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07화 (207/252)

광고 천재 명도혁 207화

“우리가 집중할 광고는 바로 옥외입니다.”

옥외라는 말에 차현우의 눈이 커졌다.

“옥외에만 집중한다고?”

“네. 옥외 그리고 외부 조형물을 이용한 프로모션에 집중합니다. 네 명이서 최강의 결과물을 뽑을 방안을 생각해 봤는데 역시 옥외 쪽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아, 그래서 이진우 PD는 남긴 거구만?”

“물론 좀 더 회사가 크면 당연히 데려올 겁니다. 진우 콘티 그릴 때마다 마블이 생각나거든요.”

강태오가 무릎을 툭툭 치며 감탄했다.

“역시 대표님은 계획이 있으시구만! 설마 우리도 전부 설계한 거냐?”

“당연하죠. 한눈에 꽂히는 디자인은 최 팀장 따라갈 사람이 없으니까 민아는 무조건 데려온 거고, 감각 있고 영어 되는 사람 강국장 님뿐이고.”

“차현우 국장은 옥외광고 전문이니까?”

도혁의 말을 받으며 강태오가 새삼 한숨을 지었다.

“나는 평생 사장은 못 하것다. 그런 계산을 다 하고 살다니. 평생 사진이나 찍으면서 명 대표 밑에 있을 팔자인가 보다.”

“그래 주시면 영광이죠. 제발 지금처럼 지내주세요.”

“그래도 사람이 철이 들어야지. 세금도 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둘 다 안 하시잖아요. 우리가 해드릴 테니까 철들지 마시고 일이나 해주시죠.”

세금과 청소 따위로 자유영혼 강태오를 붙잡아둘 수만 있다면 세상 둘도 없이 남는 장사였다.

“오케이. 명 대표 머릿속에 스케줄이 쫙 짜여져 있을 거 같은데 첫 번째 공략처는 어디야? 우리 광고주 해외 지사 중에 어디 먼저 들어갈 예정인가.”

“당연히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고 든든한 후원자를 찾아가야겠죠. 전략적으로.”

도혁이 화면을 전환하자마자 크게 브랜드 로고가 떠올랐다. 일행은 세차게 고개를 주억였다.

* * *

출국하기 전 주식회사 엑슨의 대표실.

도혁이 들어오자마자 이우영 대표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이야, 얼굴 좋아지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편안하시지요?”

“저야 편한데 아들놈이 좀 아쉬워하더군요. 이번에 미국 같이 못 간다고 들었습니다.”

이진우 얘기를 들은 도혁이 유감을 표했다.

“저도 누구보다 진우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아드님이 워낙 유능해서요. 저도 없는데 진우가 본사 지켜주지 않으면 우리 회사 CF 못 나갑니다.”

“하하, 빈말이라도 듣기는 좋네요.”

“빈말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제작국의 기둥이에요.”

“네. 진우도 그렇게 말하긴 했습니다. 명도혁 대표님도 안 계신데 회사를 단단히 지키겠다구요.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한 거죠.”

제작에 욕심이 많은 친구니 해외로 진출할 기회를 놓친 것이 마음에 남았나 보다. 도혁은 미안한 마음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를 보던 이우영이 걱정 말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국에서 제작국 책임지는 일도 아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큰 경험인지 모르겠지만 곧 알게 되겠지요.”

“네. 진우는 잘할 겁니다. 그러니 믿고 맡긴 거구요. 참, 보내 드린 제안서는 읽어보셨습니까?”

“그럼요. K게임이 한창 잘나갈 때 밀어보자는 의견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안 그래도 대행사 문제로 해외 진출에 어려움이 있던 차였는데 아주 인상 깊게 보았어요.”

“제가 엑슨과 DW애드의 북미 시장을 열심히 개척해 보겠습니다. 초심의 마음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초심이라…….”

“네. 그렇습니다. 대표님도 처음 개발한 게임을 사주었던 유저에 대한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고객에 대한 감사한 마음 말이죠. 저에겐 엑슨이 첫 고객이자 투자자였습니다.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요.”

“첫 마음. 그래요, 생각해 보니 저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지요.”

이우영의 눈매가 깊어졌다.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이네요. 상기해 줘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우리같이 사업하는 사람에겐 고객이 제일 소중하니까요. 하나하나 소중한 인연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요. 내 꼭 초심이라는 말을 기억하지요. 명 대표의 초심도 응원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우영과 인사를 나누고 제안서까지 안긴 후 출국했었다.

“와, 그럼 광고주분들께 인사 한 바퀴 도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제안서 돌리려고 그런 거예요?”

“당연하지. 떠나기 전에 얼굴 비치는 게 도리기도 하고. 오랫동안 우리 믿고 맡겨주신 분들이니까. 은근 우리 회사 광고주분들 의리가 있어.”

“의리도 있지만 매출 때문 아닌가?”

차현우가 툭 말을 던졌다.

“광고주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마케터로서 이용가치 없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버리지. 매출 분석하면서 우상향 아닌 게 없었다고.”

“네. 우리가 잘하는 걸로 합시다!”

“실제로 그렇지.”

“그 상향세를 이어가는 게 관건인데. 일단 여기를 보시죠.”

참고 자료에는 미국의 게임시장 분석과 K게임 산업의 위상에 대한 분석이 나와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굴지의 게임과 함께 케이블TV에서 게임방송들이 생겨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더불어 게임 산업 자체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시기이다.

도혁이 자료를 정리하며 아이데이션의 운을 떼었다.

“한국의 게임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성장세를 이어갈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파생 콘텐츠도 흥하더라고. 프로게이머 매니지라거나 굿즈 사업도 그렇고.”

“최근에 보니까 별걸 다 팔더군요. 유명 프로게이머가 사인한 PC 소모품이 이틀 만에 매진됐다는 기사도 봤어요.”

“게임 보는 방송도 많잖아. 예전엔 상상이나 했어? 남이 게임 하는 거 구경하는 세상이 올 줄이야.”

바야흐로 엔터산업의 판도가 변화하던 시기였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게임이 글로벌한 사랑을 받으며 급부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쭉 흥할, 미래가 아주 밝은 산업군이었다. 메모를 열심히 하던 최민아가 끼어들었다.

“원래 남이 하는 싸움 구경이 꿀잼이잖아요. 예전부터 바둑 할 때 훈수 두는 놈들이 더 많았어요.”

“그런가? 아무튼 예전엔 당구 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PC방에서 게임하고 있잖아. 미국도 마찬가지로 게임 산업이 불붙듯이 성장 중이지. 다만 우리나라와는 느낌이 달라.”

도혁이 한국의 게임광고와 미국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을 비교해 보여주었다.

“어! 그러네요. 이렇게 보니까 확연하게 비교가 돼요.”

“그나마 우리 회사에서 진행한 광고가 조금 더 어메리칸 스타일이구만. 병맛 느낌도 있고.”

“그렇긴 하지만 병맛도 결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그리고 우린 공모전 수상을 고려하고 있기에 일단 화제성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옥외 매체를 선택한 것도 있지?”

차현우가 도혁의 속을 시원하게 읽어주었다.

“맞아요. 옥외와 교통수단을 이용한 광고가 화제성을 일으키기 아주 좋습니다. 매체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도 있고 또 빠르게 집행할 수 있죠.”

“하긴. 길바닥, 계단까지 전부 옥외광고의 지면이나 마찬가지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기성 대행사의 공모전은 일단 인구에 회자되어야 해요. 소문이 좀 나고, 눈에 띄고, 무엇보다 초등학생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창의성이 있어야 하죠.”

“어렵다, 어려워.”

강태오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꾸했다.

“역시 난 사장은 못 해. 저런 복잡한 계산을 계속하고 있다니.”

“매체와 전략은 제가 짤 테니까 걱정 마시고 광고나 만들어주시죠. 하얀 종이는 언제든지 제공할 테니 강 국장님은 속을 채워주시면 됩니다.”

“아주 좋아. 일단 현지 광고 분석부터 쭉 해봅시다. 내 스타일 알지?”

“출장 가시게요?”

“어. 발로 뛰어보자. 같이 나갈 사람?”

“흠…….”

일행이 엉덩이를 좀처럼 떼지 않고 삐대자 강태오가 소리쳤다.

“카페 3군데 콜? 맨해튼 옥외 쭉 분석하고, 커피 세 번 쏜다.”

“엇! 출발하시죠?”

* * *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간다고 했던가.

도혁은 뉴욕에 오기 전 들었던 당부를 절감했다. 강태오가 정말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노트북을 잃어버리셨다고요?”

“어. 환장하겠네. 아이데이션하기 전에 잠깐 두고 커피만 가지고 왔는데 돌아버리겠다.”

옥외광고 자료 수집 후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일행이 도착하기 전 노트북으로 자료를 정리하다 잃어버린 것이다.

“자료는요! 강 국장님 자료 괜찮아요?”

“다행히 이 노트북엔 자료가 많이 없어. 웹하드에 백업도 되어 있고.”

“와! 천만다행이네요. 강 국장님이 웬일이에요!”

“내가 만사 귀찮아해도 백업만큼은 확실하지. 항상 말하잖아.”

“그쵸. 크리에이터의 근본은 백업이다!”

최민아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구호를 외쳤고 차현우는 벌써 신고 중이었다.

“그만둬. 신고해도 소용없을 거야. 외국은 한국이랑 달라서 카페에서 노트북 두고 다니면 1초 만에 도난당해.”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해!”

“한국에서 하던 게 습관이 되어서. 참,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강태오가 뒷목을 붙잡으며 자리에 앉았다. 솔직히 노트북을 되찾을 길은 요원해 보였다.

“할 수 없죠. 자료를 날리지 않았다니 그걸로 위안 삼고, 다들 조심해야겠습니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이 안전하긴 해. 유럽도 소매치기 많은데. 아, 이런 실수를 하다니.”

“잊어버리세요. 미국에서 잘되려고 액땜하나 봅니다. 몇몇 나라에서는 일부러 나쁜 일이 있으면 돈을 버린대요. 일이 술술 풀리라고요.”

“헐. 정말요?”

“그렇다고 들었어. 그래서 해외 여행 가서 함부로 돈 주우면 안 된대. 액운이 묻어 있을 수 있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거나…….”

“아, 무서워! 대표님, 그만해요!”

범죄물에서 공포물로 장르를 바꿔가며 파란만장하게 회의가 시작되었다.

“자, 액땜도 하고 커피도 사 왔으니 일합시다.”

“그럽시다. 각자 가장 괜찮았던 옥외, 혹은 게임 광고들 찍어온 자료 모은 거 꺼내봅시다.”

“분위기가 한국보다 훨씬 자유롭죠? 저는 퀄이 너무 좋아서 중간중간 소리까지 질렀어요. 이거 좀 보시겠어요?”

최민아가 타임스퀘어 등 중심가에서 찍어온 광고들을 보여주었다. 세련된 디자인과 색감을 자랑하는 글로벌 브랜드의 광고들이었다.

차현우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난 매체 활용성 면에서 접근했어. 여기 봐. 간판을 두 개 이어붙여서 굴뚝처럼 보이게 만들었어. 기발하지?”

“오! 그러네요.”

“여기는 계단의 사이에 색을 칠해서 착시현상을 일으켰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옥외광고판으로 만들어 버렸더라고.”

“맞아요. 뉴욕은 엠비언트(Ambient, 주변의 지형, 지물을 이용한 광고)의 천국이죠. 우리나라는 아직 이쪽으론 발전이 덜해요. 네모반듯한 광고판을 사거리 제일 큰 건물 위에 세워두는 식입니다.”

“난 가슴이 막 뛰는데? 이런 기발한 방식의 옥외광고를 강남 한가운데 꽂으면 볼만할 거다. 바로 기사가 나올걸?”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바로 기사 나올 법한 화제성 있는 광고를 만들어야 합니다. 강남이 아닌 바로 이곳, 뉴욕 한복판에서요.”

도혁이 어려운 숙제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며 머그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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