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63화 (163/252)

광고 천재 명도혁 163화

“칸으로 갈 사내 경쟁 PT 우수작을 발표합니다.”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전 직원이 모였다.

대회의실의 앞쪽에서는 인턴들이 기대 만발한 눈빛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우선 심사평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3팀의 시안을 보자마자 멘토들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DW애드 코리아의 직원이라면 팀 명을 가리고 봐도 어느 팀장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도혁은 정면의 화면에 펼쳐진 시안을 차례로 응시했다.

“멘토의 개성이 깊이 관여한 부분에 관하여 오랫동안 논의를 했는데 저희가 결국 강태오 국장님에게 설득당했습니다. 아카데미이므로 멘토가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고, 멘토 역시 한 사람의 팀원으로서 아이디어를 낼 자격이 있다고 말입니다.”

“아…….”

“또한 국내에서는 최초로 참가하는 국제 광고제인 만큼 소기의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멘토들의 이름도 함께 기재해 출품하기로 했습니다. 세 작품 모두 조금 다듬으면 국제 광고제에 제출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입니다. 이 말은 곧, 이번 사내 경쟁 PT에서 탈락한 팀이 없다는 뜻입니다.”

“와! 대박!”

팀원들끼리 서로를 마주 보며 기뻐했다.

도혁이 그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한쪽 입매를 끌어올렸다.

“아직 기뻐하기는 이릅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죠.”

도혁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인턴들을 돌아보았다.

안심했던 인턴들의 눈이 댕그랗게 커졌다.

“멘토들이 관여한 작품은 DW애드 코리아의 이름으로 칸라이언즈 부분에 정식 출품될 것입니다. 30세 미만의 영라이언즈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하는 판단이에요. 왜냐하면 강태오 국장님 연세가 서른을 넘겼거든요.”

직원들이 풉풉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팔짱을 낀 채 벽을 기대고 서 있던 강태오가 포기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영라이언즈에 출품할 대학생만의 작품을 다시, 사내 경쟁 피티를 통해 출품하는 것입니다.”

“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출품 전까지 아직 시간 있잖아요. 3주나 남았네.”

“헉! 대표님!”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각 멘토들이 잘 가르쳐 주었으니 이제 스스로 잘할 수 있겠죠? 이번 경쟁 피티에서는 멘토 제외하고 순수하게 인턴들끼리 작품을 만듭니다.”

“아…….”

마라톤을 다 달린 선수에게 한 번 더 뛰고 오라는 말이었다.

인턴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도혁이 그들을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이것이 광고 회사입니다. 죽을 것 같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경쟁 PT가 끝나면 또 다른 브랜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광고주, 처음 만나는 시장. 다시 처음부터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미디어까지 믹스해 캠페인을 제안하는 일. 이것이 바로 광고입니다.”

직원들이 하나둘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번 칸 광고제를 준비하는 두 번의 프레젠테이션 과정을 통해서 그 어떤 이론 수업보다 효율적으로 광고의 세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꼰대 같은 말을 덧붙이자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서 더 나올 것이 없을 것 같아도 또 쥐어짜면 나오는 게 아이디어예요.”

“하아.”

“그럼 3주 후 출품작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하겠습니다. 출품할 수 있을 만큼의 퀄리티 있는 작품이 나온 팀은 전원 정직원 전환하겠습니다. 이상!”

“오! 정직원!”

병 주고 약도 주는 도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팀원끼리 모여 곧바로 회의를 시작하는 인턴들이었다.

대회의실을 나오며 이진우가 속삭였다.

“우리 후배님들 귀엽습니다. 엄청 열심히 하네요.”

“우리 진우 팀장 후배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봐야겠지. 살아남는 놈만 안고 간다.”

이진우와 대화를 나누던 도혁이 손끝을 말았다.

“손가락이 벌써 간질간질한데? 저 인턴끼리 만드는 광고는 보너스 개념이고 우리가 어제 봤던 작품들 손 좀 보고 번역도 해서 얼른 출품합시다. 팀장급까지 전부 모이시죠!”

원안을 다듬고 고치며 훨씬 더 국제 광고제, 특히 칸이 지향하는 스타일의 시안으로 변모해 갔다.

“이제 제출만 하면 되는 건가요?”

최종안의 컨펌이 완료되었다.

* * *

-명도혁 대표님 되십니까?

국제전화였다. 강한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를 구사하는 여자였다.

마침 국장들과 점심을 먹던 참이었다.

막 수저를 들려는 찰나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칸라이언즈 최종 리스트에 세 작품이나 올랐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와우, 세 작품이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에이전시로는 최초이고 동양계로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 특별한 이벤트를 부탁드리려고 하는데요.

“이벤트라면?”

한참 동안 칸 광고제 주최 측과 통화를 마친 도혁이 전화를 끊자마자 국장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야, 우리 대표님 영어 잘하네. 그래, 뭐래? 붙었대?”

“리스트 업 발표한대? 전화 온 거 보니까 된 것 같은데.”

“언제 오라는 건가?”

도혁이 수저를 들며 국장들을 진정시켰다.

“일단 밥부터 드시죠.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에헤이. 지금 밥이 넘어가는가! 어떻게 됐어?”

“강연을 해달라는데요?”

“강연? 칸 광고제에서 세미나를 부탁했다고?”

“오 마이 갓!”

탁기준이 비명을 지르고 강태오와 차현우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도혁이 눈치를 주었다.

“조용히 좀 하세요! 쉿!”

“사내 식당인데, 뭐. 다들 이해할 거야. 이야~ 칸 광고제에서 강연이라니.”

“그럼 리스트 업 된 게 확실한 거네?”

“네. 무려 세 작품 전부 칸라이언즈 부문 최종심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주최 측에서 강연 부탁한 거구요.”

“이야~ 와. 오 마이 갓. 언빌리버블!”

아는 영어는 총동원해서 감탄하던 국장들이 조금 진정하자 도혁이 아쉬운 소식을 함께 전했다.

“인턴끼리 했던 작품은 아쉽게도 영라이언즈 부문에 오르지 못했어요.”

“예상했었잖아. 국내 광고제 스타일이라고 명 대표가 말했었지?”

“네. 광고공사 공모전이었다면 수상권인 작품들이었어요. 국내 공모전은 학생다운 작품을 선호하니까요.”

“국제무대는 아무래도 다르지.”

“맞습니다. 오로지 크리에이티브 하나만 보는 진검 승부예요. 광고 톤도 많이 다르구요.”

아직은 더 가다듬어야 할 것을 알았지만 손을 대지 않고 출품해 보았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도 있을 테니까.

“괜찮아. 인턴 애들도 세계의 벽을 실감해야지.”

“맞습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칸라이언즈 최종심에 올라간 작품에도 이름을 모두 올렸잖아요.”

“그렇지. 수상하게 되면 대한민국 최초 아닌가? DW애드 코리아 인턴 하길 잘했네, 할 거다.”

“네. 직원도 모자라는데 전원 정규직 전환은 할까 합니다. 근태 나쁜 친구들은 모두 나갔죠?”

“그렇지. PT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들 튕겨 나가고 남은 놈들이 아주 똘똘해.”

처음부터 인턴십으로 굴리기만 하고 내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기에 모두 정직원으로 충원하기로 했다.

좋은 일만 있었음에도 도혁은 저절로 새어 나오는 한숨을 감추지 못했다.

“저만 숙제를 받았네요. 수상작을 설명하는 피티와 광고 철학에 대해 설파해 달라는데요?”

“아이고. 광고 철학이라니 준비하느라 고생 좀 하겠는데? 전 세계 광고인이 모두 모이는 자리잖아.”

“그러니까요.”

“그래도 가문의 영광이야. 국내에서도 크게 보도될 거니까 세미나 준비 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대표님.”

세미나 준비와 더불어 참석자 범위도 문제였다.

마음이야 전 직원과 인턴을 모두 데리고 가고 싶지만 유럽까지 모두 함께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까지 데리고 가나. 일단 인턴들은 어떡할 건가?”

“팀장 맡았던 친구들은 데려가야죠. 전원은 무리구요.”

“오케이. 그럼 나머지는?”

“이번 칸 광고제, 우리 회사 워크숍 삼아서 참석했으면 하거든요.”

칸으로 갈 직원 선정을 마친 도혁과 국장들이 사무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마치 개선장군과 같은 모습에 커피를 타고 있던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만 느꼈니? 저분들 어깨 왜 저렇게 올라갔어?”

“저도 무언가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만화에서나 보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데요?”

“뭐예요, 대표님. 우리 무슨 일 있어요?”

최민아가 큰 소리로 묻자 국장급들이 승천하는 광대를 추스르지 못했다.

모두 하회탈처럼 웃고 있는 걸 본 도무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도대체 뭡니까? 국장님들 어깨랑 광대가 동시에 하늘 위로 올라가 있어요.”

“민아야, 진우야. 도진아. 그리고 저어기 구석에서 자고 있는 황도준. 도준이 좀 깨워봐.”

“네. 대표님.”

이 시끄러운 곳에서도 점심시간이라며 단잠을 자고 있던 황도준이 입가의 침을 닦으며 다가왔다.

“무슨 일 있습니까? 뭐 동네잔치라도…… 어?”

“어! 잠깐만!”

이제야 감을 잡은 직원들이 동시에 도혁을 바라보았다.

“맞아. 우리 칸으로 간다.”

“칸! 무려 프랑스!”

“봉주르 봉주르! 샹젤리제!”

환호성이 쏟아지고 아는 프랑스어가 총출동했다.

인턴들은 부둥켜안고 눈물까지 보였다.

도혁이 소란한 직원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추가 고지 사항을 알렸다.

“공문으로도 공지하겠지만 일단 지금까지 참가한 인턴은 모두 정직원 전환할 예정입니다.”

“와!!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프랑스 칸 광고제에 초청을 받았잖아요. 참석 범위를 결정해야 하는데요. 일단 인턴은 팀장들만 참석합니다.”

“넵!”

정직원 전환으로 들떠있던 인턴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도혁이 직원들을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마음은 다 함께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아서 유감입니다. 칸 광고제 참가자는 워크숍도 병행할 예정인데요. 이번엔 국장과 팀장급 그리고 황도준, 도무진 대리까지 참여하겠습니다.”

“저요? 저 말입니까?”

“우리 프랑스 가냐? 바게트? 대표니이이임!”

황도준, 도무진이 방방 뛰며 기뻐하는 가운데 누군가 질문했다.

“국장님들 모두 가시는 건가요?”

“차현우 국장님이 사무실에 남아서 진두지휘하기로 하셨습니다.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 정도의 일정이지만 완전히 비울 수는 없으니까요.”

국장급 회의를 통해 차현우가 자발적으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동생이 수험생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남아야 하지 않냐고 자원한 것이다.

도혁이 차현우를 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유감스럽긴 하지만 저는 차 국장님과 남은 직원들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곧 다른 국제 광고제에서도 수상할 거고 그 광고제의 발표자는 차현우 국장님이 될 거니까요.”

“오!!”

“또 광고제 수상과 별도로 남은 직원분들은 해외 워크숍의 기회를 반드시 제공할 것을 약속합니다. 올해 안에 꼭 공약을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와!! 좋습니다! 대표님.”

다음 광고제에 가면 된다며 공지했지만, 도혁은 차현우를 따로 불러 유감을 표했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요. 세미나가 아니면 제가 남고 싶은 심정이에요.”

“별말을 다 하네. 곧바로 클리오 가면 되잖아. 난 예전부터 유럽보다 미국이 좋더라.”

“꼭이요. 선배 꼭!”

“걱정 말고 잘 다녀와. 그래 봐야 주말 제외하면 며칠 안 돼. 한국은 내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

다음 날부터 칸으로 갈 직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여행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해변이고, 광고제가 시내에서 열리니까…….”

“클럽에 대표님은 빼고 갈까요?”

“다 들리거든요!”

강연 준비에 골머리를 썩이는 도혁을 보곤 탁기준이 장난을 쳤다.

“광고 철학을 설파하실 대표님은 시간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아, 더 머리가 아프네요.”

“농담이고. 다 같이 칸 해변을 샅샅이 뒤지며 놀다 옵시다. 언제 또 유럽을 가보겠어. 안 그래?”

유럽을 또 언제 가보겠냐는 말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도혁이 강태오를 바라보며 툭 말을 던졌다.

“고향 한번 가시죠. 지난번에 가려다가 못 간 스코틀랜드요.”

“오! 좋지. 내가 풀코스로 안내할게.”

“여행과 더불어 광고주 수주하려구요.”

“뭐? 스코틀랜드에서 광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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