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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93화 (193/252)

광고 천재 명도혁 193화

“파리지엥 베이커리에서 PT 들어온 거 벌써 파악한 거야?”

도혁이 빵 얘기를 꺼내자 한수철이 보고서를 가져왔다.

“파리지엥에서 PT 의뢰했어? 전혀 몰랐네.”

“어젠가? 연락 왔었지. 이거 말하는 줄 알았는데, 그럼 무슨 빵을 말하는 거야?”

“무슨 빵이라……. 흠. 딱히 지금 회사가 있는 건 아니고, 이번엔 광고주를 만들어야 해.”

“광고주를 만든다고? 그럼 광고주가 없다는 거야?”

아까 보름달보다 두 배는 더 커진 눈들이 도혁에게 꽂혔다.

“광고주를 만든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아무리 명 대표지만 광고주까지 창조할 수가 있어?”

“만들려면 뭔들 못 만들겠어. 하루 종일 크리에이티브만 입에 달고 사는데 창조를 해내야지.”

“아무리 그래도……. 알아듣게 말을 좀 해봐요. 궁금하잖아요.”

한수철에 이어 최민아까지 닦달을 하자 도혁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궁금하면 500원.”

“아, 진짜 아재 개그는 멈추시고요!”

최민아는 타박을 하면서도 정말 궁금했는지 500원을 손에 쥐여주었다.

도혁이 피식거리며 주먹을 꼭 쥐고 말을 이었다.

“일단 직원분들은 좀 쉬시고, 내일 회의 진행하면서 팀을 꾸리겠습니다. 항공사 PT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럼 이만.”

“어!! 500원만 뜯고 사라지신다구요? 이런 대표님!”

어그로만 끌고 도혁이 사라지자 최민아가 도끼눈을 해선 대표실로 쫓아왔다.

파리지엥에서 온 PT 제안서를 들고 있던 한수철도 함께였다.

“500원 가져가셨으면 돈값을 하셔야죠! 광고주를 만든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500원 뜯으면 최 팀장은 따라올 줄 알았지. 한 팀장도 잘 들어왔어. 같이 머리 좀 짜봅시다. 나도 아직 머릿속에서 구상이 뱅뱅 돌고 있어서. 아까 말한 대로 이번엔 광고주의 실체가 아예 없어.”

“아니, 실체가 없다면 돈은 누가 준다는 거?”

한수철이 AE답게 자금의 출처부터 물어왔다.

“우리가 만든 광고주님이 주시겠지. 파리지엥처럼 빵빵한 주님은 많이 모셔봤잖아?”

도혁이 파리지엥 베이커리 PT 제안서를 훑어보더니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우리 말고도 들어갈 회사 많으니까 여긴 내버려 두고, 우리만을 필요로 하는 회사를 뚫어보려고.”

“그런 곳이 있어? 항공사 광고하면서 또 언제 새 활로를 뚫어뒀대? 어딘데?”

“동네 빵집 연대를 만들 거야. 이미 있는 협회 차원이 아니라 통일된 캠페인을 함께할 동지 말이야.”

“뭐? 연대?”

작은 사람들의 작은 꿈을 위한 사업이 막 움을 트려 할 때였다.

시민 연대를 통한 유기농 생협과 농가, 중소기업이 함께 대기업에 대항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었고.

“두 사람 혹시 생활 협동조합이라고 들어봤어?”

“아, 생협 우리 동네에도 얼마 전에 생겼어. 우리 어머니도 최근에 가입하셨다고 하시더라고.”

“거기 이미지 어때?”

“깔끔하고, 유기농 인증받아서 건강한 느낌? 처음 들어보는 회사 제품이 많고 그런데도 믿을 만하다고 해야 하나?”

“대기업 제품은 거의 없잖아. 그렇지?”

“아!”

뭔가를 깨달은 최민아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대기업 마트보다 뭐랄까,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 있어요. 대기업이 기성품이라면 생협은 조금 더 건강한 제품군이라는 이미지요. 연대! 아 이걸 말씀하시는 거구나.”

“빵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동네 빵집은 양산 느낌이 없잖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직접 만들고. 사실 수제라는 면에서 고급 빵인데 제각각 촌스러운 간판 걸고 각개격파 당하고 있다고.”

“그러네. 그러네요. 베이커리 쪽, 생협처럼 접근하면 가능성 있겠는데요? 나 빵순이로서 너무 공감하고 있어요. 지금.”

“오, 빵순이 최민아!”

한수철이 놀리듯 말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민아가 아이디어에 집중했다.

“내가 맛있는 빵 있다고 하면 전국을 떠돌아 다닌다구요. 멀리서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요.”

“우리 최 디자이너의 고오급 시안의 시작은 탄수화물이구만.”

“그렇죠. 당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아무튼.”

최민아가 야무지게 펜을 다잡으며 부연했다.

“무조건 이거 된다. 그림이 그려진다구요.”

“우리 디자이너 쌤 필 받았네. 제작 쪽은 그럼 됐고, 내가 AE로서 현실적인 얘기를 한번 해보지.”

한수철이 팔짱을 끼며 질문했다.

“그 동네 빵집 주인들을 어떻게 모을 거야. 명 대표 말대로 전국에 점조직으로 흩어져 있어. 심지어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격을 받고 있고. 구심점이 있어야 할 텐데.”

“구심점이라. 그래, 구심점이 필요하지.”

“제빵사 협회 등 몇몇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연대로 힘을 모으기는 쉽지 않아 보여.”

“아주 좋은 지적이야. 그 구심점을 찾아내는 게 이번 사업의 핵심이 되겠지.”

“나름대로 계획이 있긴 한 거지? 명 대표 성격상 대책 없이 일을 벌일 것 같진 않은데.”

“아마도? 궁금해?”

“당연하지.”

“궁금하면 500원!”

“에헤이!”

마지막까지 500원을 야무지게 걷어가는 악덕 대표 명도혁이었다.

* * *

[빵이 먼저다.]

다음 날 회의실에 도착한 도혁이 화이트보드 위에 크게 써넣었다.

아침 간부 회의 때 이른바 ‘빵 팀’을 꾸릴 생각이었다.

어제부터 궁금해하던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최민아가 자리에 앉자마자 재촉했다.

“대표님, 우리 500원씩 준비했으니까 이제 빨리 말씀해 주세요. 머릿속에 다 계획이 있으신 거죠?”

“흠. 그럴까? 일단 늘 그렇듯 제품부터 써봐야지. 모닝커피와 함께 여기 놓인 두 가지 빵을 먹어봅시다. 티타임 가지면서 얘기 나누시죠.”

테이블 위에는 파리지엥 베이커리의 프랜차이즈 빵과 동네 제과점 빵이 분리되어 놓여 있었다.

“요즘 동네 빵집이 문을 닫고 있는 건 모두 잘 아실 겁니다. 놀랍게도 십오 분이나 더 걸어가서야 동네 빵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파리지엥은 두 개나 있었죠.”

“워낙 공격적으로 지점을 늘리고 있으니까요. 파리지엥뿐 아니라 크와르상 과자점도 프랜차이즈 확장에 혈안이에요.”

프랜차이즈 제과점끼리 대결이 한창인 때였다. 그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형상으로 동네빵집들이 죽어 나갔고.

탁기준이 우적우적 빵을 씹으며 물었다.

“오른쪽 빵이 동네 유명 빵집이지? 확실히 맛있네. 소문난 집인가 봐?”

“네. 십오 년 정도 한자리에서 장사를 해왔던 집이라고 하더라구요. 빵 사 오면서 사장님께 물었는데 시름이 깊으십니다.”

“역시 프랜차이즈 때문에? 우리 그런데 파리지엥 안 들어가려면 크와르상이라도 진행하려는 건가? 크와르상은 신류호텔 소속이라 자체 대행사가 있을 텐데.”

“아니요. 이 동네 빵집을 광고주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창조하는 거죠. 대광고주님을.”

“뭐?”

놀란 탁기준의 입에서 먹던 빵이 흘러나왔다. 주변에서 더럽다고 난리가 났다.

“에이! 국장님!”

“이러실 겁니까? 아무리 놀래도 먹던 건 삼키셔야죠!”

“아니, 지금 명 대표가 뭐라고 한 거냐. 무슨 동네 빵집을 광고해? 찌라시라도 돌리려고?”

탁기준의 말에 최민아가 도혁 대신 대꾸했다.

“어제 명 대표님이 동네 빵집으로 연대를 만들겠다고만 말씀하시고 사라지셨어요. 미끼만 던지고 사라지셔서 어젯밤에 계속 생각했다니까요.”

“빵집 동맹?”

흘린 빵을 치우며 탁기준이 되묻자 도혁이 끄덕였다.

“동네 베이커리의 연대를 통해 캠페인을 벌일 생각입니다. 필요하면 찌라시라도 만들 거예요.”

“에헤이. 닭집으로는 부족하셨나. 왜 자꾸 마이너의 길을 걷는 거야. 이번에 파리지엥 딱 꽂아놓으면 법인 통장 따뜻할 텐데.”

“파리지엥 없어도 벌써 따뜻하게 설계해 놨으니까 걱정 마세요. 건물도 우리 건물이겠다, 광고주도 빵빵하고, 연봉도 많이 올려 드렸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정말 동네 빵집 광고할 거야?”

“일단 들어보세요. 이게 막상 마이너하지 않다니까요?”

도혁이 미리 기획해 놓은 제안서를 정면에 띄웠다.

[동네 빵집의 반란, 작은 빵집의 큰마음.]

“모든 대행사가 프랜차이즈 광고 수주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동네 빵집을 뚫자?”

“작은 가게가 큰일 할 수 있게 뭉치면 됩니다.”

“뭉친다고?”

“네. 동네 빵집 연합이요. 연대를 통해 함께 대항하는 겁니다.”

“아! 그래서 광고주를 만드신다고 한 거군요!”

이진우가 끄덕이며 대꾸했다. 함께 동네 유명 빵집을 찾다가 실패했던 그는 도혁의 마음을 조금 이해해 주었다.

“저도 요즘 동네 빵집들이 사라지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십 년 넘은 빵집이 문을 닫았어요. 그 집 슈크림 빵 정말 맛있었는데.”

“우리 동네도 비슷해. 하지만 어제 의논했듯이 제대로 된 연대를 만들 수 있을까?”

점조직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동네 빵집. 프랜차이즈는 강한데다 하나였으며 자본력까지 뛰어났다.

반면 동네 베이커리는 점점 시장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고.

한수철이 도혁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뗐다.

“명 대표 심정은 잘 알겠어. 하지만 어제도 말했듯이 이건 너무 큰 사업이야. 작은 사람들이 작은 사업을 할 수 있게 돕고 싶은 갸륵한 마음은 알겠지만 이미 사라져 가는 시장인데 우리 같은 광고쟁이가 살릴 수 있겠어?”

“이건 내가 선행을 하고자 하는 위선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야. 난 동네 빵집의 다양한 맛과 개성을 반드시 어느 순간엔 소비자들이 그리워할 거라고 봐. 빵도 결국은 음식이니까.”

“입맛의 획일화는 어려울 거라는 의미인가?”

“정확해.”

당시엔 프랜차이즈 때문에 고전하지만 사실 이 승부의 최종 승자는 동네 베이커리다.

소소하게 개성이 넘치는 빵을 소비자들이 다시 찾게 되고, 동네 빵집의 전성시대가 다시금 도래한다.

단, 향후 십 년간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대형 자본과 상생하지 못하고 튕겨 나가 버리거든.

그 속에서 많은 동네 빵집이 문을 닫았고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들은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빵을 맛보지 못했지.

이건 어설픈 위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마케팅이었다. 승부를 걸 만한 시장이라는 말이다.

도혁이 찬찬히 준비한 마케팅 기획안을 설명해 내려갔다.

하나둘 동조한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강태오가 빵 팀에 자원하겠다고 나섰다.

“내가 한번 진행해 볼게.”

“어! 강 국장님이 나서주시면 좋죠.”

“우리 증류소도 어려움을 겪었을 때가 있었어. 아일라섬에도 돈 냄새 맡은 대규모 자본이 들어왔을 때였지. 많은 위스키 공장들이 그 위기를 극복한 역사가 있어. 최 팀장, 같이 진행하면 어때?”

“네. 저는 빵순이로서 어제 이미 합류하기로 결심했어요.”

도혁이 끄덕이며 부연했다.

“나로서도 최 팀장이 같이해 주면 든든할 것 같아. 패키지 디자인의 달인이잖아?”

“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럼 팀은 나, 강 국장님, 최 팀장 세 명만 붙겠습니다. 두 분 괜찮으시죠?”

“정예 멤버니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콜.”

“회의에서 말 나온 대로 리스크가 있다 보니 많은 인원을 배정할 수 없어요. 우리 셋이 합시다.”

“하여간 칼 같아. 대표가 밀어붙이는 사업인데도 계산적인 거 봐.”

탁기준이 혀를 내두르며 빵을 한입 더 베어 물었다.

“그럼 우린 광고나 보고 빵이나 먹겠습니다. 빵 많이 가져오세요! 유명 베이커리 제품이면 더 좋고.”

“이거 보세요. 소비자들은 다양한 유명 베이커리 수제 빵을 찾고 있다니까요. 망해서 못 먹는 거라구요.”

“그러네. 오케이. 선전을 기원하겠습니다!”

그렇게 DW애드 코리아의 3인 정예 멤버로 연대가 결성되었다.

도혁이 빵 하나를 집어 들며 일어섰다.

‘그럼 팀도 짰으니 광고주님을 창조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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