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39화 (139/252)

광고 천재 명도혁 139화

‘커피탄 리’ 이중섭 바리스타와의 낭만적인 커피 타임을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민아야. 강릉까지 왔는데 회라도 한 접시 먹고 가야지?”

“당연하죠. 경포대 콜?”

“강릉 시장님, 콜.”

“네? 하아.”

최민아가 입술을 앙다물며 반항했다.

“이럴 거예요? 대표님이랑 오랜만에 멀리 나왔는데 광고주를 굳이 끼워 넣어야겠어요? 솔직히 말해봐요. 24시간 광고주 생각만 하죠?”

“그럴 리가. 방금 감성 충만해서 섭외까지 잊어버릴 뻔했는데?”

“터키식 커피는 진짜 예술이긴 했어요. 아무튼 굳이 왜! 강릉 시장님 부르는데요!”

“온 김에 인사나 드리려는 거야. 불편한 분은 아니지만 민아가 싫다면 전화 안 할게. 우리 직원이 우선이지.”

“으이구 말이나 못하면 거절이라도 하죠. 나쁜 대표님!”

툴툴거리면서도 최민아가 통 크게 이해해 주었다.

강릉 시장은 갑작스러운 연락인데도 반갑게 맞아주어 저녁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시장님. 출장 나온 길에 얼굴이라도 잠깐 뵙고 싶어서 연락드려 봤습니다.”

“저야 항상 똑같죠. 이렇게 예고 없이 보니 더 반갑네요. 옆에 계시는 분은…….”

“안녕하세요. 시장님. 명도혁 대표님과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 최민아라고 합니다.”

“오! 디자이너시구나. 반갑습니다.”

일부러 안목해변 쪽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전생에 비하면 아직 조금 이르지만 곧 커피 거리로 변모하게 될 곳이다.

아직은 한적하고 고요한 여느 동해바다와 같은 모습이다.

일행은 바다가 보이는 횟집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리까지 오셨으니 제가 사겠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아주머니 여기 요새 제일 잘나가는 게 뭡니까? 서울에서 귀한 손님 오셨으니 푸짐하게 차려주세요.”

“광고주에게 얻어먹는 광고대행사 대표는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당연히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에헤이. 내 상식으로 우리 동네 온 사람 그리 대하면 나쁜 사람이지. 일단 드십시다.”

도저히 3명이 먹기 힘들만큼의 회가 나오고 상다리가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도혁은 목이 컥컥 막혔다.

술이 없었던 것이다.

“이거 술 안 마시고 회 먹으려니 쉽지가 않습니다. 시장님은 한잔하시지요. 민아 씨도?”

“그래도 돼요? 안 그래도 서운하던 참이었어요.”

발랄하게 소주를 시키는 최민아와 달리 강릉 시장은 도혁을 안타까워했다.

“운전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우리 관사에서 자고 가도 되는데, 한잔 같이하시죠?”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내일 아침에 미팅이 잡혀 있어서 곧 올라가야 합니다.”

“역시 한창 일할 때라 바쁘군요. 정말 보기 좋습니다. 진심으로.”

도혁을 추어올리는 강릉 시장을 보며 그에게도 진심을 말해주었다.

“지난번에 강릉시 특화 사업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선거 끝나면 곧바로 실시하겠다고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네. 맞아요. 내가 시장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강릉이 관광지로는 아주 끝내주거든. 제주나 부산 바다 못지않다고요. 그런데 선호도가 낮은 편이라 고심하고 있어요.”

“강릉에는 동해만의 맛이 있죠. 깊고, 그윽하고, 신선한 맛이요.”

“오! 명 대표 또 카피 쓰는 느낌이 팍 드는데요?”

“맞습니다. 동해만의 맛을 전할 수 있는 특화 사업을 제안드리고 싶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강릉 시장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도혁이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커피 특별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도시 강릉 말입니다.”

* * *

오늘유업 기획안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프레젠터 한수철이 기획 부분을 검토하며 연습 중이었고 도혁은 제안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어느새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탁기준이 도혁의 옆에 앉았다.

“권아영 대표 어떻게 구워삶았냐? 하여간 모델 섭외 하나는 알아줘야 돼.”

“엇, 매니지 독점 계약 아니라도 샘플 CF 찍도록 해준다고 하던가요?”

“어. 오늘유업 못 따더라도 모델료 꼭 챙겨 받을 거라고 큰소리치기는 하더라만 공찬혁이랑 샘플 찍으래.”

“정말 잘됐네요. 연예인 차원에서는 섭외가 안 되니까 대표님부터 설득하는 거죠. 예전에 경수현, 전서윤 씨도 매니지 대표부터 인사드렸었잖아요.”

“그랬지. 업계 생리를 인턴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감탄했던 게 생각난다.”

탁기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명 대표는 처음부터 신통방통했지만 볼수록 신기해. 진짜 미래에서 오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는데 말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혁이 움찔하자 탁기준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사성전자 말이야. 명 대표 말 듣고 안 팔기를 잘했지. 쭉쭉 오르고 있다고.”

“계속, 아니지, 그냥 영원히 팔지 마세요. 저도 제법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적금 넣듯이 한번 넣어보자. 그건 그렇고, 남자 모델은 그럼 공찬혁으로 확정하고 여자는 여전히 전서윤 씨로 진행할 건가?”

“네. 서윤 씨가 하면 좋긴 한데, 아직 물어보진 않았어요.”

“올~ 이제 안 물어봐도 통하는 사이냐?”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서윤 씨 좀 만나 봐야겠어요. 이번엔 다른 여자 모델 찾아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혁이 한숨을 내쉬며 재킷을 들었다.

전서윤의 근황은 좋지 않았다.

최근 작품이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라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오늘유업 광고 컨셉이 조금은 코믹 소구라, 꺼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SG기획에서 전서윤을 만난 후엔 더 가슴이 아렸다.

너무 마르고 힘들어 보여서.

“대표님. 연락이라도 하고 오시지. 오늘 메이크업도 안 했는데 얼굴 엉망이지 않아요?.”

“메이크업 같은 거 안 해도 눈도 못 마주치게 예뻐요. 내 미천한 눈으로 이런 아름다운 분을 쳐다봐도 되나 싶게 아름다우십니다.”

장난스레 말을 걸어봤지만 힘없이 짧게 한숨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서윤 씨,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지금 들어간 작품, 많이 다크하죠? 그 감독님 영화 작품성은 있지만 배우들 촬영 힘들기로 유명하잖아요.”

“……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제일 피폐해요. 작중인물에 너무 빠져들지 말자, 연기와 생활을 분리하자, 아무리 다짐해도 쉽지가 않네요.”

입술을 꾹 깨문 전서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도혁은 조금 망설이다, 가져왔던 광고 제안서를 다시 가방 속에 넣으려 했다.

전서윤의 눈길이 도혁의 손끝에 머물렀다.

“CF 모델 제안서 가져오신 거 아니에요? 이리 주세요.”

“지금 촬영 중인 작품과 톤이 너무 달라서요. 서윤 씨 힘든데 고민거리 더 얹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지금 다른 여배우랑 촬영할 거라구요? 그건 제가 더 싫은데요?”

“네?”

“명도혁 페르소나라고 띄워주시더니, 이젠 저 버리는 거예요?”

“버리다니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도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서윤이 제안서를 뺏어왔다.

한 줄 두 줄 기획안과 콘티를 훑어보던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거 재밌는데요? 아니, 이 정도로 도발해도 경쟁사에서 뭐라고 안 할까요?”

“해외에서는 흔한 마케팅 기법이에요. 재밌기도 하고 화제성도 있구요.”

“저는 그 문어 때처럼 분장만 하면 되겠네요. 그쵸?”

“카페이다 보니 톤은 세련되게 갈 거예요. 다만 담긴 메시지가 피식할 코믹소구점이 있는 거구요.”

“저 할래요.”

“네? 지금 찍으시는 작품이랑 이미지가 너무 부딪히는데요.”

도혁이 팔짱을 끼며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모델 섭외 핑계 삼아 서윤 씨 얼굴이라도 보려고 온 거예요. 요즘 좀 힘들다고 들었어요.”

“경수현 이 자식, 별 얘기를 다 했나 보네. 아무튼 나 이거 할래요. 문어도 했었는데 뭐.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피식할 정도의 코믹이지 싸구려 광고도 아니잖아요. 저는 좋은데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대표님과도 상의해 보세요.”

“이번 작품 어거지로 밀어 넣어서 지금 우리 대표님 나한테 싫은 소리 할 입장 아니에요. 내가 하겠다고 하면 별말 못할 거예요.”

“힘드시겠지만 그만큼 좋은 성과 있을 겁니다.”

실제로 전생에 국내 3대 영화제를 휩쓴 좋은 작품이었다.

작품이 너무 어두워서 전서윤이 많이 힘들 것 같긴 했지만.

“힘드니까 이런 재밌는 일이라도 병행해야 기분 전환이 되죠. 안 그래요?”

“서윤 씨가 즐겁게 하실 수 있다면 저는 당연히 좋습니다.”

“돈 벌어야죠. 명 대표님이 그랬잖아요. 시간당 수당은 CF가 최고라고.”

전서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걸 본 도혁이 커피를 권했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콘티 설명도 더 들으시고.”

“기꺼이. 라떼로 할까요?”

“좋죠. 라떼는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간격을 좁혀주는 매개체로 한잔의 차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함께 마시는 커피 한잔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대화를 매끈하게 하게 이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단하게 일을 할 때 우리에게 든든한 힘을 주지.

따뜻하고 다정하게.

어느덧 퍽 편안해진 전서윤을 마주 보며 커피 잔을 그러쥐었다.

풍성한 거품의 라떼는 더없이 포근했다.

* * *

“한수철 이번에 한 건 해 오나?”

“당연하죠. 그동안 근질근질했다구요.”

“그래 파이팅 한번 할까?”

“아, PT 할 때마다 꼭 이래야 합니까?”

탁기준의 제안에 한수철이 몸서리를 쳤다.

아랑곳하지 않고 탁기준이 AE들의 손을 한곳으로 끌어모았다.

“입으로 외치는 구호의 효과를 모르는구만! 괜히 스포츠 선수들이 파이팅하고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자, 좀 민망해도 외쳐봅시다! 파이팅!”

“파이팅!”

비장한 각오로 파이팅까지 외치며 오늘유업으로 향했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안내받은 대회의실로 이동해 제안서를 최종 검토하고 있었다.

오늘유업의 대표 상품인 컵 커피를 들고 홍보팀장이 나타났다.

“자, 커피 한 잔씩 하시고 기다리시죠. 준비되는 대로 곧 시작하겠습니다. USB 가지고 오셨죠?”

“네. 확실히 제품력이 좋네요. 커피우유보다 진하고 맛도 풍부하구요. 인스턴트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신선합니다.”

“신선함이 저희의 가장 큰 강점이니까요.”

옳은 말씀이다.

도혁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혹시 오늘 어느 선까지 참석하십니까?”

실무진까지만 보는 경우도 있고 상무급 이상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할 때도 있다.

도혁의 질문에 홍보팀장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회의실 문이 열렸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네?”

회장님이라구요?

속으로 말을 삼키며 도혁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짜 오늘유업 회장이 회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홍보팀장 이분, 어떤 일이 있어도 자리를 만들겠다더니 회장까지 부른 거였어?’

도혁과 한수철의 시선이 동시에 회장에게로 향했다.

오늘유업 회장이 둘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DW애드 코리아분들 맞지요? 반갑습니다. 업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작품을 가져오셨다고요.”

회장의 중후한 목소리가 사위에 울렸다. 묵직하고도 부담스러운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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