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47화
“올~ 대표님. 사진 엄청 잘 나왔네요.”
인턴십에 대해 짧게 생각에 잠긴 틈을 타 직원들이 도혁의 얼굴을 찍고 있었다.
“크으, 솔직히 대한민국 광고 회사 대표 중에 외모로는 1등이다. 그쵸?”
“그 그룹에서 1등 못 하면 많이 곤란하지 않을까?”
겸손하고 싶어도 겸손할 수 없는 비교군이라며 도혁이 씁쓸하게 웃었다.
“참, 배우 같은 대표님 말고 진짜 배우들은 언제 오는 거야? 아까 경수현 씨는 밤에 도착한다고 전화 왔고 전서윤 씨는?”
“서윤 씨는 마침 제주도에 촬영이 있어서 일정 끝나는 대로 저녁에 들른대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제주 해산물 코스 요릿집으로 이동했다.
인당 n십만 원에 달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우와,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대표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뭘 이 정도 가지고. 많이 먹어. 회식 자주 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럴 틈도 없었네.”
“와, 이거 와인입니까?”
“오늘은 안주에 맞춰서 비싼 걸로 시켜봤다. 만날 소주만 먹었잖아.”
“그럼 간에 금칠 좀 해볼까요?
정기적으로 회식 데이를 만들어야겠다며 탁기준이 너스레를 떨고 직원들이 흥겨운 분위기로 술잔을 채워갔다.
곧 상다리가 휘어지게 제주도의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 차려지고 폭풍 흡입이 시작되었다.
해산물을 못 먹는 직원들을 위한 스테이크도 함께 나왔다.
술잔마다 가득 와인이 담기고 도혁이 건배를 제의했다.
“그럼 우리 거국적으로 건배 한번 할까요?”
“이런, 거국적이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이럴 때 보면 대표님 영락없는 아재 같습니다!”
역시 아재 본능은 감추기 어려운 것인가.
도혁은 웃으며 잔을 높이 들었다.
“그럼 좀 더 세련되게 해보도록 하지. 와인 잔은 부딪히는 거 아니라면서. 각자 들고 자유롭게 드시고 싶은 만큼 드세요. 오늘만큼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셔도 내가 책임질게.”
“에이, 비싼 거 먹는데 토하면 안 되죠.”
“그럼 딱 안 토할 만큼만 실컷 마시면 되지. 집에 안 가도 되니까 부담 없이 드세요. 자, 오랜만에 한번 외쳐볼까요?”
도혁의 말에 모두 큰 소리로 외쳤다.
“이멤버!”
“포에버!”
와인잔을 부딪히지 않는 거라고 방금 말했건만, 습관적으로 잔을 마주 대며 직원들이 신나게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떠들고 광고계 뒷얘기에 디자인 업체 썰까지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어! 전서윤 씨!”
“오, 전 배우. 이쪽으로 앉아요. 반갑습니다.”
모두 환대하며 전서윤을 맞았다.
그녀가 환한 미소로 인사하며 도혁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일찍 나오셨네요. 다행입니다.”
“감독님께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미리 말씀드려 놨었어요. 와인 마시는 데 제가 빠질 수 없죠.”
“소주 마시는 데도 안 빠지시잖아요. 소주 요정 전서윤 아닙니까.”
도혁과 전서윤은 처음 태강애드에서 맺었던 인연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소주 광고 찍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DW애드도 자리 제법 잡았다 그쵸?”
“운이 좋았습니다.”
“에이, 겸손하시긴요. 업계에 소문 파다해요. 명 대표님하고 일하면 빵 뜬다고. 이번에 공찬혁 배우도 와, 난 걔가 그렇게 잘될지 몰랐어요.”
“네, 공찬혁 배우와 커피는 영원히 윈윈할 겁니다.”
도혁이 대화를 나누면서도 전서윤을 유심히 살폈다.
“얼굴 많이 좋아지셨네요?”
“네. 그때 CF 찍으면서 회복하고 그 뒤로도 쭉 괜찮아졌어요. 그 촬영이 계기가 됐죠. 고마워요.”
“제가 항상 감사하죠. 저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진짜 인턴 때부터 도와주셨잖아요.”
도혁이 전서윤과 대화하는 사이 탁기준이 다가와 그녀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서윤 씨 내일도 촬영 있으세요? 아침에 우리 재밌는 프로젝트 진행할 거라서 구경하시면 좋을 텐데.”
“프로젝트요? 워크숍이면 그냥 노는 거 아니에요?”
“에이, 그냥 놀면 재미없죠. 같이하시면 후회 없으실 겁니다.”
“내일은 야간신이라서 촬영이 느지막이 있어요. 프로젝트라니, 완전 궁금한데요?”
“기대해도 좋으실 겁니다. 내일 우리 명 대표가 돈을 공중에 막 흩뿌릴 계획이거든요. 함께하시지요.”
“어머, 너무 기대되는데요? 나 지금 설레려고 해요.”
전서윤이 한 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기대에 찬 눈으로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도혁이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서윤 씨도 참여해서 돈 따 가시든지요. 아니지 같이 뿌리셔도 좋고요.”
“네??”
* * *
[DW애드 코리아 워크숍 프로젝트 : 사내 캠페인 공모전 상금 5천만 원.]
아침에 호텔의 대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이 현수막을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꺅! 저게 뭐야. 사내 캠페인?”
“오, 오천만 원? 잠시만 오백만 원 아니고?”
“지금 한다는 거야? 술도 덜 깼는데 공모전이 웬 말이냐?”
“누구야, 술 덜 깬 사람?”
도혁이 회의실로 들어와 단상 위에서 소리쳤다.
“술 덜 깨면 불리할 텐데? 오천만 원이 걸려 있잖아?”
“대표님! 정말 무슨 말이에요? 사내 공모전이라니요!”
“자, 직원들 다 들어왔나? 지금부터 설명할 테니까 모두 착석해 주세요.”
탁기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앞자리에 앉았다.
직원들의 의아한 눈초리가 도혁에게 모였다.
“자, 우리 첫 번째 워크숍이니까 특별 이벤트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공모전을 열기로 했습니다. 지금부터 워크숍 기념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공모의 주제는 DW애드 코리아입니다.”
“네??”
“DW애드 코리아의 광고를 만들라는 겁니다.”
순간 문이 열리며 전서윤이 들어왔다. 현수막을 본 그녀의 눈이 직원들보다 더 커졌다.
“인쇄 광고든 CF 콘티든 자유 형식으로 제출하면 됩니다. 조를 편성해도 되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면 혼자 해도 상관없어요. 주제만 주어질 뿐 진행 방식은 각자 자유에 맡길게요. 아, 혼자 하면 상금도 혼자 가지겠네. 그건 참고하고.”
“헉!”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고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한 탁기준이 패널을 가져왔다.
“상금은 광고의 퀄리티를 보고 등수를 선정해 지급하겠습니다. 1등만 오천만 원 가져갈 수도 있고 다섯 팀이 비슷한 수준이면 천만 원씩 나눠 가질 수도 있고.”
“오! 1등이 독식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맞습니다. 아무튼 총상금 5천만 원은 무조건 풀 거니까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상금 얘기에 술렁거리는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도혁이 제출 기한을 알려주었다.
“보자, 마감은…… 오늘 밤 열 시 어떻습니까?”
“너무 짧아요.”
“안 돼요, 대표님!”
원성이 쏟아지자 도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품 분석, 시장조사 할 필요 없잖아. 컨셉 잡아서 시안 그리면 되는 걸 뭐 그리 오래 걸리나.”
“와, 대표님 방금 광고주 같았던 거 아십니까?”
“그래, 슬슬 그리면서 거, 눈에 팍 꽂히는 거 대충 뽑아오면 되잖아.”
진짜 갑갑한 스타일의 광고주 흉내를 내며 도혁이 진심을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 기한이면 너네 성격에 밤새워 작업할 거잖아. 직원들 그동안 고생해서 보상하려는 마음으로 만든 이벤트인데 너무 목숨 걸고 안 하면 좋겠어.”
“우리 성격 아신다는 분이 오천만 원 걸어놓고 대충하라니요. 아무튼 내일 아침까지로 기한 늘려주세요!”
“대표님!”
자자한 원성에 도혁이 두 손을 들었다.
“그래요. 제가 졌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열 시까지 제출해 주세요. 참, 1위 작품은 매체에 노출할 퀄리티가 나오면 실제로 광고 걸 겁니다. 물론 다른 시안도 괜찮으면 다른 광고주에게 분양할 거고 말이죠. 오천만 원을 공중에 뿌리는데 그 정도 퀄리티는 나오겠죠?”
“오! 진짜 우리 회사 광고를 하신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출발!”
“네! 대표님!”
분주하게 팀을 꾸리며 소란해진 회의실을 둘러보던 전서윤이 도혁에게 물었다.
“워크숍 이벤트라기엔 상금이 거한데요?”
“성과금 자꾸 그냥 주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워크숍 온 김에 재밌는 기획 한번 해봤죠. 참, 서윤 씨는 결정했어요? 공모전에 참여하시겠어요, 아니면 심사를 함께 보실까요?”
“저 광고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항상 촬영만 했잖아요. 끼워만 주신다면 저도…….”
전서윤이 말끝을 흐리며 회의실을 둘러보았는데 벌써 다들 팀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서윤이 서둘러 직원들의 무리로 뛰어갔다.
“대표님 나중에 얘기해요. 저기요, 나도 같이 하고 싶어요.”
“저도요!”
뒤늦게 회의실로 들어온 경수현도 공모전에 참여하겠단다.
팀을 짜느라 분주한 직원들을 탁기준이 느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크으, 이게 시안 기다리는 광고주의 마음이구만.”
“아주 편안해 보이십니다. 강태오, 차현우 팀장한테는 끝내 비밀로 했는데 서운해하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무슨 말씀. 저기 봐. 저 둘이 서운한 눈빛인지.”
탁기준이 커피 컵을 들어 강태오, 차현우 쪽을 가리켰다.
둘 다 신이 난 표정으로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탁기준이 웃으며 다른 쪽을 가리켰다.
“직원들이 신난 건 이해되는데 저 배우 둘은 왜 또 저렇게 고무됐냐. 아이데이션 회의하는 게 신기한 모양인데?”
“그러게요. 아, 저 두 배우들 표정 너무 귀엽네요. 탁 팀장님 우리 사진 좀 찍어둡시다. 나중에 보면 웃기겠다.”
탁기준과 도혁이 열심히 직원들의 사진을 찍는 사이 각 팀에서 컨셉 회의가 이어졌다.
그런데, 팀 구성이 너무한데?
탁기준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볼멘소리를 했다.
“아니, 강 팀장 차 팀장. 설마 지금 둘이 같이 팀 하는 거야?”
“어. 말 시키지 마. 바빠 죽겠구만.”
“와, 양심 무엇. 저 어린양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경쟁 PT에 불쌍할 게 뭐가 있나.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하라면서. 탁 팀장 훠이, 방해되니까 멀리 가라고.”
강태오와 차현우가 창작 의욕을 불태우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이진우 쟁탈전이 벌어졌다.
“콘티. 잠깐만 진우 선배 금방 그릴 수 있지 않습니까? 부디 저희 쪽으로 와주십시오.”
“진우 씨. 이멤버 포에버 응? 같이하면 저 팀장 둘 정도는 씹어 먹을 수 있을 거야. 팀장님 팀, 얄미워 죽겠네.”
“선배님! 진우 선배니이이임!!!”
이진우가 도망을 다니고 황도준 도무진 역시 후배들을 데리고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팀이 대충 마무리된 것 같지? 아주 개성이 넘치는구만.”
“보기만 해도 기대가 되는데요?”
“설마, 저 팀은 영상까지 만들 생각인 건가? 시간이 별로 없는데?”
회의실을 둘러보던 도혁과 탁기준이 떨떠름하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우 회의하는 거 보고 있자니 손이 간지러워서 원. 명 대표도 그래?”
“네. 저도 보고만 있자니 답답하네요. 저기 선배님, 우리도 뭐 하나 해볼까요?”
“에이, 주최 측에서 만들면 안 되지. 이 순간의 여유를 즐깁시다.”
그러면서도 탁기준이 손끝을 말며 중얼거렸다. 그걸 눈치챈 도혁이 눈짓으로 탁기준을 도발했다.
“심심한데 태강에서처럼 오랜만에 손발 한번 맞춰볼까요? 공모에 제출 안 하면 되죠.”
“우리 둘이 말이지? 그, 그럴까?”
두 남자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치며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