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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42화 (142/252)

광고 천재 명도혁 142화

강태오가 회사 앞의 김밥세상 가자는 말투로 툭 말을 던졌다.

“스코틀랜드 어때?”

“네? 워크숍 장소로 스코틀랜드요?”

제주도 정도 생각했다.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오사카까지는 뭐 갈 수 있지 않을까 말하려고 했는데.

이것 보세요. 강 팀장님, 스코틀랜드라니요.

“스코틀랜드는 너무 뜬금포 아닙니까?”

“아, 우리 집이 거기 아일라 섬에있어서 말이지.”

“네? 선배 집 파주 아니었어요?”

“거긴 할매 집이라니까. 고향 집 말이야. 고향 집.”

거제도나 땅끝마을, 이런 곳을 보통 고향 집이라고 부르지 않나?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강태오를 바라보았다.

“뭐 비행기만 마련하면 내가 나머지는 통 크게 쏘지. 명 대표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가게 되면 경비야 당연히 회사에서 전액 부담하는 거죠. 문제는, 시간입니다.”

도혁의 말에 직원들이 하나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지금 팔로우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둘이라야 말이지.”

“유럽 다녀오면 디자인팀 발등은 찍히다 못해 사라지고 말 거예요. 재앙급으로 일이 밀려 있겠죠.”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 되겠지.

도혁은 미래의 유행어 스불재를 속으로 곱씹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엔 제주도 정도 가고 다음번에 해외 광고제 때 스코틀랜드를 가면 어떨까요? 직원 여러분과 유럽 여행 가고 싶긴 하거든요.”

“오! 그럴까? 어차피 유럽에 광고제가 있으니까 그때 내가 아일라 섬으로 초대할게. 아까 말했듯이 내가 모조리 다 쏜다.”

“올~ 태오 팀장님 알고 보니까 재벌이었어. 와!”

놀라는 척했지만 강태오의 허세라고 여겼는지 직원들의 관심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하긴. 재벌이라 하기엔 여전히 행색이 심상찮았다.

수염이라도 좀 깍지. 도혁은 속으로 생각하며 워크숍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박 삼일이면 될까? 한라산 등반 같은 건 안 할 생각인데.”

“사흘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등산 뺀 건 굿입니다요.”

“참, 전서윤 씨, 제주도에서 로케 촬영한다고 하지 않았어?”

탁기준의 말에 도혁이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전서윤, 경수현 씨도 함께하는 건 어떨까요. 물론 배우분들 일정이 허락한다면 잠깐 들르는 식이겠지만.”

“너무 좋아요! 유명 인사와 함께하는데 싫을 리가요!”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두 배우도 초빙하기로 했다.

도혁이 회의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경고문을 날렸다.

“워크숍 갈 때까지 3주 동안은 피 튀기게 아이디어 내놓으세요. 그래야 제주도 출발할 수 있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렇게 3주간 DW애드는 우유 독에 빠져 살게 되었다.

* * *

“여기가 오늘유업 목장이란 말이지? 와, 경치 무슨 일이냐.”

“그렇지? 속이 뻥 뚫린다.”

도혁과 한수철이 오늘유업의 목장을 찾았다.

산의 중턱부터 펼쳐진 푸른 초원, 그리고 그 위를 노니는 젖소들의 풍경이 마치 이국의 시골 마을 같았다.

푸르르고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푸른 잔디가 어우러져 기가 막힌 풍광이었다. 눈이 시원해지는 광활한 목장을 바라보며 한수철이 감탄했다.

“지난번에 혼자 왔을 땐 흐렸는데 날씨가 맑으니까 더 좋네.”

“끝내준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저쪽에 안내하시는 분 오시는데?”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장화를 신은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지난번 서울에서 온 총각이네. 오늘은 두 분이서 오신다고 방금 본사에서 전화 왔드라고. 협조 잘해주라고 신신당부하드만요.”

“반갑습니다. 아저씨, 그때도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사진도 잘 사용했구요.”

“그래, 오늘은 소젖이라도 함 짜볼라요? 송아지 우유도 주고.”

제품 연구를 이렇게까지 해본 적은 없지만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심을 자극하는 아저씨의 말에 아이로 돌아간 듯 호기심이 일었다.

“그럼 체험 한번 해볼까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소매를 걷어붙인 둘에게 아저씨가 우유 통을 들이밀었다.

“마침 우리 새끼들 밥 줄 시간이오. 따라오시게들.”

“아니, 이 자식들 힘이 왜 이렇게 쎕니까?”

“많이 묵으야 무럭무럭 크지. 꽉 붙잡고 안 있으믄 땡겨갑뿌니까.”

생각보다 힘이 센 송아지들이 쭉쭉 우유를 달게 빨아 먹었다.

다음은 거대한 젖소의 젖을 짜기로 했는데, 기계를 들이대도 쉽지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요.”

“기술이 없어서 그렇지. 그럼 저쪽에 건초라도 좀 날라 와요. 우리 순둥이들 좀 먹이게.”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손발이 고생을 덜 하나 보다.

도혁과 한수철은 무거운 건초를 날라 와 먹이며 목장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여기 소들은 방목해서 키우나 봐요.”

“방목도 하고 먹이는 거 하나하나 신경 많이 쓰면서 자식처럼 키우는 거요. 이 건초도 사람이 먹어도 된다니깐.”

질겅 풀잎을 하나 씹으며 아저씨가 계속 목장 자랑을 했다.

“여기 앉아서 우리 새끼들이랑 하늘 보고 있으면 세상만사 근심이 다 사라지지.”

“시야가 시원해지는 기분입니다. 공기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사람도 그런데 소도 당연히 그렇게 느끼지 않겠소?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키우는 게 우리 목장의 목표라우. 참, 이쪽 총각은 그때 우유 살균해서 바로 드셔봤지?”

“네. 사 먹는 거랑 차원이 다르더라구요.”

“그럼. 내 오늘은 우유랑, 그 치즈도 만들어줄게요. 따라오슈.”

아저씨가 방금 짜낸 우유를 살균해 가져왔다. 그 우유를 사용해 만든 스트링 치즈의 맛도 일품이었다.

“저는 사실 비려서 성인이 된 후에는 우유를 잘 먹지 않았습니다만, 다시 찾아 마시게 될 것 같은데요?”

“그래요? 오호. 직접 만들어보고 맛보는 게 이렇게 효과가 좋다니까.”

아저씨의 말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여기 소들만 있기엔 너무 좋은데요? 천혜의 환경에 신선한 우유에, 어린아이들이 함께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린이들이요?”

한수철 역시 도혁과 같은 생각을 한 듯 마주 보았다.

“체험!”

“목장 체험 프로그램!”

둘이 동시에 말하자 아저씨가 놀라 눈을 끔뻑였다.

“역시 현장에 와야 아이디어가 뿜뿜 한다니까요. 아저씨 감사해요!”

“내가 도움이 됐다니까 기쁘네. 저어기 피자 만들어 온다. 드시고 가소.”

멀찌감치 아주머니가 방금 만든 치즈로 구워낸 따끈한 피자를 가지고 왔다.

토핑으로 가득 얹은 치즈를 쭈욱 늘여 한입에 피자를 베어 물자 육즙이 터지는 듯 풍부한 치즈의 맛이 입속을 가득 채웠다.

“상품도 맛있지만 이건 현장에서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끼겠어요. 우유, 치즈, 피자. 전부 말입니다.”

“그렇지. 맛을 아는 친구들이구만.”

“아저씨, 저기 진열된 상품은 뭔가요?”

피자를 우걱우걱 씹으며 한수철이 손가락으로 벽장을 가리켰다.

“아, 저거? 우리 회사 유기농 프리미엄 상품인데 원하면 택배 배송해줄 수도 있어. 본사로 신청해도 되고 여기서 보내줘도 된다우.”

“엇 그럼 우리 동생한테 좀 보내도 될까요? 요거트도 있네요.”

“요거트 요게 물건이지. 국내에선 아직 이 정도 고급 요거트 생산하는 목장 여기뿐일 거요.”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며 아저씨가 요거트를 꺼내 왔다.

꾸덕한 질감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단맛이 감도는 고급 요거트였다.

“부산으로 택배 배송할게요. 좀 많이 보내고 싶어요.”

“본가에 보내게?”

“어. 수아가 요거트 정말 좋아해. 치즈도 좋아하고.”

동생을 챙기며 주소를 적던 한수철의 손이 뚝 멈추었다.

“발송자 이름 명도혁으로 할까?”

“왜, 내 이름이냐? 계산해 줄까?”

“아니, 수아가 한수철보다는 명도혁을 반길 거 같아서.”

“에이. 그건 아니지.”

도혁이 펜을 뺏어서 얼른 주소 아래 한수철의 이름을 써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가 챙기는 걸 훨씬 좋아할 거다. 나는 보자, 몇 박스를 사야 하나. 회사에서 직원들 제품 분석할 거 챙기고, 우리 집에도 치즈 귀신이 하나 있어서.”

뭐, 굳이 챙겨주고 싶진 않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생각이 나서 말이지.

도혁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누나 명현진의 얼굴을 황급히 지워내고 유제품 상자를 차에 실었다.

* * *

집에 도착하자마자 명현진에게 상자를 들이밀자 누나의 입이 툭 튀어나왔다.

“야! 명도혁. 너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이 지금 상자 나르라고 준 거냐?”

“툴툴대기는. 선물이야. 치즈 좋아하잖아.”

“올~ 치즈. 이거 비싼 건데? 엄마! 도혁이가 치즈 사 왔어!”

명현진이 스트링 치즈 비닐을 벗기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도혁을 째려봤다.

“설마 독 같은 거 넣은 건 아니겠지?”

“얘는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고 그러니. 하여튼 매를 벌어요.”

찰싹 어머니가 누나의 등을 속 시원하게 때려주시고 가족들이 오랜만에 둘러앉아 우유를 마셨다.

“이렇게 너네 둘이 우유 마시고 있으니까 어릴 때 생각난다. 도혁이는 어릴 땐 잘 마시더니 이젠 커피만 마시더라.”

“네. 비려서 잘 안 먹었는데 직접 가서 갓 짠 우유 마시니까 좋더라구요. 건강 생각해서 계속 마시려구요.”

“으이구, 젊은 놈이 애늙은이처럼 건강은. 누가 보면 반 구십 된 줄 알겠네.”

생전에 반 구십 가까이 됐던 거 같기도?

도혁은 떨떠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요거트를 떠서 어머니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어머! 아들, 나 챙겨준 거야? 고마워. 아들!”

“징그럽게 뭐하는 거야!”

“누나도 한입 먹을래?”

저리 가라고 소스라치는 누나에게 억지로 요거트를 먹이는 맛이 아주 상쾌했다.

도혁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둘에게 경고했다.

“어머니 건강 좀 챙기세요. 누나도 술 좀 그만 마시고.”

“와씨. 내가 명도혁한테 잔소리를 다 듣네. 너님이나 적당히 쳐드세요.”

“난 담배 끊었잖아.”

“도혁이 너 담배 피웠었어?”

어머니의 눈꼬리가 사정없이 올라갔다.

아, 지금은 담배 따위 피우지 않았구나. 이번 생은 안 망했네.

속으로 ‘이생안’을 외치며 담배 건을 수습했다.

“영원히 금연하겠다, 그런 뜻이죠. 아무튼 어머니 건강 챙기시고 이거 받으세요.”

도혁이 준비해 두었던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건강 통장이에요. 보험을 들까 하다가 그건 두 분이서 알아서 하실 일이라서. 저는 이 통장에 부모님 두 분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매달 입금을 하겠습니다. 맛있는 것도 드시고 병원비 필요하시면 쓰시고, 무엇보다 매년 꼭 종합 건강검진 받으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어머, 우리 아들 고마워. 역시 돈이 최고지. 보험은 얘, 병명 안 맞으면 쓸 수가 없잖니. 지난번에 네 아버지 치질 수술하는데 치질만 보장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십 년 넣은 보험금 타 먹지도 못했잖아.”

“엄마! 우유 먹는데 치질은. 윽!”

명현진이 손사래를 치며 어머니에게 건넨 통장을 뺏어 들었다.

“뭐 아무튼 명도혁. 이런 생각도 다 하고 기특하긴 하네. 역시 돈이 사람을 만들어요. 돈 버니까 스케일이 달라지잖아?”

무심코 통장을 열어본 명현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 잠시만 동그라미가 이게 몇 개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왜, 얼만데 그래? 힉!”

돋보기를 고쳐 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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