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49화
황도준 팀 역시 CF를 찍어 왔다.
“저희는 심플합니다. 두말이 필요 없는 광고입니다. 직접 보시죠.”
그들이 준비한 것은 패러디 광고.
이제는 전 국민이 기억하는 일레라 가구의 패러디였다.
문 뒤에서 나타난 경수현이 ‘두윈!’을 외치고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수십 개의 같은 문 속에서 경수현이 나타나 두윈을 소리치는 광고.
[충격과 각인의 크리에이티브. Do Win, DW애드 코리아.]
다만 기존 광고와 달리 문 색깔이 다양했다. 선명한 원색의 문들이 자칫 평범해 보이는 패러디 광고에 개성을 더했다.
“여러분, 저희는 경수현 씨를 활용한 패러디 광고입니다. 여기 계신 태강애드 출신 분들이 직접 기획하신 태강애드의 캠페인을 패러디해 봤습니다.”
“문 색깔 한번 삐까번쩍하네요.”
탁기준의 말에 황도준이 끄덕였다.
“선명한 색채감으로 기존 광고와 차별성을 두었습니다. 다양성과 인지 자극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변주해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효율을 낸 아주 좋은 광고다.
하루 안에 새로운 걸 만들기보단 변주하는 것이 편리하기도 하고 효과도 좋으니까.
뿐만 아니라 참석자인 배우 경수현의 이미지를 백분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도혁과 탁기준이 만족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곧바로 다음 참가자가 호명되었다.
“다음은 도무진 씨 팀이네요. 앞으로 나와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온라인 팀 도무진입니다.”
성큼 걸어나간 도무진이 화면 위에 웹 이미지의 화면을 크게 띄웠다.
“흔히 보시는 웹사이트 화면입니다. 양옆에 보시면 스카이스크래퍼형 광고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길쭉한 배너 광고 자리가 보이실 겁니다. 오늘은 여기를 공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 마케팅은 최근 도혁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 중 하나였다. 수년 안에 온라인 광고 시장은 몇십 배로 급성장할 예정이었으니까.
도혁이 더욱 집중해 도무진이 만들어온 화면을 바라보았다.
도무진이 검색 및 웹상에서의 디스플레이형 광고를 세트로 묶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 이제 제법 회사원 같다? 저거 언제 인간 만드나 했는데.’
태강에서 끝내 적응 못 해 퇴사했던 도무진이 AE처럼 매체 설명까지 하고 있는 걸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프레젠테이션에 제법 연출까지 하는 모습이다.
“잠시 불을 끄겠습니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순간 웹 화면의 왼쪽에 배너가 펼쳐졌는데 바로, 돈이었다.
투명한 유리 모양의 네모 배너 속에 쌓인 지폐 다발. 상단의 빈 공간 위에 DW애드 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광고.
모두 도무진의 실력을 아는지라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배너 광고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도무진이 스크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돈다발이 움직인다.”
스크롤을 DW애드라는 글자 쪽에 가까이 올릴수록 늘어나는 돈다발.
돈다발이 늘어날 때마다 상호가 박힌 오른쪽 배너의 글자가 반짝거리며 노출되었다.
[DW애드 코리아]
움직이는 배너를 본 모두가 감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이거 기발한데? 어떻게 한 거야?”
“웹에서 구현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를 짜내는 게 어렵죠.”
도무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잘난 척을 했다.
평소 같으면 툭툭대며 구박했을 탁기준이었지만, 오늘은 끄덕이며 인정해 주었다.
“오케이. 제법 괜찮았다. 도무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던 말입니까!”
“뭐, 도무진은 천재니까요.”
“이런, 그럼 도무진 천재님 수고하셨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야, 진짜 천재들 나오시네.”
강태오, 차현우 팀이 대기 중이었다.
모두 눈을 번쩍이며 두 남자를 바라보자 강태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부담스러운데? 일단 고지부터 하겠습니다. 우리 팀은 상금 포기합니다. 팀장 둘이 붙어서 애들 코 묻은 돈 뺏을 수 있나?”
“코가 묻었다기엔 금액이 많습니다만?”
도혁이 웃으며 말하자 차현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전 동아리 때 생각나서 우리 둘 한번 뭉쳐본 거지, 상금 탐나서 한 건 아니에요.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발표는 강태오 팀장이 할 겁니다.”
강태오가 마이크를 빼서 무대의 한가운데에 섰다.
“저희 역시 두 가지 시안을 준비했습니다.”
“다들 반칙이 난무합니다! 하루 만에 두 개씩 만들고 이러시면 안 되죠!”
“그래서 상금 안 받잖아.”
직원들의 야유에 강태오가 첫 번째 시안을 오픈했다.
“옥외광고입니다. 옥외광고를 찍은 옥외광고라고 해야겠군요.”
광고 속에는 도심의 한가운데 건물 외벽에 설치된 소화전이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자칫 평범해 보이는 소화전에 이렇게 적혀 있다.
[매출이 막힐 땐 급히 전화하세요.
DW애드 코리아. XXX-XXXX]
“기업 운영이 막히는 것을 응급 상황에 비유해 즉시 도움을 드린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옥외광고입니다.”
선명한 붉은 색의 소화전과 매출 향상이라는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어우러진 좋은 광고였다.
“옥외광고물을 만드는 건 부담스러우니 소화전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된 모습을 찍은 거로군요?”
“맞습니다. 실제 위급 상황에서 소화전인 줄 알고 갔다가 광고면 낭패잖아요. 그런 위험성도 생각해야 하고, 뭐, 하루라 시간도 없어서 급히 합성했습니다.”
강태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다음 시안을 내밀었다.
“다음은 저희 마음대로 만들어본, 정말 크리에이티브 자체를 강조한 광고입니다. 우리 이 정도 만들 줄 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광고니까 재미로 보세요.”
강태오가 다음 화면을 열자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이 터졌다.
퉁퉁 울리는 드럼 소리. 북을 두드리는 남자의 모습과 날카로운 눈빛, 그 속으로 화면이 빨려 들어가더니 점점 비트가 빨라졌다. 그 속도감에 맞추어 사람들의 눈동자와 손이 오브제로 활용되어 빠르게 스쳐 갔다.
곧 네 가지의 네온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른 색감의 조명이 수많은 눈동자와 손을 덮치고 화면 속에서 눈동자와 손가락들이 페이드아웃되었다.
이윽고 글자가 떠올랐다. 빛을 활용한 색채의 향연. 빠르게 흘러가는 카피가 색감 속에 번지며 감각적인 화면과 음악이 오감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툭 암전된 듯 검게 변한 화면 위로 한 가지 색을 사용한 카피가 번갈아가면서 나왔다.
[붉은색 : 혁신의 크리에이티브]
[푸른색 : 적절한 미디어 믹스]
[노란색 : 날카로운 메시지]
[보라색 : 뉴 이노베이션 DW애드 코리아]
감각적 색감이 교차해 오가더니 마지막에 조명이 암전되며 툭, DW애드 코리아라는 알파벳이 각자 다른 색채로 아로새겨졌다.
흡사 해외 디자인 출품작과 같은 영상 퀄리티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쳤다…….”
“내가 뭘 본 거냐? 지금 뭐가 지나간 거지?”
“와우, 화면 퀄리티 무슨 일입니까. 두 팀장님, 해외 광고 출품작을 왜 여기 가져오고 그러세요.”
직원들의 감탄이 이어지고 탁기준이 사회자의 신분도 잊은 채 주접을 떨었다.
마지막 광고는 그냥 비주얼과 감각 자체로 승부를 본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였다.
DW애드 코리아가 어디까지 감각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상물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몽환적인 감각을 선보인 강태오, 차현우 팀의 발표를 끝으로 모든 팀의 PT가 끝났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고 도혁과 탁기준의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거 어느 팀을 뽑아야 하나. 너무 막강한데.”
“진짜 깜짝 놀랐어요. 하루 만에 미친 거 아닙니까? 내가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일하고 있었다니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하, 일단 자기들이 돈 안 받는다고 했으니까 팀장들 팀은 빼버리자. 여긴 소고기나 사주면서 해외 크리에이티브 출품이나 알아보자고.”
“그럼, 저는 이거 진짜 좋았어요.”
“이건?”
“이것도 좋았죠. 탁 팀장님은요?”
“나도 다 좋은데. 하아.”
눈 깜짝할 사이 쉬는 시간이 끝나고 직원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도혁이 단상 앞으로 걸어나갔다.
“놀라울 뿐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빠르게 엄청난 퀄리티의 작품들을 출품하는 여러분을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가 봐도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도혁의 칭찬에 직원들이 소리 높여 답했다.
“다른 회사는 워크숍 가면 술 먹고 놀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DW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정말 우리 직원들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역량에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끊은 도혁이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냈다.
“상금이 적힌 봉투입니다. 서울 올라가는 대로 적힌 금액만큼 입금하겠습니다.”
“오!!! 결과 발표하나요!”
고무된 직원들의 눈빛이 도혁을 향했다.
도혁이 큰 소리로 1등을 발표했다.
“강태오, 차현우 팀장님 팀! 축하합니다.”
“우리 빼라니까?”
“네. 상금은 안 드릴 거예요. 그래도 발표는 해야 하니까요. 1등 팀은 한우 한번 같이 먹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강태오가 유쾌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다시 부담스러운 시선이 도혁에게 꽂혔다.
모두 기다릴 직원들을 위해 도혁이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발표하려다가 뜸을 들였다.
전생에 본 게 있어 가지고 말이지.
“자, 그럼 상금을 가져갈 팀은 바로!!”
“바로!”
“60초 후에 공개할까요?”
“네? 대표니이임!”
이런 건 따라 해선 안 되겠다.
장난을 멈추고 도혁이 드디어 상금을 가져갈 팀을 발표했다.
“바로 네 팀 모두입니다.”
“네?”
“네 팀이 오천만 원을 사이좋게 가져가세요.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습니다.”
도혁이 심사표를 높이 들어 보여주었다.
“그냥 나눠 가지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이렇게 세심하게 심사를 했어요. 창의성, 메시지, 기획력, 발표력 등등 상세 항목을 나누어 심사했지만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와! 그럼 우리 모두 상금 받는 거예요?”
“네. 어차피 성과금으로 지급하려고 한 거니까요. 놀라운 여러분의 실력과 재능,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와!!”
빠르게 인당 돌아가는 금액을 계산하는 인원과 감격의 포옹을 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평소 성격대로 행동하는 직원들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도혁이 추가 공지 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제출한 시안들은 우리 DW애드 코리아의 광고로 나갈 수도 있고, 다른 광고주 PT에 재활용할 생각인데 이의 없죠?”
“그럼요! 좋습니다.”
“사장하기 너무 아까운 것들이 많아서요.”
광고 시안 몇 개는 굳었다며 직원들이 기뻐했다.
기쁨을 만끽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도혁이 자리로 돌아왔다.
철저한 성격답게 인당 돌아가는 금액에다 세금까지 계산하고 있는 최민아를 보자 문득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참, 민아야. 오늘 내가 깨달은 게 있는데 말이지.”
“뭔데요, 대표님?”
계산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는 최민아에게 툭 말을 던졌다.
“내가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주고 있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야.”
“네? 무슨 시간이요?”
“시안 뽑는 시간 말하는 거야. 하루면 이렇게 고퀄을 뽑을 수 있는데, PT 때 디자이너들에게 길게 시간 줄 필요가 있나 싶네.”
“네??? 대, 대표님.”
“그럼 어제 고생했을 텐데 푹 쉬고 잘 자라. 난 룸으로 올라가 볼게.”
“잠시만요!!”
장난을 던지곤 탁기준과 함께 도망쳤다.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이번 워크숍 성과 끝내주네요. 저는 직원들이 이렇게까지 해줄 줄 몰랐습니다.”
“오천만 원의 힘인가. 나도 깜짝 놀랐네. 특히 온라인 광고 좀 충격받았어. 참, 우리가 어젯밤 만들었던 시안은 어떻게 할 거야?”
“안 그래도 고민해 봤는데 이 팀 광고에 섞어서 집행하면 어떨까요.”
도혁이 손끝으로 한 팀의 광고 시안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