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94화 (194/252)

광고 천재 명도혁 194화

-고석구 베이커리.

50년 전통의 제빵 장인 고석구

도혁이 찾아온 곳은 제빵 장인 고석구의 가게. 이번 프로젝트의 구심점이 되어줄 사람이다.

다 찌그러져 가는 나무 간판. 허름한 가게 입구 앞에서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역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1대 제빵 장인 고석구의 가게다운 모습이었다.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지만 이곳만은 침투하지 못했다. 워낙 명성이 드높은 빵집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말이다.

도혁이 조심스레 문을 열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분주히 움직이는 가게 안에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손님, 이 빵은 오늘 재료가 모두 소진되어 사실 수 없습니다.”

“40분을 넘게 기다렸는데 이게 무슨 말이야!”

“가게 앞에 고지했는데 못 보신 모양입니다.”

“이런! 내가 누군지 알아? 사장 당장 나오라고 해!”

“사장 나왔수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덩치가 무척 크고 배가 나온 할아버지가 가게 안쪽에서 나와 소리쳤다.

항의하던 남자가 그 기세에 움찔했다.

“사람이 글자가 있으면 좀 읽으쇼. 스콘은 재료 소진됐다고 써 있구만.”

“40분 넘게 기다렸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저거 방금 써 붙인 거 아니야?”

“재료 떨어지자마자 붙였어. 우리 가게 스콘이 얼마나 빨리 팔리는지 알기나 하시우?”

“아놔, 재수가 없을라니.”

떡하니 서서 아르바이트생을 막고 있는 주인을 보고 남자가 못 이긴 척 돌아섰다.

주인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일갈했다.

“손님 가신다. 소금 뿌려라.”

“뭐?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정말 소금을 뿌리는 걸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듣던 대로 기가 아주 쎄시구만.

도혁은 재킷의 단추를 채우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런 그를 유심히 보며 고 사장이 물었다.

“그쪽은 빵 사러 오신 분 아니죠?”

“네. 빵 팔러 온 겁니다. 정확히는 팔아드리러 온 거죠.”

“어허, 웃긴 잡상인이구만. 보시다시피 우리 가게가 누가 팔아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아드님들 가게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들 얘기가 나오자 고 사장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반푼이 같은 놈들 얘기구만. 더 들을 거 없소이다.”

“반푼이라니요. 아드님 잘못이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고석구가 서릿발 같은 눈으로 도혁을 노려보았다.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자 고석구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뭐 하는 분인가. 하하. 눈빛이 살아 있네요. 우리 아들 녀석도 당신처럼 강단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잠깐 사무실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팔아주러 왔다니 내 들어봐야지.”

가게 안쪽에 위치한 사무실은 소박했다. 아까는 소란한 틈에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갓 구운 빵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걸 눈치챈 고석구가 제빵실에서 빵 몇 개를 트레이에 담아 왔다.

“방금 나온 거라 먹을 만할 거요. 커피랑 먹으면 아주 일품이지.”

“냄새만 맡고 있기 고통스러웠는데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사무실이 제빵실에 붙어 있어서 나도 간혹 못 참을 때가 있다니까. 50년 동안 빵을 먹어왔는데도 말이죠.”

열 살 때 처음 제빵 일을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이 가게의 단팥빵과 소보루는 요즘 빵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단맛이 난다.

시골 외가의 집밥처럼.

도혁이 굳이 여러 빵 중에 단팥빵을 집어 들자 고석구의 눈이 가늘어졌다.

“젊은 사람이 단팥을 좋아하는구만.”

“집에서 달인 귀한 팥이니까요. 잘 먹겠습니다.”

“우리 가게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하셨네. 그래, 뭐 하는 분인가.”

“광고하는 놈입니다.”

“광고, 광고라.”

도혁이 내민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던 고석구의 눈이 커졌다.

“오! 낯이 익다 했는데 명함 보니 알겠구만. 내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다큐멘터리 출연하지 않으셨나?”

“맞습니다. 이렇게 알아봐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어허. 아깐 간판집 사장인 줄 알고 들어오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큰 회사랑 일할 그릇이 못 됩니다. 보시다시피 소박하니 동네에서나 장사하는 수준이라서.”

“큰 회사는 작은 가게랑 일하면 안 됩니까? 저희도 뭐, 딱히 크지는 않습니다만.”

커피 잔을 그러잡으며 도혁이 슬며시 웃었다. 물끄러미 그를 지켜보던 고석구가 미간을 좁혔다.

“나참, 산전수전 다 겪고 사업해 오면서 어지간한 사람 속은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자네는 의도를 모르겠구만.”

“왜 왔는지 궁금하시죠.”

“아들 때문입니까? 망해가는 우리 아들들 가게 때문에요? 거긴 여기보다 더 소규모입니다.”

“아들 때문이 맞습니다. 사장님.”

동그란 단팥빵을 손에 들고 도혁이 똑바로 고석구를 바라보았다.

“아드님 두 분을 포함해 사장님이 손으로 길러낸 모든 아들들 때문에 찾아온 겁니다. 전국에서 빵을 만들고 있는 고 사장님의 제자들 말입니다.”

“!!”

“도와주시죠, 사장님.”

고석구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도혁이 제안서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들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살려야죠.”

* * *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수십 년을 아침마다 구워온 빵을 내려다보며 고석구는 한숨지었다.

[대한민국 1대 제빵 장인 고석구, 국제 그랑프리 수상.]

[한국 제빵인의 아버지, 아들 둘과 함께 가업 이어가.]

[한국인에게 꼭 맞는 효모종과 쌀빵 개발로 세대교체 꿈꿔.]

“세대교체라. 자식 놈들한테 가업 물려줄 때는 그렇게 믿었었지.”

고석구의 주름진 눈가에 그늘이 깊어졌다.

몇 달 전 큰아들의 빵집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전엔 작은아들 역시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속속 들려오는 제자들의 실패담. 뒤를 이은 프랜차이즈의 성공담.

-죄송합니다. 아버님.

-선생님. 면목 없습니다.

그들이 죄송할 일이 뭔가. 제대로 길을 인도하지 않은 내 잘못은 아닌가 수없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제대로 만드는 음식은 반드시 알아보게 되어 있어. 더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좋은 날 올 거다.

위로도 격려도 아닌 말을 무력하게 내뱉고 후회했었다.

정답이 아님을 알기에.

빵 만드는 실력은 기본일 뿐이다. 이 시대의 모든 제품이 그렇듯 출발점에 선 것에 불과했다.

‘정말 시대가 바뀐 것인가. 우린 뒤처져 버린 건가.’

제빵계의 세대교체란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낡고 촌스러운 동네 빵집에서 세련된 프랜차이즈 빵으로 이동한 것일지도.

프랜차이즈는 대형 자본과 철저하게 검증된 마케팅 기법, 그리고 빅 모델 전략을 이용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전국에 흩어서 베이커리를 열고 있는 아들과 제자들이 고군분투 중이지만 역부족이었다.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고, 남은 이들도 언제 사업을 접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석구는 어제 제 가게를 찾아왔던 명도혁이라는 광고회사 대표를 떠올렸다.

참 야무지게도 단팥빵을 먹었었지.

젊고 아쉬울 것 없는 유명 광고대행사에서 뭘 먹겠다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표정이 다부졌다.

-억울하시지 않습니까? 평생 새로운 빵을 개발하고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어도 세대교체는 다른 사람이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분하지. 분하고 원통하지만 시대의 흐름인 것을. 우리 같은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그저 빵이나 열심히 만들면…….

-아무리 맛있어도 가게가 없으면 아무도 먹을 수 없습니다. 제품이 좋아도 마케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장됩니다. 빵만 만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시대의 흐름이라.

평생 빵 하나 보고 살아왔던 늙은이에게 이제 빵만 만들지 말란다.

제 품에서 기른 아들과 제자들을 먹여 살리는 길이 오직 좋은 빵을 만드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고석구가 결심한 듯 자리를 박찼다. 수화기를 든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한번 해봅시다. 그놈의 마케팅이라는 거. 평생 계란 깨고 살았으니 바위 한번 깨보자고요.”

* * *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물었다.

도혁은 베이커리 연합의 기획안을 점검하며 고석구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최민아가 결재판을 들고 들어왔다.

“고석구 장인이 제안서 가져오라셔. 방금 통화했다.”

“잘됐네요! 하긴 대표님이 우리한테 삽질시킨 적 없으니까. 기사 찾아보니까 원로 장인이시던데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꼬장꼬장해 보이던데.”

도혁은 손님에게도 할 말 다 하며 소금까지 야무지게 뿌리던 고석구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거렸다.

“성정이 불같긴 하더라. 제자들이 고생깨나 했겠어.”

“어우, 저는 사진만 봐도 무섭더라구요. 카리스마가 느껴진달까요. 근데 어떻게 고석구 장인을 찾아갈 생각을 하셨어요? 제빵사 연합은 따로 있던데요.”

“이런 일은 제대로 나설 사람이 필요해. 고석구 장인은 한국 제빵계의 상징 같은 사람이야. 레전드라고. 이런 분이 움직이면 군소 연합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지.”

“하긴. 연합에서 뭐 하자고 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있겠어요.”

“고석구 장인은 본인보다 아마 아들과 제자들의 상황을 더 가슴 아파할 거야.”

“그렇죠. 기사보니까 제자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더라구요. 고아로 자란 아이들까지 거둬서 가르치셨다고 했어요. 그렇게 길러낸 제자들이 망하니까 마음이 괴로우시겠어요.”

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드실 거야. 원래 기술자들이 고집이 있거든. 장인정신이라고 부르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 있단 말이야. 그게 마케팅으로 공격받는 상황이니까.”

“빵만 잘 만들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 온 거죠. 에휴, 그래도 고석구 베이커리 본점은 잘되지 않아요?”

“지금은 그렇지.”

“네??”

최민아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석구 베이커리도 문 닫는 날이 올 거라고 보시는 거예요? 와.”

“맞아. 고석구 본점도 아직은 잘나가지만, 곧 무너질 수 있어. 여기 사거리 털보 아저씨 집도 나름 유명했다고.”

“하긴 그렇죠. 털보네도 저 초등학교 때부터 다녔는데. 거기 슈크림 정말 맛있었거든요. 아저씨는 뭐 하시나.”

“그러게. 우리 집 식구들도 전부 단골이야.”

얼마 전 본가에서 털보네 슈크림 먹고 싶다고 투덜대던 명현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많이 아쉬워하셨지.

최민아 역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에휴, 장인들의 빵집들이 무너진다니. 막 오픈한 베이커리는 오죽할까. 고석구 베이커리가 문 닫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니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실감이 나네요.”

“그러니까 힘을 모아야겠지.”

도혁이 그제야 최민아가 가져온 시안에 흘깃 눈길을 돌렸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결재 들어와 놓고선 한참을 떠들었네. 대표님, 이렇게 가면 어때요?”

“잡담도 아니고 자사 환경 분석한 건데 뭐. 시안 봅시다.”

도혁이 결재란에 사인을 하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지었다.

“지금 결재한 옥외광고 시안처럼 우리 최 팀장이 만든 간판 걸면 끝내줄 텐데 말이지.”

“엥? 간판이요? 간판 디자인은 안 해봤는데.”

“우리 옥외광고 하잖아? 결국 간판도 가장 직접적인 옥외광고의 하나라고 봐.”

“그렇긴 하죠.”

“다만 당장 간판까지 손대긴 어려울 거야. 가게가 망해가고 있는데 여유가 없겠지.”

아쉬운 표정으로 최민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간판이 중요해요. 간판이 세련되면 시장통 한가운데 있어도 좀 있어 보인다구요.”

“이번 프로젝트 이걸 목표로 삼을까?”

도혁이 대표실의 화이트보드에 크게 캠페인의 구호를 적었다.

[간판을 바꾸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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