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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85화 (185/252)

광고 천재 명도혁 185화

“대표님, 너무하십니다.”

사랑합니다에서 너무하십니다로 멘트가 변하다니. 성공했구만.

도혁은 멀리서 걸어오는 명현진 PD를 보고 속닥거리는 황도준에게 타박을 주었다.

“지금 우리 누나 보고 하는 말이냐?”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말씀의 맥락상 미소녀시절인 줄 알았죠.”

머리를 긁적이는 황도준을 보며 명현진이 호탕하게 소리쳤다.

“도준 씨도 달고 왔네. 반가워요.”

“다, 달고. 네. 그렇죠. 반갑습니다.”

“너가 부탁했던 거 국장님이 오케이하셨어. 우리 다큐 시청률 터졌거든.”

“진짜 잘됐다. 축하해.”

“정규 편성도 되고 아무튼 우리 국 축제 분위기야. 이쪽으로 올라가자.”

명현진이 안내한 곳은 예능 국장실이었다.

미소녀시절 대신 국장님을 마주한 황도준은 조금 놀란 기색이었지만 금세 영업 미소를 지으며 깍듯이 인사했다.

‘이 자식 정말 AE 시켜야 되나? 왜 이렇게 잘해.’

속으로 황도준을 칭찬하며 도혁이 자리에 앉았다.

예능 국장이 반갑게 악수한 손을 흔들며 맞아주었다.

살집이 넉넉하고 편안한 인상의 남자였다.

명현진이 그에게 도혁을 소개했다.

“국장님, 말씀드렸던 DW애드 코리아 명도혁 대표예요.”

“광고대행사는 우리 예능국하고 더 친해야지, 내가 드라마도 아니고 다큐 쪽에 대행사 선수를 뺏기다니.”

“친동생이라서 제가 선수 친 거예요. 마음 쓰지 마세요.”

“맞아. 둘이 남매라고 했었지? 그래 이렇게 보니 닮았네.”

“에이, 국장님. 제가 백 배는 더 예쁘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국이 다른데도 나름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명현진이 술자리는 죄다 다니는 데다 발도 넓은 편이지.

새삼 혈육의 쓸모에 감사하며 도혁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진행하시는 시트콤 때문에 왔습니다.”

“명현진 PD 통해서 들었어요. 그래서 내 담당 PD를 불러놨지. 곧 들어올 겁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그를 직접 보는 건가.

곧 한국 시트콤계 대부가 될 남자가 들어오자 도혁은 가슴이 웅장해졌다.

이 PD와 인연이 닿는다면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것이다. PPL이나 광고에 아주 호의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밌게 활용도 잘했고.

미소녀시대 부동의 센터 김하은이 그가 최근 기획한 시트콤 출연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급하게 자리를 마련했다.

PD가 반갑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김태현입니다. 명도혁 대표님 맞으시죠?”

“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뭘, 영광까지요. 하하. 이제 막 입봉작 하나 좀 잘됐는걸요. 그, 게임 광고 만드신 분 맞으시지요? B급 감성이 완전히 제가 좋아하는 느낌이라 그 뒤로 DW애드에서 나오는 광고 죄다 찾아봤습니다. 칸 광고제 수상하신 것도 알고 있구요.”

“감사합니다. 이쪽은 황도준 대리입니다. 디자이너 겸 AE를 맡고 있는 유능한 직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례적인 인사와 덕담이 오가고 드디어 김하은 얘기가 나왔다.

“이번에 저희가 BUU치킨 광고를 맡게 되었습니다. 미소녀시대 김하은 씨가 모델이에요.”

“오! 아이돌과 치킨이라. 뭔가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요?”

“사람에게 상품이라고 칭하긴 그렇지만 타깃이 일치하는 아이템이니까요. 지금껏 한 것 중 가장 쾌활한 캠페인을 만들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PPL 때문에 오신 거 맞으시죠?”

역시 시대를 강타한 시트콤 스타답게 기획력이 탁월했다. 걸 그룹의 치킨 광고라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고 재밌는 그림을 떠올린 사람은 처음이었다. 몇 마디 듣지 않았는데도 척척 도혁의 말을 알아들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원하는 건 일반적인 PPL이 아닙니다.”

“그렇겠죠. 획기적인 제안이 있으니 대표님이 직접 국장님을 찾아오신 게 아니겠습니까?”

“네. 저희가 제시할 방안은 바로 대놓고 PPL입니다.”

“대놓고 PPL이요?”

도혁이 마침 국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모니터의 화면을 가리켰다.

“저쪽 하단에 보시면 ‘이 프로그램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오지 않습니까? 저 부분에 대놓고 광고를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너무 많음 주의)’, 이런 식으로요.”

도혁이 다이어리 위에 간단하게 예시를 적어 보였다.

“시트콤이기에 가능한 제안이겠지요. 장르의 특성상 여론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PPL이 너무 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미 요소로 활용하는 겁니다.”

“불만을 오히려 화제성으로 전환하자, 이런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그리고 간접광고도 자연스럽고 뻔뻔하게 해버리는 겁니다. 배너 광고를 세워뒀다면 출연자에게 ‘막지 마. 광고 안 보여’ 등의 직접적인 대사를 사용해서 유희를 줄 수도 있구요.”

“작가님과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저는 상당히 괜찮은데요? 우리 프로그램이 PPL가 너무 과해서 한창 골치가 아프던 참이었거든요.”

첫 시트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간접광고 섭외가 쏟아졌을 것이다.

막 첫 작품을 마친 PD가 거절하면 건방지다고 욕먹을 거고 그렇다고 다 받자니 작품 속에 녹이기 한계가 느껴졌겠지.

도혁이 정확히 그 부분을 노리고 기획안을 가져왔다.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대본에만 잘 어우러진다면 피식 잠깐 웃는 재미를 더하는 일이 가능하다.

김 PD와 예능국장의 표정이 동시에 밝아졌다. 그러면서도 피디는 단번에 오케이를 하지 않고 조건을 내걸었다.

역시 만만치 않은 남자였다.

“대표님이 주신 기획안 내부적으로 충분히 검토한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만 저희 쪽에서도 부탁드릴 사항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그, 게임 광고에 문어로 나왔던 전서윤 배우님이요. DW애드 코리아와 관계가 깊으시죠? 광고마다 출연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렇습니다만.”

“배우님 우리 시트콤에 카메오로 출연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대표님 얼굴 뵈니까 문득 떠올라서요. 제가 정말 너무 모시고 싶은 배우예요. 빅 팬이거든요.”

역시 사람 보는 눈도 있네. 전서윤의 팬이라니 다리를 놔줘야겠지만 이상하게 조금 입맛이 썼다.

“제가 한번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만 작품을 조금 가리는 편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대표님과 친분이 있으시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에이전시 통해도 되지만 시트콤이라 고사하실까 봐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대신 저희도 PPL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미팅이 잘 마무리되고 돌아서 나오는데 황도준이 툴툴대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피디님 전서윤 배우님께 사심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아니, 이상하긴 해요. 카메오는 보통 감독이랑 친분으로 우정 출연하는 건데 저렇게 섭외까지 하는 건 좀 웃기죠.”

명현진이 도혁의 눈치를 보며 삐죽거리자 애써 무심한 척 대꾸했다.

“뭘 이상해. 팬이라잖아.”

“그게 사심이지 뭡니까! 전서윤 배우님 나름 순수하신데 걱정입니다.”

“하여간 오버는. 배우가 감독 만나는데 별소리를 다 한다.”

“배우가 여친 되고, 여친이 와이프 되고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가뜩이나 속이 복잡한데 우리 도준이가 기름을 붓는구나.

황도준이 얄미워진 도혁이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미소녀 보러 갈래?”

“에이, 대표님 제가 한 번, 아니지 두 번 속지 세 번 속습니까?”

“진짜 안 갈 거? 어, 그럼 할 수 없지. 애써 섭외했는데 아깝네.”

“네?? 섭외요?”

눈이 휘둥그레진 황도준에게 명현진이 새초롬하게 말했다.

“미소녀시절 시트콤 촬영 대기 중이라고 들어서 매니저한테 미리 말해뒀는데 아쉽게 됐네요. 그럼 안녕히 들어가세요. 도혁아, 나중에 보자.”

“헐! 피디님! 명현진 피디님!!!”

황도준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 * *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가 떴다.

“이게 뭐예요? 세상에!”

“말로만 듣던 아이돌 조공? 이렇게 크게 한다고?”

“아이돌 아니고 전서윤 배우님 거 같은데요?

시트콤 촬영장에 푸드트럭이 찾아왔다.

신선한 원두와 음료를 가득 싣고 배우들이 취향껏 주문할 수 있게 메뉴판까지 세워두었다.

물론 그 곁에 ‘전서윤 배우님을 응원합니다’라는 배너보다는 작았지만 말이다.

시트콤 이 피디가 푸드트럭을 흘깃 바라보곤 전서윤에게 물었다.

“이런. 엄청나네요. 전서윤 배우님 빅 팬인가 봅니다.”

“저 지금 너무 민망해요. 카메오인데 여기로 보내시다니.”

“왜요. 카메오니까 더 반짝반짝 빛나라고 보내주셨나 보네요. 영화 촬영장에서는 가만 계셔도 빛나지 않으십니까?”

“PD님 그만 놀리세요.”

손등으로 붉어진 뺨을 식히던 전서윤의 핸드폰이 띠링 울렸다.

도혁의 메시지였다.

[커피 잘 드시고 계십니까? 현장에 계신 김태정 배우님께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카메오 촬영 편안하게 하세요.]

[세상에. 카페 트럭, 도혁 씨가 보낸 거예요?]

[네. 그동안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공중파 촬영인데 기죽지 말라구요.]

그동안의 감사를 왜 굳이 카메오 촬영 때 보내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따뜻해졌다.

전서윤은 액정 속 글자를 엄지손가락으로 훔치며 커피를 홀짝였다.

아이돌조차 이렇게 푸드트럭까지 동원해 조공을 받던 시절이 아닌지라 모두 신기한 듯 기웃거리며 고마워했다.

“전서윤 씨 덕분에 우리 매니저들 커피 사러 안 뛰어다녀도 되겠네.”

“그러니까. 촬영할 땐 아무리 마셔도 부족한 게 카페인이잖아.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참, 커피트럭은 이번 PPL 광고 회사 대표님이 보내신 거예요. 앞으로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야무지게 남은 촬영분의 PPL까지 부탁하며 전서윤이 커피를 돌렸다.

더욱 충성스러워진 DW애드의 페르소나였다.

같은 시각 도혁은 무사히 카페트럭이 도착했음을 확인한 후 제작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는 황도준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대기 중이었다.

“저, 정말 제가 CF 시사회 때 단독 발표합니까? 정말로요?”

“당연하지. 왜, 이번에도 차 국장님 꼬시려고? 차 국장님 항공사 컨택 들어가서 바빠.”

“대표님 앞에서 할 때도 떨렸는데. 이런 표현 죄송합니다만 지릴 것 같은데요?”

“이 자식이 빠져 가지고.”

도혁이 한쪽 눈썹을 치키며 찡그렸다.

“CF 시사야말로 황 대리가 꼭 배워야 하는 스킬이야. 차세대 우리 회사 CD잖아?”

“그건 그렇지만. 후우, 후우.”

호흡을 가다듬는 황도준의 어깨를 치며 격려했다.

“힘내라는 의미에서 치킨이라도 시켜 먹을까?”

“치킨은 그만이요! 준비하면서 서른 마리는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럼 피자는 어때?”

“그럴까요! 대표님, 콤비네이션 불고기 피자 어떻습니까?”

도준아, 너는 치킨부터 피자, 교복까지 쭉 아이돌 라인으로 가자.

대리가 하기에 사이즈도 맞고 업무도 배우고 일석이조지.

도혁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 속을 알 리가 없는 황도준이 배시시 따라 웃었다.

황도준의 손에는 이미 도혁이 점찍어둔 피자 브랜드의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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