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50화 (150/252)

광고 천재 명도혁 150화

“거기 스크롤 쭉쭉 올려봐. 이야, 이거 볼수록 귀엽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DW애드 코리아의 이미지 광고를 론칭했다.

비용과 효율을 고려해 도무진이 만든 온라인 패키지와 옥외, 그리고 시험적으로 버스 광고를 진행했다.

도혁과 탁기준이 일찌감치 출근해 온라인 배너 광고를 확인하고 있었다.

웹사이트의 왼쪽과 오른쪽에 위치한 배너.

왼쪽엔 워크숍에서 도무진이 제출했던 광고가 걸려 있었다.

“스크롤 올릴 때마다 DW애드 코리아 글자 쪽으로 돈이 쌓이는 게, 볼 때마다 아주 흐뭇해.”

“직관적이죠? 오른쪽 배너도 마찬가지구요.”

탁기준이 스크롤을 쭉 밀어 올렸다.

오른쪽 배너에서는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스크롤이 올라가자 수면이 위로 올라가고 상단에 적힌 DW애드의 글자 하나를 잡고 매달리며 살아났다.

도혁과 탁기준이 워크숍에서 기안했던 ‘마케팅을 구원하다’ 시안을 실은 것이다.

“마케팅을 구원하다, DW애드 코리아, 크으, 카피도 찰떡이구만.”

“기업의 구원투수가 바로 광고대행사니까요. 우린 블론 같은 건 모르니까.”

도혁이 자신만만하게 으쓱해 보이자 탁기준이 어깨를 툭 치며 동조했다.

“당연하지. 이야, 몇 센티 안 되는 배너로 효과 대박이겠는데? 웹사이트 내용보다 광고가 먼저 눈에 띄어서 말이지. 이거 아이디어 내기는 쉽지만 구현하게 힘들었을 텐데 자연스럽게 잘 뽑혔다.”

“무진이가 고생이 많았죠.”

“어! 잠깐만 조금 더 아래로 내려봐 봐. 저거 오늘유업 주가 아니야?”

“그러네요. 엄청나게 뛰었군요. 와!”

포털 사이트에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오늘유업 주가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카페 테오도르로 대박 친 오늘유업, 연일 주가 급등.]

[오늘유업 1사 분기 최고 매출 갱신!]

[탄탄한 기업 운영과 철학으로 오늘유업 이끈 창업주 인터뷰.]

[카페 테오드르 성공 비결 공개, 제품력으로 승부했죠.]

탁기준이 흐뭇하게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도혁을 보고 물었다.

“혹시, 명 대표, 오늘유업 주식 샀냐?”

“그럼요. 아니, 안 사셨습니까? 현우 선배랑 태오 선배 그때 산다고 난리였는데.”

“이런, 출장 갔었나 보다. 아, 이거 지금 들어가도 되려나.”

“네.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말 잘 들으세요.”

도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조했다.

“우리가 광고 진행하는 회사들, 웬만하면 다 잘되니까 주식 살 수 있을 때 잘 모아두세요.”

“올~ 역시 자신감 터지는구만.”

“진짜라니까요. 우리가 무조건 그 회사들 아이템은 성공시킬 테니까 저 믿고 투자 한번 해보시죠.”

약간 사기꾼 같은 멘트라고 생각하면서도 투자하라고 말해주었다.

망할 회사 광고는 아예 안 할 거거든. 미래의 지뢰를 다 아는데 망할 수가 있나.

도혁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느긋하게 등을 의자에 대었다.

순간 누군가 복도를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다다다.

“도무진 황도준 두 놈 중 하나라는 거에 커피 건다.”

“당연히 둘 중 하나겠죠. 누굴까. 도무진?”

호랑이처럼 도무진 이름이 나오자마자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뛰어 들어왔다.

“보셨습니까? 우리 회사 옥외광고 요 앞 사거리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습니다!”

“봤지. 옥외, 버스는 배너 변형해서 차현우 팀장님이 기획했잖아.”

“와, 오른쪽 사람 구하는 배너를 옥외로 걸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푸른 바다 위 일렁이는 거품 속에서 남자가 헤엄치다가 손을 뻗는 광고.

DW애드의 글자만 위로 조형물을 만들어 세우고 그걸 잡는 형상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거품의 마케팅 세계에서 구원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것.

역시 출근하던 최민아가 가방을 내리며 감탄을 뱉었다.

“버스 광고 보면 더 놀랄걸? 버스 본체에 적힌 DW애드 글자에 뒷문이 열릴 때만 남자 손이 닿아.”

“뭐라구요? 뒷문이 열릴 때만요?”

최민아가 시안을 그림으로 그리며 설명해 주었다.

“손을 쭉 뻗고 구제를 기다리는 남자가 뒷문에 박혀 있단 말이야. 근데 DW애드 코리아는 저기 버스 본체 앞쪽에 적혀 있어.”

“아, 그림으로 보니까 알겠네요. 문이 열릴 때 문이 옆으로 움직이니까 남자의 손이 DW애드 글자에 닿는다는 거군요.”

“카피는, ‘마케팅의 문을 열어드립니다. DW애드 코리아’.”

“이야!”

옥외와 버스 광고를 기획한 차현우가 들어와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온라인도 저렴하지만 옥외, 버스가 가격 대비 효율이 좋아.”

“지하철은요?”

“가격적으로는 지하철도 나쁘지 않지만 타깃을 공략하긴 무리가 있지. CEO들이 지하철 타지 않잖아. 운전하거나 뒷좌석에 앉아서 간다고. 그럼 버스나 옥외광고에 노출될 확률이 높지 않겠어?”

“그러네요! 버스 광고 본 사람마다 저게 뭐냐고 웅성거리더라구요. 자동차 뒷문을 열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차현우가 도혁을 보고 입매를 끌어올렸다.

“버스 매체사랑 네고(negotiation 협상, 주로 가격을 협상하는 것을 말함) 엄청 쳤다. 다른 광고주 광고도 많이 걸어달라고 먼저 매체사에서 할인해 주더라니까.”

“평소에 현우 팀장님이 매체사와 관계가 좋으니까 가능한 거죠. 애 많이 쓰셨습니다.”

전생에 차현우가 가장 잘했던 전공과목이 바로 옥외광고였다.

옥외, 버스, 지하철 등 각 매체의 특성을 살려 톡톡 튀는 감각으로 엄청난 창의성을 발현했었지.

출근하는 직원마다 감탄을 늘어놓으며 자사 광고가 나온 것에 대해 흥분했다.

못 본 직원이 없는 걸로 봐서 서울, 경기 지역 곳곳에 노출이 잘된 모양이었다.

“여러분, 제 배너 광고도 봐주세요. 여기 스크롤.”

“어! 그러네! 와, 시안으로 볼 때보다 더 자연스러운데요?”

“우와. 무진 씨 멋있다!”

직원들이 도무진의 자리 뒤에서 배너 광고를 구경하고 있는데 익숙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띠링.

-드르르르륵

“이 소리. 자주 들어왔던 그 소리 아니냐?”

“응. 그렇지. 우리 일거리 쏟아지는 팩스. 정말 귀신같다. 워크숍 끝난 지 어떻게들 알았대?”

최민아가 체념한 듯 팩스로 다가갔다. 무심코 서류를 내려다보던 최민아의 눈이 커졌다.

“어! 대표님 이거 좀 보세요. 경쟁 PT 들어오라고 하네요.”

“어딘데? 민아 표정 보니까 제법 큰 회사인 것 같은데?”

“한전이에요. 한국전력공사요.”

공사라는 말에 도혁과 AE들이 반가운 눈빛으로 반겼다.

반면 제작 쪽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사면 공무원 스타일인 거죠? 눈도 높고 계속 시안 수정하고 큼큼. 여기까지.”

“아! 신이시여. 지자체로 부족하단 말입니까!”

“난 싫어. 아무튼 싫어.”

제작팀의 오열과 달리 AE들은 신난 기색이 역력했다.

잇단 지자체 캠페인으로 기획에 자신감이 붙었을 뿐만 아니라, 결제가 현금으로 꽂히니까.

도혁이 한숨짓는 황도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메일을 열었다.

“상세 사항이 왔네. 이야, 이거 0이 몇 개냐. 큰 건인데?”

“뭐야. 창사 이래 최대 이미지 캠페인 진행 예정이라는 거지? 그 정도 되니까 대대적으로 경쟁 PT 하나 보다.”

PT 안내문을 읽어내리며 AE들이 벌써 회의 모드로 들어갔다.

“기획안 눈이 확 돌아가게 잘 뽑아 와야 제작에서 고생 안 해. 관공서 들어가면 디자이너들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네. 어떻게든 한눈에 꽂히게 만들어볼게요.”

“제발 부탁합니다. 우리 AE님들!!”

강태오가 손을 모으며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알지 알지, 저 심정. 카피라이터 명도혁으로 돌아간 듯 도혁이 크게 공감했다.

“일단 광고주부터 만나 봅시다. 성향을 파악해야 뭐라도 해보지.”

“사전 브리핑 내일인데 미리 가보시게요?”

“응. 눈도장도 찍을 겸. 그리고 브리핑 때 잠깐 보는 거로는 사람을 알 수 없잖아. 사무실에 가봐야 알지.”

도혁이 일어서자 차현우가 따라붙었다.

“같이 가보자.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하나는 잘 본다고.”

“그러시죠.”

* * *

야심 차게 찾아간 한전의 홍보팀 사무실에서 둘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깐깐한 인상의 주무관이 나타난 것이다.

하얀 얼굴에 깡마른 몸, 은테 안경과 날카로운 눈빛, 다부진 턱선까지. 만만치 않은 스타일이 분명했다.

기획홍보과 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악수를 한 후 곧바로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도혁과 차현우가 짧은 눈짓을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시안 컨펌 받으려면 고생 좀 하겠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도혁이 반갑게 인사했다.

“내일 브리핑 전에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이렇게 먼저 뵙게 되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DW애드 코리아 분들이 궁금했어요. 워낙 잘나가시는 분들이고 젊은 감각으로 소문나셔서 미리 연락드릴까 하던 참이었습니다. 우리 국장님께서 관심이 많으시더라구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획홍보과 과장이 음료수를 꺼내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무심코 냉장고를 봤다가 기겁하는 줄 알았다.

사무실 냉장고 상태가 저럴 수가 없는데?

과장은 편의점처럼 정확하게 종류별로 줄을 세운 음료수 중 두 개를 꺼내더니 조심스레 남은 음료수를 다시 줄을 맞추어 정렬했다.

그러곤 날카로운 목소리로 도혁과 차현우에게 당부했다.

“음료 드시죠. 이번 캠페인, 저희가 보내 드린 자료에도 나와 있다시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입니다. 이번에 교체된 사장님께서 아주 홍보에 조예가 깊으십니다. 주요 관심 사안이에요.”

“네. 공사 사장님께서 해외에서 마케팅을 전공하셨더군요. 아마 좋은 기획안 금방 알아보실 것 같습니다.”

“완전 기획홍보 쪽으로 전문가십니다. 덕분에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일하기 쉽지 않기도 하구요.”

기획홍보과 과장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자료를 가져왔다.

솔직히 과장 자리, 퇴근한 사람 책상인 줄 알았다.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한 데스크, 각이 잡혀 정돈되어 있는 책장이 특히 돋보였다.

책의 키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춰 줄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 자료를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선한 거, 우리 사장님께서 새로운 혁신, 창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이번 PT에서 좋은 안이 나와줘야 할 텐데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혁신적인 광고로 체면 좀 세워주십시오.”

기획홍보과 과장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나오며 차현우가 길게 숨을 뱉었다.

“후우,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저 담당자 장난 없는데?”

“차 팀장님도 느끼셨군요. 시안 들어갈 때 고생 좀 하겠어요. 꼼꼼하게 구석구석 오타 잡아낼 사람이에요.”

“담당자는 깐깐하고, 사장은 전문가고. 이거 정말이지 쉽지 않겠어.”

“저렇게 이성적인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감성 소구가 먹힐 수도 있죠. 생각을 다양하게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감성 소구라고?”

“이미지 광고잖아요. 그것도 세상을 밝히는 빛을 만드는 기업이니까요.”

도혁의 말에 차현우의 눈빛이 번뜩였다. 마치 방금 전기를 켠 전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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