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60화
몰랐는데 나, 대상 신경 쓰고 있었네?
도혁이 머쓱한 표정으로 트로피를 받았다.
한국광고대상을 꼭 받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작은 상을 받으니 좀 얼떨떨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막상 젊은 크리에이터 상과 네티즌 상을 받아드니 기분이 묘해졌다.
젊은 크리에이터 상은 전생의 명도혁도 받은 적이 있었거든.
올해의 젊은 크리에이터, 명도혁
신인상과는 다르게 한 해에 쏟아지는 광고 중 가장 트렌디한 광고를 만든 창작인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다.
도혁이 물끄러미 투명한 금빛이 반짝이는 트로피를 내려다보자 사회자가 말을 붙여왔다.
“올해의 트렌드 세터 명도혁 대표님 반갑습니다. 여기 네티즌 상도 의미가 깊어요. 올해 처음 생긴 상인데 시상식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이 직접 투표로 선정한 작품입니다. 출품작 중 ALL과 엑슨이 뽑혔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뜻깊은 상이군요.”
“좋은 상 두 개를 동시에 받으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도혁이 무대의 가운데에 놓인 스탠딩 마이크로 한 발짝 다가갔다.
“먼저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을 주신 주최 측과 네티즌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광고의 충성도가 제품의 매출에 기여함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보다 밀도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캠페인을 만들겠습니다. 끝으로 지구에서 가장 유능한 우리 DW애드 코리아 직원들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꺅!! 대표님!”
“대표님 파이팅!”
가만있을 리가 없는 직원들이 소리쳤다.
도혁이 한 손을 들어 화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모두 달려 나왔다.
황도준이 사회자를 보고 양해를 구했다.
“저희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무대로 올라오지 못했는데 기념 촬영 한번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실컷 찍으세요. 녹화 시간 있는 시상식도 아니고 제한 없습니다.”
주섬주섬 플래카드를 펼치는 황도준과 도무진을 보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도혁에게 꽃을 쥐여주고 치즈라고 소리치란다.
촌스럽고 소란했지만 이것도 기념이지 싶어 인증샷을 찍고 자리로 돌아왔다.
대기석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닥거렸다.
“거, 조금 아쉽게 됐습니다. 다들 AT캠페인이 올해 대상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말이죠.”
“별말씀을요. 큰 상을 두 개나 받았는데요.”
“하긴 아직 젊으시니 기회가 많겠습니다.”
그래도 대표 광고라는 게 쉽게 나오지를 않는데…… 라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다 들립니다. 도혁은 남자의 혼잣말을 듣고 절반은 수긍했다.
일생을 걸쳐 대표 광고 한번 만들어보는 것이 소원인 광고인이 많았다.
아무리 미디어마다 캠페인을 들이부어도 소비자가 한눈에 척 알아보는 광고는 의외로 흔치 않았다.
대중성에 화제성, 거기다 작품성까지 더해진 크리에이티브는 더 드물고.
전생의 명도혁도 그놈의 대표 광고에 어지간히 집착했었더랬지.
이 남자의 말처럼 AT그룹 캠페인 정도라면 대표 광고라 할 만했다. 만약에 전생에 이 정도 사이즈의 광고를 진행했다면 평생 다시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법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광고 천재 명도혁이잖아?’
오글거리는 플래카드의 문구를 속으로 따라 읽으며 도혁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어제보다 오늘 더 좋은 광고를 만들 자신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실력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환생을 떠나서 내 회사를 꾸리며 카피라이터가 아닌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기량 향상에 향상심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혁은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무대 쪽으로 돌렸다.
무대에서는 공로상 수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대 가득 이진태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다음은 공로상입니다. 대한민국 광고인이면 모를 수가 없는 분이네요. 광고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시죠. P대 광고홍보학과의 이진태 교수님! 공로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알고 있었으면서 전혀 몰랐다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이진태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특유의 쇼맨십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제가 연말 시상식 사회를 제법 여러 분야에서 봤거든요. 이렇게 발랄한 공로상 수상자는 처음이네요.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야, 공로상. 공로상이라.”
이진태가 트로피를 받아들곤 성큼성큼 마이크에 다가섰다.
“뒷방 늙은이가 된 걸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공로상이라니. 하하.”
“아닙니다! 교수님 사랑합니다!”
“교수님! 이진태! 이진태!”
뜨거운 응원과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이 자리에 모인 광고인의 대부분이 그의 직간접적인 제자였다.
그의 광고를 보고 듣고 꿈을 키운 광고인들이 입을 모아 이진태의 이름을 외쳤다.
“스톱! 스토토옵! 이놈의 인기는 하여간에 식지를 않아요. 마음은 청춘인데 어느덧 공로상 수상자가 됐군요. 흠, 나이 먹으면 가장 서글픈 일이 뭔지 압니까?”
“뭔가요!”
“심장이 멎는 겁니다.”
카피처럼 던진 이진태의 말에 소란했던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이미 너무 많이 해본 거지. 뭘 봐도 시큰둥하고 뭘 먹어도 맛이 별로 없어요. 모조리 다 경험해 본 것들이라 감회가 없다는 겁니다.”
“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 숫자가 주는 무거움에 현직에서 물러나 교육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심장이 안 뛰는 광고쟁이를 어디다 쓰겠습니까?”
순간 이진태가 도혁 쪽을 바라보았다.
“근데 어디서 미친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그, 뭐냐 심장 살리는 거, 심폐소생술을 막 하는 겁니다. 다시 뛰라고, 정신 차리라고, 당신 광고인이라고!”
“…….”
“더 가르칠 게 없어 보이는 놈이 내 밑에 들어오더니 악착같이 노하우라는 노하우는 다 빼먹고 갔어요. 이 늙은이 가슴에 불을 지피더니 광고에 걸신이라도 들린 듯 미친 듯이 대한민국의 캠페인들을 먹어치웠죠.”
잠깐 말을 끊은 이진태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 친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고, 감각 있고, 잘 파는 광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 젊은 시절처럼 말이죠. 아주 똑같아.”
“하하.”
“여러분 제 멈춘 심장을 살린 주치의이자 저의 제자, DW애드 코리아의 명도혁 대표를 소개합니다.”
이렇게 수상과 함께 소개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앞으로 나가 이진태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이진태 교수가 뜨겁게 도혁을 포옹하며 소리쳤다.
“예전에는 제자들이 이진태 밑에서 배웠다고 자랑들 했다지만, 이제 내가 자랑하고 다닙니다. 명도혁이 내가 키웠다고.”
“교수님. 축하드립니다.”
“선생 하기를 아주 잘했어. 이 맛에 교단에 서는 거지. 암.”
다시 한번 이진태가 도혁의 어깨를 두드리고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다잡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수상을 이어가겠습니다. 이진태 교수님 들어가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올해의 광고대상인가?”
“네. 후보작부터 보시겠습니다.”
기라성 같은 올해의 광고들이 화면을 스쳐 갔다. 그중 두 개의 광고가 DW애드에서 진행한 캠페인이었다.
도혁은 이미 상을 두 개나 받았기에 무덤덤하게 영상을 흘려 보고 있었다.
상금이 제법 되니 직원들과 스테이크를 먹을까, 등심을 구울까 고민하면서.
순간 대한민국 광고제를 진행한 주최 측 회장이 앞으로 걸어 나와 최종 수상작을 발표했다.
“올해의 광고대상. DW애드 코리아의 AT그룹 캠페인입니다. 축하합니다.”
“네?”
“뭘 그렇게 놀라나. 내가 언질을 줬을 텐데?”
이진태가 황당해하며 얼른 앞으로 나가라고 등을 밀었다.
얼떨결에 밀리듯 나간 도혁에게 회장이 트로피를 내밀었다.
“축하드립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AT 캠페인이 올해의 광고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사회자가 AT그룹 광고에 대해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DW애드 코리아에서 진행한 AT그룹 광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캠페인인 ALL은 선명한 색감과 강인한 이미지로 충격적인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였습니다.
전 세대를 아우르며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간파해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캠페인입니다. 두 번째는 AT케이블의 광고로 소비자에게 따뜻한 미소를 선사했습니다.
DW애드 코리아는 올해 ALL을 포함하여 엑슨, 오늘 유업 등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대한민국 광고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의 대상은 소비자의 가슴에 오래 기억될 좋은 광고를 만든 명도혁 대표에게 돌아갔습니다. 축하합니다!”
긴 소개가 끝나고 회장이 도혁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명도혁 대표, 앞서 상을 두 개나 받아서 대상은 못 받는 줄 아셨지요?”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명도혁 대표가 받을 게 너무 뻔해서 진행에 변주를 좀 줬습니다. 안 그러면 시상식이 너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셨군요.”
“설마 상을 두 개나 받은 젊은 사람한테 대상까지 몰아주지는 않겠지? 이런 착각을 이용했다고나 할까요.”
“아닙니다. 대상이 아니라도 충분히 값진 상이었습니다.”
“아무튼 축하합니다. 올해는 이렇게 몰아줘도 뒷말이 없을 겁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광고였습니다.”
상을 받아들이면서도 대한민국 광고대전 대상 수상작이라며 AT그룹의 전면 신문광고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광고쟁이가 맞기는 맞나 보다.
소감 발표를 하라는 말에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자 다시 멀리서 직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대표니이이임!”
“그래. 플래카드 펼쳐라. 어차피 할 거, 빨리 찍고 가자.”
“네!!”
대상 소감은 짧고 굵게 한마디만 했다.
시상식의 끝 무렵이었고 모두 지쳐 있었으며 명도혁도 빨리 등심을 굽고 싶었으니까.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광고를 만들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의 마지막 소감은 다음 날 AT그룹 전면 광고에 그대로 인용되었다.
[AT그룹 캠페인 대한민국광고대상 수상.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AT가 되겠습니다.]
* * *
칸 광고제의 상세 공모가 떴다.
“드디어 공고했네요. 와, 이번에 상금이 엄청난데요? 영크리에이티브 부분 더 강화한대요!”
“올~ 직독직해냐? 우리 무진이 영어 잘하는데?”
“에이, 이 정도는 읽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읽는 건 잘하지 않습니까?”
직원들이 우르르 도무진의 주위에 몰려들어 공고문을 확인했다.
“대표님, 이번에 영크리에이티브 더 뽑는 거 알고 계셨던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딱 맞아떨어져요?”
“우연이지, 뭐.”
“와, 잘되는 사람은 넘어져도 돈 줍는다더니 대표님이 그런가 봐요.”
칸 광고제가 언제부터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상금을 크게 걸었는지 전생을 세세하게 기억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잘됐네.
운까지 따라준다면 정말 못 할 게 없지 않겠나.
도혁이 건배하듯 커피 잔을 높이 들며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비록 살벌했지만 말이다.
“준비는 잘했겠지? 내일 칸 광고제 출품할 작품 경쟁 피티 진행합니다.”
“하아. 경쟁 피티요?”
멘토들의 입에서 한숨이 터지고 도혁이 최종 미션을 선언했다.
“세 팀 중 두 팀만 출품할 생각입니다.”
“네??”
“경쟁이 있어야 피티가 재밌지. 그럼 내일 봅시다.”
“대,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