매체사에서 준 자료와 느낌이 확인하게 다르더라고요.”

“포샵으로 처리한 비포에프터 모델 사진 같은 느낌이지.”

도혁이 버스 정류소의 광고판을 찍은 뷰파인더를 점검하며 대꾸했다.

순간 2층 버스 하나가 지나가자 두 남자의 시선이 곧바로 버스를 덮은 광고에 꽂혔다.

“저거 설마 오레오냐?”

“그러네요. 와! 기발하네요.”

오레오가 크게 그려진 2층 버스였다. 1층과 2층의 중간에 크림 부분을 표현해 버스 전체가 오레오로 보이게 만들었다.

“여긴 교통이나 옥외광고가 마이너한 느낌이 별로 없어. 역시 뉴욕인가.”

“그렇죠. 확실히 옥외가 세련된 느낌이에요. 방금 버스도 그렇고요.”

“저게 바로 엠비언트(Ambient, 주변의 지형, 지물을 이용한 광고)지. 1층과 2층 사이에 크림을 박아버리다니. 크으.”

“한국에서보다 확실히 엠비언트 쪽은 활발하네요. 좋습니다. 우리 DW애드처럼 작은 회사에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뉴욕의 다양한 거리와 독특한 건물에 감사할 뿐이에요.”

“엠비언트가 저비용 고효율이니까. 눈에도 확 띄고 크리에이티브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지. 역시 명 대표 전략대로 공모전 쪽은 옥외 쪽이 승산 있겠어.”

“맞아요. 교통수단을 제외하고 총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스트릿을 장악해 가야 합니다. 우리의 광고를 짧은 시간 동안 최저의 비용으로 최대한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결국 반짝 눈에 띄는 아이디어의 싸움이란 말이네.”

차현우가 특유의 진지한 눈빛을 번뜩이며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저쪽 옥외광고도 아까부터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

“맞아요. 굴뚝을 이용해서 총처럼 만들었네요. 뉴욕은 건물 모양이 다양해서 거리 자체가 광고판이에요. 우리나라의 획일적인 건물과는 다르게 특이점이 확 오는 건물이 많아요.”

“그 지물에 화룡점정으로 광고를 찍어 넣고 말이지. 그게 옥외광고의 마력이야. 특히 옥외에서 먹히면 지면 광고로 가져올 수도 있잖아?”

“맞아요. 비용 대비 효율은 최고입니다. 특히 이번 엑슨처럼 타깃의 연령이 낮은 경우 특히 그렇죠.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뉴욕이 엠비언트 천국인 만큼 아이디어도 넘쳐 나.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머리깨나 돌려야겠다.”

“빠르게 실패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실패? 우리랑 안 어울리는 말인데?”

실패라는 말에 차현우가 미간을 좁혔다. 도혁이 머리를 훅 털어내곤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Fail Fast(빠르게 실패함) 전략이 있잖습니까.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빨리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는 편이 오히려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전략이죠.”

“흠, 재빠르게 실패해서 경험을 쌓고 다시 도전하라는 건가?”

“맞아요. 빨리 실패해야 재도전할 기회가 얼른 생깁니다. 그럼 또 부딪히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중요한 건 그사이에 망설이면 안 돼요. 빨리빨리 치고 나가야죠.”

“하지만 인간이라면 주춤하지 않을까? 누구라도 망하면 속상하잖아.”

“멸망해야 재건하죠. 실패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망하려면 빨리 망해 버려야 돼요.”

“어우, 어지간한 멘탈로 버티겠나.”

차현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연했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쓰기 힘든 전략인데? 듣기만 해도 벌써 마음이 버겁다.”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사무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쉬울 수도 있어요. 발상을 전환하는 겁니다. 난 전략적으로 망하고 있다, 이것도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다, 생각하면 버티기 편하지 않겠어요?”

“그저 전략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흠…….”

“지금 진행하는 엑슨 북미 지사가 그런 케이스예요. 미국 시장에 굉장히 이른 도전을 했고 빨리 망해 버렸죠. 그리고 다시 도전했구요. 그런 실패와 도전이 모여서 오늘날의 엑슨을 만든 겁니다.”

도혁의 말에 차현우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우리 명 대표님은 미국에서 실패해도 감수하시겠다?”

“빨리 망해 버리는 전략도 있다는 뜻이지, 우리가 실패할 거란 의미는 아닌데요? 그렇게 겸손한 놈으로 보셨다니 실망입니다.”

픽 웃음기를 머금고 도혁이 카메라를 다잡았다.

“다음 스트릿으로 이동하시죠.”

* * *

한편 사무실에서는 한창 아이디어 회의로 분주했다.

“아이템! 게임게임! 아이템!!”

“게임게임 엑슨. 옥외. 게임게임!”

강태오가 쉼 없이 회의실 안을 돌아다니며 중얼거렸다. 화장실로 이동하면서도 포스트잇에 뭔가를 메모하며 완전히 몰입한 상태였다.

최민아는 그의 눈치를 흘깃 보다가 노트북을 두드려 대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손길이 키보드 위에서 사정없이 움직였다.

“캐쉬 아이템, 게임~ 아이템!”

“아, 강 국장님! 그렇게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셔야 할까요? 시끄럽다구요.”

“아, 들렸냐?”

“세상에. 그럼 안 들리겠어요?”

“한국에서는 국장실을 혼자 썼잖아. 중얼거리던 게 습관이 돼서. 쏘리.”

최민아가 정신 사납다고 구박을 늘어놓자 강태오가 뚝 말을 그쳤다. 잠깐 시무룩해하는 척하더니 조용히 무언가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둘은 아이디어 쥐어짜기에 집중했다.

조용하던 최민아가 다시 강태오를 돌아보더니 다그쳤다.

“시끄럽다가 조용하니까 또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요. 다시 좀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중얼중얼 국장님 목소리 배경음처럼 깔고 생각 좀 해보게요.”

“민아야. 흠, 내가 말 돌려서 못 하는 거 알지?”

“무슨 말을 하시려구요?”

“너 아이디어 안 나오는 거 내 탓 아니다.”

“아, 정말. 이렇게 팩트로 후려치실 거예요?”

“하는 김에 하나 더 말해줄까? 까칠하게 지랄한다고 해서 아이디어 나오는 거 아니다.”

강태오의 공격에 최민아가 진심을 토로했다.

“아, 죄송해요. 내가 왜 이러지. 머리가 정말 안 돌아간다고요. 국장님. 나 좀 어떻게 해봐요.”

“내 머리에도 돌만 굴러다니고 있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하겠냐. 하아.”

“한국이랑 또 다른 기분이에요. 광고들이 정말, 솔직히 이런 말 하기 자존심 상하지만 여기 광고들, 차원이 다르지 않아요?”

“뉴욕 광고 좋다고? 당연하지. 여기 맨해튼이야. 맨해튼. 세계 광고의 중심이자 자본주의 마케팅의 심장이라고.”

“보고 있으면 기가 팍 죽어요. 왜 대표님이 큰 세계로 나가봐야 한다고 했는지 알 거 같네요.”

“축하합니다. 우리 민아 디자이너께서 드디어 우물 안에서 나오셨습니다!”

강태오가 테이블 위에서 볼펜을 휘리릭 던지며 대꾸했다.

“국내에선 그래도 우리가 좀 한다, 이 정도면 통하지 않나, 감이라도 오는데 여긴 정말 모르겠어요. 톤도 다르고 심지어 그런데 다 좋아. 어쩜 이렇게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는지.”

“우리 DW애드 수석 디자이너께서 벽을 느끼셨구만.”

“맞아요. 벽. 이걸 뚫을 수 있을까 싶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더 우리 전략이 먹힐 수도 있어. 광고의 기본이 뭐야?”

“네? 어머, 나 이제 와서 면접 보는 거예요? 너무 뜬금없는 질문 아니에요?”

“그런가? 아무튼 이제 짬이 좀 찼으니까 본인이 생각하는 광고의 근본이 있을 거 아니야.”

“흠. 제가 AE라면 잘 파는 거라고 말했겠지만 디자이너로서는 작고 반짝거리는 거요.”

“오호. 작고 반짝인다?”

강태오가 흥미롭다는 듯 최민아를 주시했다.

“저는 강 국장님처럼 선이 굵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강 국장님은 한눈에 팍 심장을 비트는 재주가 있으시지만 전 스탠다드한 스타일을 추구하죠.”

“뭘 또 심장까지.”

“정말 그래요. 내가 얼마나 질투했는지 강 국장님은 모를걸요?”

“어이구, 그만 올려치시고요.”

“아무튼 저는 나름대로의 제 스타일이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낯익은 클리셰 속에서 작고 반짝이는 아이디어 한 스푼을 얹는 것. 그게 제 디자인의 특징인데…….”

“지금 그 숟가락 하나가 안 나오고 있구만.”

“맞아요. 아, 정말 저는 그 한 끗이 없으면 너무 평범한 디자인이 되어버린다구요.”

최민아가 한탄하며 책상 위에 엎어졌다. 강태오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난 아이디어 없으면 아예 시안 자체가 안 나와. 제로라고 제로. 으……. 말하고 보니까 내가 너를 위로할 처지가 아닌데.”

“그런가요. 아, 정말. 명 대표님 들어오시면 추궁할 텐데요?”

“뭐, 좀 나왔어요? 어? 이러면서 커피 돌리겠지.”

강태오가 도혁의 흉내를 내며 커피 잔을 돌리는 시늉을 했다. 순간 도혁과 차현우가 들어왔다.

“뭐, 좀 나왔어요?”

도혁이 말하자마자 풉, 두 사람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혁이 커피를 돌리자 최민아가 설명해 주었다.

“아, 정말 강 국장님이 방금 대표님 흉내를 똑같이 냈어요. 대표님 성대모사는 도준이가 전공인데, 아, 그립네요.”

“이런, 내 말투가 특이하고 그렇진 않은데 말이지?”

“아이데이션 할 때 뭐 나왔냐고 꼭 물어보시긴 하시죠. 반드시 물어보세요. 나왔냐고.”

“그래서 뭐 좀 나왔어? 이건 진짜 안 물어볼 수가 없어. 뭐라도 나와야 쥐어짤 거 아니냐.”

도혁이 머쓱한 표정으로 테이크아웃 잔을 들어 올리자 차현우가 말을 보탰다.

“가뜩이나 여긴 아이디어로 승부 보는 곳이잖아. 오늘 매체 올릴 곳 꼼꼼하게 점검하고 왔는데, 정말 엄청나더라. 이 엠비언트의 향연 속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명 대표랑 한참 얘기하다 왔어.”

“안 그래도 벽 느끼고 있다고 강 국장님이랑 한탄하던 중이었어요. 국장님은 화장실에서도 메모하고 계시더라니까요?”

“그건 기본이고. 아무튼 그래서 뭐 좀 나왔어?”

역시 물어볼 수밖에는 없었다. 정말 뭔가 나와야 하는 시점이었으니까.

“나오긴 나왔지.”

강태오가 끄덕이자 최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것도 없다면서요. 나 위로할 처지 아니라고 너스레를 떠시더니, 웬일이래? 혼자 아이디어 다 짜놓은 거예요? 와, 배신자.”

“오! 기대되는데요?”

모두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강태오를 바라보았다.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X이 나왔지. 또 나오려고 하네?”

“난 또 뭐라고. 아, 더러워.”

“드러운 자식. 으, 포스트잇 가져가라!”

“오케이!”

뛰어가던 강태오가 휙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는 두 사람은 뭐 좀 나왔냐?”

차현우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도혁이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히 나왔죠. 뉴욕 스트릿을 쓸어버릴 아이디어.”

“어? 뭔데?”

“곧 이곳은 게임 맵으로 변할 겁니다.”

“맵? 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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