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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82화 (182/252)

광고 천재 명도혁 182화

건물 인수 후 곧바로 1층의 리모델링이 시작되었다.

이미 임대인이 있는 다른 사무실은 천천히 뺄 생각이었지만 1층의 카페는 곧바로 인수해 버렸다.

직원들에게 카페테리아를 제대로 차려주고 싶은 평소의 로망을 반영한 것이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현장을 바라보며 탁기준이 눈을 끔뻑였다.

“올~ 우리 회사 카페 생기는 건가?”

“구내식당 겸 카페테리아라고나 할까요? 저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습니다. 열심히 만들어 드릴게요.”

“뭐여, 전문가였구만. 어쩐지 내가 내린 건 똑같은 원두라도 맛이 없더라니.”

전생에 딴 거지만 아무튼 자격 보유자인 건 맞으니까.

도혁이 탁기준의 뱃살을 보며 눈썹을 치켰다.

“365만 원은 포기하신 겁니까? 왜 차도가 없죠?”

“쉽게 빠지면 살이 아니지. 상금을 떠나서 정말 빼긴 해야 할 것 같다. 무게가 늘어나니까 몸이 무겁고 컨디션도 무너져.”

“흠, 아프니까 비만이죠.”

“또 카피 같은 소리 한다. 운동은 억지로라도 하고 있는데 먹는 게 영 별로야. 도저히 개선이 안 돼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전용 카페테리아 오픈하면 야근해도 샐러드 드시게 만들어놓을 테니까요.”

“올~~~~ 기대할게.”

유기농 고급 식재료로 직원을 위한 최고의 건강식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바리스타 명도혁이 만든 커피도 제공하고 말이지.

짧은 백일몽에 부풀어 있던 도혁의 귓가에 산통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국장님 야근하시죠? BUU 치킨 어떠십니까?”

“역시 내 마음 알아주는 건 우리 수철이뿐이라니까. 대표님이요~ 풀떼기만 준대요.”

“헐. 그렇게 안 봤는데, TV 속 직원 챙기는 모습은 가식이었던 말인가.”

신소리를 뱉으며 한수철은 벌써 치킨을 주문하고 있었다.

저 치킨, 저 브랜드. 잠깐만.

잠깐 생각에 잠겼던 도혁이 한수철이 든 치킨 광고 전단지를 한 손으로 뺏어 들었다. 두 남자의 원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명 대표 야박한 거 보소. 야근하는데 치킨 좀 먹자! 저녁에도 샐러드 먹었다고!”

“그러시죠. 제가 시켜 드리려구요.”

“뭐?”

탁기준과 한수철이 동시에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도혁이 핸드폰을 꺼내 주문을 추가했다.

“거기서 파는 메뉴 다 갖다주세요.”

“명 대표!”

“도, 도혁아!”

놀란 한수철이 이름까지 불렀다. 도혁이 둘을 번갈아 보며 부연했다.

“일단 치킨을 뜯으면서 생각합시다. 두 분 회의실로 오세요. 참, 황도준 대리도 데려왔으면 좋겠어. 의논할 게 있어서.”

“도준이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한수철이 황도준을 데려왔다.

곧 치킨이 배달되고 종류별로 맛깔스럽게 튀겨진 치킨이 테이블 가득 차려졌다.

도혁이 먹을 만큼만 종류별로 세팅하곤 남은 치킨은 밖에서 야근 중인 직원에게 건넸다.

“탁 국장님, 이 정도면 남기면 충분하겠죠?”

“충분하긴 하지. 근데 정말 무슨 꿍꿍이야? 다이어트 안 한다고 구박하더니 치킨이라는 치킨은 다 시켰네.”

어리둥절한 남자 셋이 젓가락을 들면서도 고개를 기울였다.

도혁이 닭 다리 하나를 들어 탁기준에게 건넸다.

“치킨 광고하려구요.”

“치킨? 이 BUU치킨 말이야? 굳이?”

“우리가 BUU를?”

AE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예상한 반응이라 도혁은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

“왜요, 국장님. 마이너 광고라서 그러세요?”

“우리가 하기엔 사이즈가 너무 작지 않아? DW애드 이제 제법 규모가 있잖아.”

“저는 작은 회사와 일하는 쪽을 굉장히 선호해요. 우리도 중소기업인데 파트너십 개념으로 광고주와 함께 성장하겠다며 독립했던 거잖아요. 초심을 잃으신 겁니까?”

도혁의 말에 탁기준이 멋쩍은 표정으로 뱃살을 두드렸다.

“에헤이. 꼭 그런 건 아니고 치킨 광고하면 살이 더 찔까 봐 그러지.”

“어차피 몰래몰래 드시잖아요. 그리고 이 회사 보기보다 작지 않아요. 전국 규모 프랜차이즈고 점차 확대할 겁니다. 제 예감으로는 수십 년은 장수할 기업이에요.”

“흠…….”

침음성을 삼키는 탁기준과 한수철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황도준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치킨 광고는 전반적으로 촌스럽지 않습니까? 찌라시 만드는 업체에서 양산형으로 찍어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취! 우리 도준이 말 잘한다.”

“찌라시 만들어야 하면 만들지 뭐.”

도혁의 말에 한수철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굳이? 지금까지 쌓아온 대외적인 이미지도 생각해야지. 외제 차 캠페인에서 치킨이라니, 너무 다운그레이드 아닌가?”

“치킨이 어때서. 솔직히 정치광고, 지자체 광고야말로 말이 좋아 브로슈어지, 속된 말로 찌라시에 포스터 장사잖아. 관공서는 되고 치킨은 안 된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이런 톤은 정말 우리 회사랑 안 어울리지 않아?”

한수철이 치킨 상자에 붙어 있는 치킨집 전단지를 손으로 흔들어 보였다.

도혁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더니 대꾸했다.

“우리 스타일로 만들면 반대 안 할 거야?”

“우리 스타일로 치킨 광고를 한다고?”

“톤이야 세련되게 찍으면 되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예쁘고 설레고 통통 튀는 치킨 광고로 만드는 거야.”

“뭐?”

“지금까지 이런 치킨은 없었다!”

도혁이 카피처럼 소리치며 AE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의 우려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당시 치킨 광고는 프랜차이즈 모집과 제품 사진에만 집중한 전단지 위주로, 현재 DW애드 코리아에서 진행할 만한 사업이라 보긴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곧 대형 자본이 업계로 쏟아지며 아이돌 스타들이 대거 모델로 등용된다. 이른바 아이돌 치킨 광고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놓치긴 너무 아깝다.

도혁이 방향을 틀어 설득을 이어갔다.

“BUU가 보광그룹 자회사예요. 이번에 인수했지. 보광그룹이 공격적인 마케팅 하는 건 다들 알 거고 아마 전국 단위 프랜차이즈 모집과 더불어 대대적인 캠페인을 할 겁니다. 생각보다 아주 이른 시일 내에.”

“정말?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는 거야.”

“오며 가며 들었던 건데 아까 치킨 전단지를 보면서 언 듯 생각이 난 거죠.”

정보의 출처를 묻는 말에 도혁이 대충 얼버무리며 강조했다.

“난 이 시장 놓치고 싶지 않아요. 치킨 업계의 시장 확대의 문제라기보단 치킨 광고의 파이가 커질 거라고 전망하는 입장입니다.”

“업계 전반에서 광고를 많이 때리는 시기가 올 거라는 말이지? 명 대표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해봐야지.”

“지금껏 제 말 들어서 잘못된 적이 없잖습니까, 그쵸?”

“명도혁 대표님 촉 좋은 거야 두말할 필요 없고, 보광그룹이 인수했다고 하니까 한번 덤벼봐?”

한수철이 자신만만한 도혁을 보곤 벽에 붙어 있는 스케줄 표를 확인했다.

“어휴, 일정 빡빡한 거 좀 봐. 지금도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이야. 특히 곧 있을 항공사 PT까지 생각하면 치킨까지 붙을 인원이 없는 게 문젠데.”

“기획 쪽 손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어. 그 항공사 광고는 꼭 땄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건가. 그 항공사가 협력 업체에 그렇게 할인 쿠폰을 뿌린다는데.

침음성을 삼킨 도혁이 젓가락으로 닭 다리 하나를 들어 황도준에게 내밀었다.

“도준아, 전부터 AE 해보고 싶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 대표님과 팀으로 일할 때부터 기획 일 병행하면 어떨까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 기획력 있는 디자이너 이 바닥에서 귀하고 귀하지. 그리고 CD 되면 강태오 국장님처럼 발표도 잘해야 하거든. 이참에 연습 한번 해볼래?”

“네? 저 AE 시켜주시는 겁니까?”

“들었다시피 기획국에선 손이 모자라고 광고주 사이즈가 작아서 전담AE 한 명을 붙이긴 부담스러워. 우리 도준이한테 기회를 한번 주고 싶은데. 메인 AE 맡으면서 발표까지 해보는 거 어때?”

“BUU 치킨 말씀이시죠?”

고개를 끄덕인 도혁이 황도준이 좋아서 기겁할 말을 보태었다.

“모델은 우리 황도준 AE님이 좋아하는 걸 그룹으로 진행하지. 목록 뽑아서 가져오면 같이 컨택해 보자.”

“네?”

“뭐? 걸 그룹이, 치킨을?”

여섯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도혁에게 향했다.

* * *

바야흐로 아이돌 천국이었다.

신규부터 대리, 국장급까지 모일 때마다 걸 그룹 얘기로 꽃을 피웠다.

“이 친구들이 귀엽지?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던데.”

“얘네는 인지도가 너무 낮지 않습니까? 걸 그룹 하면 역시 ‘나라나라’죠.”

“무슨 말이야. 우리 ‘미소녀시절’이 짱짱맨이야. 이름부터 레전드잖아.”

“에이, 선 넘네. 언제 적 미소녀시절이야. 지난주 인기가요 1위에 빛나는 ‘시크릿쥬’가 있는데.”

“대표님! 보이 그룹은 안 되나요?”

최민아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입이 툭 나왔어. 잘생긴 남자 배우는 빅스 때 실컷 구경했잖아. 성현우랑 밥까지 먹어놓고서 걸 그룹 얘기한다고 질투하는 거야?”

“대표님, 그런 거 아니거든요? 치킨에 걸 그룹이라니 안 어울린다구요.”

“어울리게 만드는 게 우리 디자이너들 업무예요.”

“또 할 말 없게 만드시네. 대표님 잠시만요.”

최민아가 노트북의 자료 속에서 통통하고 잘 먹기로 소문난 개그맨을 찾아내었다.

“전통적으로 치킨 광고는 시즐감이 중요하잖아요? 이렇게 마른 친구들이 광고하면 입맛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와,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대표님도 미소녀시절 팬이시죠?”

도혁의 시선이 모니터 너머 미소녀시절 사진에 꽂힌 걸 본 최민아가 캐물었다.

팬이긴 하지. 센터에 있는 갸르스름하고 귀여운 보컬을 좋아하긴 한다만 지금은 팬심보다는 대표로서 모델을 선정하고 있는 거라고.

도혁이 큼, 목소리를 가다듬곤 대꾸했다.

“무슨 말이야. 미소녀시절이 이미지에 적격이라 주목하고 있을 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좋아한다, 안 한다. 하나 둘 셋!”

“좋, 아는 하지.”

“그러니까 결론은 미소녀시절 팬이라는 거잖아요. 대표님도 똑같네!”

아이돌 모델 전략이 쏟아지는 시기에 선행 주자로서 앞서 나가고 싶은 대표의 마음도 몰라주는 야속한 디자이너 최민아였다.

도혁과 최민아뿐 아니라 사무실 전체에서 걸 그룹 얘기로 신바람이 일고 있었다.

뜻밖에도 이 폭풍 앞에서 황도준만이 고요했다.

그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번쩍 뜨며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래. 좋았어! 대표님, 저 미소녀시절로 결정했습니다!”

“오! 역시 우리 황 대리가 모델 보는 눈이 있어.”

일단 흐뭇한 표정으로 칭찬해 주며 황도준에게 물었다.

“미소녀시절을 선택한 이유는?”

“흠, 대표님 제가 어젯밤에 기획안을 써봤는데요. 곧바로 컨펌하시겠습니까?”

“뭐? 기획안을 벌써?”

제법인데?

듣고 있던 임원진들의 눈매가 보기 좋게 휘었다.

황도준이 끄덕이자 차현우가 함께 듣겠다며 따라나섰다.

세팅이 완료된 회의실에선 황도준의 목소리가 비장했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AE 황도준의 첫 프레젠테이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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