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59화
“프랑스요?”
“칸 광고제 말씀이십니까?”
요 앞 편의점 가자는 말처럼 칸 광고제에 가자는 도혁의 말에 인턴들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뭘 그렇게 놀라나. 광고 공사 공익광고 대전이나 이런저런 공모전은 대학에서도 준비할 수 있잖아. 인턴까지 하면서 지원할 일은 아니고.”
“와! 와!”
“거창하게 아카데미까지 붙인 마당에 뭐라도 해야지. 안 그래?”
수십 개의 눈이 반짝이며 집중하자 도혁이 부담스러워했다.
“젊으니까 좋네. 눈에서 내는 빛이 번쩍번쩍해서 눈이 다 부셔. 자, 팀은 멘토와 섞어서 진행할 예정이고. 보면 알겠지만 일이 많은 회사라서 공모전에 전념하진 못하겠지만, 선배들이 최선을 다해 도울 거야.”
“네! 대표님.”
“일단 한수철 AE를 어디로 넣을까…….”
순한 맛 탁기준 한수철 이름이 나오자 인턴들이 서둘러 딴청을 피웠다.
그걸 본 도혁이 웃으며 경고했다. 공식적인 공지였다.
“자사 광고 분석 자료 보고 결과에 따라서 멘토 배정하겠습니다. 한수철 AE가 아무래도 공모전에 적응하기 힘든 팀과 함께하지 않을까? 그럼 이상! 열심히들 합시다.”
“파이팅입니다!”
한수철을 피하기 위해 인턴들이 결의에 찬 파이팅을 외쳤다.
* * *
다음 날 아침 회의에서 도혁은 팀장들의 보고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공모전 준비에 돌입했다.
“팀부터 짜도록 합시다. 세 개 팀 정도로 나눠서 멘토를 한 명씩 배정할까 하는데요.”
“세 명이라……. 여유가 되겠어? 지금 진행 중인 광고주가 죄다 대형이다 보니 팔로우 업이 만만치가 않아.”
“알고 있습니다. 두 팀으로 줄일까요?”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가고 한수철과 최민아가 공모전 멘토로 뽑혔다.
“수철이는 AE 기획을 잘하니까 제작 지망 친구들 주고 붙이고 AE는 하나면 떼줘. 발표할 만한 친구로.”
“민아 쪽은 기획 쪽 인턴들을 좀 더 넣고. 이 친구 똘똘해 보이던데. 어때?”
“최민아 밑에서 디자인 배울 인턴, 복 받았네. 도준이도 확 늘었잖아.”
“제작 쪽은 어깨너머로 익히는 게 크지. 도준이가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도 있고.”
인턴 명단을 가지고 분주하게 팀을 나누고 있었다.
강태오가 잠시 고민하더니 팀 하나는 본인이 맡겠단다.
“팀 하나 더 쪼개봐. 내가 붙어서 진행해 보지.”
“올~~ 강 팀장님 여유 되겠어요? 어느 광고주건 팀장님만 찾는데요. 컨펌도 많고.”
“내가 좀 많이 산만하잖아. 그거 이용해서 공모 쪽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재밌을 것도 같고.”
하나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을 창작으로 녹여보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도혁이 끄덕이며 마지막 팀을 배정했다.
“그럼 강태오 팀장님, 한수철, 최민아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영어 감수는 탁기준 팀장님이 수고해 주세요. 저는 최종 컨펌을 보겠습니다.”
“이야, 우리 칸 광고제 수상하는 겁니까!”
“첫 번째 도전이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구요. 세 팀 다 철저히 공모전 분석해서 한번 진행해 봅시다.”
“참, 수상은 명 대표가 하잖아. 대한민국광고대상. 시상식이 언제라고?”
역시 이진태 교수는 본인의 희망대로 나이에 비해 철이 덜 든 모양이다.
입 싸게 광고대상 수상 소식을 모두에게 말하고 가버린 모양이었다.
도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다.
“직원들 모두 같이 만든 광고인데 대표라는 이유로 저만 받습니다. 상금 받아오면 거하게 회식이나 하시죠.”
“연말인데 또 소고기 먹는 건가.”
“그럼요. 참 그래서 말인데요.”
연말을 맞아 도혁이 계획한 것에 대해 말했다. 팀장급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 * *
DW애드코리아의 첫 번째 인사명령이 떴다.
[기획국장 탁기준.
제작국장 강태오.
매체국장 차현우.
기획팀장 한수철.
제작1팀장 최민아, 제작2팀장 이진우.
황도준, 도무진 제작팀 대리를 명함.]
게시판에 붙은 인사 발표 공문을 보고 이진우가 진심으로 기뻐했다.
“오, 저 팀장 된 겁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지난번 직원 공채 때 직제 개편하려다가 목표 매출액 달성 후로 미뤘지.”
“달성하셨군요!”
“이 멤버와 함께 했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그동안 고생 많았어. 축하한다. 진우야. 아니, 이 팀장.”
“아, 이 팀장이라니!!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표니이이임!”
멀찌감치 황도준 도무진이 뛰어오고 있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승진이라니요!”
“그래. 축하한다. 오늘은 치킨 사 먹어도 돼.”
“오옷.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승진이네요!”
뒤따르던 최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명함 통을 건네주었다.
“부산스럽게 호들갑 그만 떨고 이거나 받아.”
“어! 명함이네요. 이야, 기획팀 대리 황도준!”
“대표님께 말씀 듣자마자 미리 만들어둔 거예요. 대리님들 받으시고 열심히 일하세요!”
“넵! 팀장님!”
팀장 소리에 담담하던 최민아의 입꼬리도 미세하게 올라갔다. 너무 미세한데?
도혁이 최민아가 더 활짝 웃을 수 있도록 팀장의 메리트를 강조했다.
“기존 팀장급 연봉으로 괜찮겠어? 더 올려줘?”
“자, 잠시만요. 나 이제 강태오 팀장님 정도로 받는다는 거예요?”
“어. 더 올려줄까 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끔뻑이던 최민아가 드디어 입매를 시원하게 끌어올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머! 강 팀장님 급여 대충 아는데. 나 정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더 준다니까요. 최민아 팀장님.”
“아니, 잠시만 나 진정 좀 하고. 그렇게 퍼줘도 정말 괜찮아요?”
“싫으면 말고.”
일부러 돌아서는 척하던 도혁의 팔이 최민아에게 곧바로 붙들렸다.
“에이, 그렇다고 이렇게 가버리시면 어떡해요.”
“막 퍼줘도 괜찮아. 회사 규모에 비해서 매출이 지나치게 높은 편이라. 이번 인턴들 공모전 실적 좋으면 대거 채용할까 생각 중이다.”
“우와.”
“그러니까 잘 지도해서 실적 내봐. 국제 광고제 수상은 국내에서 이례적이니까.”
“넵! 걱정 마세요. 제가 도준이 도진이처럼 뼈를 갈아서…….”
“최민아 팀장님 뼈까지는 정말, 정말 필요 없습니다.”
돌아선 도혁의 시선이 대회의실로 향했다.
어깨에 뿜뿜 자신감이 들어찬 한수철이 벌써 인턴들을 잡고 있었다.
도혁이 턱짓으로 회의실을 가리켰다.
“최민아 팀장님, 분발하셔야겠습니다. 한수철 팀장님은 벌써 공모전 아이데이션 시작하셨습니다만?”
“이런, 배신자. 저 얼른 들어가 볼게요. 대표님, 고마워요!”
직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이 맛에 대표 하는구만.
워라밸이고 뭐고 돈 열심히 벌어와서 직원들 나눠주고 회사 규모도 키우고.
도혁은 오랜만에 사장으로서 뿌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느긋하게 블랙 티 한 잔을 한입 입에 물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00으로 시작하는 국제전화였다.
“김철준 대표님!”
-그래. 오랜만이구만. 잘 지냈어? 대한민국 광고제를 휩쓴 기념으로 상 받는다면서.
“벌써 소문이 미국까지 났습니까?”
앞으로 뭔가 소문내고 싶을 땐 반드시 이진태 교수를 통해야겠다.
도혁이 결심하며 김철준에게 안부를 물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많이 힘드시죠?”
-그렇지 뭐. 불모지 땅에서 아저씨 둘이 아주 죽을 맛이야. 제작국장이랑 우리 그냥 세탁소나 차릴까 농담하고 그래.
“아이고, 그래도 태강애드 매출 그대로더라구요. 역시 기반이 탄탄해야 하나 봅니다.”
사실 미국 진출기보다 이게 더 궁금했다.
무려 대표와 제작국장이 비웠는데도 회사가 잘 돌아가게 만드는 노하우 말이다.
-남은 사람들이 믿을 만하니까 그렇지. 광고주가 믿을 만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수상하게 된 거 축하하고, 자네 빨리 와. 젊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와줘야지, 이거 노친네들 허리 꺾이게 생겼다고.
“네. 알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소문이 미국까지 났으니 슬슬 상 받을 준비를 해볼까.
* * *
통화를 마친 도혁이 귀가해 미리 준비해 둔 턱시도를 꺼내입었다.
연말 연기대상 수상도 아닌데 부산스럽게 직원들을 동원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혼자 상만 받고 올 생각이었다.
멀끔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거울 속 남자의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회귀 후 제법 흐른 시간 속에서 그동안 진행했던 광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리고 시상식장에 도착해서는 경악하고 말았다.
[경 대한민국 광고대상 한국이 낳은 광고천재 명도혁! 축]
“이, 이게 다 뭐야.”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명 대표 축하해!”
“아니, 다들 회사에서 근무하고 계실 시간 아닙니까! 왜 여러분이 여기서 나와요!”
국장부터 팀장급까지 모두 시상식장 앞에 모여 있었다.
플래카드까지 걸고 직원들이 더 신이 난 모습이었다.
“연말 광고계의 축제 아닙니까! 우리 회사의 위상을 보여줘야죠. 업무 끝내고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혼자 오려고 했더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끝나고 회식이나 합시다. 상도 받고 승진도 했으니.”
“오! 좋습니다! 끝나자마자 그길로 뛰어가시죠!”
시상식이 열리는 대연회실로 이어진 길의 모든 곳에 광고가 가득했다.
올해를 빛낸 광고를 진열해 놓은 것인데 DW애드 코리아가 진행한 것이 제법 많았다.
“이야, 여기서 여기까지, 쭉 우리 캠페인이네요.”
“그러게. 이렇게 보니까 더 끝내준다.”
“정녕 이것이 우리가 만든 광고란 말입니까!”
직원들의 너스레를 뒤로하고 따로 마련된 수상자 대기석에 앉았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는 광고 회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모두 도혁을 흘깃거리거나 경계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동안 DW애드 코리아가 보여준 성과가 엄청났기에 저절로 따라붙은 견제의 시선이었다.
둥근 테이블 위에 동석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명도혁 대표님 되시죠?”
“그렇습니다. 대일애드 기획국장님이시군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영광이지요. 업계 빅스타 아니십니까.”
“과찬이십니다.”
이 같은 인사를 수십 번 정도 반복한 뒤에야 식순이 시작되었다.
올해를 빛낸 CF가 화면 가득 펼쳐졌다.
복도에 전시된 것과 마찬가지로 DW애드 코리아에서 진행한 캠페인이 모두 실려 있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광고대전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힘찬 개회 선언과 함께 신인상과 공로상 등 몇 가지 상의 시상이 이어졌다.
이미 이진태에게 대상일 거라는 말을 전해 들었기에 별다른 긴장감은 없었다.
사회자가 큐시트를 넘기며 마이크를 잡았다.
“다음은 이번에 처음 생긴 상 두 가지입니다. 젊은 광고인 상과 네티즌 상인데요. 트렌디한 감각을 추구하는 광고인에게 뜻깊은 상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럼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뜸을 들인 사회자가 도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분, 요즘 각종 매체에서 스타이시죠? 어제도 제가 즐겨보는 신문에서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요. 광고계의 트렌드 세터, DW애드 코리아 명도혁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생각지도 못한 수상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도혁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직원들도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다른 상을 수상하면 올해의 광고 대상은 어려운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