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52화
의인화 전략.
사물에 사람의 시선을 투영해 광고에 적용하는 기법이다.
다시 모인 아이디어 회의 현장에서 도혁과 한수철은 함께 짜낸 아이디어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제 아이디어부터 말씀드리죠. 이 전구를 메인 모델로 세우려고 합니다.”
“전구를 모델로? 혹시 의인화 기법을 쓰자는 건가?”
팀장급이 단번에 도혁의 의도를 파악했다.
“맞습니다. 전구가 사람이 되어 관찰자 시점으로 내레이션을 하면 어떨까 합니다. 빛은 사람이 사는 곳 어디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을 부각시키는 겁니다.”
“전기는 어디서든 우리를 보고 있고, 지켜주고…….”
“밝혀준다는 거죠. 바로 한국전력공사에서 만드는 이 빛이 말입니다.”
도혁의 말에 강태오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펼쳤다.
“어제 팀장급에서 이성 소구 광고를 가볍게 만들어봤거든?”
“그사이 시안까지 만드셨다구요?”
“간단하게 라인만 잡아본 거야.”
강태오가 광고 시안을 펼쳐 보였다.
그걸 본 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기업 이미지 광고네요. 우리 대단하지? 끝내주지? 자부심 뿜는 스타일이요.”
“맞아. 눈에 거슬리지 않고 전형적인 광고로 카피 한 줄 예쁘게 뽑으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하지만, 임팩트는 없지.”
“카피에 의존한다라…… 사랑해요, 엠지 광고처럼 말이죠?”
“맞아. 기업 이미지 광고의 바이블이지.”
반가워요, 젊어요, 등 여러 카피를 시리즈로 기획 중이던 엠지 광고는 당시 ‘사랑해요’로 카피를 통일하며 전 국민에게 기업의 이미지를 각인했다.
“하지만 이 광고 역시 감성 소구에요. 기업 이미지 광고지만 휴머니즘과 사랑을 강조했죠.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캠페인입니다.”
“맞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감성 소구가 효과적인 느낌이야. 이 시안을 보면 알겠지만, 민간 기업의 사내 홍보물 같은 느낌이 계속 나더라고.”
“가장 어린 연령부터 노인까지 사용하는 제품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죠. 그럼 감성 소구 쪽으로 가닥을 잡고 가도록 합시다.”
“참, 명 대표가 의인화 얘기하다 말았잖아. 계속 설명해 봐.”
팀장들의 말에 도혁이 백열등을 천장 위로 들어 올려 보였다.
“지금부터 제 말에 집중해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우리 사무실의 드라이한 형광등은 잊어버리고 이 둥근 머리 전구만이 켜져 있어요. 여기는 사무실이 아니라 집이구요.”
“오케이.”
“이 집의 천장에서 가족들을 관찰하는 겁니다. 내레이션은 전구의 입장에서 진행됩니다.”
“주인공은 하나? 아니면 가족 전체?”
“한 명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가장이 되고 노인이 될 때까지의 과정이 흘러가면서 전 타깃을 소구할 거니까요.”
“오! 좋다!”
차현우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큰 소리로 공감했다.
“의인화도 마음에 들지만 공간적 의미에서 타깃을 따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타깃을 모두 표현하는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서사가 자연스럽잖아.”
“어제 수철이랑 머리 좀 짰죠. 그리고 기업 이미지 광고이다 보니 시리즈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집중하지 않고?”
“지금 말씀드린 광고안이 따뜻하고 분위기도 있지만 임팩트 있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한수철이 도혁의 말을 받아 설명을 이어갔다.
“사랑해요, 엠지 캠페인은 카피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너지를 냈다면 이번 한국전력 광고는 따뜻한 분위기의 광고와 임팩트 있는 프로모션을 묶어서 시리즈로 내면 어떨까 합니다. 어제 명 대표와 둘이 쥐어짜 봤죠.”
“그래? 시리즈라. 방금 말한 의인화 광고 말고 나온 게 있어?”
“계속 연구 중입니다.”
이번에는 도혁이 몇 가지 생각해 놓은 기획에 대해 말했다.
“차가운 전기가 따뜻한 빛으로 바뀌는 휴머니즘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 중이에요. 노란빛의 전구가 주는 포근한 색감의 따뜻한 톤으로 가되, 추가로 프로모션을 더하고 싶은데, 다들 아이디어를 생각한 후 다시 모이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 오늘 성과가 제법 있으니까 여기서 찢어지고 머리 좀 더 굴려서 다시 만나 보자. 아니, 지금은 못 찢어지네. 우리 집들이 가야 하잖아.”
탁기준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차현우 팀장, 오늘 집들이한다고 했지?”
“어. 우리 집 천방지축들이 회사 언니 오빠들 온다고 완전 기대 중이야.”
“참, 차 팀장 동생들이 둘 다 학생이지? 어이구 늦겠다. 꼬맹이들 기다리는데 바로 출발하자고.”
휴지와 세탁 세제를 잔뜩 사 들고 차현우가 이사한 집으로 향했다.
도혁은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하자마자 놀라 눈을 끔뻑였다.
설마 여기 마포구 N아파트?
20년 전에 비교해서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아파트 중 하나로 뉴스에 거론되던 곳이었다.
왜 이 지역에 투자할 생각을 못 했지?
계속 강남, 잠실권만 노리고 있었는데 틈새시장인 데다 현재 매우 저평가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현우 선배, 이사 간 곳이 이 집이에요? 첫 부동산 투자가 이 아파트라구요?”
“사는 집인데 투자랄게 있나. 도혁아, 나 아파트 처음 살아본다.”
“와, 여기 정말 괜찮은데. 저평가 지역이지만 지금도 제법 시세 나가지 않아요?”
“탁 팀장이랑 주식도 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받았지 뭐. 그래도 제법 벌어서 엄두라도 냈어. 진짜 고맙다, 명 대표.”
“아니, 지금 나한테 고마운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 다른 문제가 있어?”
문제라니요. 이건 사건이라고요.
도혁이 차현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광고 천재 아니고 부동산 천재인가 보다. 보는 눈이 밝아서 광고를 잘했던 건지도.
“선배는 역시 천재예요. 나중에 잘되면 나 모른 척하지 말아요.”
“모른 척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내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일단 들어가자.”
앞으로 열 배는 더 오를 아파트의 안으로 들어가자 중고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반겨주었다.
“와! 오빠네 회사 직원들이구나. 이쪽으로 오세요!”
“저희가 집들이 준비 다 해놨어요. 치킨 좋아하시죠?”
식탁 위에는 치킨과 짜장면 같은 배달 음식과 과일과 과자가 예쁘게 세팅되어 있었다.
“차 팀장, 여동생들이 이렇게 귀엽다는 말은 왜 안 했어. 토깽이 같은 여동생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
“저 돼지 토끼들 말하는 거? 내가 먹어도 배가 고파요. 저것들 먹이느라고.”
“오빠!!!”
이 집도 현실 남매구만.
두 여동생은 돼지 토끼라는 말에 입이 툭 튀어나와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도 살뜰하게 밥상을 챙기며 이것저것 내어 오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러곤 도혁에게 인사를 잊지 않았다. 언니로 보이는 아이가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명도혁 대표님 맞으시죠?”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직원분들이 대표님이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저는 대표님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은 분일 줄 알았는데, 젊으셔서 놀랐어요.”
“내가 현우 선배보다 어려요.”
“와! 그렇구나!”
아이의 얼굴이 화사하게 빛났다.
“대표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오빠말로는 대표님이 은인이래요.”
“맞아요! 큰 오빠 지방에 돈 벌러 갔을 때는 정말 암울했다구요. 부모님도 시골에 계시고.”
어느 틈에 둘째 동생도 도혁의 곁으로 다가와 인사치레를 했다.
“현우 선배! 왜 애들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고 그러셨어요. 나한테 고맙다고 애들이 자꾸 그래.”
“고마우니까 고맙다고 하는 거지.”
“그래도요. 저렇게 말하니까 내가 60대 대표님 같잖아요. 애들아 제발 편하게 말해. 나 현우 선배보다 더 어리다니까?”
“이것들 곧 본색 드러낼 거야. 낯가리느라고 지금 조심하고 있는 모양인데 천방지축이야. 안 그러냐? 돼지들?”
“아오, 기껏 집들이 상 차려놓으니까 은혜를 모르는구만. 현우 오빠!”
차현우가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헤드락을 걸었다.
“막내야, 콜라 어딨냐. 직원들 목 막혀 죽겠다.”
“아, 시원하게 냉장고 안에 뒀는데 잠시만.”
재빠르게 컵과 음료를 내어 오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는 손길이 여간 빠릿빠릿한 것이 아니다.
조그만 손이었지만 살림살이를 만지는 손길만큼은 전업주부 같다고나 할까.
그 익숙함이 어딘지 모르게 아릿했다.
“아이들이 살림을 잘하네요.”
“둘이서 밥도 하고 살림은 거의 다 했었어. 아버지는 시골에 계시지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왔거든.”
“그랬구나. 학생인데 너무 잘한다 싶었어요.”
“이제 호강시켜 줘야지. 내 꿈이 저 돼지들 손에 물 안 묻히는 거다. 돼지니까 누워서 다른 사람이 해준 밥만 먹게 하고 싶어.”
“오빠. 다 들리거든?”
으르렁거리며 막내가 커피를 타서 가져왔다.
기특하고 귀여운 마음이 들어 도혁이 계속 말을 붙였다.
“막내는 앞으로 뭐 하고 싶어?”
“나 현우 오빠, 아니지 도혁 대표님처럼 광고하고 싶어요.”
“뭐?”
직원들이 동시에 돌아보며 손사래를 쳤다.
“얘들아, 이 바닥에 발 들이지 마. 발들이면 빼기가 힘들어요.”
“맞아. 세상이 다 광고로 보이고 마케팅으로 보여. 누가 안 시켜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치만, 그치만.”
막내가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이며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돈 많이 벌어서 아파트도 살 수 있고, 무엇보다 현우 오빠랑 매일 같이 살 수 있어서 저는 너무 좋은데요. 그게 다 광고 덕분이잖아요.”
“에이, 그건 명 대표님이 다른 회사보다 돈을 훨씬 많이 줘서 그런 거야.”
“그럼 오빠네 회사에서 일하면 되잖아요.”
“이런, 직원 하나 더 써야 하나.”
도혁이 아기 대하듯 머리를 쓰다듬자 막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두고 봐요. 꼭 대표님 회사에 취직해서 우리 오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공모전에서 상도 받고, 돈도 더 많이 벌구요.”
“오호. 차현우 선배보다 더 엄청난 광고쟁이가 되시겠다.”
“엄청 멋있어 보여요. 현우 오빠 집에서 회의 준비하고 공부하는 거 보면 나도 하고 싶다구요. 재밌을 것 같은데.”
“흠, 그래? 그럼 우리 막내가 마케터로서 재능이 있는지 한번 볼까?”
도혁이 눈을 빛내며 회의 때처럼 진지해지자 탁기준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너 오늘 잘못 걸렸다. 명 대표 한번 회의 시작하면 아이디어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데.”
“정말 저 회의하는 거예요? 광고 아이디어 회의요?”
아이가 제 방으로 달음박질치듯 달려가 수첩을 가져왔다.
“오늘 회의할 아이템이 뭔가요?”
“아이템이래. 너 좀 귀엽다?”
“장난하는 거 아닙니다. 탁기준 팀장님 맞으시죠? 치킨 다 드셨으면 같이 회의하시죠.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의자를 당겨 앉는 모습이 제법 진지했다. 순수한 열정에는 진지하게 접근해야지.
도혁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걷혔다.
“학생들 아이디어가 도움이 될 때가 많아. 광고 공사에서도 중고생 공모전을 열고 있고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지. 이유가 뭔지 알아?”
막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