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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57화 (157/252)

광고 천재 명도혁 157화

“광고를 사 왔습니다.”

“그래, 아까 들었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말 한 거 본인도 알죠?”

당찬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인턴은 눈빛부터 제와제와 아들과 달랐다.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도혁에게 상품권을 내밀었다.

“광고주께서 지역 라디오 광고에 상품권 협찬을 하시겠다고 해요. 그래서 여기 계시는 매체팀 선배님께 말씀드려서 상품권 양식 받고, 프로그램도 말씀드렸습니다. 매체팀 선배님이 시간대 잘 사 왔다고 하시던데요.”

“아, 그래서 사 왔다고 했군요. 좋은 시간대 가져왔나 보네.”

도혁의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번져갔다.

이제 제대로 된 인턴이 일을 가져왔구만.

진지한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이는 인턴을 보고 물었다.

“광고주가 어딥니까? 시간대는?”

“저기, 미용실 프랜차이즈입니다. 시간대는 12시 버글버글쇼이구요.”

“아하. 이 브랜드 압니다. 저도 자주 가는 곳이에요. 시간도 딱이네.”

인턴이 제법인데? 매체팀에서 왜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기, 그런데 대표님. 이렇게 작은 회사도 광고하시나요?”

“충분히 큰 광고주인데요? 이 미용실 전국 프랜차이즈에요. 직원 모으면 우리 회사보다 훨씬 많을걸?”

“그래도, AT텔레콤이나 오늘유업 같은 대기업 광고만 하시는 줄 알았어요. 업계에서 워낙 스타시니까.”

“스타요? 내가?”

천재면 몰라도 스타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혁이 창업 당시 다짐했던 초심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광고주의 크기가 아니라 가능성을 주목합니다. 작으면 함께 크면 되고 큰 기업은 더 키우면 되니까. 죽어가면 살리고.”

“아…….”

“기업의 마케팅 주치의라고 생각해요. 그럼 편하고 책임감도 생길 거니까.”

“정말 좋은 말씀이에요. 감사합니다!”

감격한 인턴이 두 번이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래요. 남은 과정도 열심히 해요. 지켜볼게.”

“대표님이 지켜봐 주신다구요? 네! 최선을 다해서, 아니, 뼈를 갈아서 열심히 할게요!”

뼈 간다는 놈 또 나왔네.

도혁은 슬쩍 장난기가 올라왔다.

부드럽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곤 인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럼, 내일은 내가 직접 인턴들과 만나볼까요?”

순한 맛 탁기준, 한수철과 같은 눈빛이 번뜩였다.

* * *

“제가 저랬습니까?”

“그랬다니까. 명 대표는 수철이보다 한술 더 뜨는구만.”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었다. 강사만 바뀌었을 뿐.

인턴들이 줄지어 앉은 회의실 앞 도혁이 단상에 올라가 인사를 시작했다.

회의실 뒷자리 벽에 기댄 탁기준과 한수철이 속닥거렸다.

“어제 수철이가 하는 게 재밌어 보였나 보다. 뭘 대표가 직접 나서고 그러나.”

“아, 제가 저랬다니.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하는 것 같은 광경이네요.”

“똥폼은 더 했지.”

“탁 팀장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탁탁

도혁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두드리며 소리쳤다

“직원 여러분은 잡담들 그만하고 업무 모드로 돌입합니다. 자, 어제 상품권 광고 성공한 분들은 앞으로 나오세요.”

“네!”

“이분들은 모여서 한 팀을 구성합니다. 왜 이 광고주를 선택했는지, 어떻게 광고를 팔았는지, 그리고 왜 이 시간대의 프로그램을 추천했는지 의견을 교환해 보시죠.”

일단 한 팀을 모아놓고 실패한 인턴들을 추슬러 팀을 만들었다.

실패 인원은 의외로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여기는 일단 팀을 꾸려서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새 미션을 받도록 합니다.”

“아, 못 한 사람들만 팀을 만드는군요.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답하면서도 팀원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열등생만 모아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도혁이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실패팀 남자에게 물었다.

“왜 죽을상입니까? 이제 인턴십 시작인데요.”

“그게…….”

“말씀하세요. 들을 테니까.”

“저기, 제가 광고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조금 무서워요.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말 맺음을 못 하는 걸 보니 내성적인 건 맞나 보다.

도혁이 실패한 팀의 인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여기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많죠? 카피 쪽도 있을 거고.”

“아, 네. 그렇습니다.”

“네. 맞아요.”

“영업까지 해 오면 그게 제작인가, AE지.”

도혁이 편하게 말하자 인턴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특장점이 제각각이죠. 걱정 말고 인턴십 참가하세요. 난 여러분의 장점만 살릴 거니까.”

“네! 대표님!”

“그리고 내성적이라고 말했던 분. 내성적인 건 사회생활에서 단점이 아닙니다. 소통의 방식이 다르다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접근해서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이 관리자가 할 일이에요. 더불어.”

도혁이 말을 끊으며 인턴들을 바라보았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소비자의 특색을 파고들어 소통한다는 건, 광고의 본질적인 미덕이기도 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대표님.”

“그럼 저도 업무 보러 가야 하니까 미션을 주고 자리를 뜨도록 하겠습니다.”

의기소침해 보이는 남자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고 도혁이 일어섰다.

다시 단상으로 걸어나가 두 번째 미션을 알려주었다.

“두 번째 미션은 그동안 우리 DW애드에서 진행한 광고를 분석하는 겁니다. 어떤 의도로, 어느 타깃을, 어떻게 소구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해 발표하기 바랍니다. 이틀 드리죠. 이상입니다.”

회의실 문밖으로 나오자 출입문에 붙어서 듣고 있던 황도준, 도무진이 엄지를 추어올렸다.

“대표님, 멋집니다!”

“카리스마 어쩔. 역시 명도혁 대표님!”

“으이구, 이거 들으려고 아침부터 문짝에 붙어 있냐?”

“무슨 얘기하시는지 궁금해 가지고. 저희는 인턴 안 했잖아요.”

“행운인 줄 알아. 인턴살이 고되다.”

* * *

대표실로 들어가려는데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도혁의 은사인 이진태 학과장이었다.

“어! 교수님!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 잘나가는 제자님 보러 왔지.”

“일단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도혁이 차를 내어오며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간혹 찾아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한창 바쁠 나이 아닌가. 일에도 때가 있어. 신날 때 실컷 일해야지, 늙으면 신명도 안 나요.”

전생의 경험에 빗대어 그의 말에 매우 동감하는 바이다.

도혁은 차마 대놓고 공감은 못 했지만, 아무튼 이진태를 반갑게 맞았다.

“이렇게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DW애드 코리아 큰상을 받는다고 해서 축하하려고 왔지.”

“네? 저는 처음 듣는 말인데요.”

“아, 공식적인 연락은 내일쯤 하나 보네. 이런, 요 근처에 강의가 있어 왔다가 들렀는데 입 싼 늙은이가 됐구만.”

원래 마당발에 소식통이시잖아요.

학생이었던 도혁에게도 업계 동향을 자주 알려주곤 했던 고마운 은사님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제자의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을 것이다.

“무려 대한민국 광고 대상이야.”

“아, 영 크리에이티브나 신인상 정도겠군요.”

“어허, 본인이 젊은 줄 아는구만.”

“이 정도면 젊은 게 아니라 어리죠.”

나이가 깡패라며 이진태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주름진 눈에 가득 흐뭇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후계를 양성한다는 기쁨이 생각보다 엄청나구만. 잘 키운 자식 하나 열 마누라 안 부럽다더니.”

“그런 말도 있습니까?”

“뭐, 카피로는 뭔 말을 못 만드나.”

이진태가 그윽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후계 양성의 기쁨이라. 도혁은 이진태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주기로 했다.

“이번에 저희가 인턴십을 진행하고 있어요. 인턴십과 더불어 아카데미를 열어서 인재를 키워서 잡아먹으려구요.”

“오! 그래? 현장에서 아카데미라. 그것도 명도혁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거라니, 인턴들 복 받았구만.”

“그래서 말인데 강의 한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살아 있는 광고계의 전설 이진태 학과장이었다.

도혁 역시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광고인 중 한 명이다.

“아마 교수님 용안을 뵙는 것만으로 저 친구들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오호, 이거 솔깃하구만. 그래 좋지. 내 오후 일정이 비어 있으니 한 두어 시간 특강하도록 하지.”

“특강비는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어이, 돈이라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다하나.”

사례를 하는 것이 되레 섭섭하다며 이진태가 손사래를 쳤다.

“명색이 내가 명도혁이 선생인데, 돈을 받고 도와주기는 싫으네.”

“정 그러시면 제가 선물이라도…….”

“그러지 말고 우리 거래를 하면 어떤가?”

“거래요?”

“그래. 우리 학교에 강의를 좀 나와주면 어떤가 말이야.”

역시 이진태는 만만치 않은 마케터다.

그의 명성을 이용한 특강을 부탁했더니 똑같이 갚아달란다. 그리고 한술 더 뜬다.

“정기적으로 나와주면 더 좋고.”

“정기적이라면, 강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부교수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네만.”

도혁은 일단 일회성 강의만 수락했다.

“한두 번 특강은 나가겠습니다. 현재로서는 사업이 우선이라서요. 사실 인턴십도 오래 고민하다가 시작한 거라 아직 대학 강의까지는 여력이 없네요.”

“그래. 내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생각 바뀌면 연락해.”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 강의가 뒷방 늙은이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또 재미가 있어요. 응, 하다 보면 혹시 아나, 명도혁이 같은 천재가 하늘에서 떨어질지.”

이진태 교수가 아쉬운 듯 도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강의에 들어간 이진태가 인턴들을 둘러보곤 고개를 기울였다.

도혁은 강의실의 뒤편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진태 교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감회가 새로웠다.

나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톡톡 튀는 강의 스타일에 놀라우면서도 느끼는 바가 많았었는데.

이진태가 도혁과 눈짓을 교환하곤 곧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랑 기분이 색다르구만. 인턴은 실전 아닌가.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이진태 교수님!”

광고계 레전드를 만나자 인턴들의 군기가 더 바짝 들었다.

수십 개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이진태에게 완전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 과 애들이 이렇게 열심히 들으면 좋을 텐데.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제 조는 놈도 있어요. 역시 사람은 희소성이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는다니까?”

“교수님 존경합니다!”

인턴 중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딱딱하던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지고 이진태가 강의를 시작했다.

“실전을 배우러 오신 분들이니 혼자 떠드는 것보다 우리 인턴들과 같이 캠페인 카피 하나라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인턴들 괜찮으신가?”

“네! 당연합니다.”

“보자, 우리 인턴들 모여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팀별로 앉아 있는 인턴들 틈으로 들어간 이진태가 DW애드 코리아의 광고를 분석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오호, 숙제가 있었구만.”

“그렇습니다. 교수님. 자사 광고 분석해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진태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더니 단상 앞으로 올라갔다.

“내가 그 분석이라는 걸 어떻게 주물러서 컨셉을 도출하는지 보여주지.”

“우와! 멋집니다!”

이진태가 펜을 잡고 화이트보드 앞에 서자 인턴들의 시선의 그의 손끝으로 이동했다.

[명도혁을 광고하다.]

크게 휘갈긴 글씨를 보고 도혁이 기댄 등을 떼어냈다.

뭐라고? 명도혁을 어떻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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