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99화
[집밥 동네 빵. 엄마의 마음을 담은 착한 빵]
화면에 컨셉을 크게 띄운 도혁이 캥거루 베이커리의 모녀를 모델로 한 영상을 이어서 틀었다.
-A안 엄마 손 집빵 편(영상).
앞치마를 두르고 단정하게 빵 만들 준비를 하는 캥거루 제과 사장님의 모습.
엄마는 아이에게 머릿수건을 씌워주며 반죽을 하며 손을 마주 대고 있었다.
밀가루 묻은 손으로도 엄마와 함께 빵을 즐겁게 만드는 아이의 미소를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
-땡.
오븐의 벨이 울리고 완성된 식빵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이 클로즈업되고 이어서 아이가 들뜬 표정으로 빵을 뜯어 먹는다.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 아이. 둘은 마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대사 없이 진행된 깔끔한 영상이었다. 곧 하단에 카피가 펼쳐졌다.
[엄마의 마음을 담은 착한 빵.
동네 빵집에서는 수제로 직접 빚은 집밥 같은 집빵이 매일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침을 여는 따뜻한 기적. 동네 빵집 연합.]
“영상이 참 따뜻하고 세련된 느낌입니다.”
“그러니까요. 저어기 유럽 빵집 광고 같은데요. 거, 파리지엥 광고보다 낫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
사장님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도혁이 광고안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반인 모델을 썼기에 대사는 넣지 않았습니다. 자칫 자연스럽지 않고 작위적으로 보이기 쉬워서요. 광고 연기도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캥거루 사장님께서 아주 잘해주신 겁니다.”
“잘했네. 근데 캥거루 안 왔어?”
“아, 캥거루 제과 사장님께서는 참석하기 부끄럽다고 하시더라구요. 모델을 처음 서시는 거니 당연한 반응입니다.”
“저렇게 잘 찍고서는 부끄럽긴. 인물도 훤하고. 파리지엥인지 모델보다 백 배는 더 이쁘구만.”
“암! 캥거루가 한 미모 하지. 딸내미도 닮아서 예쁘잖아. 참, 대사가 없는 쪽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 같지 않아?”
한 사장님의 말에 참관하던 사람들이 주억였다.
도혁이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동네 빵, 착한 빵, 수제, 엄마의 마음 등 따뜻한 단어를 조합해 컨셉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아침 식사 대용으로 빵이 자주 이용되는 만큼 아침을 강조했구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도 식빵과 모닝빵 중 직접 만드는 제품도 있지만 절반 정도의 아이템은 본사에서 가져오거든요. 동네 빵집은 식빵을 모두 수제로 만드니까 충분히 강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마지막 장면의 식빵을 찍을 땐 우리 스텝들도 군침을 함께 흘렸습니다.”
도혁이 웃으며 뒤이은 인쇄 광고 시안을 함께 보여주었다.
“방금 보신 영상과 함께 진행할 인쇄 광고 시안입니다.”
엄마와 딸이 마주 보고 웃는 장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물조물 반죽을 하고 있는 아이가 무척 귀여웠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뭉클한 장면이었다.
“카피는 보시는 대로 앞선 영상과 같습니다.”
“뭔가 찡한 것이 가슴이 아프네. 예쁜 화면인데 주책맞게 눈물이 다 나려고 하는구만.”
“늙어서 그렇지 뭘.”
사람 마음이 다 같은지 한 장 사진을 보면서도 같은 정서를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볼수록 아련한 기분이 드는 묘한 시안이었다.
“저쪽의 우리 회사의 대표 크리에이터 강태오 국장이 흠, 찍은 시안입니다.”
“오! 사진작가 선생인가. 어디 보자.”
저렇게 우적우적 빵을 먹는 걸 봤으면 소개하지 않았을 텐데.
강태오가 입속의 빵을 채 삼키지 못하고 손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장내에 웃음이 빵 터졌다.
도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강태오를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한결같은 분이라서요. 괴짜지만 보시다시피 광고는 기가 막히게 뽑습니다.”
“그럼, 영상도 그렇고 사진이 참 좋습니다.”
이런 격의 없는 PT장이라니. 도혁은 이 좋은 분위기를 이어 B안을 보여주었다.
-B안 장인의 손 편(영상).
이번 모델은 고석구 장인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거칠고 투박한 그의 손만이 보였다.
해가 채 뜨지 않은 시각. 가게의 문을 여는 장인의 손, 문이 열리자 카메라는 새벽 3시를 가리킨 시계를 찍는다.
주방으로 가 일을 준비하는 장인의 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릿수건을 펼치고 반죽을 하며 빵을 굽는 모든 과정의 손을 카메라가 담담한 시선으로 따른다.
역시 대사 없이 진행되는 영상이었다.
[아침을 굽습니다. 집빵을 만듭니다.
장인의 손길로 여는 따뜻한 아침. 동네 빵집 연합.]
이어 펼쳐진 인쇄 광고 시안에서는 반죽을 하는 장인의 투박한 손이 화면을 크게 메웠다.
밀가루가 묻은 커다랗고 거친 손.
담담한 시선에 건조하게 담은 한 컷의 사진에 불과했지만 역시 뭉클한 무언가를 가슴에 남기는 시안이었다.
“아까 빵 먹던 양반 사진전 나가도 되겠구만.”
“모델이 좋아서 그렇지. 내 손이여!”
고석구 장인이 농담처럼 자신의 커다란 손을 들어 보였다. 장내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좋네요. 이거 반응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시안이 참 깔끔하고 단정하네. 식빵 컷도 맛있어 보이고. 우리나라 최고 광고 회사라더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 좋기는 합니다만 비싸 보이는데, 괜찮을런가.”
매우 반응이 좋았지만 가격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지금부터 그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매스미디어 광고를 할 여력도 없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시장 확장은 대기업에서 하라고 하고 동네 빵집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됩니다. 사실 광고 집행에 있어서 제작비는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우리 DW애드에는 보셨다시피 실력 좋은 디자이너들이 포진해 있고 제작에 노하우도 있습니다. 광고비의 진짜 문제는 모델과 매체 집행비입니다. 이걸 절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델은 이대로 하면 될 일이고 매체는 뭡니까? TV, 라디오 그거 말하는 거지요?”
“맞습니다.”
도혁이 준비해 둔 매체 기획안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영상물은 지하철 내부, 외부 광고, 그리고 인터넷 주요 홈페이지 등을 통해 광고할 예정입니다. 여력이 된다면 케이블 TV를 추천드립니다. 지역 케이블이 저렴한 편이라 괜찮을 듯합니다.”
“케이블도 좋지요.”
“그리고 나머지는 옥외와 신문, 여성지 등을 통해 최대한 저렴하게 집행할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대규모 매스미디어 광고 못지않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군요.”
“빵은 젊은 층이 선호하는 식품이므로 온라인 광고로도 좋은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희가 제안드릴 사항은 바로 프로모션입니다.”
도혁이 눈짓을 보내자 최민아가 제품 패키지 샘플 시안을 가져왔다.
“동네 빵집 연합 소속 가게들은 이렇게 패키지를 통일해서 사용할 것을 권고드립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빵은 이제 젊은 층의 식사 대용이자 기호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깔끔한 패키지로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준비해 봤습니다.”
“오호! 이거 비싸지 않습니까?”
“스티커 형태입니다. 아이보리 컵과 비닐 팩만 있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저렴하구요. 형편이 어려울 때에 사장님들께 부담이 가지 않도록 방안을 모색한 것입니다.”
“고급스럽고 깔끔합니다. 아주 좋아요.”
“싸다니까 더 좋지.”
도혁이 마지막으로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아까 보셨던 캥거루 제과점은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 예정입니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매스미디어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일상의 달인이라고 들어보셨죠?”
“오호! 알지요. 그러네. 프랜차이즈는 절대 못 들어가겠네요!”
“그렇습니다. 특히 프로그램 출연은 시청자 집중도가 광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이 특징인데요.
15초짜리 공중파 광고보다 훨씬 더 높은 캠페인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제법 있습니다.
세상천지 이런 일들이? 7시 내 고향과 같은 전통 강자들이 있으니 특이한 빵집이 있으면 제안은 넣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맛집이고 방송에 나갈 만큼 독특한 강점이 있어야겠습니다. 선행을 한다거나 맛의 비법이 있으면 좀 더 출연 가능성이 올라가더라구요.”
여기까지 설명을 마친 도혁이 자세를 바로 했다.
“저는 프랜차이즈를 넘어 동네 빵집이 베이커리계의 최종 강자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작은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기적을 만드는 일에 조그만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야! 박수!!”
“박수!!! 뭐 해 김 사장 박수 안 치고!!”
우레와 같은 손뼉 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울렸다.
몇몇 사장님은 기립까지 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주었다.
콘서트장도 아니고 PT를 마친 후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저기, 이렇게까지 해주시니, 이거 참.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아니지. 우리가 고맙지. 아까 저기 직원한테 다 들었어요.”
고석구가 도혁의 자리를 내어주며 부연했다.
“파리지엥에서 발표하라고 제안도 왔었다면서요. 뿌리치고 우리 동네 빵집들을 위해서 나서줬다는 말 들었어.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 별말을 다 했네요. 저는 그저 진심으로 동네 빵집이 잘될 거라는 확신에서 사업적으로 접근한 건데요.”
“에이, 그게 말이 되나. 내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지만 그 정도는 압니다. 겸손하지 않아도 돼요. 젊은 사람이 어찌 이렇게 속이 깊은지. 안 그렇습니까?”
“암! 암요. 겸손할 뿐만 아니라 능력도 탁월하구만. 파리지엥보다 광고가 더 세련됐다니까?”
뭐 그런 걸로 하자. 도혁 역시 기뻐하는 사장님들을 보자 가슴속에서 뿌듯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으니까.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윈윈하는 전략이야말로 모든 마케터의 이상향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건 미래의 시장 방향을 알고 있는 자신만이 가능한 길이 아닌가 잠깐 생각했다.
도혁은 벅찬 마음을 진정하며 단팥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발표하느라 당이 떨어졌는데 빵을 좀 먹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우리 브라우니 좀 드셔보시죠.”
“우리 제과점 연유빵은 줄 서서 사 먹는다니까요. 자, 여기!”
사장님들이 앞다투어 자신이 가져온 빵을 도혁의 손에 쥐여주었다. 고혈당으로 당뇨가 와도 좋을 것만 같았다.
도혁은 입속에 빵을 넣으며 강태오와 최민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그동안 가슴에 담아 두었던 생각을 꺼내 들었다.
‘이제 동빵연 프로젝트도 끝났으니 슬슬 계획을 실행해 옮길 때인가. 둘 다 힘들어서 어쩌나. 고생길 열릴 텐데.’
도혁의 속마음을 전혀 알 길 없는 둘이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앞날을 알지 못하는 천진한 크리에이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