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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45화 (145/252)

광고 천재 명도혁 145화

“안녕하십니까. 오늘 발표를 맡게 된 DW애드 코리아의 차현우라고 합니다.”

대회의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관중이 모여 있었다.

차현우가 얼떨떨한 기색을 감추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모두 임직원이라는데 분위기 한번 엄숙하네. 한수철이 카페 테오도르 PT 할 때와는 180도 달라졌어.’

회장과 홍보실장이 이것저것 물어보며 문답식으로 진행했던 카페 테오도르 때와 달리 대회의실 분위기는 엄숙하고 근엄한 데다 진지하기까지 했다.

도혁은 차현우가 부담을 가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무대 중앙을 주시했다.

“저는 오늘 카페 테오도르의 기획과 더불어 시행할 오늘유업의 유제품 사업의 전반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안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차현우의 말에 회장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답례했다. 이어 본격적인 PT가 시작되었다.

차현우가 리모컨을 클릭하자 화면에서 하얀 우유 한 잔이 나타났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한때 우유는 건강하고 신선한 먹거리로 국민적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난했던 육상선수가 우유 한 잔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인터뷰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양질의 음식이었죠. 하지만.”

말을 끊은 차현우가 화면 가득 암울한 그래프를 띄웠다.

“보시다시피 썩 유쾌하지 않은 시장 상황입니다. 오늘날 유제품 시장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낙농업은 기본 인프라가 젖소이다 보니 수요에 따라 공급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결국 우유 과잉 생산 시대가 열리고 말았습니다.”

곳곳에서 짧은 한숨이 들려왔다. 차현우 역시 잠깐 숨을 돌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유업은 선제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미래 가치가 유망한 커피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이고, 카페 프랜차이즈를 병행하며 안정적인 유제품 매출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잉 생산으로 남아도는 분유 역시 활용할 수 있구요.”

분유라는 말이 나오자 이번엔 회장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차현우가 그 숨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우유의 과잉 생산으로 할 수 없이 가루 형태로 만들었던 분유는 카페 테오도르의 파생 상품을 통해 타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파생 상품이요?”

질문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던 회장이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그렇습니다. 카페 테오도르의 브랜드로 믹스, 드립백 등 다양한 상품을 기획해 제작 판매하는 것을 말씀드린 겁니다.”

“아, 별다방처럼 말입니까?”

“별다방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판매하실 수 있을 텐데요?”

별다방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차현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더욱 집중되었다.

“오늘유업은 기존 도소매점의 유통망이 있지 않습니까?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등 오늘유업의 주거래처가 대한민국 전역에 깔려 있습니다. 이를 적극 활용하여 카페 테오도르의 커피믹스 등 파생 상품 판매가 가능한 겁니다. 이는 카페 테오도르 브랜드 자체의 인지도를 향상시키는 효과도 예상되므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도 큰 메리트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우리가 대한민국 유통은 꽉 잡고 있지.”

“맞습니다. 강남 한가운데의 백화점부터 도서 지역 구멍가게까지 오늘유업의 유통망이 닿지 않는 곳은 찾기 어려우니까요.”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가 골리앗이구만. 하하.”

회장의 농담에 엄근진하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차현우가 기세를 몰아 발표를 이어갔다.

“더불어 저희는 이 오늘유업의 탈지분유 자체를 대대적으로 판매하는 방향을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자판기 분유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화면에 떠오른 자판기를 확대하며 차현우가 자판기 우유에 서사를 더하기 시작했다.

“저는 한때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소위 노가다판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해보신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새벽에 인력 사무소에 나가서 불을 쬐며 일거리를 기다리지요. 빈속에 커피는 부담스럽고 뜨끈한 음료 한잔 마시고 싶어지면 저는 항상 이 자판기 우유를 마시곤 했습니다.”

차현우가 미리 준비해 준 종이컵을 들어 보였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참 그 시절이 원망스럽고 힘들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했던 때였는데 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일반 우유가 아닌 이 자판기 우유 말입니다. 이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다른 우유가 흉내 낼 수 없거든요.”

차현우가 더욱 큰 소리로 강조해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곁에 자판기가 항상 있지는 않습니다. 간혹 사무실에서 커피는 부담스럽고 밍밍한 차는 싫고, 조금 출출해지는 시간에 그렇게 이 우유가 그립더라구요. 당도 채우고 싶고. 그럴 때마다 자판기 우유를 직접 만들어 마실 수 있도록 상품을 만드는 겁니다. 어린이, 학생, 그리고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리 준비한 화면에는 복고풍으로 디자인한 자판기 우유 패키지가 펼쳐졌다.

[자판기 우유]

“브랜드명이 아예 자판기 우유군요?”

“복고 디자인과 함께 자판기 우유라는 다소 공격적이고 직관적인 브랜드명을 만들어봤습니다. 커피믹스처럼 개별 포장해 편리함을 더했습니다.”

“예전 바른생활 교과서 표지와 유사하군요. 폰트까지 복고풍이고.”

회장이 끄덕이며 차현우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여기까지가 1부입니다. 프랜차이즈와 연계한 우유와 분유의 파생 사업에 관한 것으로 본론에 들어가기 전 애피타이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애피타이저로도 배가 제법 부른 것 같습니다만 메인 요리가 더 근사하겠죠?”

회장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차현우가 DW애드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저희 DW애드 직원들은 처음 광고할 제품을 의뢰받으면 그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오늘 유업의 여러 제품들을 직접 먹어보는 것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여러 의견이 오고 가던 중 발상을 전환하게 되었죠. 우유 없이 한번 살아보자고 말입니다.”

[우유 없이 살아보기 프로젝트, 그 3일간의 기록]

화면에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콘티로 그려져 있었다.

한 손에 시리얼을 들고 찌푸린 여자, 입에 식빵 한 조각을 물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남자와 고구마를 먹고 가슴을 두드리는 어린이의 모습까지.

“저희가 사흘간 우유 없이 살아본 결과, 생수로는 갈증을 채우기 어려운 순간이 있더군요. 시리얼을 물이나 커피에 말아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오호, 보는 우리가 다 목이 막히는구만. 그렇지 않나?”

회장의 말에 직원들이 모두 세차게 고개를 주억였다.

“물로는 채울 수 없는 우유만의 자리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소비자의 이 욕구를 파악하여 의식의 틈새를 파고들고자 합니다.”

차현우가 객석에 앉은 젊은 남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여기 계신 분은 편의점에서 음료를 고를 때 우유의 구매를 고려하십니까?”

“그게, 그러니까…….”

남자가 멈칫 회장의 눈치를 보자 회장이 슬며시 웃었다.

“내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말해. 지금은 오늘유업 직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답을 요구하는 거니까.”

“네……. 그러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로 콜라나 커피를 마십니다.”

“오호, 그래?”

회장이 부연하자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무, 물론 오늘우유 카페라떼를 주로 마십니다.”

“이런, 내가 부지불식간에 눈치를 줬구만.”

회의실에 짧은 웃음이 터지고 차현우가 계속 발표를 이어갔다.

“보시다시피 젊은 층에서는 기호 식품으로서 우유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또한 한동안 급식과 캠페인을 통해 양질의 건강식이라는 명목으로 마실 것을 강요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 엄마들이 그렇죠. 키 큰다, 뼈 튼튼해진다는 이유로 강권하시죠.”

“우유 마시면 건강해지는 건 사실이네만?”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구는 장년에게 통하겠지만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우유 소비 캠페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유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본 것입니다.”

여기까지 설명한 차현우가 샘플 CF 영상의 썸네일을 열었다.

“위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는 한 편의 샘플 영상을 만들어보았습니다. CF 보고 말씀 다시 나누겠습니다.”

-A안 엄마, 우유 없어요? 편.

바쁜 아침 시간,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급히 가방을 챙기고 있다.

“전날 미리미리 챙겨놓으라고 했지?”

“잔소리 그만. 아, 내 각도기 어디 갔지? 미치겠네.”

밖으로 나가려는 딸을 붙잡고 토스트라도 먹이려는 엄마.

“밥 먹을 시간 없으니까 이거라도 먹고 가.”

식빵을 입에 문 딸이 얼굴을 찌푸린다.

“엄마 우유 없어?”

“아, 우유가 똑 떨어졌네. 물이라도 먹고…….”

“됐어요. 아, 목 막혀.”

딸이 급히 등교하고, 엄마는 냉장고 앞에서 빈 1.5리터 우유팩을 기울여 컵에 따랐다.

컵 속으로 한두 방울 남은 우유가 떨어졌다.

“오늘따라 하필 우유가 없어, 그래.”

[물보다 진하다. 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

[오늘 당장 우유하세요. 오늘의 우유, 오늘 우유.]

-B안 자취생의 아침 편.

남자 둘이 함께 살고 있는 자취방. 어지러운 방의 한가운데서 자고 있던 남자들이 일어나고 시리얼을 그릇 속에 붓는다.

이어 냉장고를 열어본 남자가 잔뜩 눈살을 찌푸린다.

“우유 어딨어. 야, 너 우유 마셨냐?”

“아 맞다. 어제 사놓는다는 게 까먹었네.”

“하루 종일 칼슘이라고는 아침에 우유랑 시리얼 먹는 게 다인데.”

“사 와야지 뭐, 맹물에 말아 먹을 수는 없잖아.”

아쉬운 표정으로 마주 본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내밀어 가위바위보를 한다.

“진 사람이 우유 사 오기. 가위바위보.”

“에이, 내가 졌네. 아 미리 좀 사둘걸.”

[물보다 진하다. 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

[오늘 당장 우유하세요. 오늘의 우유, 오늘 우유.]

상영을 마친 차현우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회장이 흐뭇한 미소로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보다 진하다는 카피가 좋구만. 우리 직원들 의견은 어떤가?”

“저는 우유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언가 모르게 생동감이 느껴진달까요.”

임직원의 의견을 묻는 말에 상무 한 명이 대답했다. 그 말에 차현우가 부연했다.

“네. 우유라는 명사를 동사형으로 바꿈으로써 생생한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사전에 없는 낯선 표현이면서도 익숙한 단어이기에 소비자가 카피를 기억하기 쉽습니다. 또한 ‘오늘’이라는 브랜드명을 수차례 반복 강조함으로써 광고가 우유의 판매를 촉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유업의 매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차현우가 마지막으로 모델에 대한 당부 사항을 말했다.

“사실 현재 연기한 CF 모델은 모두 저희 직원들입니다. 우유 없이 사흘간 지내는 캠페인을 통해 우유 사랑이 절실해진 직원들의 심리를 이용해 촬영한 것으로 본 CF에서는 전문 연기자와 촬영을 진행할 예정임을 안내드립니다.”

“흠……. 잠깐만 다시 봅시다. 전문 연기자라.”

회장이 자취방에 널브러져 누워 있는 황도준과 도무진의 썸네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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