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74화
“저, 저기 그러니까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니, 라떼로 주시고 저 남자분은. 그러니까 제 옆에 있는 남자는 저하고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에요. 아무거나 주세요.”
“네?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시죠.”
똘똘하고 야무지게 행동하는 평소와 달리 말까지 더듬는 최민아의 말을 끊고 커피를 주문했다.
“잘생긴 남자 알바 때문에 회사 대표와 선을 그으시겠다?”
“사실인데요. 뭐. 우리 개인적인 관계 없잖아요. 와, 진짜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어요. 대박. 대에박.”
전생에 배우 중의 배우로 불리었던 성현우였다.
지금은 카페에서 알바나 하고 있지만 곧 연이어 대박작에 캐스팅되며 스타 반열에 오를 될성부른 새싹이다.
최민아가 커피를 꿀꺽 삼키며 조잘거렸다.
“우리가 광고 찍으면서 제법 연예인을 많이 보는 편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지간하면 촌스럽게 연예인 보고 놀라고 안 그런단 말이에요. 그런데 와,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요? 강남역 지나가면 세 걸음에 한 장씩 명함 받겠어요!”
“실제로 그럴걸? 저 알바 삼보일함이라고 소문났던데?”
“세 걸음에 명함 받는다고요? 정말요?”
물론 전생에 토크쇼에서 봤던 정보였다.
젊을 때라 그런지 풋풋한 것이 도혁이 기억하는 것보다 몇 배는 잘생긴 게 후광까지 비치는 느낌이었다.
“나도 명함 하나 주고 올게. 알바님 방금 세 걸음 넘게 걸은 것 같네.”
“제가 주고 와도 돼요?”
“오디션 얘기 잘할 수 있냐?”
“그럼요! 그럼요!! 꼭 올 수 있도록 할게요. 번호도 물어보고.”
최민아가 야무지게 명함을 쥐고 알바에게 다가갔다.
성현우는 바쁘게 주문을 받으면서도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고 최민아의 말을 받아주었다.
역시 저 때부터 매너도 좋았구만.
웃음기를 머금은 도혁과 달리 최민아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교대 시간인가 봐요. 일단 명함은 가져갔어요.”
“연락 올 거야. 빅스 청바지 입었더라고.”
“그건 또 언제 봤대?”
“내가 좀 눈도 빠르고 머리도 빠르지.”
거들먹거리며 최민아를 봤는데, 최민아의 눈길은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알바에게 꽂혀 있었다.
최민아뿐 아니라 카페 안에 있는 여자는 죄다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생 연예인 팔자구만. 현실이 브라운관인데 성현우도 불편하겠다.’
애써 지나치게 잘생긴 남자가 겪을 불편함을 찾아내며 도혁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최민아의 입에서 다시 짤막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애써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눈짓으로 카운터를 가리켰다.
“대표님 여기 도대체 뭐예요? 교대한 알바도 예술이에요. 웬일이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이번엔 강민우가 등장했다.
실물을 처음 보지만 성현우 때와 다르지 않은 눈부신 외모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번엔 직접 강민우와 접촉하려던 도혁의 손목이 급하게 붙들렸다.
“제가, 제가 갈게요. 대표님. 정말 감사해요. 이런 핫플레이스에 데리고 와주시고.”
“고객님, 만족하셨습니까?”
“그럼요, 백 퍼센트!”
다부지게 다시 명함을 다잡은 최민아가 강민우에게 다가갔다.
머지않은 미래에 빅스타가 될 둘의 어린 시절을 보자 신선한 감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두 남자가 오디션 현장에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얼핏 본 강민우의 청바지 역시 빅스였다.
* * *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배우 전서윤이 칸 광고제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들른 것이다.
“명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아니, 제가 찾아 봬야 하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근처에서 촬영이 있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전서윤이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꽃다발을 도혁에게 안겼다.
칸의 여왕이 될 여배우에게 칸에서 수상했다며 축하의 인사를 받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심장께가 간질거리는 감각에 미묘한 미소를 짓자 전서윤이 얼굴을 붉혔다.
“잘생긴 남자가 그렇게 웃으면 여자들 오해하는 거 알죠?”
“서윤 배우님은 가만히 보면 눈이 좀 낮으세요.”
“네?”
최민아가 어제의 감동을 떠올리며 양손을 가슴에 모았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잘생긴 남자들이 세상에는 많더라구요.”
“명도혁 대표님도 충분해요. 저 배우들 많이 보잖아요.”
“뭐 명 대표님도 괜찮긴 한데 말이 되게 잘생기신 거죠.”
“어우, 도대체 뭘 보고 왔길래 최 팀장 종일 헛소리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찬양을 계속하는 최민아를 타박하며 탁기준이 TV를 틀었다.
“명 대표가 말했던 다큐멘터리가 이 시간대에 나온다는 건가?”
“다큐멘터리요?”
전서윤이 되묻자 도혁이 머리를 긁으며 민망해했다.
“어쩌다 보니 반강제로 출연하게 됐습니다.”
“와! 다큐멘터리라니.”
“이 시대의 기업이라고 전문 직종 종사자의 일상을 다큐로 제작한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바쁜데 더 바쁠 것 같네요.”
탁기준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제 배를 가리켰다.
“그나저나 TV 나오려면 다이어트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화면발 잘 받으려면.”
“우리 스코틀랜드 가서 다들 돼지 됐자나.”
“하긴 칸 광고제 팀이 다들 몇 킬로씩 쪄서 왔죠. 우리 다이어트합시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TV 출연하는 걸 수도 있는데요.”
“너무 마른 남자 싫은데…….”
전서윤의 작은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직원들의 음성에 묻혀 버렸다.
“이참에 휴게실에 헬스 기구들 좀 들이고 운동 시간표도 짜버려.”
“콜! 관리팀에 말해서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건강해야 열심히 부려먹지. 아침저녁으로 체크해 가면서 꼼꼼하게 관리해.”
“넵! 대표님!”
도혁과 직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서윤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거 알아요?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DW애드는 회사 같지 않고 조금, 동아리 같아요.”
“전혀 실례 아니고 제가 추구하는 회사가 그렇습니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일하지만 실적은 좋은 회사요. 원래 광고 회사가 프리하긴 한데 이상한 군기 같은 게 있어요. 그거 싫어서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팀워크가 좋은 게 성장의 비결인 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분위기가 좋아요?”
“저 빼고는 빌런이 없어서요.”
빅스 홍보물을 뒤적거리며 도혁의 말을 듣던 최민아가 대꾸했다.
“누가 빌런이라구요?”
“최 팀장.”
“이런! 진짜 빌런 짓 한번 해봐요? 내일 빅스 오디션장에서 진상 부리면 저인 줄 아셔요!”
최민아의 말에 전서윤이 되물었다.
“빅스요? 그 브랜드 요즘 핫한데. DW에서 진행해요?”
“내일 모델 오디션입니다. 남자만 볼 겁니다.”
“오호. 궁금하네요. 해외에선 청바지 광고가 남자 톱스타 등용문이나 다름없잖아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거예요. 아니면 제가 그렇게 만들고.”
도혁의 야심만만한 말끝에 최민아가 끼어들었다.
“엄청나게 잘생긴 빅스타 새싹을 둘이나 영입했다구요. 진짜 말도 안 되게 대박적으로 건물 뿌시게 잘생겼어요. 온 지구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잘생긴 사람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구요. 그런 점에서 이번 오디션 너무 중요해요.”
“너무 잘생긴 거 별로지 않아요? 부담스럽고. 저는 도혁 씨처럼 매력적인 스타일이 더…….”
“네??”
전서윤을 보는 최민아의 눈이 커졌다.
“잘잘익선이에요!”
“광고쟁이가 취향의 다양성마저 무시하는 거냐? 어? 명도혁이 더 취향인 사람도 있고 해야 지구가 돌아가는 거지.”
“대표님이야말로 크리에이티브 하신다는 분이 절대 미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시네요. 디자인하는 입장에서 양감 질감 입체감이 완벽하게 떨어지는 피사체를 만난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말로 최민아를 어떻게 이기나.
도혁은 떨떠름하게 두 여자에게 줄 커피나 내려주기로 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도혁과 전서윤은 미남론을 설파하는 최민아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에서의 기세와 달리 최민아가 수줍은 표정으로 오디션장에 들어왔다.
도혁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 그녀를 불렀다.
“카페랑은 달라. 스텝으로서 품위 지켜라.”
“그, 그럼요. 그런데. 잠시만 지금 저 꿈꾸는 거 아니죠?”
최민아의 시선이 대기실의 인원을 훑었다.
한 명 한 명 볼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하긴. 성현우 옆에 강민우, 그 옆에 서요섭, 또 옆에 김빈…….
대배우로 톱스타로 성장할 네 명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무려 광고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
2020년대의 토크쇼에서나 들었을 법한 에피소드가 눈앞에 펼쳐졌다고나 할까?
“주접떨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오늘은 스텝이야. 명심해.”
“알, 알겠어요. 이 팀에 넣어주셔서 성은이 망극합니다. 고객 만족 100퍼센트, 아니, 400퍼센트입니다!”
최민아 고객님이 완벽하게 만족하시고, 드디어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한수철과 사전 접촉한 빅스의 마케팅팀장과 의류 디자이너 그리고 도혁과 권아영이 심사에 참여했다.
권아영의 표정 역시 최민아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상기되어 있었다.
물론 흥분의 결은 달랐다. 권아영은 사업가로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테니까.
아직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모델 에이전시에 막 들어갔을 네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성현우가 들어서자 몇몇의 심사 위원이 저절로 나오는 탄식을 뱉었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또 다르구나. 이것이 대스타의 아우라인가.’
그저 잘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응집된 카리스마가 있었다.
반항기가 서린 듯한 눈빛과 반듯한 콧날, 거기에 다부진 턱선이 남성미를 더했다.
카메라 앞의 김민우와 마찬가지였다.
카페에서 보았던 다감한 이미지는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면서 반짝반짝 빛을 더했다.
간질간질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미소는 남자가 봐도 일품이었다.
로맨스 대본이 들어오면 김민우를 반드시 거쳐 간다더니. 세기를 대표하는 로코 스타의 태동을 보는 기분이었다.
모델 위의 모델 서요섭은 듣던 대로 기세가 대단했다.
“런웨이에 이대로 세워도 손색없겠어요. 에이전시 어디에요. 모델 오래 했어요?”
“등록한 지 2주 되었습니다.”
천재란 이런 것이로구나.
심사 위원의 감탄과 함께 서요섭이 나가고 대망의 김빈이 들어왔다.
“합격입니다.”
“네?”
마케팅 팀장의 짧은 말에 김빈이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권아영의 눈에서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이번엔 사업가가 아니라 최민아와 같은 팬심이 분명했다.
“공감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조각상이네요.”
얼음마녀 사업가 권아영이 최민아로 변해 버렸다면 말 다 했지.
그렇게 오디션이 빠르게 종료되고 당연하지만 네 명의 합격자가 배출되었다.
권아영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네 명에게 다가가 계약 조건을 들이밀었다.
“경공이라도 쓰는 줄 알았네. 휘리릭 움직일 때 바람 소리 들었냐?”
“그러니까. 최민아 팀장은 또 왜 저러고 있어?”
최민아가 권아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넷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펜과 수첩이 들려 있었다. 사인은 받고 싶은데 망설여지나 보다.
아직 신인도 아닌 오디션 합격자인데 민망하겠지.
도혁이 다가가 슬쩍 귀띔해 주었다.
“왜 망설여. 내가 품위 지키라고 해서 그러냐?”
“그것도 그렇고.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웃기지 않을까요?”
“아니. 얼른 가서 사인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어. 이왕이면 네 명 다 같이.”
“정말요? 그래도 될까요?”
“지금은 당연히 해줄거야. 물론 지금은.”
역시 경공을 선보이며 최민아가 떠나고, 빅스 마케팅 팀장이 감격한 얼굴로 도혁에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