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76화 (176/252)

광고 천재 명도혁 176화

“흔히 스쳐 가는 광고가 아니라 찾아서 보는 광고. 아예 세게 나가 버리는 거지.”

“오! 계속해 봐.”

길게 숨을 한번 뱉은 한수철이 설명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패션지의 특정 페이지에만 고정해서 나간다거나, 영상 광고를 패션이나 음악, 영화 채널의 심야 시간대에만 노출하는 거야. 어차피 2030 패션 소비층은 늦게 잠드는 경향이 있으니까.”

“난 좋아. 찬성! 이래서 내가 다큐도 미루자고 한 거라고.”

“다큐를 미뤄?”

도혁의 말에 차현우가 눈을 크게 떴다.

“네. 2주 정도 뒤에 촬영 시작할까 합니다. 빅스 광고 진행 건을 다큐에 실으려고 했는데, 최소 노출이 오히려 빅스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맞아. 이미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전략이 내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었어. 다음 광고주가 운이 좋네.”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공중파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서 광고 제작의 전반이 고스란히 노출될 테니까요.”

한수철이 둘의 말을 들으며 우려를 표했다.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지만 광고주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 아직도 설득하는 AE의 입장에서는 매스미디어 광고를 했으면 하는 쪽이야. 다큐 노출도 솔직히 남 주기 아깝고.”

“그럼 두 가지 매체 제안서로 미팅 들어가 봐. 직접 선택하라고 하면 되지. 그렇지만 난 최소 노출 쪽이야. 이미지 소모를 최대한 줄여서 희소성을 강조하는 게 살길이라고 봐.”

도혁이 두 가지 매체안을 제안하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제 의견을 힘주어 강조했다.

“매체를 어떻게 집행할 건지에 따라 광고 톤도 바뀌잖아? 뭐, 한수철 팀장이 알아서 잘 설득해 오겠지.”

“일단 전체적인 기획안을 잡아볼게. 기획 방향의 큰 줄기를 읽는 광고주라면 우리의 의도를 간파하겠지.”

한수철의 한숨이 길게 늘어졌다.

하지만 유능한 AE답게 그가 광고주 설득에 성공했다.

빅스는 1차로 핫플레이스의 대형 옥외광고와 유력 패션지 3면의 접지 광고(한 페이지를 다른 페이지의 크기에 맞도록 중앙을 접어 넣은 광고)만 집중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 * *

빅스의 광고가 실리던 첫 주. 주말 아침 강남역 T레코드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여대생은 무심결에 올려다본 옥외광고에 이른바 덕통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미친 비주얼과 기럭지의 남자 모델, 그것도 네 명이 한꺼번에 매력적인 미소를 흘리며 시선을 강타했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한 장 걸쳤을 뿐인데 트렌디한 감성에 풋풋한 훈훈함과 더불어 남성미까지. 소년과 남자 사이의 어딘가에 걸쳐 있는 모델의 묘한 매력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저게 뭐람? 저런 모델들이 있었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분위기 미쳤다. 와.”

“야, 뭐 하냐. 정신 좀 차려.”

“자기야. 저기 좀 봐봐.”

남자 친구의 눈동자가 여자 친구의 손가락 끝을 따랐다. 사거리 한가운데 설치된 대형 옥외광고판에 빅스의 남자 모델 4명이 포즈를 잡고 서 있었다.

“어! 나 저 브랜드 알아. 요즘 핫하잖아.”

“브, 브랜드? 아, 청바지 광고구나.”

“그럼 뭔 줄 알았냐. 난 또 뭐라고. 훈훈하고 길쭉한 게 나보다 좀 못하지만 넷 다 봐줄 만은 하네.”

“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대생이 남자 친구를 노려보았다.

눈치를 흘깃 보던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매장을 찾았다.

“저기 빅스 들어가 볼까? 비주얼 차이가 조금 나는 건 옷 때문이라고. 내가 안 꾸며서 그런 거야”

“그러시겠지요. 하아.”

같은 시각, 미용실에서 하품을 하며 펌을 하고 있던 중년 여성이 잡지를 들었다.

무심코 술술 책장을 넘기다 3면에서 뚝 손길이 멎었다.

“요즘 광고들은 이렇게 접혀서 나오더라고. 누가 펼쳐본다고.”

투덜거리던 아주머니가 남자 모델의 얼굴을 보곤 슬그머니 책장을 넓게 펼쳤다.

곁에서 남학생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던 미용사가 감탄을 뱉었다.

“어휴,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잘생겼어.”

“네. 뭐.”

중년 여성의 잡지를 곁눈질로 보던 남학생이 빅스의 브랜드명을 입속으로 한번 곱씹었다.

남학생의 조용한 반응과 달리 아주머니들은 본격적으로 수다를 시작했다.

“뉘 집 아들인지 잘도 생겼네. 엄마는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

“그럼. 어쩜 이렇게 길쭉길쭉하니 팔다리도 쭉쭉 뻗어서는. 맨 오른쪽 모델은 미술관에서 전화 오지 않것어?”

“무슨 말이야?”

“조각상 훔쳐갔다고 고발당하겠는데? 호호.”

미용사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아주머니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자기네 아들 키 크지 않아? 이런 옷 입혀놓으면 모델 같겠는데?”

“에이, 뭔 모델이야.”

“옷이 날개라고 하잖아. 내 볼 때는 뭐, 얘네랑 비슷하구만.”

“우리 아들이 좀 잘생기긴 했지만 동네에 하나둘 있는 정도지.”

그러면서도 목을 쭉 빼고 브랜드명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미용사가 시계를 보곤 화들짝 놀라며 부산을 떨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학생 샴푸 해줘야지!”

그다음 주엔 고등학교까지 빅스에 관한 소문이 번졌다.

여고생 다섯이 모여 스크랩에 열중하고 있었다.

“각자 잡지 가져왔지?”

“난 3면만 뜯어왔어. 잡지마다 3면에만 있는 거 완전 신선해.”

“그거 알지? 사천왕 오빠들 빅스 광고 외에는 안 나와.”

“그래서 더 좋음. 우리만 알았으면 좋겠어! 어떡해! 와, 펼치니까 더 미쳤다. 실물 한 번이라도 보고 죽으면 좋겠음. 이 미천한 눈으로 감히 이 천사들을 영접해도 될까?”

“다시 태어나면 성현우 엄지손가락으로 태어날 거야.”

“난 김빈 손가락!”

소녀들은 갖은 주접으로 쉬는 시간을 갈무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말에 빅스 청바지를 사러 가기로 약속하곤 수학책을 펼쳤다.

빅스의 충성 소비자층은 전국 각지에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 * *

[소비층의 니즈를 빠르게 간파해 핵심을 파고들다.]

[4인 4색 신인 모델 집중 조명 단독 인터뷰.]

[빅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전략 탐구.]

[이번에도 돌풍의 주역은 DW애드 코리아.]

빅스 캠페인에 관한 흐뭇한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도혁은 DW애드에 관한 마지막 기사 사진을 못마땅하게 노려보았다.

“난 일반인인데 이렇게 모델 사이에 얼굴 넣으면 어떡하냐.”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인데 뭐.”

아침부터 스낵을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탁기준이 대꾸했다. 이진우도 입속에 과자를 넣더니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습니다. 제 눈엔 대표님이 더 멋지시고 잘생기셨습니다.”

“어이구. 어련하실까. 이 팀장 눈에 덮인 대표님 콩깍지는 언제 벗겨지냐.”

“영원히 벗겨질 일 없을 겁니다. 아무튼 이 네 명 모델님도 멋지지만 대표님이 최고입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남자 셋이 모닝커피와 함께 과자를 털어먹고 있는데 최민아가 나타났다.

“저기요. 촬영 현장에서 빅스 모델들 직접 보셨죠? 뭐 느끼는 거 없어요?”

“느낀 점 있습니다. 그 모델분들 딱히 구도를 잡을 필요가 없더라구요. 사방 아무 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작품이 돼서 놀랐습니다.”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어. 후처리 걱정도 없고.”

“맞습니다. 프레임에 저 모델들의 매력을 다 담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저 네 모델님들 보고 우리 대표님 외 임원분들은 느낀 점이 없으시냐구요.”

“뭘 더 느껴야 하나?”

탁기준이 과자봉지 속의 가루를 입속에 탈탈 털어 넣었다.

그걸 본 최민아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 느낄 점이 생각났다. 최 팀장 촬영하던 날 성현우 모델이랑 또 밥 먹으러 갔지?”

“그건 또 언제 봤데요?”

“이야, 청첩장 진짜 찍어야 하는 건가?”

“뭐래. 제 밥이 문제가 아니구요. 우리 직원분들, 특히 탁 국장님 살 엄청 찐 거 알죠? 다큐도 찍는다면서요.”

“큼, 그런가?”

최민아의 말에 과자를 먹던 남자들이 손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업 초기에 비해 전체적으로 듬직해지기는 했다. 특히 애 아빠가 된 탁기준의 후덕한 뱃살이 눈에 훅 들어왔다.

빅스 CF 제작을 총괄했던 이진우의 목소리에서 탈력감이 묻어났다.

“일이 바빠서 생활 패턴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살이 찐 겁니다. 지치면 탄수화물을 찾게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 네 분의 남자 모델은 DNA가 다른 것 같습니다만.”

“여러분도 입사 초반에는 근사했다니까요? 보여 드릴까요?”

최민아가 노트북을 끌어 창업 당시 고사를 지내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봐요. 탁 국장님 턱이 하나뿐이었잖아요. 배도 안 나오고요.”

“올~ 나 좀 생겼다?”

“이런, 탁 국장님 말고 저도 몸이 많이 불었습니다.”

이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후덕한 뱃살을 내려다보았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테이블 위의 커피 잔들을 치우며 그가 일어섰다.

“저는 편집본이 밀려서 이만 프로덕션으로 가보겠습니다. 말씀들 더 나누십시오. 그리고 대표님은 아직 멋지십니다.”

“어련하실까. 수고!”

탁기준이 늘어진 턱살을 어루만지며 이진우에게 인사했다. 바삐 돌아서 업무에 매진하는 이진우의 뒷모습이 든든했다.

도혁은 이진우의 등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무 듬직했던 것이다.

‘진우가 저렇게 살집이 있었던가. 흠.’

도혁은 최근들에 부쩍 체중이 늘어난 제 몸과 탁기준, 그리고 이진우를 번갈아 보았다.

직원 건강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할 때가 왔다.

팔짱을 낀 도혁의 눈빛이 자못 진지했다.

* * *

-헬스 챌린지 365. 365만 원의 상금에 도전하세요.

점심시간 직후 휴게실 앞에 카피처럼 붙어 있는 문구에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최민아가 큰 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직원 여러분. 휴게실 운동기구 있는 쪽으로 잠깐 모여보세요. 명도혁 대표님의 지시로 사내 헬스 챌린지의 진행을 맡은 최민아 팀장입니다.”

“헬스 챌린지라고?”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초콜릿 껍질을 까고 있던 황도준과 도무진이 맨 앞자리에 앉았다.

도무진이 손을 들어 상금의 진위부터 물었다.

“챌린지 성공하면 365만 원 주는 거예요? 진짜로?”

“그렇습니다! 본인이 설정한 건강 목표를 제출하고 365일 동안 달성하면 365만 원을 드립니다. 감량을 목표로 삼아도 좋고, 금연도 좋습니다. 직원 복지 중에 건강이 최고라는 대표님의 모토 아래 시작된 이벤트예요.”

휴게실의 뒤편 벽에 기대어 선 도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부연했다.

“광고쟁이한텐 건강이 전부야. 지금은 젊어서 버티지만 십 년만 이렇게 일만 하고 살아봐라. 어떻게 되나.”

“어떻게 됩니까?”

황도준의 말에 도혁이 기대었던 등을 떼어내고 화이트 보드 앞에 섰다.

커다랗게 졸라맨으로 사람을 그리곤 발끝부터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일단 무좀부터 시작해 보지. 곧 망가진 식생활로 아토피 발발, 종일 앉아 있으니 고관절에서 허리디스크에 거북목까지 관절 질환 생길 거고 잦은 야식과 음주로 복부 비만, 먹자마자 앉아서 일하니까 역류성 식도염에 이어폰 종일 끼고 있으니 귓구멍도 막히고…….”

“대표님! 듣는 것만으로도 괴롭습니다.”

“피가 탁해져서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당뇨에 대사 증후군까지 이어지다가 종국에는 스트레스성 탈모가 오고야 말겠지.”

탈모에 이르러선 피식거리던 직원들의 얼굴에서 싹 웃음기가 걷혔다.

“운동 안 하면 죽는 병 걸린다는 각오로 건강관리에 힘쓰기 바랍니다. 직원 여러분 모두 365만 원을 타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365만 원이라구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휴게실을 울렸다.

언제 들어왔는지 명현진이 카메라맨과 함께 나타났다.

“모레 본격 촬영 들어가기 전에 구도 잡으러 온 거예요. 부담 없이 말씀 나누고 계세요.”

“하하. 그럴까? 이 피디?”

“네. 그렇습니다. 이번 사내 건강 이벤트에 대한 최 디자이너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카메라를 의식한 직원들은 ‘부담 없이’ 부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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