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81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젊은 커플. TV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를 무심코 보던 시선이 멎었다.
“애들 왜 이렇게 귀엽니. 아, 저 꼬마 진지한 거 좀 봐!”
“슈팅 게임인가? 광고 컨셉 잘 잡았네.”
“어! 아이들이 TT자동차 뒤에만 숨는데?”
“뭘 좀 아는 애들이네.”
남자가 여자 친구를 보며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자동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TT가 다른 건 몰라도 안전성은 최고야.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 자동차는 안전한 게 제일 아니야? 교통사고 나면 돌이킬 수 없잖아. 나 최근에 사고 영상 봤는데 종잇장처럼 찌그러지는 차도 있더라고.”
“하긴. 애들 태우고 다니려면 안전한 게 제일이지. 우리도 애 낳으면 TT로?”
장난을 치는 남자 친구의 팔짱을 끼는 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둠 속에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젊은 남자. 밤새도록 자동차를 검색하고 있었다. 신차를 사기 위해 며칠 동안 인터넷의 정보를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SUV, SUV가 어딨나~ 놀러 다녀야 되는데~”
결혼할 생각이 딱히 없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는 싱글남인 그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레저 활동을 위해 쓰고 있다.
낚시와 등산을 다니고 여행을 즐기는 그에게는 언제나 짐이 많았고, 비포장도로를 다닐 때도 잦았기에 튼튼한 SUV를 찾고 있었다.
순간 인터넷 배너 광고가 깜빡거리며 그를 유혹했다. TT자동차에서 새롭게 선보인 SUV 광고였다. 슈팅 게임과 같은 광고의 썸네일이 미혼남의 시선을 끌었다.
그가 마우스를 내려 TT자동차 배너를 클릭했다. SUV 홈페이지를 샅샅이 살펴본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우, 탱크같이 단단하구만! 오프로드가 저래야지. 콜!”
며칠 동안 남자를 괴롭히던 고민이 풀렸다.
친구 집에 놀러 온 초등학생 아이. 장난감 총을 만지작거리다가 쏘는 시늉을 했다. 때마침 TV 화면에서 TT자동차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엄마! 우리 집 차 광고 나온다!”
소리치는 친구의 말에 꼬마의 눈이 커졌다.
“너네 집 차 저거냐?”
“어. 보이지? 우리 차가 총알 다 막아주는 거. 대박이야!”
15초 프로그램 광고에 이어 다시 15초 동안 이어지는 두 번째 광고. 첫 광고를 뒤집은 패러디 편이었다.
“어랏. 이번엔 아이들이 자동차를 지켜주는데?”
“똑같은데 달라? 광고 신기하다, 그치?”
“차 엄청 좋아 보여. 부럽다. 나도 사달라고 할까?”
“너네 집이 재벌이냐? 자동차가 얼마나 비싼데 졸라서 산다는 거야. 이거나 가져가라.”
친구는 장난감 TT자동차를 손에 쥐여주었다. 꼬마는 조그마한 차를 품속에 고이 간직했다. 잠재 소비자의 소중한 꿈이었다.
같은 시각 도혁의 본가에선 가족이 함께 다큐멘터리 방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그램 시작 전 TT자동차의 CF가 흘러나왔다.
녹차를 우리던 아버지의 시선이 TV에 고정되었다.
“같은 기업 광고 두 개가 붙어 있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주목도를 올리기 위해 같은 프로그램의 시간대 두 개를 사서 이어붙인 겁니다. 15초 곱하기 2, 30초짜리 광고인 거죠.”
“잘했네. 신기해서라도 보는 사람 좀 있겠다.”
“그걸 노리는 거예요. 얼른 보면 송출 실수 같아서 다시 보게 되는 효과가 있거든요. 사람들은 은근히 타인의 실수를 놓치지 않으니까요.”
“광고 잘하려면 심리학이라도 배워야겠어. 독심술이나.”
“쉿, 여보. 다큐 시작한다. 왜 내가 이렇게 떨리지?”
어머니가 도혁의 손을 잡으며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렸다. 다큐멘터리의 잔잔한 타이틀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큐멘터리 이 시대의 기업.
그 첫 번째 이야기, DW애드 코리아.]
화면에선 DW애드 코리아라는 글자가 마치 타자를 치듯 한 자씩 찍혔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전문가와 기업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최초 칸 광고제 수상에 빛나는 DW애드 코리아입니다.]
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도혁이 손가락을 말았다가 폈다.
“으. 맨정신으로는 못 보겠는데?”
“왜, 떨리냐? 예쁘게 잘 찍었다고 국장님도 칭찬 많이 하셨어. 그림 잘 나왔구만.”
“떨린다기보단 오글거리고 민망해. 나 방에 들어가도 되냐?”
“누나가 만든 희대의 역작을 지금 거부하는 거야? 바른 자세로 앉아서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명현진이 손가락을 들어 도혁의 눈을 억지로 벌릴 것처럼 다가왔다.
할 수 없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채 가늘게 눈을 뜨고 화면을 주시했다.
[TT자동차의 첫 아이데이션 현장.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가운데 치열한 고민 속에서 결론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대표와 직원들의 모습이 자못 진지합니다.]
카메라는 DW애드 코리아의 전경과 업무에 집중한 사람들, 그리고 회의 광경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갔다.
TT자동차의 캠페인 과정을 통해 사전 미팅부터 CF 촬영 현장, 프레젠테이션까지 광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해 상세히 보여주었다.
막상 다큐를 계속 보고 있자니 민망한 마음보단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다.
“한 번도 내가 일하는 모습 본 적 없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그치? 집중할 때 우리 혈육 조금 멋있어.”
“조금?”
“어. 손톱 반달보다 더 작게.”
직접 연출을 했던 명현진의 표정에서도 뿌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어머니는 감격해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우리 아들 회사 얘기를 우리 딸이 만들었다는 거지?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네.”
“에이, 왜 우세요. 프로그램 끝나가는데 치킨이라도 시킬까요?”
분위기를 반전하려 치킨 주문을 할까 했는데.
이번엔 도혁이 울게 생겼다.
다큐멘터리 말미에선 엔딩 크레딧과 함께 쿠키 영상을 이어져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표에게 남기는 직원들의 인터뷰가 이어진 것이다.
화면을 바라보는 도혁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대표님. 민아예요.]
차분하게 목을 가다듬으며 최민아가 첫 번째로 메시지를 남겼다.
[나 대기업에서 빼 올 때 대표님이 약속했던 거 기억해요?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세상에 둘도 없는 회사 만들어주겠다고 했잖아요.]
[그런 약속을 했어요?]
명현진의 말에 최민아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끄덕였다.
[네. 약속했었죠. 그리고 매일같이 지키고 계세요. 우리 회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소중한 곳 다시 없습니다. 한 번도 대표님 따라 나온 거 후회한 적 없어요! 고마워요, 대표님!]
이어서 탁기준과 한수철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우리도 후회한 적 없어! 당연히 없지. 돈 많이 주지, 또 많이 주지, 돈 떨어지기 전에 또 주지.]
[국장님, 너무 돈돈하면 우리가 성과금에만 목메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다음 성과금이 언제라고?]
장난을 치는 탁기준과 달리 차현우는 진지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바로 명도혁 대표입니다. 평생의 은인으로, 좋은 부하 직원으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드는 광고계의 동료로 언제나 함께할 겁니다. 도혁아! 고맙다.]
몇 초 되지 않는 순간이었지만 차현우의 진심이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이어서 이진우가 나타났다.
[대표님. 뭐라고 말해야 저의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자식, 벌써 침침한 게 울음 터지겠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도혁이 오히려 울컥하고 말았다.
[명도혁 대표님은 저의 군대 선임이자 존경하는 멘토이고 개인적으로는 든든한 형님입니다.]
이진우의 차분한 음성이 잔잔히 번져갔다.
[저는 대표님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표님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평범한 멘트였지만 그의 진심이 오롯이 전해졌다. 회귀 첫날 군대에서 이진우를 처음 만났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위기다. 여기서 한 방울이라도 눈물을 보인다면 죽을 때까지 명현진의 안줏감이 될 텐데. 누나가 만든 다큐를 보고 동생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평생 MSG를 쳐대겠지.
다행히 소란한 두 남자가 나타나 도혁을 구해주었다.
펑펑 울던 아이도 놀라 그칠 만큼 번잡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대표님!!! 황도준, 도무진입니다!]
[와! 우리 단독 인터뷰인 겁니까?]
[명도혁! 명도혁! 대표님 사랑합니다!]
강태오가 뒤에서 하트를 그려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며 코믹하게 다큐멘터리가 마무리되었다.
명현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도혁의 눈가를 살폈다.
“어! 명도혁 안 우냐? 야심 차게 인터뷰까지 준비했구만.”
“눈물까진 안 났지만, 아무튼 고맙다. 누나 콘텐츠 잘 만드네. 사장까지 하겠어.”
“올~ 명도혁이 칭찬을 다 해주고 내가 좀 찍긴 찍나 보네.”
승천하는 광대를 실룩이며 명현진이 부연했다.
“너네 회사 직원들 정말 대단하더라. 방송국도 빡빡하지만, 못지않게 살인적인 스케줄이던데 분위기 진짜 좋아. 저 엔딩 인터뷰도 자기들이 하면 안 되냐고 제안한 거야.”
“시킨 게 아니라고?”
“시키기는. 분량 넣기 모호하다고 하니까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라도 넣어달라고 특별히 부탁한 거야.”
다시 위기다. 코끝이 찡해오며 눈물이 핑 돌 것만 같다. 대표에게 이런 감각을 느끼게 한 직원들을 가만두지 말아야겠다.
결심한 도혁이 계산기를 들었다.
* * *
아침에 직원들을 만나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직접 전하고 싶었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 오글거리고 민망하고 뭐, 이쯤 되면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나?
도혁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유명 베이커리에 들렀다. 줄까지 서가며 초콜릿 케이크를 잔뜩 사 왔다.
“저기, 직원들 초코 케이크 먹어.”
“올~ 여기 요즘 핫한 쿠우 베이커리잖아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회의실과 휴게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케이크와 커피를 먹고 있는 직원들을 보자 아버지의 마음으로 흐뭇해졌다.
웃음기를 머금은 채 대표실로 들어가 성과금을 입금했다. 말로 표현하는 거보다야 돈이 최고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통장 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아저씨같이 CM송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현금을 꽂아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동안 다큐 촬영과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직원들이었다. 급격한 매출 신장세로 이번에도 두둑한 성과금을 뿌릴 수 있었다.
성과금 지급에 관한 공문에 마침표를 찍으며 막 출력하려던 찰나였다.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젊은 사장님 마침 받으시네. 잘 지냈지요?”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혹시 좋은 소식이 있는 겁니까?”
도혁은 최근 DW애드의 건물이나 인근 지역에 매매 건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남의 역세권이라 빨리 살수록 유리하다. 곧 지하철과 근처 대단지 아파트의 재개발이 확정될 예정이라 미리 부동산에 말해두었다.
“주인이 드디어 건물을 내놨어요. 내외가 급하게 다른 건물을 인수하려고 하나 봐요.”
“정말 잘됐네요.”
심지어 급매였다. 부동산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한껏 고무되었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 기다려라, 얘들아. 전세살이 끝내고 사옥 만들어줄 테니까.
직원들에게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아빠 사장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