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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35화 (135/252)

광고 천재 명도혁 135화

강태오가 나가고 도혁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불그스름한 노을에 해가 갇히고 있었다.

완벽한 라떼 한잔이 그리워지는 초저녁 시간.

습관처럼 다시 커피를 입속에 머금어 굴리던 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 커피, 너무 싱겁다.

‘하아, 그 라떼가 너무 먹고 싶은데 말이지. 어떻게 마실 방법이 없네.’

전생이 그리울 때가 간혹 있는데 바로 이런 때다.

십 년은 훌쩍 지나야 론칭할 브랜드의 카페라떼가 미치도록 마시고 싶은 바로 지금 말이다.

당장에라도 그 회사로 달려가 지금 바로 론칭하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깐만. 지금 가서 말하면 안 될 건 또 뭐야?”

도혁이 팔짱을 풀곤 자리를 고쳐 앉았다.

전생이 그리울 정도로 생각나는 라떼 브랜드는 한 우유 회사의 카페 프랜차이즈였다.

원유가 좋아서인지 라떼뿐 아니라 우유아이스크림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던 카페였다.

거기 밀크티라떼도 예술인데.

도혁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너무 뒤의 일인데. 단지 내가 그 카페라떼를 마시고 싶다는 이유로 시간을 이렇게까지 거슬러서 사심을 채워도 될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시장조사라도 해보지, 뭐.

도혁의 손길이 바빠졌다.

* * *

[카페불패(不敗). 커피천국 불신지옥]

대표실 보드판에 크게 써놓은 문구를 보고 한수철이 깜짝 놀랐다.

“놀라라. 모닝커피나 한잔 같이하려고 들어왔더니 웬 지옥 타령이야?”

“수철아. 대한민국 커피 시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영원히 흥할 거라고 생각해.”

“이유는?”

“아침부터 필 꽂혔구만. 커피부터 한잔하면서 얘기하자고. 오면서 사 왔어.”

역시 싱거운 1층 카페의 라떼였다.

도혁이 코를 한번 찡긋하고는 화이트 보드 앞에 섰다.

“커피 시장이 지금도 나름 성장했더라고.”

“지금도?”

‘지금도’라는 말이 이상하다며 한수철이 고개를 기울였다.

도혁이 못 본 척 말을 돌렸다.

“아까 대한민국 커피 시장의 미래가 영원히 흥할 거라고 했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

“명 대표, 내가 조금 어려운 말을 써도 될까?”

“뭐 괜찮아. 그 정도 지성은 있다고.”

“인간에게는 아난다마이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어.”

생각보다 더 어렵다.

아난다 뭐라고?

도혁이 한수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전에 심리학 수업 시간에 들은 말인데, 인상이 깊어서 기억하고 있었어. 아무튼 그 신경전달물질이 인간의 낙천성을 좌우하는데 한국인은 거의 그 물질이 뇌에서 안 나온대.”

“한국 사람이 낙천적이진 않지.”

“나이지리아처럼 긍정적인 성향을 가진 최상위에 비해서 30퍼센트나 부족하게 나온다고 하더라.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냉소적이고 현실주의라고.”

“흠. 그래서 부지런하고 일도 많이 하나 보다.”

“맞아. 그게 포인트야.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부지런하대. IMF 극복하는 속도 좀 봐. 그 말은 곧…….”

“카페인을 들이켠다는 거구만. 커피랑 그렇게 연결이 되네.”

“맞아. 커피 마시고 미친 듯이 일하다가 또 커피 마시고 야근하고 뭐, 그런 무한 루프라고나 할까.”

도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의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거든.

“아무튼 그런 이유로 커피 시장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생각해.”

“동감.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 말은 내가 지금 어떤 회사에 커피 프랜차이즈를 제안해도 민폐는 아니라는 거겠지?”

“왜, 생각해 놓은 회사가 있어?”

“응. 오늘유업.”

“엥?”

한수철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거긴 우유도 그렇지만 분유 회사 아닌가?”

“아직 회사 이미지 갱신이 안 됐구만. 오늘유업 커피 만들잖아. 슈퍼에서 파는 카페라떼 제품.”

“아, 그게 오늘유업 제품이야?”

최초의 컵 커피 브랜드로 ‘사랑한다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커피 시장에 뛰어든 오늘유업이었다.

물론 커피에 발을 들인 이면에는 사업성과 더불어 우유 시장의 몰락이 있었다.

“언제까지 우유만 만들기엔 한계가 있어. 요즘 애들 우유 안 마시잖아.”

“하긴 낙농업 증진을 위한 사업까지 벌일 만큼 우유 시장이 축소되긴 했어.”

“거기다 점점 아기도 안 낳는데, 분유 시장도 사양길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프랜차이즈는 기존 제품군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아?”

“벌써 커피 시장에 발 들였다니까. 그리고 커피랑 우유가 왜 멀어. 이거 봐, 같이 사이좋게 섞여 있잖아?”

도혁이 라떼를 한 모금 삼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나 격하게 그 브랜드의 라떼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떡해서든 오늘유업에서 카페 프랜차이즈를 만들도록 제안에 온 힘을 기울여야겠어.”

화르륵 열정으로 불타오른 도혁을 보며 한수철이 눈을 끔뻑였다.

“왜 이렇게 눈을 번쩍이고 그래. 무섭게.”

“그럴 일이 좀 있어.”

도혁이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거 제작팀 애들 소리냐? 목소리도 크다. 건너편까지 들리고.”

“뭐지?”

제작팀 사무실로 건너가자 최민아가 도혁을 돌아보았다.

“대표님! 여기 우리 사무실 창문가에 까치가 집을 지었어요.”

“아예 둥지를 틀었다는 말이야?”

“네. 이거 보세요. 너무 귀엽죠?”

막내들이 아기 까치가 입을 벌리는 걸 보고 소리를 지른 거였다.

몰랐는데 나 조류 좋아했네.

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까치 새끼들을 바라보자 저절로 광대가 승천했다.

역시 모든 동물의 새끼는 귀엽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정말 너무 귀엽죠? 그리고 우리가 관찰하기 좋은 자리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어요. 어쩜 좋아. 저 입 좀 보세요.”

“까치는 길조라는데 우리 DW애드에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건가 보다.”

“그러게요. 흥부처럼 대박 터지는 거 아니에요?”

대박이라는 말에 건너편에서 작업 중이던 이진우가 소리쳤다.

“대박 터진 것 맞습니다. AT케이블 기사 쏟아지기 시작하는데요?”

“그래?”

모두 이진우의 책상 뒤에 서서 기사를 구경했다.

[광고 열풍을 몰고 온 AT그룹. 텔레콤에 이어 케이블까지 대박 행진.]

[캠페인의 열기를 타고 AT케이블 주가 연일 순항.]

[AT의 저력, 코스피 하락장에 홀로 웃었다.]

DW애드를 조명한 기사도 많았다.

[DW애드 코리아, AT텔레콤에 이어 연타석 홈런.]

[광고계의 신성 DW애드 코리아 성공 전략 집중 해부.]

“해부까지 당하는구만. 올~ 제법 분석 잘했네.”

“이야, 금방 유명 인사 되시겠습니다.”

“유명세 타는 건 썩 내키지 않는데 말이지.”

도혁의 말에 탁기준이 난색을 표했다.

“광고쟁이가 유명세 타는 걸 내켜 하지 않다니!”

“하긴. DW애드 코리아를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해야죠. 얼굴 팔리는 거 정도야 감수하겠습니다.”

도혁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도혁의 얼굴을 팔아줄 사람이 나타났다.

“계십니까? 남성잡지사 PQ에서 나왔습니다. DW애드 명도혁 대표님 혹시 계신가요?”

“오! PQ요?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들이 반색하며 기자를 맞았다.

“전화로 섭외하려다 회사가 인근이라 직접 방문했습니다. 어느 분이 명도혁 대표님이시죠?”

털털한 미소가 인상적인 여자 기자였다.

그녀가 도혁에게 미리 뽑아온 헤드라인을 내밀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미모의 청년 사업가 DW애드 명도혁, 그의 마성의 매력에 빠지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문구를 보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미모의 CEO가 아닐뿐더러, 마성이라니.

그런 그를 보고 기자가 방긋 웃었다.

“헤드라인 마음에 드세요?”

“이거 문구가 좀 과한데요. 젊은 CEO 명도혁 정도로 고치면 어떨까요?”

“우리 대표님 겸손하시구나. 앗, 그럼 기획 기사 인터뷰 허락하시는 거죠?”

얘기가 그렇게 되나?

도혁이 짧게 끄덕이자 기자가 급히 스케줄을 잡았다.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다음 주 목요일 어떠십니까?”

“좋아요! 저희 사진기자와 스케줄 맞춰서 연락드릴게요. 장소는 혹시 여기 사무실에서 해도 될까요? 스튜디오를 섭외하려고 했는데 작업 공간이 정말 예쁘네요.”

“뭐, 그러시죠.”

적극적이고 스스럼없는 성격인가 보다.

그 뒤로도 이것저것 캐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충 대답해 주었다.

“벌써 인터뷰는 아닌 거죠? 오늘은 섭외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맞아요. 이런 바쁘신데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 봐요. 그럼 목요일에 뵐게요.”

조금 소란했던 섭외가 끝나고 차현우가 도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PQ면 남성지 중에서는 제일 잘나가지 않나? 인터뷰 나가서 나쁠 건 없지.”

“이왕 할 것 신문이나 시사 잡지가 더 좋기는 합니다. 광고주들이 많이 보니까요.”

마지막 말은 괜히 했다.

그 뒤로 신문사를 비롯한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언론사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한동안 도혁은 인터뷰에 심력이 갈리는 체험을 했다.

마지막 일간지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믹스커피를 탔다.

‘역시 당 떨어질 때는 믹스지.’

그러면서도 종이컵 한 잔도 채 채우지 못한 믹스커피의 당질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뷰 많이 힘들었어? 어우, 다크서클 때문에 판다 같아.”

“수철아, 우리 새 광고주 뚫어볼래?”

“뚫는다면 영업을 하자는 거야?”

한수철이 놀라 도혁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까 DW애드에서 완전히 신규 광고주는 영입한 적이 없네? 모두 소개를 받거나 의뢰가 들어왔던 거지?”

“맞아. 그걸로 이만큼 확장한 거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신규 광고주 영업은 필수니까.”

“하긴. 지금껏 한 번도 안 나간 것도 신기한 일이야. 다른 대행사에서 보면 거짓말한다고 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꼭 한번 뚫어보고 싶은 곳이 있어.”

“설마 그때 말했던 오늘유업?”

도혁이 끄덕이며 믹스커피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그걸 본 한수철이 고개를 기울였다.

“나 그때 오늘유업 얘기 농담인 줄 알았어. 지금 마시는 서동커피 쪽이 훨씬 유망하지 않아? 업계에서 광고비를 제일 많이 지출하는 기업 중 하나야.”

“서동커피는 곧 신규 브랜드 론칭하면 PT 때 부를 거야. 그때 들어가든지 하고.”

“오늘유업에 완전히 꽂혔구나.”

도혁이 지금까지 혼자 정리해 온 자료를 한수철에게 보여주었다.

“아니, 언제 이걸 또 혼자 이렇게 팠어?”

“솔직히 말하자면 광고주가 카페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해 어떤 견해를 보일지 확신은 없어. 하지만 혁신과 창의 그리고 봉사를 중요시하는 기업 분위기로 봐서 오히려 서동커피보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어.”

서동커피는 카페 프랜차이즈보다는 기존 가루 커피 시장을 뒤집어놓을 예정이다. 세상 둘도 없이 작은 카페로 말이다.

그 PT에 들어갈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도혁은 자료에 적인 오늘유업 제품군을 훑어보았다.

“일단 들어가서 부딪혀 봐야겠다. 같이 갈 거지?”

“대표가 가자면 가야지. 나도 공부 좀 해야겠는데?”

그렇게 하루 다섯 잔 커피를 마시는 카페인 마니아 한수철과 함께하기로 했다.

도혁은 오늘유업 로고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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