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96화
아이데이션 회의를 마친 도혁은 오랜만에 방송국을 찾았다.
동네 빵집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꼭 섭외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달인.’
자신의 현업에서 묵묵하고 우직하게 일하는 달인을 소개하는 프로였는데 간혹 뭉클한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었다.
맛집 소개 콘텐츠가 붐을 이룰 때는 아니라 일상의 달인 정도에만 출연해도 승산이 있었다.
‘동네 빵집이랑 찰떡이란 말이지.’
도혁이 이것저것 프로그램 구상을 떠올리고 있는데 일상의 달인 PD가 로비의 카페로 내려왔다.
“올라오시지 않구요. 명도혁 대표님 맞으시죠? 일상의 달인 조일만 PD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어떻게 한 번에 알아보시네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명현진 PD랑 닮으셨는데요?”
“하하,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지 않고 입매를 한껏 끌어 올린 채 영업 미소를 유지했다. 아무튼 중요한 프로그램이니까.
도혁은 더 누나 얘기가 나오기 전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짐작하셨겠지만 우리 광고주 중에 출연하면 괜찮겠다, 여겨지는 곳이 있어서 섭외차 들렀습니다.”
“흠, 저는 PPL 때문에 미팅한다고 생각했는데 출연이요? 이런 메이저 광고 회사 광고주가 출연을 희망할 만한 프로는 아닌데. 혹시 자동차 현장 라인의 달인 같은 분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 아! 피디님 일단 이걸 보시죠.”
도혁이 고석구 베이커리에서 가져온 빵을 그에게 건넸다.
“아! 이 베이커리 압니다. 장인이시죠? 아! 고석구 장인이 출연을 희망하시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드셔보세요. 방금 구운 빵을 사 온 겁니다.”
피디가 조금 망설이더니 빵 냄새를 흘깃 맡았다.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에 더 참지 못하고 옥수수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 제가 고석구 베이커리 빵을 어릴 때부터 먹었어요. 이분 우리 프로그램에 잘 맞으실 것 같기는 한데, 이미 너무 유명인이라 조금 망설여지네요.”
“숨겨진 장인을 찾으시는 건가요.”
“네. 솔직히 광고 회사의 의뢰를 통해 촬영하진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프로그램이 전국 방방곡곡의 장인을 발굴해 소개한다는 취지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수십 년씩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달인들을 보면서 뭉클할 때도 많았고요.”
“감사합니다. 프로그램 보셨다니 아시겠지만 소개하는 맛집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 곳이에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가게들 말입니다.”
“네. 그렇더라구요.”
“그렇기에 광고를 위한 섭외는 되도록 받지 않습니다. 진짜 맛집과 장인을 발굴하고 소개해서 작은 가게들을 돕고 싶어서요.”
조 PD의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도혁은 오히려 안심했다. 맛집 콘텐츠가 여기저기 범람하던 미래에 맛집 프로그램은 광고 바닥이나 다름없었거든.
아직 순수한 프로그램의 취지를 유지하고 있다니 오히려 광고효과가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럼 제가 제보자의 입장에서 숨겨진 작은 빵집을 추천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뭐, 제보자라면 상관없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제보할 수 있으니까요.”
도혁이 그제야 동네 빵집 프로그램 기획안을 보여주었다.
“저희가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볼 때는 일상의 달인이 저희 캠페인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합니다. S급 TV 광고보다 훨씬 더 어울린다고 보는데 어떠십니까?”
“오! 좋은 일 하시네요. 보자, 제가 봐도 기획이 괜찮은데요? 동네 빵집 중에 맛집이 있다면 남해의 작은 섬이라도 찾아가고 있어요.”
“혹시 섭외에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흠, 중점이라. 대표님 시간 괜찮으십니까?”
“네. 조 PD님 뵈려고 오후 스케줄은 비워두었습니다.”
“그럼 곧 촬영 나갈 건데 혹시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현장을 보시면 감이 바로 오실 겁니다.”
“아! 그렇게 해주시면 좋죠.”
“마침 촬영 현장이 가까워서요. 명현진 PD랑 너무 닮으셔서 다큐팀 콜라보하는 것 같겠습니다. 하하.”
“하하…….”
절로 꿈틀거리는 눈썹을 겨우 누르고 도혁이 함께 웃었다.
곧 촬영팀이 로비로 내려오고 촬영 현장에 합류하게 되었다.
* * *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걸까요. 방송국 뒷길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감독님! 설마 산꼭대기는 아니죠?”
큰 도로에서 한참을 떨어져 있는 외진 골목길. 거기서도 한참 비탈을 올라가고 있었다.
무거운 장비를 든 스텝들이 하나둘 한숨을 내쉬며 따라오고 있었다.
도혁도 의아한 생각에 고개를 쭉 빼고 가게를 찾아보았다.
도무지 가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도심의 한가운데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달인을 찾아가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자, 다 왔습니다. 저~기 고지가 보이네요.”
순간 눈앞에 북적북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찹쌀 인절미 꽈배기의 달인이었다.
맛집은 산꼭대기에 있어도 찾아간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구불구불 비포장도로 비탈의 끝에 오래된 간판이 걸린 꽈배기집이 있었고, 그 앞에는 꽈배기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조 PD가 웃으며 도혁에게 경고했다.
“할머니가 좀 무서우십니다. 그래도 이렇게 특색 있는 달인을 우리 프로그램에서 선호하니 참고하세요.”
PD의 말대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할머니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촬영팀을 맞았다. 사실 맞아주었다기보다는 문전박대에 가까웠지만.
“이런, 또 왔구먼. 뭐 볼 게 있다고 자꾸 오는 겨.”
“에이, 할머니 또 이러신다. 오늘 촬영하면 끝이에요. 마지막까지 협조 부탁드립니다.”
“에이 뭘 자꾸 캐려고 하니까 그라제. 내 여러 번 말했지만 비법은 없소. 있어도 못 보여주지.”
“에이, 할머니 또 이러신다. TV 나오고 하면 좋잖아요.”
“얼씨구! 쭈글쭈글한 얼굴 나가는 게 무에 좋아서.”
투덜투덜 구시렁대면서도 할머니의 손은 빠르게 꽈배기를 만들고 있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촬영감독이 이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카메라에 할머니의 손길을 담고 있었다.
“거기 비닐에 담고, 돈은 돈통에 놔두면 되시네.”
“할머니 많이 파세요!”
꽈배기 만들랴, 손님들 맞으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꽈배기는 정확하게 예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도혁도 넋을 놓고 할머니의 손끝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앞에 턱 꽈배기가 나타났다.
어느 틈엔가 할머니가 꽈배기를 도혁에게 건넨 것이다. 정말 손이 빠른 할머니였다.
“옥수수 꽈배기요. 드셔보소. 이 총각은 오늘 처음 오는 거 맞제?”
“네, 할머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처음 온 걸 금방 알아보시네요.”
“내 50년 장사했는데 사람 얼굴 하나 못 알아볼까. 저기 널브러진 화상들은 많이 묵어서 더 안 줄끼다. 총각이나 묵어라.”
“그럼 잘 먹겠습니다!”
널브러진 화상이라고 칭해진 스텝들이 입맛을 다시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정확히는 자신의 입에 모인 눈들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할머니가 주신 꽈배기를 공손하게 받아 들었다.
-와삭.
꽈배기를 입속에 넣어 한입 물자마자 바삭한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씹을 때마다 와삭와삭 소리가 날 정도로 겉이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순간 머릿속에서 음식 마케팅의 철칙이 떠올랐다. 바로 바삭!
식당 안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매출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굉장히 많다. 바삭이는 소리가 식욕을 돋운다고 한다.
하여 식당이나 술집에서 과자를 서비스로 주는 것이다. 당연히 광고에서도 ‘바삭’이 포인트가 된다.
치킨, 포테이토 칩 등 조금이라도 바삭거리는 음식 광고를 찍을 때 후시녹음 따느라고 음향팀이 고생이 많다.
하지만 이건! 후시녹음이 필요 없을 정도의 바삭함이었다.
그리고 이 바삭함은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어 올라오는 옥수수의 고소한 향. 찹쌀 반죽의 감칠맛과 어우러져 깊은 재료의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정말 맛있네요. 꽈배기에서 이런 맛을 느끼게 될 줄이야.”
감탄하던 도혁의 손끝이 뚝 멎었다. 낯선 재료의 향이 입속을 짧게 감싼 것이다.
“이거…….”
“어! 총각 뭐 느껴는 게 있는 겨?”
할머니가 놀라 도혁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도혁에게 시선을 고정하면서도 손은 계속해서 꽈배기를 만들고 있었다.
도혁이 고개를 기울이며 한 번 더 꽈배기를 깨물었다.
반죽에 섞은 건 아니다. 그러기에 향이 너무 희미하지만 은은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이 재료는…….
“할머님, 혹시 녹차를 쓰셨습니까?”
“아니, 이 총각!”
“주재료는 아니고 부재료인 것 같은데요. 반죽에서는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뭐여. 어떻게 안 것이여!”
할머니의 당황한 음성에 촬영감독이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저 감독이 하도 비법 비법 노래를 불러서 오늘쯤 알려줄까 말까 그러고 있었는디, 총각이 말해 버렸구만.”
“녹차의 은근한 향취가 느끼한 기름 맛을 잡아주네요.”
“어허! 이런.”
“그런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제가 녹차를 반죽에 섞은 빵은 많이 먹어봤는데 이런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뭐 별다른 건 없어. 몇백 원짜리 꽈배기 만드는데 복잡하게 할 수가 있나. 그저 옥수수 알맹이를 녹차에 재워뒀다가 쓰고 있지. 근데 총각은 어찌 알았누. 녹차 향이 거의 안 날 텐데.”
“평소에 차를 좋아해서요.”
조 PD가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할머니 비밀로 하신다더니 결국 공개하셨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공정 좀 제대로 보여주세요.”
“말했듯이 재워놓는 거뿐이여. 쉽게 쉽게 빨리 만들어야 하잖여. 다른 비법은 없다네.”
“예, 할머니. 당연히 할머니 손맛이 최고의 비법이지요. 그래서 녹차에 재워둔 옥수수는 어디 있습니까?”
집요한 PD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할머니가 주방 한편에 놓인 커다란 그릇을 가져왔다.
“뭐 어차피 알려주려고 했수다. 따라 할 테면 해보라 하시오. 할 수 있는가.”
“맞습니다. 비법을 안다고 모두 장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죠.”
도혁이 할머니가 만든 꽈배기에 시선을 돌렸다.
낡은 트레이 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렬로 놓인 옥수수 꽈배기가 예쁘게 줄지어 놓여 있었다.
물론 바로바로 팔려 버렸지만.
‘특색이 있는 제빵 장인이라. 캐릭터 분명하고 약간 외진 곳에 있으며 비법이 숨겨져 있어야 한단 말이지. 내일부터 당장 고석구 장인 제자의 빵집 중에 그런 곳이 있는지 직접 찾아봐야겠다.’
속으로 다음 일정을 체크하고 있는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각, 꽈배기 만들어볼 생각 없수? 한번 만들어보시오.”
“오! 할머니 아들한테도 꽈배기 반죽 안 맡긴다고 하셨잖아요!”
“녹차를 맞췄으니 한번 해보라고. 보기보다 재밌다니까?”
얼떨결에 꽈배기 제조 비법을 전수받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새로운 재능을.
“어! 이봐라. 내 사람 보는 눈이 있다카이. 예쁘게 잘도 만드네.”
어깨가 으쓱해진 도혁과 할머니가 마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