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84화
“으리으리하네요! 이야.”
“촌스럽게 남의 회사에서 입 벌리고 있지 말고 얼른 따라 들어와!”
국내 최고의 아이돌 양성소 SYG 앞에선 황도준이 입을 쩍 벌렸다.
사옥이 화려하기로 유명했는데 실물로 보니 입이 벌어질 만했다.
번쩍번쩍한 외관부터 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비에 들어서자 절로 탄성이 흘렀다.
최고급 대리석을 쓴 것 같았다. 디자인 역시 럭셔리하면서도 현대적이었다. 로비에 감도는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벽에 금 바르면 베르사유의 궁전 같아야 하는데 엄청 세련됐습니다. 부조화 속에 조화로운 느낌? 디자이너로서 탐나는 공간이네요.”
“그러게. 디자인 좋네. 뭐, 큼.”
침음성을 삼키며 부러움을 동시에 삼켰다.
안내 데스크에 도착을 알리자 SYG 대표가 버선발로 마중을 나왔다.
‘잘되는 이유가 있구만. 거만하게 앉아서 기다릴 법도 한데.’
이번엔 속으로 감탄을 삼키며 도혁이 손을 내밀었다.
“전화드렸던 DW애드 코리아 명도혁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먼저 전화주셔서 어찌나 반갑던지요. 하하.”
호탕한 웃음으로 SYG대표가 도혁과 황도준을 반겼다.
국내 탑 아이돌을 꾸준히 육성하고 있는 SYG는 안정적인 모델 수급에 적합한 회사였다.
황도준이 처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며 광고주와 모델 섭외를 저울질했지만, 당연히 모델 섭외는 해두면 좋다. 모델 공급처를 뚫어두면 더 좋고.
치킨 광고가 불발되면 교복이라도 입히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치킨과 교복. 아이돌 광고 전쟁의 대격전지가 될 두 아이템의 전성기가 막 시작되던 무렵이라 직접 SYG를 방문한 것이다.
연습생 관리도 잘되고 무엇보다 인성 좋은 아이돌 양성소로 유명했거든.
도혁은 SYG대표를 따라가며 꼼꼼히 사옥을 살폈다.
그걸 눈치챈 대표가 자랑을 시작했다.
“건물 인테리어에 사용한 모든 자재는 무독성으로 최고급입니다. 주로 유럽 쪽에서 공수해 왔죠.”
“화려하면서 세련된 느낌이 동시에 드네요. 네오 클래식을 차용한 사무실이라니 발상의 전환입니다.”
“우리나라 회사는 어딜 가나 비슷한 풍경이잖아요. 그게 싫어서 시도해 봤어요. 대리석 하나 까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죠. 천연 대리석으로 브라질 원석에 이태리에서 가공한 최고급이에요.”
“아, SYG라고 크게 적혀 있군요.”
고급 대리석보다 너무 크게 적힌 브랜드 로고에 놀라고 말았다.
“하하, 너무 초대형이라 놀라셨구나. 제가 자존감이 좀 높은 편입니다. 참, 실내 들어올 때 공기가 프레쉬한 거 못 느끼셨나요?”
“네, 쾌적하네요.”
“우리 회사는 24시간 산소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공기를 정화하고 있어요. 이쪽은 식당입니다.”
숲속으로 들어온 줄 알았다.
녹색의 식물 컨셉으로 꾸며진 식당이었는데 엔터테인먼트 회사답게 샐러드와 과일, 닭가슴살의 식단이 눈에 띄었다. 물론 일반식 메뉴도 함께였다.
식당을 소개하는 대표의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직원들 건강에 그 무엇보다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건강이 복지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죠.”
“어! 우리 회사랑 똑같네요. 저희는 대표님이 365만 원 내기 걸었어요.”
“내기요?”
황도준이 내기라는 단어를 꺼내자 SYG 대표의 눈이 번뜩였다.
사람 좋은 미소 속에 숨은 승부욕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하는 건강 내기인데요. 몸무게 감량, 운동 등 건강에 관련된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면 365만 원을 주는 사내 프로그램이에요.”
“와! 이런! 오마이갓! 어떻게 그런 생각을!”
SYG 대표가 특유의 오버를 보이며 감탄했다. TV에서 보던 모습이 평소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너무 좋습니다. 광고 회사는 사내 이벤트도 남다르구나. 우리 연습생들에게 적용하면 아주 좋은 동기부여가 되겠어요. 프로모션 카피해도 되겠죠?”
“얼마든지요. 그나저나 사옥이 정말 훌륭하네요.”
대표로서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달까. 빨리 성공하고 싶은 향상심에 부채질을 하는 으리으리한 건물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이쪽은 작업실, 그리고 바로 옆이 연습실이에요. 저기 제국 천국 얘들 연습하고 있네. 얘들아, 광고대행사에서 오셨어. 인사드립시다!”
“네! 대표님.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제국 천국입니다!”
대표의 한마디에 칼각을 세워 인사하는 남자 아이돌이었다.
황도준이 떨떠름하게 그들을 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SYG 대표가 까딱 제국 천국을 보며 고갯짓을 보내곤 손을 흔들었다.
소속 아이돌과 나이 차가 제법 있을 텐데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이었다.
구석구석 사옥 투어를 마치고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은 화려한 다른 공간에 비해 작고 평범했다. 집기도 오래되었고 소파도 국산 패브릭 소파인 보통의 사무실이었다.
도혁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쇼맨십으로 일부러 대표실을 소박하게 만든 걸 수도 있겠지만 자극이 되는데?’
이미지를 위해 일부러 대표실만 소박하게 꾸민 것이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실천하는 위선은 위선이 아니라 이미 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누추해서 민망하네요. 손님 오시면 접견실에서 주로 맞는 편인데 거기가 오픈 구조라서요. 광고대행사 분은 모델 건으로 오셨으니 애들이 들으면 상처가 될 수 있어서 대표실로 올라왔습니다.”
“네. 잘하셨습니다. 민감한 건으로 온 것 맞습니다.”
도혁이 운을 떼자 황도준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 아이돌에게 치킨이라니. 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사옥도 소개해 주시고 시간을 많이 뺏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자랑하는 거 좋아해서 하루 종일도 안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단도직입이라고 하시니 긴장되는데요?”
“미소녀시절 섭외를 부탁드리려구요.”
SYG 대표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녀시절 이미지도 좋고 요즘 주가 초고속 상승 중입니다. 좋은 선택이에요.”
“문제는 아이템입니다. 저희가 제안드리는 광고는 치킨 프랜차이즈입니다.”
놀라 커진 SYG 대표의 눈이 끔뻑였다. 그러곤 똑같은 말을 되물었다.
“걸 그룹이, 치킨을요??”
* * *
사무실로 돌아온 도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SYG 사무실을 다녀온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나 할까.
솔직히 24시간 산소 공급 시스템까지는 너무 가긴 했는데 아무튼, 직원 복지의 격이 다른 회사를 눈으로 보고 오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부러운 듯 사옥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던 황도준의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에서 불이 솟구쳤다.
“저 정도 복지를 갖춘 회사는 해외에나 있는 줄 알았더니 안 되겠구만.”
오랜만에 향상심이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똑똑.
“대표님 결재 부탁드립니다. 어!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 있으신 겁니까?”
“진우야. 이리 들어와 봐.”
때마침 결재를 받으러 온 이진우를 붙잡았다.
이 팀장이 아니라 진우라고 이름을 부른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사무실에서 이름을 다 부르시고.”
“진우야. 우리 회사 어떠냐?”
“네? 갑자기 그런 걸 물으시면……. 어떤 점이 어떻다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복지라거나 처우, 개선했으면 하는 거 가감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해봐. 참, 아버님네 게임 회사랑 비교하면 어때? 거기도 근무 환경이 비슷할 것 같은데.”
“아, 어떤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도혁의 의도를 파악한 이진우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대표 바라기 이진우이지만 은근 팩트는 정확하게 짚어내는 편이었다.
아부 같은 거 모르고 솔직한 게 최고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진우가 마른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저도 아버지 회사를 직접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창업하실 때부터 자주 가보긴 했었는데 분위기는 매우 비슷합니다. 얼핏 보면 자유롭고 편해 보이지만 실상 일도 많고 야근 엄청 하지요.”
“그래. 게임 쪽도 근무하기 힘들다고 들었어.”
“성과금과 급여도 업계에선 높은 편이고 열정페이 안 주는 것도 비슷하네요. 광고도 그렇지만 게임 업계도 하겠다는 지원자가 많아서 악용하는 사례도 제법 있다고 들었습니다.”
광고와 방송, 게임 등의 일은 이 당시엔 인기가 많은 직종에 속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였다. 워라벨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생기기 전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창의성을 요하는 직업에 선호가 점점 몰리던 시기였다.
이런 젊은 친구들의 선호를 악용해 열정페이를 주는 회사도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도혁은 턱을 어루만지며 되물었다.
“열정페이 같은 양아치 짓은 안 하지. 비슷한 것 말고 차이점은 없어?”
“있죠. 우리 아버지는 정이 없으십니다.”
“뭐? 정이라고?”
이진우를 똑 닮은 아버님의 말투와 표정이 떠올라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정이라는 말이랑 아버님이 어울리진 않지. 근데 나도 딱히 정이 있진 않잖아?”
“이 정도면 따뜻하시죠. 신입들도 많이 챙기시구요.”
“부담스럽지는 않고?”
왜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니라 가조…… 같은 회사라는 말도 있지 않나.
도혁의 떨떠름한 물음에 이진우가 손사래를 쳤다.
“부담이라니 절대 아닙니다. 대표님께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받아 보면 좋겠네요.”
“관심은 충분하지, 인마.”
“사랑이라고 할까 하다가 언어를 순화한 겁니다.”
“사랑, 야, 나가라, 이진우.”
장난처럼 말하면서도 이진우에게 고마웠다. 기쁘기도 했고.
그러면서 내심 더 불타올랐다. 복지 천국이라고 자부하는 SYG를 뛰어넘어야겠다.
이진우는 나가라는 말을 듣지 않고 결재판을 들이밀었다.
“컨펌해 주셔야 나가지요. 여기 시안 봐주시기 바랍니다.”
“참, 컨펌 받으러 왔었지. 오! 이 팀장 시안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걸 그룹 만나고 오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황 대리가 차현우 국장님 모시고 광고주 미팅 갔습니다.”
“그 정도면 꽤 잘됐지?”
“광고 따올 거라고 아주 자신만만하던데요.”
“아마 그렇게 될 거야.
결재판에 막 사인을 마친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도준입니다. 대표님! 광고주가 진행하자고 하세요. 기획안 보시더니 엄청 놀라시더라구요.
“일단 시안은 가져오라고 했을 거고, 미소녀시절 모델료 걱정하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미팅에 참석이라도 한 듯 정확히 말하는 도혁에게 황도준이 놀라 되물었다.
짬이 차면 알게 됩니다요.
도혁이 한숨을 내쉬며 재킷을 들었다.
“수고했다. 잠깐 나하고 가볼 데가 있어. 지금 출발할 수 있나?”
-그럼요! 생생합니다.
“3시까지 CBC 방송국 앞으로 와. 진짜 미소녀 만나게 해줄 테니까.”
-네? 정말입니까? 당장 뛰어가겠습니다! 대표님 사랑합니다!
“사, 사랑. 너까지 야!”
이것들이 선을 넘는구만. 중얼거리면서도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겁하게 아름다우신 미소녀를 황도준에게 소개할 생각을 하니 광대가 절로 승천했다. 도혁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누나. 지금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