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204화 (204/252)

광고 천재 명도혁 204화

“이야, 여기가 바로 ‘시트콤 친구들’의 도시 뉴욕인가!”

“그러니까. 무려 맨해튼이라고요! 어머 저쪽에 카페 보여요? 여주인공이 알바하던 곳이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어디어디! 오! 그러네.”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 뉴욕.

미국팀 멤버들은 맨해튼에 도착함과 동시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도시의 마천루를 올려다보았다.

도혁이나 최민아는 주로 촌티를 감추지 못하는 직원들을 구박하는 쪽이었지만, 오늘만큼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명도혁이 영문과를 갈 수 있도록 인도한 영어 선생님이 바로 시트콤 친구들이었으니까.

도혁뿐 아니라 그 당시 전 세계의 학생들이 그 시트콤에 열광하고 그걸 통해서 영어 공부를 했었지. 그 외에도 뉴욕을,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미국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미드 속 주인공들이 걷던 거리를 걷고 있다는 생각에 시공간을 초월한 설렘이 밀려왔다.

“전 ‘뉴욕앤더시티’ 제일 좋아해요. 빨리 짐 풀고 칵테일 마시러 가요. 코스모폴리탄 칵테일 시켜서 마셔야지. 아, 설레요.”

“이제 실감이 좀 난다. 뉴욕에 도착했다는 게.”

“화려한 불빛이 우리를 감싸는구만. 현란하다 현란해. 올~~~ 저기 타임스퀘어!”

“오! 저쪽 광고판 보이십니까? 옥외광고 천국이네.”

도혁이 참고 자료에서나 보던 뉴욕의 광고판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 들자 최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표님, 우리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됐거든요! 벌써 매체조사 하시는 거예요?”

“아, 그런가.”

“헐! 국장님들도 똑같네요.”

강태오 차현우 역시 부지런히 여러 광고 컷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특히 차현우는 한국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옥외광고를 실제로 보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눈에서 불을 켜고 특이한 옥외 캠페인을 잡아내었다. 최민아가 두 국장들 틈에 껴서 장난을 쳤다.

“이런 광고쟁이들을 어쩌면 좋니. 어디 가도 티를 낸다니까요.”

“민아야. 저 브랜드 광고 톤이랑 색감 끝내주지 않냐?”

“와! 모델 없이 디자인으로만 승부했네요! 저 브랜드 헐리우드 탑모델 쓰는데 디자이너가 이긴 거예요?”

구박하던 최민아조차 광고쟁이의 광기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인 만큼 광고의 동향을 주도하고 있었다.

잡지나 인터넷에서 어렵게 모으던 자료들이 한눈에 펼쳐졌으니 디자이너 눈이 안 돌아갈 수 있나.

옥외부터 간판, 표지판, 심지어 바닥까지도 거리 전체를 광고판으로 쓰고 있는 듯 다양하고 특색 있는 광고들이 쏟아졌다.

그 광고들을 따라 한참 동안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벌써 뉘엿하게 해가 지고 노을이 내리는 시각. 일행이 선 후미진 한 골목 앞에서 갑자기 엄청난 악취가 풍겨왔다.

지독한 냄새의 원인은 거지들. 골목길의 초입에서 서너 명의 거지가 나란히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세계 제일의 도시, 화려한 뉴욕의 이면인가.

그들의 꾀죄죄한 몰골 뒤로 현란하게 맨해튼의 광고판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주홍빛 태양이 지고 있는 뉴욕의 늦은 오후. 도시의 명과 암이 한눈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이었다.

일행은 왠지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에고. 가난은 나라님도 못 막는다더니. 이런 도시에도 거지가 있네요.”

“많지. 맨해튼은 타임스퀘어만큼 거지가 유명하잖아.”

강태오가 지폐를 꺼내 돈통 속에 넣어주었다. 그걸 본 일행들이 막 지갑을 열던 때였다.

도혁의 눈에 거지가 적어놓은 호객 문구가 보였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는데 그 곁에는 손녀인지 아이 하나가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대충 쓰인 거지의 문구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1달러만 주세요.]

저렇게 단순한 문구로 호객이 될 리가 있나. 도혁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꼬마 아이가 손녀입니까?”

“맞소만. 돈 좀 주시우.”

거지는 힐긋 일행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주름진 할아버지의 눈은 말을 하면서도 손녀를 계속 따라다녔다. 위험한 거리였으니까.

도혁은 거지에게 양해를 구한 후 그의 호객판을 들었다. 그러곤 매직으로 꺼내 종이의 뒤편에 글자를 적어주었다.

[1달러. 저의 작은 천사가 먹을 첫 끼니입니다.]

문구 옆으로 거지 꼬마가 뱅뱅 돌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묘하게 어우러진 광경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사람들이 흔한 도시의 배경처럼 여겼던 할아버지와 손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꼬마야 귀엽구나.”

“추운데. 이런. 이쪽으로 오렴.”

“1달러로 어떻게 밥을 먹겠니.”

구걸하는 그릇 속에 조금씩 돈이 담기기 시작하더니 곧 수북해졌다.

놀란 할아버지가 고개를 높이 들어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도혁 역시 지갑을 열어 달러를 넣어주곤 조용히 돌아섰다. 아이가 뛰어와 도혁을 불러댔다.

“아저씨! 아저씨! 누구예요? 천사예요?”

“나? 천사는 무슨. 몬스터다.”

“네??”

“뉴욕을 잡아먹을 몬스터가 왔다! 어흥!”

도혁이 꼬마의 머리를 두드리며 장난을 치자 화들짝 놀라 도망을 가버렸다.

최민아가 도혁의 농담에 질겁을 하면서도 감탄했다.

“마지막에 유치한 장난만 안 쳤어도 대표님 완전 멋있었을 텐데 말이죠. 와, 그런데 거지 할아버지 횡재했네요. 돈통이 가득 차서 넘치고 있어요.”

“그렇지. 카피 한 줄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럼 진짜 뉴욕 광고 바닥 잡아먹어 볼까? 어흥.”

“아놔. 저쪽으로 가시라고요!”

“왜, 미국식 농담이라고.”

“세상에! 저리 가! 가란 말이야. 빅그린 몬스터!”

투닥거리며 뉴욕의 밤거리를 함께 걸었다.

몬스터의 카피로 시작한 뉴욕행의 예감이 좋았다. 일행은 힘찬 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 * *

맨해튼의 한가운데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쓰리룸로 이루어진 아파트였는데, 월세가 아주 속 쓰린 금액이었다.

“와! 숙소가 생각보다 엄청 좋은데요? 단칸방이라고 하시더니.”

“명 대표 여기 비싸지? 내가 스코틀랜드 촌놈이지만 뉴욕 물가를 조금 아는데…….”

최민아와 강태오가 집안을 둘러보며 걱정했다. 차현우 역시 우려 섞인 눈으로 미간을 좁혔다.

“단칸방이라도 상관없는데.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어떻게 그래요. 민아도 있고요. 우리 회사 이 정도는 벌었습니다.”

“재무 좋은 건 알지만, 후우. 막상 나오니까 정말 실감이 난다. 얼마나 명 대표가 힘든 결정을 했는지.”

“투자라니까요. 광고가 뭡니까. 정말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작업이잖아요.”

천천히 짐을 풀며 도혁이 대꾸했다.

“그래도 광고는 제품을 생산하는데 드는 제반 비용이 거의 없는 일 중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디어와 인간의 크리에이티브로 승부하기에 직원의 역량이 곧 그 회사의 사활을 결정합니다.”

“하긴 그래서 이직과 스카웃이 만연한 바닥이기도 하지.”

“제가 직원 복지와 동종 업계 최고 연봉을 유지하는 이유입니다.”

“왜, 우리가 배신할까 봐?”

차현우가 트렁크를 풀던 손을 멈추고 피식거렸다.

“신입이라면 몰라도 DW애드 초창기 멤버 중에 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에이. 아예 전직해서 공무원 하는 거 아니면 없을걸요? 여기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연봉을 떠나서 하고 싶은 광고, 생각했던 그림 만들 수 있으니까. 다른 곳에서 이런 멤버를 찾아서 다시 손 맞추는 거? 상상도 못 해봤네요.”

“괜히 올려 치지 말고.”

추어올리는 분위기에 민망해진 도혁이 손사래를 치자 강태오가 덧붙였다.

“올려 치기는. 우리는 동맹이 아니라 혈맹이라고 혈맹. 어! 우리가 그 술집 어디냐 거기서 이멤버 포에버 하면서 주점결의 한 거 생각 안 나? 어제처럼 생생하구만!”

“주점결의 좋네요. 그렇죠. 이멤버 포에버.”

“그날 제가 찾아가서 공모전 팀에 끼워달라고 했었는데 기억하세요?”

“그럼 그럼.”

“이야, 그때가 언제냐.”

추억에 젖은 직원들의 손길이 하나둘 멎었다.

“그때 그 마음으로 시작해 봅시다.”

“그럽시다! 그때보단 잘하겠지. 우리도 노하우라는 게 생겼으니까. 칸도 먹었었고.”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멤버 포에버.”

“그럼 짐 풀고 곧바로 시작해 볼까?”

“아니요. 그 전에 함께 가볼 데가 있어요.”

도혁이 명함을 내밀었다.

[태강애드 뉴욕지사.]

* * *

작고 소중한 간판이었다.

뉴욕의 외곽에서도 한참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한 낡은 건물.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 속에서 태강애드라는 글씨를 겨우 찾아냈다.

삐걱대는 엘리베이터가 그들을 맞았다.

“대표님 이거 타고 올라가다가 죽는 거 아니에요? 소리가 불길해요.”

“내가 이 정도 음습한 집에서 살아봐서 아는데, 곧 쥐가 나올 거다.”

“으악!”

소리까지 지르는 최민아를 겨우 말리고 도혁이 작은 문 앞에 섰다.

노크를 하자 외국인 여자 한 명이 나와 빼꼼 문을 열었다.

“김철준 대표님을 찾아왔습니다. 약속하고 왔어요. 명도혁이라고 합니다.”

“들어오세요. 대표님 외근 중인데 곧 들어오실 거예요.”

그녀가 문을 열어주곤 대충 아무 데나 앉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아무도 섣불리 자리에 앉지 못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다.

“건물 외관보다 실내가 더 충격적이네요. 태강애드 대표실 완전 으리으리했었는데.”

“그랬었지.”

“무엇보다 좀 깔끔하지 않았어요? 이 분위기는 강 국장님 방 같은데…….”

최민아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실내에 널브러진 배너와 간판들, 흔히 말하는 찌라시와 포스터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컴퓨터와 책상 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포스트잇이 사정없이 붙어 있었고.

솔직히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을 따라 먼지가 수북이 날리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 걸린 태강애드라는 글자의 골든레터링만이 한국에서의 영광을 보여주었다. 그마저도 수북이 쌓인 책자에 절반은 가려졌지만.

“와우. 나 여기 엄청 마음에 들어. 진짜로 100퍼센트 내 스타일.”

“어련하시겠어요. 국장님 방이랑 비슷하잖아요. 근데 김 대표님은 강 국장님 스타일 아닌데. 좀 냉철하고 사업가로서 카리스마가 넘치지 않았어요?”

“그랬지. 우리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명함에 찍힌 주소 보고 온 거잖아요. 게다가 뉴욕에 태강애드는 하나뿐이라고요.”

수군거리는 도혁과 최민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태오는 제 방 같다며 신이 났다.

여직원은 손님으로 찾아온 일행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종이컵에 커피 한 잔씩 가져다주더니 제자리에 앉아 폭풍 타이핑만 해댔다.

“와, 직원 시크한 거 봐. 여기 볼수록 마음에 드네. 태강애드라고 했지. 대표님 이름이…….”

“김철준입니다.”

뒤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일행이 놀라 소리치고 말았다.

“대, 대표님! 세상에.”

“김철준 대표님 맞으시죠? 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도혁과 최민아가 마주 보았다.

문 앞에는 털북숭이가 된 할아버지 한 명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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