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95화 (195/252)

광고 천재 명도혁 195화

동네 빵집 연합, 이른바 ‘동빵연’ 프로젝트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사 앞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말이다.

강태오가 슬쩍 고개를 빼 아르바이트생의 눈치를 보았다.

“이거 경쟁사에 염탐 온 느낌이네. 왜 빵 사 먹으면서도 찔리냐?”

“염탐하러 온 건 맞지만 타사 분석하러 온 거 아무도 모를 겁니다. 카운터에서 자리도 멀잖아요. 빵 골고루 드시면서 커피도 마시고 성공 요인을 탐색해 봅시다.”

“하긴 우리가 제품 분석한다고 사온 빵이 얼만데. 회의 시작합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소리를 낮추며 도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 생각보다 커피가 고소하네! 여기서 커피 마셔볼 생각은 못 했는데.”

“맞아요. 파리지엥이 의외로 커피 맛있어요. 저렴하고. 왜 마그도날 햄버거도 커피 괜찮잖아요.”

“그래?”

커피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유명 카페 외에는 가지 않아서 전혀 몰랐다. 도혁이 고개를 기울이며 한 번 더 커피를 입속에 넣어 굴렸다.

“가격을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은데? 좋은 소구점이 되겠어.”

“맞아요. 의외로 단 음식 먹을 때 아메리카노 없으면 못 먹는 사람이 많단 말이에요.”

“어! 내가 그래. 제일 신기한 인간이 카라멜마끼야또에 케이크 먹는 사람들이야. 달아서 어떻게 먹냐.”

“제가 그렇게 먹어요.”

최민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무튼 저처럼 단 음식 좋아하는 사람 말고는 빵에는 아메리카노가 찰떡이라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빵은 주식이 아니라 디저트 개념이라서 많이 달잖아? 그래서 아메리카노를 주력으로 미는 거구만.”

도혁이 베이커리의 벽에 붙은 아메리카노 할인 포스터를 가리켰다.

“프로모션도 커피 쪽으로 집중하고 있는데? 시즌 빵과 묶어서 할인도 많이 하고. 그리고 여기 원두가 고소하면서도 풍미가 부드러운 게 단독으로 마시기보다 달콤한 빵과 어울리는 맛이랄까. 아무튼 특이점은 분명한 것 같아.”

“분위기도 괜찮지 않아? 빵집이지만 매장 안에 앉는 공간도 넉넉해서 덕분에 카운터랑 멀리 구석 자리에 앉을 수 있었잖아. 부담 없는 카페 같은 느낌?”

“맞아요. 진입 장벽이 없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가족 단위 손님도 많네요.”

“아이들 데리고 커피 한잔하기 좋은 것 같아.”

아닌 게 아니라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제법 보였다.

“이것 봐. 회의실에 셋이 틀어박힌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잖아. 역시 발로 뛰어야 뭔가 나온다니까. 최 팀장은 열심히 메모하고 있지?”

“그럼요. 몰래몰래 열심히 쓰고 있다고요. 내가 이 연차에 서기를 다 한다 정말.”

“그럼 내가 하리?”

강태오가 최민아의 어깨를 툭 치며 피식댔다.

순간 아르바이트생이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빵 나오는 시간입니다! 이번 타임은 밤식빵과 페이스트리예요.”

“!!”

셋이 동시에 마주 보며 끄덕였다.

펜을 놀리던 최민아의 손끝이 바빠지고 도혁과 강태오가 벌떡 일어나 갓 구운 빵을 사 왔다.

“아주 좋은 전략이야. 최고 약점인 본사에서 가져오는 빵이 섞여 있는 부분을 상쇄하고 있어.”

“맞아요. 빵 나오는 시간을 고지하니까 매장에서 다 만드는 것같이 느껴지잖아요.”

“갓 구워서 그런지 맛도 뭐 좋네.”

강태오가 우적우적 빵을 씹으면서 감탄했다.

“빵 나오는 시간을 일부러 별도로 알림으로써 얻는 효익이죠. 지금 보니까 시간표도 만들었네요. 음식은 뭐든지 방금 만들어야 맛있지 않습니까.”

“소비자에게 기다리는 시간을 주고, 즉시 맛봄으로써 제품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 이거구만.”

“그렇죠.”

최민아가 끄덕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긴 한데 프로 빵순이 입장에서는 그저 그래요. 여기 빵도 맛있긴 하지만 조금 아쉽달까요?”

“그렇게 예민한 입맛을 가진 빵순이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겠지. 솔직히 내 입엔 아주 맛있어.”

“나도 마찬가지. 따끈따끈한 베이커리구만.”

경쟁사임에도 밤식빵을 맛있게 뜯어 먹는 두 남자를 보며 최민아가 빵 터지고 말았다.

“경쟁사에 왔으면 타사 약점 파악에 주력하셔야죠. 강 국장님은 볼 터지겠어요.”

“왜 우리 동빵연이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동빵연 프로젝트명은 다시 들어도 좀 그렇네요. 웃기지 않아요?”

“광고주 앞에서 실수로 말하는 거 아니냐?”

“편의상 부르는 거잖아. 왜, 귀여운데.”

다시 빵을 입속으로 집어넣으며 도혁이 본격적인 회의를 이어갔다.

“솔직히 프랜차이즈 강적이네요. 동네 빵집들 지금 절실하겠어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손을 내밀면 반드시 잡을 겁니다. 광고비도 최대한 맞춰줄 생각이거든요.”

“광고 비용을 맞춘다고? 어떻게?”

“매체비 줄여야죠, 뭐. 프랜차이즈처럼 매스미디어 광고에 주력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긍정적인 이미지를 끌어모을 수 있도록 매체를 다각화하고 바이럴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역시 계획이 있구만. 근데 명 대표는 어떻게 동네 빵집 연합이라는 생각을 했어?”

“똑같은 빵 맛이 싫은 소비자의 간절한 바람이었다고나 할까요.”

도혁의 말에 강태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말을 믿기엔 지금 도혁이 너무 맛있게 빵을 먹고 있었으니까.

“천하의 명도혁 대표가 단순히 빵 맛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을 리는 없고,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겠지.”

“당연히 사업성도, 상업성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비자로서 다양하고 개성 있는 동네 빵집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 역시 진심입니다.”

“그래. 이번 일 자꾸 위스키랑 겹쳐 보여서 나도 몰입하게 돼.”

“강 국장님네 아일리섬 조상님들이 잘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망한 증류소도 많아.”

강태오의 눈빛이 진지하게 굳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 있어도 마케팅과 홍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장되고 만다.

털보 아저씨의 베이커리도, 시장 상황에 따라가지 못한 고집스러운 장인의 위스키도 작정하고 덤벼들면 버티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도혁이 드디어 먹던 빵을 내려놓고 강조했다.

“위스키와 달리 동네 프랜차이즈 빵집 사장님들도 사실 소상공인이에요. 점주님들도 잘돼야죠.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시장을 크게 키워주면 점주님들, 동네 빵집 모두 낙수 효과를 볼 겁니다. 누구 한쪽이 망하는 게 아니라요.”

“자본주의의 이상향이구만.”

“자본과 갈라치기가 아니라 윈윈할 수 있는 전략으로 접근하는 게 관건입니다.”

“쥐가 고양이 생각해 주는 거?”

“갈라쳐서 좋을 게 정말 없거든요. 성장하는 시장이라 전체 매출은 증가 추이잖아요. 충분히 서로 상생하는 전략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열심히 아이디어를 메모하던 최민아가 한숨지었다.

“언제까지 똑같은 빵만 드실 겁니까! 이런 컨셉 생각하고 있었더니 안 되겠네요. 프랜차이즈랑 갈라치기잖아요.”

“이것저것 생각해 보자. 아직 제작 아이디어 생성 단계니까 너무 부담가지진 말고.”

“알겠습니다. 좀 더 고민해 볼게요.”

“그 전에 최 팀장은 먼저 작업 하나 해줘야겠다.”

회사로 돌아와 도혁이 최민아에게 별도 지시한 건은 바로 패키지 디자인이었다.

“일단 포장의 느낌을 통일할 생각이야. 패키지는 각각 동네 빵집의 개성을 실어서 만들어야겠지만 전체적인 느낌을 통일하면 좋겠어. 좀 세련되고 맛있어 보이면서 유기농 같고. 어떤 느낌인지 알지?”

“네. 이런 분위기 말씀이세요?”

최민아가 쓱쓱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의 빵 포장지를 즉석에서 그려냈다.

“개성 있는 폰트로 스티커 만들 수 있나?”

“아이보리 바탕 종이 가방이나 무늬 없는 테이크아웃 커피 컵에 붙이려고 하시는 거죠?”

“역시 대충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 듣는구만. 아무튼 이것부터 먼저 작업해 줘.”

“전체 컨셉은 유기농으로 무지, 아이보리 색감으로 통일해서 깨끗하게 한번 만들어볼게요.”

최민아가 작업할 일이 산더미인데도 의욕적으로 나왔다.

역시 DW애드 최고의 디자이너 팀장이었다.

그녀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캠페인 구호를 가리켰다.

[간판을 바꾸는 그날까지.]

“대표님, 구호 좋아요. 다 잘돼서 간판도 새로 만들고 맛있는 빵집도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래. 강 국장님 오시면 같이 의논을 해보자.”

그사이 광고주와 미팅에 다녀온 강태오가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 바쁘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요. 뭐, 아이디어 회의에 기다리고 말고 할 게 있나요. 종일 쥐어짜는 거지. 어차피 아이디어 회의는 기다림의 연속 아닙니까? 그분이 오시길 계속 기다리잖아요.”

“하긴, 화장실 휴지에도 메모하는 거 나뿐이냐?”

“샤워하다가 물 틀어놓고 카피 많이 썼죠.”

24시간 머리를 돌리고 있어도 그분이 잘 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특히 오늘처럼 광고주가 간판 하나 바꿀 돈도 없을 때는 더 그렇지.

도혁의 속마음을 읽은 듯 강태오가 미간을 좁혔다.

“마케팅에 책정된 예산 거의 없지? 방금 만난 대기업 광고주 하루 집행 금액만 있어도 춤을 출 텐데.”

“공중파 집행가의 옵션 정도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에이, 요즘은 옵션이 더 비싸. 공중파 S급 들어가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요.”

“하긴. 좀 갑갑하긴 하네요. 이런 광고주는 처음이라.”

“그래도 명 대표가 야심 차게 물어왔잖아? 난 이렇게 점조직으로 장사하는 베이커리 사장들을 모아서 제안서를 들이밀 수 있게 된 게 일단 성공이라고 생각해.”

“그건 맞습니다. 고석구 장인이 나서준 덕분이죠.”

도혁이 고석구가 제안한 일정을 체크했다.

“주요 지역 베이커리 사장님들과 고석구 장인을 모시고 마케팅 설명회를 가지기로 했어요. 그날 모든 걸 설득해야 해요.”

“최소 예산으로 말이지?”

“그렇죠.”

셋의 한숨 소리가 더 깊어졌다.

최민아가 분위기를 전환하려 고석구 베이커리의 빵을 가져왔다.

“일단 제품 분석을 해야 하니까 빵을 좀 먹으면서 해요.”

“으. 벌써 먹기 싫어진다. 오전에도 먹었잖아. 아이데이션만 하면 그 제품을 주야장천 먹고 써야 하니까 질리더라고. 특히 빵은 달지 않아? 단 거 싫어해.”

“강 국장님. 이 빵은 별로 안 달아요.”

최민아가 단팥빵 하나를 직접 까서 강태오에게 건넸다.

“팥은 특히 더 싫어. 나 초딩 입맛인 거 모르냐?”

“알죠. 알지. DW애드 코리아 대표 초딩 강태오 국장님을 왜 몰라요. 근데 이건 좀 달라요. 저도 단팥빵 엄청 싫어하거든요.”

최민아가 팥빵을 툭 떼어 제 입속으로 넣었다.

“근데 달지도 않고 거슬리는 맛도 없고 아무튼 일단 한번 드셔보세요. 먹여 드려요?”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강태오가 단팥빵을 잘라 질겅 씹었다.

“어! 이거 뭐야. 팥 맞아?”

“그쵸? 신기하죠.”

둘의 말을 듣고 있던 도혁도 빵 봉지를 뜯었다.

“소화도 잘되더라고. 난 소화 안 돼서 밀가루 싫어하거든.”

“그래요? 우리 회사 대표 예민 보스 대표님이 인정하신 건가요!”

대표 초딩과 예민 보스가 함께 마주 보며 끄덕였다.

“유기농 밀가루에 팥은 매일 아침 직접 졸여서 쓴다고 했어. 설탕보단 팥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단맛을 살린 거지.”

“명 대표 카피 쓰는 줄. 그런데 정말 이 빵 괜찮은데?”

“자극이 적은 게 포인트에요. 집밥 같은……. 잠시만 집밥. 집빵.”

“집에서 만든 빵이라.”

“착한 빵. 착한 맛이 나는 착한 빵. 계속 아무 말이나 해봐.”

소리치는 도혁과 강태오 사이에서 최민아가 빠르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계속 말씀하세요. 받아 적을 테니까.”

최민아의 손길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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