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92화 (192/252)

광고 천재 명도혁 192화

-CF 1안. 세상의 모든 여행. 어머니 편.

세상에서 어머니가 사라진다면…….

짧은 명제로 시작한 광고. 광고는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모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다.

설레는 표정으로 함께 야시장을 둘러보고 구경하는 모녀. 하지만 다리가 아픈 어머니는 점점 지쳐가고 딸의 팔에 기대어 걷고 있다.

땀을 닦으며 딸을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잘 걷지 못해 미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딸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엄마의 팔짱을 끼고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맞잡은 손으로 화면이 클로즈업되며 어린 시절로 장면이 전환된다.

넘어진 꼬마 아이의 무릎에 약을 바르며 호 불어주는 엄마. 엄마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준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는 엄마의 손 클로즈업. 다시 화면은 홍콩으로 돌아간다.

화려한 야경 속에 함께 걷는 모녀의 뒷모습. 그 곁으로 한 줄 카피가 흐른다.

[당신이 잡아주었던 손을 이제 제가 잡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세요.

아름다운 여행, 에어라인 항공.]

홍콩의 화려한 야경이 표현한 여행의 설렘과 가족의 따뜻함에 포근한 영상미를 더했다.

모녀의 담담한 뒷모습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실내에 잠깐 정적이 흐르고 광고주가 입을 열었다.

“대사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좋은 곳에 가면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담담한 영상으로만 표현해 봤습니다. 굳이 가족에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이 있는 법이니까요.”

탁기준이 다음 CF로 화면을 전환했다.

-CF 2안. 세상의 모든 여행. 나 편.

세상에서 도전이 사라진다면…….

역시 짧은 카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광고는 세계적인 암벽 등반가들이 찾는 이탈리아의 돌로미테를 풀숏으로 잡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속에서 젊은 등산가 일행이 암벽 등반을 하고 있다. 자욱한 안개에 가려진 채 위용을 드러낸 알프스의 끝자락이었다.

험준한 산세를 뚫고 비장하게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 화면은 그들이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과 그들이 짓는 한숨 그리고 땀방울을 번갈아 클로즈업하며 보여준다.

잠깐의 헛디딤으로 아찔한 순간이 펼쳐지고 다시 벽을 붙잡는 단단한 손에서 화면이 멈춘다.

역시 대사 없이 진행되는 아름답고 담담한 톤의 광고. 이어서 카피가 펼쳐진다.

[도전하는 당신의 아름다운 손을 잡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나를 위해 떠나세요.

아름다운 여행, 에어라인 항공.]

“이번에도 대사 없이 진행했습니다. 다만 화면이 합성인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합성이라도 조악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암벽은 직접 타신 겁니까?”

“네. 실내 암벽 등반을 실제로 진행해 배경과 합성한 영상입니다.”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반인 모델을 썼습니다만, 마지막 편은 메인 모델이 직접 출연합니다.”

전서윤이 주인공이라는 말에 광고주들의 눈이 커졌다.

기대에 찬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탁기준이 다음 시안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CF 1안. 세상의 모든 여행. 여행 편.

세상에서 여행이 사라진다면…….

한 줄 카피를 시작으로 전서윤이 등장했다.

한창 바쁘게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전서윤. 모니터를 바라보다 전화를 받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한창 일하다가 머리가 아파 서랍에서 진통제를 찾아 먹는 전서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 손으로 달력을 든다.

주말조차 없이 일주일 내내 빡빡하게 업무 일정이 들어차 있다. 그녀는 말없이 손끝으로 달력을 한번 훑는다. 정신없는 일상에 한숨짓는 그녀를 또 누군가 부른다.

상사의 부름에 결재판을 들고 달려가는 전서윤.

결국 결재하러 들어갔다가 혼이 나고, 한숨지으며 돌아온 책상 위에는 사람들이 쌓아놓고 간 서류가 가득하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업무.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겨우 의자에 앉았는데, 이번엔 키보드에 커피를 쏟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번아웃이 올 것만 같은 상황. 전서윤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멀리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여행 가고 싶다.”

짧고 간결한, 이번 에어라인 광고 시리즈의 유일한 대사가 전서윤의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다시 화면은 비행기가 날아가고 사라진 하늘로 이동하고 카피가 펼쳐진다.

[열심히 일한 당신의 손을 잡습니다.

지금, 지쳐 있는 나를 위해 떠나세요.

아름다운 여행, 에어라인 항공.]

“전서윤 씨가 정말 좋은 배우라는 증거와 같은 광고네요. 대사 한 줄 했는데 평생 비행기 타고 살았던 저조차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드니 말입니다.”

탁기준이 마이크를 들기도 전에 광고주가 먼저 감상평을 말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서윤 씨는 장래가 촉망되는 좋은 배우입니다. 프로필도 좋고 광고주께서 많이들 걱정하시는 사생활 등 문제도 깔끔합니다. 에어라인의 새 얼굴로서 아름답고 섬세한 이미지를 강화하는 모델로 자리 잡을 거라 확신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탁기준이 이어서 온라인 배너 광고와 프로모션을 제시했다.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에어라인의 메인 카피로 에어라인 항공사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역시 시장의 확장은 1위 기업에게 가장 큰 이익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소비자가 경쟁사를 선택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탁기준이 광고주의 고민을 짚어주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탁기준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다음 설명을 이어갔다.

“이에 저희는 조금 더 소비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로 즉각적 효용을 높이고자 합니다. 물론 매스미디어 광고를 집행해야겠지만 이번엔 온라인 배너 광고에 좀 더 힘을 실어 에어라인 홈페이지의 예약 시스템으로 즉시 연결할 예정입니다.”

“안 그래도 우리 마케팅팀에서도 온라인 쪽을 강화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항공 마일리지 때문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역시나 광고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평소 골치 아파하던 부분이었다.

사용하지 않는 항공 마일리지가 소멸되는 부분에 대해 항공사만 배를 불리고 어쩌고 이미지를 파먹는 기사들이 한창 나올 때였으니까.

“이 마일리지를 협력사 등을 통해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비행기 티켓으로 바꾸기 어려운 마일리지를 쉽게 쓸 수 있는 제휴사, 예를 들면 카페 혹은 베이커리 등을 통해 소진하는 방안입니다.”

“그거 괜찮겠네요. 우리가 이득을 취하려고 마일리지를 만든 건 아닌데 말입니다.”

억울해하는 광고주의 심정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곤 탁기준에게 추가로 질문했다.

“소멸을 앞둔 마일리지를 활용할 방안은 없겠습니까? 제휴처에서 사용하기도 모호하고 티켓 발권도 어려운 소멸 마일리지 때문에 부정적인 기사가 많습니다.”

“네. 당연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대안 역시 마련해 보았습니다. 소멸 마일리지를 소생 마일리지로 바꿀 방법 말이죠.”

“소생 마일리지라구요?”

탁기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또 다른 프로모션을 제시했다.

“소멸 마일리지는 언론을 통해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로 끼쳐왔는데요. 이번 기회에 바꾸어보려 합니다. 지금부터 마일리지를 통한 기부 캠페인 프로모션 방안을 확인하시겠습니다.”

화면을 전환하자 두 개의 배너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우저의 좌측에 마일리지를 표현한 아이콘 위로 79%라고 적힌 배너가 펼쳐졌다.

반면 우측엔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모습과 21%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아래로 ‘Beauti-ful, Water-Full’이라는 메인 카피가 떠올랐다.

“저희가 제시하는 ‘고고(高高, gogo)한 아름다움’ 프로모션입니다. 드높은 창공을 나는 항공사의 이미지와 앞으로 나아간다는 GO의 합성어로 프로모션을 기획해 봤는데요, 뷰티풀, 워터 풀이라는 카피를 전면에 세웠습니다.”

“앞서 보여주신 광고가 뭉클한 감성 소구였다면 이건 조금 경쾌한 느낌이 듭니다.”

“맞습니다. 이 배너 광고는 온라인 프로모션이기에 가볍게 접근하지만 담긴 메시지는 진지합니다. 이번 이벤트는 소멸 전의 소액 마일리지를 물 부족 국가에 기부하는 광고입니다. 소비자가 왼쪽 배너를 클릭하면 마일리지가 기부됩니다. 그러면 오른쪽 배너로 물이 찰랑이며 이동합니다.”

“왼쪽의 퍼센트가 줄어드는 만큼 오른쪽의 퍼센트는 올라가겠군요. 보는 재미가 있네.”

“맞습니다. 목표액을 정해서 달성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참여도를 높일 생각입니다. 배너를 통해서는 이벤트 홈페이지로 이동할 거구요, 현재 기부한 마일리지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결과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오, 그거 좋네요. 저도 기부할 때마다 어떻게 돈이 쓰이는지 궁금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또한 해외 기부 외 국내 기부를 원하신다면 결식아동을 위한 기부 등으로 아이콘을 바꾸어 진행이 가능합니다. 크리스마스, 혹은 연말 시즌 캠페인으로 적극 활용한다면 기업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다각도로 고민할 거리가 생겼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마일리지로 까먹고 있는 이미지를 발상을 틀어 긍정적으로 바꾸어보자는 것이다.

광고주가 크게 한번 끄덕이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했다.

탁기준이 끝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자 사회자가 PT가 끝났음을 알렸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과는 내일까지 개별적으로 통보하겠습니다.”

광고주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씩씩 콧김을 뿜고 앉아 있던 조덕현이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태강애드 이정민 국장이 다가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명 대표 전서윤 씨한테 한턱 쏴야겠어? 처음 포스터 나올 때 광고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

“모델보다는 전략이 좋은 거 아닙니까? 우리 밤 많이 새웠는데요.”

“우리는 안 새웠고?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감성적이고 공감도 잘되고, 잘 만들었더구만.”

“태강애드 광고도 좋았습니다. 시점을 공간으로 전환했다고 하셨을 때 소름이 돋았다니까요.”

“그럼 뭐 하나. 결과는 안 봐도. 후우. 축하해.”

“에이, 선수끼리 왜 이러십니까. 전화 올 때까지는 확신할 수 없지요.”

탁기준의 너스레를 뚫고 전화벨이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도혁의 핸드폰으로 쏠렸다.

* * *

“어떻게 됐어요! 결과 나왔어요?”

“됐죠? 됐다고 해요 빨리.”

“보자, 어이쿠, 이달에 우리 대표님 파산 각인데. 큰일이 났~네.”

탁기준이 신바람에 리듬까지 실어 파산을 걱정했다.

최민아가 입술을 꾹 깨물곤 그를 타박했다.

“무슨 파산이에요. 또 뜸 들인다. 하여간 우리 회사 AE들 장난 못 치게 법으로 막아야 한다니까요. 어떻게 됐는데요!”

“우리 팀 항공권 상품 받게 생겼어. 대표님이 에어라인 따면 뿌린다고 하셨잖아.”

“와! 대박! 무진아, 들었어?”

“당연히 우리가 이기는 거 아닙니까? 저는 어제부터 배너 누끼 따고(배경 분리를 위해 외곽선을 따는 일) 있었습니다.”

도무진이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마우스를 사정없이 움직였다.

도혁이 들어와 그의 책상에 기대어 섰다.

“PT 딴 날은 일하는 거 아니야. 부정 타.”

“그런 미신으로 저를 놀게 만드시는 대표님, 사랑합니다!”

“온라인 프로모션 예산이 지금까지 중 최고 집행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이 프로젝트 끝나면 여행 가는 걸로.”

도혁이 항공권을 흔들어 보이며 도무진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 전에, 우리 빵 좀 먹어야겠다.”

“빵이요?”

보름달 빵처럼 커진 직원들의 눈동자가 동시에 도혁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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