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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53화 (153/252)

광고 천재 명도혁 153화

“광고에 뜻이 있다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어. 광고 공사 공모전도 있고, 지금처럼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있지. 왜 기업에서 학생 공모전을 연다고 생각해?”

“학생들에게는 순수한 열정이 있잖아요. 아니면 어른들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의견을 낼 수 있어서일까요?”

“맞아. 감이 있네.”

도혁의 말에 막내가 꽃을 피운 화분처럼 활짝 웃었다.

“현우 선배, 오늘 나 막내랑 아이데이션 회의 좀 하려고 하는데요.”

“그래. 우리 막내 소원 풀겠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데리고 회의해 봐. 둘째는 뭐 하나?”

그림에 소질이 있다던 둘째는 벌써 이진우와 거실 한쪽 귀퉁이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AE들은 도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훈훈한 집들이에서 순식간에 회의실로 돌변해 버린 듯한 광경이었다.

“이런, 디자인팀은 그냥 노는 거 맞지? 집들이 와서도 일 시킨다고 원망할라.”

“넵. 여긴 카툰 그리면서 놀고 있어요. 신경 쓰지 마시고 회의 진행하시죠. 어린 친구에게서 좋은 아이디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입에 바나나 하나를 물곤 황도준이 소리쳤다.

회의라는 말에 다시 막내가 화르륵 열정을 불태웠다.

“언니 쪽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얼른 회의해요. 아이템이 뭐라고 하셨죠?”

“빛.”

“네??”

동그란 전구만큼 커진 눈동자가 끔뻑이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AE들이 웃으며 대꾸했다.

“명 대표 우리한테 하듯이 그렇게 선문답할래? 애 놀라잖아.”

“제품이 빛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잖아요. 놀리지 말고 제대로 말씀해 주세요. 저 진지하다구요.”

“놀리는 거 아니야. 진짜 빛이 이번 광고의 아이템이니까. 바로 전기. 광고주는 한국전력공사야.”

“아! 난 또.”

도혁은 일단 첫 번째 아이데이션에서 채택된 시안에 대해 말해주었다.

“현재로서는 빛이 밝히는 세상이라는 컨셉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전구의 입장에서 담담히 바라보는 광고를 기획 중이야.”

“오! 전구가 주인공이 되어서 바라본다구요? 와!”

“괜찮은 것 같아?”

“네!! 정말 좋아요. 그 광고에서 더 세부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신 거예요?”

“그건 아니고 이번 한국전력광고를 시리즈로 내보낼까 해. 담담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하면서도 조금 더 임팩트 있는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하면 좋을 것 같거든.”

“따뜻한 임팩트. 훈훈하고 따뜻한. 감동…….”

막내가 눈을 살포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어이구, 귀엽네.

명현진처럼 호랑이 같은 누나가 아니라 이런 여동생이 있으면 업고 다니겠구만.

아마 차현우 선배도 그런 마음으로 동생들을 위해 노가다까지 마다하지 않고 했던 거겠지.

훈훈한 생각을 깨고 차현우가 호통을 쳤다.

“산더미 같은 집들이 설거지 태오랑 내가 다 하니까 아이디어 제대로 내라! 어!”

“그림 그리는데 조용히 좀 해봐. 뚱땡이 오빠야.”

전혀 뚱뚱하지 않은 돼지 가족이 계속 티키타카를 하는 가운데, 생각에 잠겼던 막내가 번쩍 눈을 떴다.

“제가 얼마 전에 뭉클하게 감동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어요.”

“계속 말해봐.”

“제가 합창부인데 작년에 선생님하고 양로원 봉사를 갔었거든요. 사실 봉사 점수 따려고 억지로 간 건데…… 할머니들이 너무 예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거예요.”

“합창이라. 그래서?”

“그때 하모니가 딱 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화음이 딱 맞아떨어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어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고 우리 팀원들 전부 다 그랬어요.”

“좋은 경험 했네.”

“그 뒤로 우리 합창부 아이들끼리 모여서 양로원으로 노래 부르러 가요.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요.”

합창부. 양로원. 하모니.

도혁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광고가 있었다.

‘이걸 변형해 보면 어떨까? 그대로 하면 재미없으니까 빛의 특성을 따와서…….’

“빛의 특성을 따와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합창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막내가 도혁의 생각을 읽은 듯 똑같이 말했다.

도혁이 놀라 아이를 바라보았다. 막내는 벌써 수첩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 * *

“떨리냐?”

“안 떨리겠어요? 하아.”

한국전력공사 경쟁 PT의 날. 차현우 선배의 막냇동생을 데려가기로 했다.

광고주에게 미리 협조를 구해 학생 참관인 자리를 만든 것이다.

큰 PT를 직접 보게 된 막내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막상 회의실 앞에 서자 떨리는 모양이었다.

부들부들 손이 떨리는 게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차현우가 그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네가 떨면 오빠도 떨려. 오빠 발표하는 데 힘을 줘야지.”

“응. 진정하고 열심히 지켜볼게. 파이팅!”

작은 주먹을 쥐어 파이팅을 외치며 막내가 마음을 다잡았다.

“자, 그럼 들어가 봅시다. 오늘은 전체 참관이 아니라 다른 회사 발표는 못 봐. 그게 조금 아쉽네.”

“아니에요. 저는 현우 오빠 PT만 보면 돼요. 우리 아이디어가 어떻게 광고로 만들어지는지 너무 보고 싶어요.”

중3밖에 안 된 햇병아리 광고인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 들어가자. 이따 잘 부탁합니다.”

“넵!”

참관인일 뿐 아니라 오늘 발표 중에 역할 하나를 맡겼기에 더 긴장하고 있을 막내에게 힘을 불어넣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첫 번째 PT이신 거죠? DW애드 코리아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발표자 차현우라고 합니다.”

차현우가 무대 앞으로 나가고 도혁과 막내가 참관인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의 한가운데 마련된 심사 위원석에는 대표로 보이는 남자와 기획홍보 과장이 자리했다.

홍보 전문가라던 공사 사장은 의외로 젊어 보였다.

차현우가 간단히 자신과 회사의 연혁을 소개한 뒤 본격적인 발표를 시작했다.

[빛. 세상을 밝히는 따뜻한 시선.]

“한국전력공사와 국민이 가장 맞닿아 있는 제품이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 방방곡곡 모든 사람을 비추는 것이 바로 전기입니다.”

차현우가 미리 준비한 샘플 하우스 모형에 작은 전구를 꽂아 넣었다.

모형을 보곤 사장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준비를 많이 하셨군요. 저건 가정집 거실의 모형 같은데요”

“네. 지금부터 이 전구의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전구의 시선이요?”

“그렇습니다.”

차현우가 화면에 광고 콘티를 띄우기 시작했다.

까맣게 암전된 화면 위로 광고의 제목이 한 글자씩 찍혔다.

[당신의 빛, 아버지 편.]

전구의 시선으로 여자 성우의 내레이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마찬가지로 담담한 톤의 그림으로 콘티가 펼쳐졌다.

이진우의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그림이 따뜻한 내레이션과 잘 어우러졌다.

갓 태어난 남자 아기를 클로즈업한 첫 번째 컷.

“당신이 방금 태어났군요. 뽀송하고 귀여운 얼굴. 환하게 밝게 비춰주고 싶어요.”

아이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 느리게 화면이 페이드아웃되고 다음 콘티 화면이 교차되어 나타났다.

초등학생이 된 남자아이가 야구 방망이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어디서 맞고 들어온 듯 울상이다.

“이런, 많이 다치지 않았어야 할 텐데. 자세히 얼굴을 비춰봐야겠어요. 얼마나 다쳤나 보자.”

전구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이어지고 다음 화면이 나타났다.

사춘기가 된 남자가 엄마와 싸우는 모습이다.

“남자 중학생들은 흔히 반항을 하곤 하죠. 빛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는 나이니까요.”

이후 남자는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는다.

“아, 오랜만에 집에 새 생명이 태어났어요. 정말 기쁘네요.”

빛이 잠깐 꺼진 듯 암전되었다.

남자가 전구를 갈아 끼운다. 다시 환해진 빛으로 새 생명을 비추는 전구.

남자의 손길에 답이라도 하듯 한번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모습이었다.

다음 콘티의 그림이 이어졌다.

남자가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남자의 아들이 자라고 마지막으로 정년퇴직을 한다.

마지막으로 직장에서 돌아오며 터덕터덕 문을 여는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빛이 더 밝게 빛을 낸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당신의 노고로 세상이 밝게 빛났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마지막 내래이션이 울려 퍼지며 차츰 화면이 암전된다. 이어 카피가 펼쳐졌다.

[당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밝힙니다.

세상의 모든 빛, 한국전력공사.]

“두 번째 CF 콘티안 이어서 보시겠습니다.”

[당신의 빛, 어머니 편.]

아버지 편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일생을 차곡차곡 보여주는 콘티가 이어졌다.

의인화된 전구의 시선으로 읽어 내려간 어머니의 인생. 아기로 태어나 굴곡진 삶을 거쳐 가족과 칠순 잔치를 하는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펼쳐졌다.

환하게 웃는 여자의 주름진 얼굴 위로 포근한 빛이 내렸다. 그 빛을 따라 카피가 조용히 얹어졌다.

[당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밝힙니다.

세상의 모든 빛, 한국전력공사.]

남자 성우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이진우의 따뜻한 그림체가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언제나 실사의 샘플 CF를 준비해 온 도혁이었지만, 이번 시안만큼은 그림으로 준비했다.

이진우의 그림 톤과 잘 맞아떨어지는 아이디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과물은 굉장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뭉클한 무언가를 가슴에 남기는 좋은 콘티였다.

가끔은 그림이 실사보다 와닿을 때가 있으니까.

두 번째 시안에 찍힌 카피가 사라지고 차현우가 막 마이크를 다시 들려는 순간이었다.

회의실에 공사 사장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기획홍보과장이 함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막내가 흥분한 눈빛으로 도혁을 바라보자 그가 눈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공사 사장이 차현우보다 먼저 입을 떼었다.

“따뜻한 광고 잘 봤습니다. CF 콘티 그대로 나가도 되겠는데요?”

“실사를 원하시면 촬영하는 것도 괜찮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톤 유지하면서 진행할 자신 있습니다.”

차현우가 AT케이블 광고의 할머니 화면을 크게 확대해 보였다.

“아, 이 광고 인상 깊게 봤는데, DW애드에서 진행했군요.”

“맞습니다. CF 역시 뭉클하게 만들 수 있으니 이 부분은 충분히 논의를 거쳐서 판단하시면 됩니다. 물론 현재 콘티안을 손봐서 확정해도 좋습니다.”

“오호, CF안도 상당히 궁금하네요. 이거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성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데요?”

“국민 전체를 타깃으로 하는 기업 이미지 광고이니만큼 소구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는데요, 여자와 남자의 일생을 시간 단위로 분할해 전기의 시선에서 인생을 관통한다는 내용으로 만들어봤습니다. 모든 타깃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죠.”

“아버지, 어머니로 표현한 것도 좋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빛이라는 카피도 마음에 들고요.”

“빛의 특성을 이용해 보았습니다. 그럼 이 광고의 시리즈로 이어갈 세상의 또 다른 빛을 함께하실까요?”

“시리즈가 또 있습니까?”

공사 사장이 의자에서 등을 완전히 떼어냈다.

차현우가 웃으며 참관인석을 바라보았다.

“네. 그 CF의 시안을 보시기 전에 노래 한 곡 들으실까요?”

“노래요?”

도혁이 끄덕이며 막내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나갈 준비 하라고.

막내가 교복의 옷매무시를 만지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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