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36화 (136/252)

광고 천재 명도혁 136화

대한민국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 약 500잔. 국민 전체 연간 소비량 약 260억 잔.

회귀 전 커피 광고를 진행할 때 기억해 둔 커피 소비량이었다.

미성년자 제외하고, 기호 식품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라며 직원들이 혀를 내둘렀었지. 가히 커피 공화국이라 할 만했다.

‘점점 커지는 시장인 만큼 선점할수록 무조건 유리하다. 아직 본격적으로 토종 카페 프랜차이즈가 자리 잡으려면 멀었으니까 지금 진입하면 승산이 있다고.’

도혁의 백일몽과 달리 한수철은 역시 현실적이었다.

“내가 조사를 좀 해봤는데 역시 인스턴트커피 시장이 강세야. 최근 오늘유업이 침투한 소매점 컵 커피가 제법 치고 올라오는 추세고.”

“카페 시장도 만만치 않지 않아? 특히 해외 프랜차이즈는 잘되고 있잖아.”

이른바 별다방, 콩다방이라 불리던 해외 브랜드가 독점하다시피 하던 시절이었다. 도심 지역 별다방엔 매일같이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고.

“수요는 충분하다고 봐. 특히 2030이 카페 커피를 선호하는 추세고 말이지.”

“2030은 커피보단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이걸 봐.”

[공간을 판매합니다. 문화를 개척합니다.]

한수철은 별다방에 관한 기사를 내밀며 부연했다.

“별다방을 제3의 공간이라며 공간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그 카페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 소비되고 있는 거지.”

“실제로 소비자의 니즈를 파고든 성공한 캠페인의 교과서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도혁이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토종 프랜차이즈가 문을 연다면 현재의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어.”

“별다방을 이긴다고?”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사례가 제법 있잖아. 특히 해외 기업이라면 골리앗이 철수해 버린 적도 있었어.”

“에이. 별다방은 지지 않는다에 만 원 걸게.”

똑똑한 자식, 회귀도 안 한 주제에 미래를 잘도 맞추는군.

도혁은 쓴 입맛을 다셨다.

“이기지 못하는 골리앗이라면 따라붙는 전략은 어때. 판세를 뒤집는다는 게 꼭 별다방을 이긴다는 뜻은 아니야.”

“따라붙는다라…… 2위 전략을 쓰자는 거야?”

“맞아. 시장에서 2위, 토종 브랜드로서는 1위 전략을 고수하면서 별다방에 바짝 따라붙는 거지.”

“페시콜라나 버거왕처럼?”

“맞아.”

순간 한수철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이거, 재밌는 광고 만들 수 있겠는데? 해외에서는 제법 있잖아. 그런 스타일.”

“우아하고 세련되면서도 코믹하게 소구해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세히 보면 웃긴다, 그런 느낌?”

“블랙 코미디처럼 개그 요소를 숨기고? 오! 재밌겠는데?”

벌써 도혁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 * *

모델 전략.

빅 모델을 이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가장 간편하고도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에 효율이 높은 편이다.

물론 위험도 따른다. 음주 운전 등 모델이 물의를 일으켰을 경우 브랜드 이미지까지 동시에 추락하니까.

‘하지만 이 모델은 연예계 생활을 하는 내내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 그 자체였어.’

광고계에서 카페남이라고 불릴 만큼 커피 광고의 간판이 된 이 남자.

도혁은 그를 찾아가고 있었다.

함께 나선 탁기준이 투덜거렸다.

그가 원수처럼 여기던 악녀 권아영네 회사 소속이었거든.

“으…… 못돼먹은 권아영 선배를 또 봐야 하다니. 꼭 그 매니지먼트랑 일을 해야겠냐?”

“네. 최근에 빅 스타를 엄청 영입했더라구요. 미리미리 대표와 좋은 관계 뚫어놔야죠.”

“자기들이 인사를 와야지. 우리 이제 제법 덩치도 있고 매니지들 자주 들어오지 않아?”

물론 연예기획사가 광고 회사에 잘 보여야 하는 건 맞지만, 이번에는 이쪽에서 꼭 필요한 모델이 있었다.

도혁은 입이 쭉 나온 탁기준의 등을 밀다시피 해 권아영의 회사로 들어갔다.

마침 로비에서 권아영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머! 두 분! 내가 명 대표 전화 받고 어찌나 민망하던지. 저희 매니지먼트 쪽에서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요.”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한번 뵙고 싶었어요.”

“이렇게 직접 와주시고 영광입니다. 얼마나 반가우면 이렇게 맞이하러 나왔겠어요.”

“아무튼 들어가서 얘기해요.”

대표실로 안내한 권아영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요즘 업계에서 DW애드 잘나간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그러고 보니 두 분 얼굴이 좋아졌네요?”

“재벌가 사모님께 그런 얘기를 들으니 송구합니다요.”

“재벌은 무슨. 그냥 중견 기업이야.”

탁기준 말에 손사래를 치며 진짜 재벌 사모님 권아영이 도혁에게 물었다.

“지나는 길에 용건 없이, 그것도 매니지먼트에 들를 리는 없고. 누구를 원하세요?”

“눈치채셨습니까?”

원래는 인사나 하고 천천히 운을 떼려 했었다.

아직 오늘유업과 접촉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 매니지먼트 분위기나 살피려고 한 거였는데.

역시 권아영은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

“둘러 말씀하시지 않으니 저도 직진하겠습니다. 공찬혁 배우님과 작업하기를 원합니다.”

“뜻밖이네요? 아직 지명도 있는 배우는 아닌데. 난 또 빅 모델을 찾으시나 했어요.”

아직은 아니겠지. 그는 곧 커피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대박을 치고, 살아 있는 커피 그 자체가 될 예정이다.

드라마 흥행 전에 선점해 버리려는 전략이었다.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샘플 CF를 함께 찍어주실 수 있냐는 부분입니다. DW애드에서는 광고주에게 최대한 실제 방영분에 가까운 시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어머! 모델까지 미리 섭외해서요?”

“물론 소정의 출연료는 지불합니다. 당연히 광고 수주 시 해당 배우와 계약을 이어갈 거고요.”

권아영의 입장에서 쾌재를 부를 만한 제안이었지만 그녀는 망설이는 척했다.

“샘플 CF 찍었다가 계약이 안 되면 당사자에게 미안하잖아요. 여러 가지 고려해 볼 부분이 있어요.”

“얼씨구, 지금 고민하는 거야? 명 대표, 요 앞의 PM 매니지 어때? 그쪽에 좋은 배우들 많다고.”

탁기준이 일어서는 척하자 권아영이 급히 말렸다.

“얘는 하여간 성질이 급해요.”

“아예 저희와 MOU(업무 협약)를 맺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협약 관계인 광고 회사에 도움을 준다 정도로 설명하면 최종 CF 계약 체결이 되지 않더라도 공찬혁 배우가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듯합니다.”

“독점인가요?”

허를 찌르는 권아영의 말에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전서윤, 경수현 배우가 속해 있는 SG기획과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인턴일 때부터 샘플 CF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대표님이라서요. 독점으로 MOU를 맺긴 힘들 것 같습니다.”

“SG요? 대표나 배우나 고상하기 짝이 없으시죠. 작품이 최고라나 뭐라나.”

어째 목소리가 배배 꼬였다.

권아영의 회사와 분위기가 좀 다르긴 하지.

도혁이 권아영을 달랬다.

“상업성과 대중성은 권 대표님을 이기지 못하는걸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좋지만 한 마리를 잡는다면 저 역시 대중성을 선택할 겁니다.”

“역시 우리 대표님, 말이 통하는군요. 흠, 아무리 생각해도 독점으로 계약하고 싶은데.”

탁기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여간 욕심은. 선배, 이 바닥에 독점이 어딨어. 어제 죽고 못 살다가 오늘 등 돌리는 세상인데, 왜 순진한 척 명 대표 꼬시고 그래.”

“넌 왜 따라와 가지고 초를 치니, 응?”

“선배 이럴까 봐 따라왔다. 왜!”

티키타카를 하는 와중에 권아영이 물었다.

“여기까지 오신 김에 찬혁 씨 보고 갈래요? 모델로 콕 집을 정도면 궁금할 거 아니에요.”

“오늘 회사 나오셨습니까?”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공찬혁이 문을 열었다.

어우, 눈부셔. 미래를 알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대배우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권아영도 자랑하려고 불렀구만.

“인사들 나누세요. 이쪽은 우리 회사의 미래 공찬혁 배우님, 여기는 DW애드 코리아 분들이에요. 광고대행사.”

“반갑습니다. 공찬혁이라고 합니다.”

잘생기고 예의 바르고 스마트한 분위기까지. 아직 신인에 가까운 연차였지만 여유까지 느껴졌다.

전생의 선입견이 더해진 탓도 있겠지만, 실물로 보니 더 커피와 잘 어울렸다.

세련된 도시 감성과 따뜻한 미소가 커피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모델이다.

남자지만 부럽구만.

부러운 모델의 섭외까지 마치고 탁기준과는 헤어졌다.

권아영이 둘을 붙잡았는데 도혁은 선약이 있다고 빠졌고 탁기준은 잡혀 버렸다.

-명 대표 같이 가. 나 데려가야지.

-넌 결혼 턱 쏴야지. 가긴 어딜 가? 대표님은 아쉽지만 다음에 뵐게요.

-명 대표! 도혁아!!!

안타까웠지만 동문끼리 회포를 풀라고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모델 섭외도 끝났고, 이제 오늘유업 설득할 일만 남았네.’

과연 십 년 뒤의 프랜차이즈를 당겨올 수 있을지 설레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은 목적이 있지 않은가.

‘라떼! 1층에 프랜차이즈 1호점 오픈해 버릴 거다.’

머릿속에 광고주와의 미팅을 떠올리며 오늘유업 앞에서 한수철을 만났다.

“홍보팀장이랑 미팅 잡은 건데 좀 떨떠름해하더라.”

“원래 하는 대행사가 있어서 그렇지?”

“어. 대행사 바꿀 생각 없지만 정 그러면 일단 와보라는 식으로 말하더라고.”

쉽지 않겠다며 한수철이 주먹을 불끈거렸다.

“전투 의욕이 확 오르더라. 대행사 있는지 몰라서 접촉한 게 아닌데 말이지.”

“오늘유업 대표님이 보수적이고 의리파라서 그래. 성향을 아니까 홍보팀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겠지.”

떨떠름해한다던 광고주는 오늘유업 사옥의 소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DW애드 코리아의 회사 소개서를 대충 훑어보던 그가 입을 떼었다.

“저희 대표님에 대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한번 협력한 업체와 오래 일합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DW애드 코리아가 요즘 잘나가는 거야 알고 있지만…….”

홍보팀장이 슬쩍 포트폴리오를 자기 쪽으로 당겨보았다.

“AT 캠페인은 둘 다 잘 봤습니다. 저도 홍보하는 사람이라서 광고는 유심히 보는데, 기억에 남더라구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엑슨도 하셨네요? 아, 이거. 이 광고 기억납니다.”

홍보팀장이 한 장 한 장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ALL 캠페인만 생각하고 젊은 친구들이 파격적인 광고를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스타일도 제법 진행하셨군요?”

“네. 정치광고, 그리고 부동산 쪽은 보수적으로 만드는 편입니다. 철저한 타깃 분석과 시의적절한 제안이 저희의 강점입니다.”

“이야, 생각보다 훨씬 프로필이 화려하네요.”

한참 포트폴리오를 구경하던 홍보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행사를 교체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공무원도 아니고 한 번씩 바꿔줘야 브랜드 이미지도 변화를 꾀하고 하는 것인데…….”

“바꾸실 필요 없습니다.”

“네? 우리 광고 수주하러 오신 거 아니십니까?”

“그건 맞는데, 굳이 기존 광고대행사를 교체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수께끼와 같은 도혁의 말에 홍보팀장이 안경을 고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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