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40화
‘여기 기업 문화 특이하네. 회장님까지 등장하시고.’
중소기업이야 사장이 직접 PT를 본다지만 아직 정식 대행사도 아니고 굳이 회장까지 올 일인가.
의문은 곧 풀렸다. 회장이 도혁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인사를 건넸다.
“DW 대표 맞지요? AT그룹 회장이랑 동문인데 배가 아파서 직접 얼굴 보러 왔습니다. 어찌나 자랑을 해대는지.”
“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명도혁이라고 합니다.”
“그래, AT 산하 자회사들 광고들 잘 봤습니다. 토마토랑 그, 시골 할머니 TV 보시는 광고 만든 회사 맞지요?”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를 수가 있나.”
뚫어지게 도혁을 보는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예리하게 빛났다.
“내 오래 살아보니까 시쳇말이 틀릴 때가 있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반대인 경우가 더 많더라구요. 기대하게 만드는 친구들이 실적도 좋단 말이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 프레젠터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회사의 에이스 프레젠터 한수철 씨입니다.”
“좋습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 아니니 편하게 시작하세요.”
한수철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속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담담하고 의연한 모습이다.
“안녕하십니까. DW애드 코리아의 AE 한수철입니다. 지금부터 오늘유업의 카페 프랜차이즈 ‘테오도르’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제안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테오도르는 그리스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저희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만들어본 브랜드명입니다.”
화면에 크게 테오도르라는 필기체의 문구가 떠올랐다.
“이 글씨는 월드 바리스타 대회 우승자인 테오도르의 친필 사인입니다. 이 바리스타는 사실 한국인인데요. 스페인 유학 당시 테오도르 글랜이라는 가명으로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했습니다. 이분은 현재 한국으로 돌아와 커피 농원을 운영 중입니다.”
“커피요? 한국에서 커피를 재배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강릉의 한 산촌에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저희는 오늘유업의 카페 프랜차이즈의 브랜드 명칭을 이분의 바리스타 명을 딴 테오도르로 하고 프리미엄 카페를 제안할 생각입니다.”
“월드 챔피언 바리스타라면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차용해 올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또한 이 커피 장인은 강릉에서 커피나무를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유기농법으로 신선한 원두를 만듭니다. 우유처럼 신선한 커피를 말입니다.”
커피를 우유에 비유하는 말이 나오자 오늘유업 회장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한수철이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카페는 역시 별다방입니다. 저희가 카페 인지도와 선호도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요. 이변 없이 별다방이 인지도, 선호도, 충성도 면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습니다.”
“씁쓸하네요. 상위권에 딱히 눈에 띄는 한국 기업이 없네.”
“토종 기업의 선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역시 신선하게 말이죠.”
한국 기업이 없어 아쉽다는 오늘유업 회장의 말에 한수철이 대답했다.
“별다방에 대적할 토종 기업의 강점이라면 역시 신선함입니다. 유기농으로 국내 생산한 원두, 그리고 오늘유업의 갓 짜낸 우유는 가장 강력한 강점이 될 것입니다.”
화면에서는 오늘유업의 농장과 커피 비닐하우스의 모습이 동시에 펼쳐졌다.
“모든 음식은 신선함이 생명입니다. 하다못해 저 혼자 자취방에서 만든 참치찌개조차도 다음 날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요. 이번에 조사를 위해서 오늘유업의 농장을 방문했는데 친절한 직원께서 방금 짜내어 살균한 우유를 맛보게 해주셨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우리 농장까지 가보셨구만. 아주 신선하지. 관리도 잘되고 있고.”
“맞습니다. 경치도 좋아서 조사하러 갔다가 힐링하고 왔습니다.”
농원을 추어올리는 말에 회장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한수철이 화면을 전환해 설명을 계속했다.
“마찬가지로 엄선된 국내산 원두를 사용하고 월드 챔피언 바리스타가 레시피를 제공한다면 최고의 토종 카페 프랜차이즈가 탄생할 것입니다. 물론 생산량의 한계로 백 퍼센트 국내산 원두만을 쓰긴 어렵겠지만, 일부 프리미엄 상품으로도 충분히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식음료의 재료를 국내산으로 전환하고, 제주 녹차 등을 공수해 믿을 만한 고급 먹거리를 제공하여 제품력을 강화합니다. 이와 같은 신토불이 방식은 해외 기업의 경우 쉽게 사용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마케팅 효과도 떨어지기에 좋은 차별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별다방에서 신토불이 외치면 그것도 우습겠네. 다만 이게 카페 사업에도 통하겠어요?”
회장의 우려 섞인 말에 한수철이 자료를 제시했다.
“이 식당은 유기농 신토불이 재료를 쓰기로 이름난 곳입니다. 느낌이 어떠십니까?”
“깔끔하고 프레쉬하면서도 아주 세련됐네요. 이탈리아 레스토랑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파스타가 유명한 곳인데 유기농 프리미엄 전략을 쓰는 곳입니다. 신토불이를 표방하지만 아주 분위기가 좋습니다.”
“오호, 이렇게 분위기 있고 고급스럽게, 신토불이를 강조하자?”
“그렇습니다. 카페도 결국은 먹거리가 주요 제품이라서 유기농 혹은 국내산이 붙어 있으면 곧 프리미엄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수입 쇠고기가 아무리 비싸도 한우와 같은 느낌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한수철이 이어서 컵 커피에 관해 부연했다.
“최근 오늘유업이 소매점 컵 커피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컵 커피 시장에서의 선전은 저희가 이렇게 마케팅 제안을 드리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 분위기를 그대로 카페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이어갈 절호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마케터의 시선으로 보기엔 고심 끝에 나온 신의 한 수라는 생각입니다. 낙농업의 성장은 점차 감소 추세에 있지만 카페라떼는 원유의 소비를 안정적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 부분을 노린 것인데 통했습니다.”
“카페 프랜차이즈는 컵 커피가 견인한 유제품 소비를 더욱 촉진할 것입니다. 프랜차이즈에서 안정적으로 원유와 두유,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의 매출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파생 상품 판매와 선점에도 유리합니다.”
“파생 상품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카페 프랜차이즈의 이름을 단 믹스 커피, 요거트 분말 등 공산품을 말합니다. 이는 사세 확장 후 마트와 소매점을 통해 판매도 가능합니다. 오늘유업의 소매점 유통망을 활용해서 말입니다.”
“기존 유통망을 활용한다, 아직 프랜차이즈 사업을 결정하지도 않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긴 하네요. 흠.”
“또한 초기에는 테오도르가 오늘유업의 브랜드임을 감추고 있다가 궤도에 오르면 오픈해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마케팅도 병행할 생각입니다.”
침음성을 삼킨 회장의 눈길이 제안서의 별다방 로고에 꽂혔다.
로고에 초록색으로 그려진 머리가 긴 여자를 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문제는 이 미국산 골리앗 아니겠습니까? 젊은 친구들 맹목적으로 별다방을 선호하더군요. 맛이 있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맛이 없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 가격을 주고 마실 이유가 있냐는 거지.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대학생들이 무슨 돈으로 그 비싼 커피를 마시는지 모르겠지만 밥값보다 커피값이 더 비싸.”
“분위기를 마시는 거니까요. 별다방만의 문화를 판매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저걸 이기기 어렵다는 거지.”
회장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제품력만으로 승부 본다면 우리 오늘유업, 자신 있습니다. 우리 연구팀, 직원들, 그 정도 저력은 있어.”
회장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오늘유업 직원들이 묵례로 감사함을 표했다.
“한수철 씨가 말했듯이 신토불이로, 우리 회사 최고급 원유로,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 만들 자신이 있단 말이지.”
“멋지십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저 골리앗은 제품을 떠나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단 말이야.”
여기까지 들은 도혁은 미래의 사과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대중의 절대적 지지와 사랑. 그에 따른 브랜드 충성도.
별다방 역시 사과폰과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였다.
제품을 넘은 하나의 문화로서 가치를 가진 브랜드. 이걸 넘어야 하는 것이다.
회장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한수철이 넘길 다음 페이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수철이 커다랗게 확대된 테오도르의 브랜드 로고와 작게 축소한 별다방의 로고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걸 본 회장이 잠깐 실소했다.
“뭐, 저렇게 대조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은 좋네. 우리 브랜드가 별다방을 이겼구만.”
“저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전략을 수립해야겠죠. 하지만 저희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과 함께 가는 다윗 전술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한수철이 두 개의 카페 브랜드 로고의 크기를 똑같은 크기로 맞추었다.
“회장님께서 정확하게 지적해 주신 대로 우리의 골리앗 별다방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선한 재료를 써 최상급의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그 세계를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 역시 별다방과 같은 문화적 공간으로서, 특히 토종 기업만이 할 수 있는 문화적인 시도를 선보이면서 미투 전략을 사용한다면 업계 2위, 대한민국 토종 브랜드 1위의 위치를 선점하는 데 충분할 걸로 보여집니다.”
“미투 전략을 활용하자?”
“현재 컵 커피 시장 1위로서 타사의 미투 공격을 받고 계시지요?”
“그렇죠. 아주 못마땅해. 가만있을 리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어찌나 재빠르게 따라 하는지, 원.”
쩝, 입맛을 다시는 회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미투 상품이 속속 출시되면서 시장 자체가 커지면 1위 업체로서 시장 선점의 이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짧게 보면 기분이 나쁜 일이지만 미투 전략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모방이라는 이유로 각광받지는 못하지만 결국 선점 기업, 후발 주자, 그리고 경쟁으로 인해 다양한 선택과 가격이익을 볼 수 있는 소비자까지 이익 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따라 하든 말든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만, 입맛은 떨떠름하지. 아! 이참에 나도 별다방에 미투 전략을 써봐라, 이건가요?”
“네.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해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등은 절대 할 수 없는, 후발 주자만이 가능한 도발이요.”
“오호! 후발 주자만 가능한 도발이라고요?”
솔깃한 기색이 역력한 회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한수철이 리모컨을 움직였다.
“그럼 준비해 온 샘플 CF를 통해 후발 주자의 도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